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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מִקֵץ 미케쯔" : 12월 마지막 주 토라포션 in 5783
창41:1-44:17(To), 왕상3:15-4:1(Haft), 롬10:1-13(Brit), 눅9:1-12:59(신약)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주의 피가 흐르는 한 생명 >
제작년 격리 기간에 집에서 목사님이 전하시는 미케쯔 말씀을 들으면서, 내 가슴이 얼마나 불타고, 나도 죽기 전에 저런 메세지를 전하고 죽고 싶다는 불을 붙인 포션이 미케쯔였다. 우리의 욕심과 탐욕으로부터 물든 성전을 깨끗하게하는, 하누카 절기에 맞물려있는 토라포션이다. 오늘 제목을 조금 무겁게 정해보았다.
창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יאר 예오르 : 나일강 = 빛
바로가 빛 위에 서 있게 된다. 나는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이럴까? 이 세상은 왜 이럴까? 왜 남과 북은 하나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문제들이 내 삶에 가득하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 나를 움직이는 힘, 저 상대, 내 가정, 가문을 움직여왔던 힘이 무엇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왔다. 그것을 악한 경향성이라고도 했는데, 그것의 총체, 최종 파워를 이번 주간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을 파라오라고 한다
פרע 파라오 : 말하고 생각하고 보는, 우리 전체의 존재
우리 오감의 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바로가 나일강, 바로 예오르, 빛 가운데 섰다. 이 바로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이 꿈에서 칠년 풍년과 흉년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바로란,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보는 것을 통해서 내 삶이 아주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인류도 바로의 힘 때문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문명을 이뤘고, 역사상 가장 부요한 세대가 되었다. 7년 풍년의 부요함을 가져올 수 있는 힘을 바로라고 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풍년의 때, 술술 풀리는 때, 돈을 갈퀴로 모아서 세기 바쁘다는 때가 있고, 또 흉년이 다가온다. 풍년은 어찌할 수 있지만, 흉년의 힘을 잃게되는 힘을 바로라고 한다. 그때 불안함을 느낀 바로는 꿈을 꾸게 된다.
총 4개가 나오는데, 인류, 여러분의 인생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이벤트를 정리해놓은 꿈이다
창41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 여러분의 삶에 아름답고 살진 암소, 암소는 파르인데, 열매가 맺히는 때를 설명하고 있다. 살졌다는 것은, 우리는 살이 원수인데, 살이 쪘다는 것은, 살은 몸을 상징한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배운 것을 실제로 몸으로 살아본, 경험해본, 그래서 내 것이 된 놀라운 여러분의 삶의 열매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 뒤에 흉하고 파리한 암소가 나왔다고 했다.
흉하다는 것은 악하다는 것이다. 내 속에 아름답고 살진 열매도 있지만, 또 치우고 싶은, 내 속에 이것 좀 교정되었으면 좋겠다는 흉하고, 살이 없는, 깡마른 소들이 있다. 이런 나의 삶의 구조를 설명한다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세 번째이다. 내 삶에 산재되어있는, 내 삶에 어떤 것은 좋고, 나쁘다는 것을 통합하고 연합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줄기에서 나왔다. 그런 삶의 열매들이 여러분의 삶에 있다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런가하면, 뭔가 연결되고 꿰어지는 것 같지만,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우리가 배운 것들이 상상하고 공상하는데 그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주에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마치 투명한 막처럼, 방수 천처럼 하나님에게 적셔지지 않는 상태이다. 토라를 배우고 지식은 쌓여서, 유리창을 아주 깨끗하게 닦아서,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들, 아보트, 이웃이 살고 있는 삶을 내 것인 양 살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경험하지 않고, 내 것이 되지 않은 지식을 내 것인 양 속이고 있는 우리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럴 때 바로는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한 상태에 서 있다. 그런데 이 바로가 요셉을 초청한다.
이 일곱 흉년에 대해서 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요셉이라고 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그 요셉을 만나기 위함이다. 여러분의 삶 속에 이 네 가지의 현상들이 다 있었다. 살진 소, 파리한 소, 연합한 이삭, 마치 내 것인 양 착각하고 살아온 모습, 이럴 때 우리는 빛 가운데 서서 요셉을 부르게 된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하나님은 바로에게 요셉을 보내신다. 궁극적으로 바로라는, 내 안에 끝까지 차오른 존재는 홍해 바다, 요셉 바다에서 수장되게 된다.
오늘 저녁부터 단 지파의 달이 시작이 된다. 우리 하누카의 마지막은 페스티벌로 마무리하게 되었고, 또 단 지파와 맞물린다. 단 지파는 테벳월이다.
טבת 테벳
단 지파의 달이 시작된다. 월삭이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시간이다. 한 달의 머리이다. 하나님은 머리를 중요하게 여기신다. 단 지파의 시간이 다가온다.
ע 아인 = 단 지파의 문자
키슬레브월, 베냐민 지파의 히브리어 문자가 싸멕이었다. 단 지파의 문자는 ע 아인이라고 한다. 보는 것이다. 아인 로에, 눈은 본다, 그리고 마음은 갈망한다, 이런 말이 있다. 여러분의 눈은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서 마음에 갈망이 일어난다. 사람은 그가 눈으로 처음 본 것을 원하게 되어있다는 말도 있다. 단 지파의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우리의 것들을 교정하시는 달이다.
보다라는 것은 갈망과 연결되어있다. 내가 원하는 것, 소유욕이다. 그런데 요셉이라는 인물이 바로와 만나게 되는데, 요셉의 특징이 있다. 요셉이 입었던 옷, 채색옷이다.
פס 파쓰 : 채색옷
유대인들은 이 앞에 알렢이 숨어있다고 한다. 요셉이 입었던 옷은 אפס 에페쓰였다. 요셉이 입긴 입었는데,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채색옷이라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에페쓰이다. 바로의 눈에는 이 요셉이 보였을까? 요셉이 제시하는 것들, 하나님이 이야기하는 것들, 너가 영이 되어라, 너를 부인해라, 이런 말들이 솔직히 여러분의 마음 속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갈망하지 않는다. 목사님들이 TDI를 Total denial이라고 아무리 지어도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갈망하지 않고, 나를 부인하는 것이 나를 적시지 못하는 상태에 왔다
제가 좋아하는 이지선 교수님이 저랑 같은 학교를 나왔고, 같은 나이인데, 대학교 1학년 때 전신화상을 입고 괴물처럼 변했지만, 지금은 한동대 교수님이 되셨는데, 지금 만약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사고를 피해가실건지 기자들이 질문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 사건을 당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사건을 만남을 통해서 이 빛을 인카운터함을 통해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셨다. 드디어 요셉의 채색옷을 입게 되신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잡히지 않는다고해서, 갈망하지 않는, 그런 우리의 바로의 눈을 교정하시는 한 달을 잘 시작하시길 축복한다.
온 세계는 지금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이 과정이 굉장히 지루하게 써 있는데, 창세기를 통독할 때, 딱 걸리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왜 이렇게 형들은 돌이키다가 안 돌이키고, 요셉은 왜 잡았다가 풀어줄까? 이 지난한 과정이 인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왜 이렇게 남과 북이 하나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있을까? 이 스토리 안에 있다. 작게 묘사되어있지만, 이 요셉이 시므온을 선택한다. 요셉은 형들 사이에 있는 미움을 해결하기 원헀다. 시므온은 쏘네, 미움을 대표한다. 이유없는 미움이다. 내 내면에, 가장 용서가 안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나 자신도 이유없는 미움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절대로 예오르 강가에 서지 못하고, 빛 가운데 서지 못하고 서로를 탓하기만 바쁜 상태이다
제가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대학교 4학년 때 결혼을 준비하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는데, 그때 저희 학교는 재학생은 결혼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너무 결혼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서,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고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결혼 1주 전에 학교에서 아웃리치를 캄보디아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준비해야하는 가장 바쁜 일주일 전에 신부는 캄보디아로 떠나고, 신랑 혼자 준비했던 때가 있었다. 하나님이 저를 캄보디아로 보내셨는데, 캄보디아는 Killing field라는 영화로 알려졌는데, 제가 갔을 20년 전에는 아우슈비츠가 캄보디아화되어서 나타난 것일 정도로 굉장히 비극적이고, 아우슈비츠에 버금가는 재앙이었는데, 더 악한 재앙인 이유는 그것이 내전이었던 것이다. 자국민을 서로 죽인 것이다. 다른 민족이 죽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죽인 것이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로 엄청나게 어두운 시대상이었다. 그래서 제가 갔을 때, 그 사회가 너무 슬퍼하고 있었고, 그때 10대 고문 학살 단원으로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30-40대, 50대로 자라서 그 사회를 주도하는 리더십이 되어있었기에, 굉장히 어두움이 가득했다. 그때 저희 학교에서 파송했던 선교사님 집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쏘네에 대해서 많이 묵상을 했다
우리가 가진 이유없는 미움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 대치 상태에 있고, 무엇 때문에 서로를 이렇게 미워하고 있을까? 오늘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려있는 온 세계에 가득한 미움, 상대에 대한 미움, 나 스스로에 대한 쏘네를 깊이 살펴보시길 바란다.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아인을 하늘로부터 내려주시길 기도한다
아인의 숫자값은 70이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데리고 갔던 가족 수가 70명이었다. 그리고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70개의 국가가 있다고 한다. 절대수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이다. 세상 70개의 국가 중에 특별히 로마 제국이 확장된 현대 사회의 뿌리가 되는 국가를 에돔이라고 한다. 에돔은 붉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아인을 쭉 풀이하고 있는데, 토라에서 아인이라는 문자가 가장 처음 나오는 곳이 어디일까?
특정 글자가 단어의 시작으로 나온다는 것은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על 알 : 흑암이 깊은 "위"에 있다
테홈과 토후 바보후, 이 깊은 어둠 위에 아인이 존재한다.
하누카가 헬라 제국과 싸운 것인데, 어둠은 헬라를 대표하는데, 이 깊은 테홈, 어둠, 토후 바보후는 에돔, 로마를 상징한다고 유대인들은 이야기한다.
오늘은 제가 이 피, 빨강에 대해서, 에돔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에돔, 에서가 가장 먼저 원헀던 것이 피곤해 죽겠으니 저 붉은 것을 먹게 하라. 피를 먹고, 생명을 먹는 일들을 계속 한다. 그래서 우리가 켜고 있는 이 불꽃, 오늘은 일곱째 불꽃을 켜는데, 이 불꽃도 붉은색이다. 이게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단 지파 = 화
키슬레브월이 대표했던 감각을 잠이라고 했다면, 단 지파가 대표하는 감각을 화라고 배웠다. 화는 붉은 것을 상징한다. 활활 타오르는 진노를 상징한다
창42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요셉이 형들을 다루는 스토리 가운데 이렇게 나온다. 너희가 다 죽게 생겼으니 방법은 하나다. 가서 베냐민을 데리고와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갑자기 옛날옛날 자기들이 지었던 죄의 근본을 끄집어내면서 서로 싸우고 있다. 요셉이 알아듣는지도 모르고, 서로 잘났다고 하면서 싸우고 있다. 요셉이 시므온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 사이에 있는 미움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베냐민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목사님과 제가 가장 슬플 때는 여러분들이 싸울 때이다. 형제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험담하고, 싸울 때 너무너무 마음이 찢어진다. 요셉도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시므온을 결박했다. 우리의 답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만,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고,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한 생명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주의 피가 흐르는 한 생명을 보라. 너희 몸에 흐르는 것은 같은 피이다. 그래서 우리를 새롭게하기 원하신다.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나지 않는 사람으로, 그런 한 생명으로 우리는 만들기 원하신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너희는 원래 미움이 없는 그 피가 너희 안에 있다고 오늘 너무너무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미워하는 것이다. 제가 이 말씀으로 밤잠을 설치면서, 하나님 앞에 너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제가 내 안에 흐르는 주님의 피를 부인하고,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군요. 용서하지 못하고 있군요. 용서라는 것은 무엇인가? 용서에 대한 정의를 너무 새롭게하고 있는데,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을 용서라고 했다.
마4: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때 버려두다는 말이 용서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된 우리가 세상의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용서하지 못한 상태, 시므온, 쏘네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따르지 못하는 상태, 제자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을 또한 시므온의 상태라고 한다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했을 때, 버리다도 용서하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 속에 뭔가 놓아주지 못하고, 자유케하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그런 상태를 미움의 상태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미케쯔, 끝이 오기 바란다. 놓지 못하는 것, 미움이든, 용서치 못함이든,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이든, 너무 힘들어서 나 스스로를 착한 박스 안에 가두고 석방하지 못하는 그 상태에 미케쯔, 끝이 오기를 기도한다
미움은 붉은 것을 상징하고, 분노는 화를 상징하는데, 성경에는 긍정적인 불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토라는 불이다. 그리고 그 불은 우리 모두를 태울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내는, Ego, 파라오가 내는 불은 분노의 불, 에고의 불이지만, 하나님이 내시는 불은 생산적이고 이타적인 불이다
우리 인간이 내는 바로의 불의 최절정이 있었다. 그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1938년에 났던 불이다. 이곳은 유대인 회당이다. 계속 불타고 있다. 바로 수정의 밤이라고 불리우는 밤이었다. 이 밤에 엄청난 화염과 불이 일어났다. 왜 이 밤이 수정의 밤일까? 이름은 이쁜데, 엄청난 분노의 불이 타올랐던, 토라를 다 태우기 원했던, 그래서 이 밤을 계기로 그 다음부터 유대인들에 대한 모든 분노와 화가 시스템화되었던, 시발점이 되었던 밤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38년 헤쉬반월이었다. 11월에 이 유대인에 대한 부당한 법령이 발표되자, 유대인 한 청년에 독일군에 대한 분노로 대사관을 찾아가서, 대사를 저격하려는 목적으로 갔다가 엉뚱한 사람을 쏜 것이다. 그러면서 독일군이 이것에 대해서 진압하기 시작하는데, 모든 유대인 회당에 불을 놓고, 상점과 유대인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소유권에 대해서 다 부수게 되는, 그래서 산산조각나고, 상점들의 모든 유리들이 튀어나와서 수정의 밤, 산산조각난 유리의 밤이었다고 한다.
누구를 미워하면 그 불 때문에 에너지가 얼마나 쎄지는지 모른다. 저도 목사님과 같이 산에 오르면 너무 힘든데, 올라갈 때 싸우게되면, 그 광기, 미움으로 인해서 얼마나 산을 잘 타게 되는지 모른다. 속에서부터 불이 나와서 정상까지 후딱 가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쏘네하게 되면, 우리 안에 불이 생기고, 그 에너지로 우리는 살아간다. 피곤을 느낀다?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신 것이다.
우리가 힘을 얻는 에너지를 쏘네라고 한다. 용서치 못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항상 나의 어떤 문제의 타겟이 너다. 내가 아닌 너다. 이 우리의 마음이 작은 불꽃이 되어서 큰 불을 일으킨 사건을 아우슈비츠라고 한다. 아까 말한 캄보디아 내전의 원인은, 캄보디아 수령 이름이 있었는데, 그 수령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돌아와서 모든 나라의 원인을 미국에 돌리게 된다. 우리의 모든 탓을 상대에게 돌리는 이 광기로 인해서 전세계는 타오르고 있다. 이 미움은 우리를 유지하기 위한 너무나 강력한 힘과 에너지가 된다. 미워하면, 결합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결합하지 않고 싶을 때 하는 것을 미움이라고 한다. 하나되기 싫을 때 하는 것을 미움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요셉이 했던 일이, 시므온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한다. 놀라운 말씀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있다. 내 사랑하는 자들이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니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 보복의 하나님이다.
이 피라는 뜻이 가지고 있는 숫자값이 דם 담, 44이다. 이 담과 같은 숫자값이 להט 라하트, 불태우다, 소각하다는 뜻이다. 다 태워 없애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유대인들이 싫어한다. 홀로코스트는 Burnent offering, 다 태워 없애다는 뜻이기에, 유대인들은 쇼아, 재앙이라는 단어로 쓴다. 광기에 휩싸이면 모든 것을 불태우기 쉽다. 토라를 불태웠던 광기처럼, 우리는 서로를 불태운다.
여기에 대해서 그런 의문을 안 가져보셨는가? 유대인들은 왜 보복하지 않았을까? 왜 독일군을 미워하지 않았을까? 영화나 책을 보면, 분명히 보복한 일들이 있었다. 저항군이 있었다. 그 중에는 나캄이라는 저항세력이 있었다
נקם 나캄 : 복수
욤 나캄, 여호와의 보복의 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따서 유대인 저항 단체를 만들었었다. 꽤 조직이 컸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가 독일군을 응징하는데, 600만을 살인한 죄값에 비해서 너무나 터무니없는 응징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분노한 유대인 50명의 세력이 규합해서, 우리도 너희 600만을 죽이겠다고 한 것이다. 보복집단을 이끌게 되는데, 리투아니아에서 창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치 출신 포로들을 잡은 수용소의 빵 3000개에 독을 타는, 굉장히 소심한 복수들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크고 작은 보복의 사건들을 야드 바쉠, 그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보신적이 있는가? 유대인들의 메인 스트림은 그런 복수에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 메인 스트림은 정 반대였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절대로 그 복수의 스토리들을 진열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 유명한 스토리,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성장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국가를 건설하겠다. 이것을 통해서 생명을 낳겠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방향성이었다. 유대인들의 진짜 복수는 생명, 나라, 국가 건설에 대한 소망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야드 바쉠 맨 끝에 보면, 이런 공간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이다. 히브리어가 알렢부터 하나하나 뜨기 시작하면서 문자가 되고 글이 떠오르는데,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른다. 히브리어는 이부르이다.
עבר 이부르 : 태아
하나님이 태아, 아기가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선포하는 것을 히브리어라고 한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 겨울, 이 사건, 이 하누카에 우리가 맞이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과 똑같은 피를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다.
콜 싸손 베콜 씸하 콜 하탄 베콜 칼라 : 기쁨의 소리, 신랑과 신부의 소리이다
유대인들의 메인 스트림의 방향성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토록 비극적인 미움과 광기의 불 속에서도 이들이 결국 결론지었던 하나의 소리는 기쁨의 소리요, 신랑과 신부의 소리였다
חול 홀 : 춤추다
44라는 숫자값에 홀이라는 단어가 있다. 결혼하고나서 원래는 우리가 춤을 춰야한다. 신랑과 신부의 결합의 소리, 춤의 소리, 이것이 내 안에 있는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외치는 그런 소리이다.
이 나캄이라는 조직을 실화로 한 영화가 한편 있다. 그 영화에 이런 가사가 마지막에 있다고 한다. Plan-A라는 영화이다.
당신들이 그런다고 증오가 멈출 것 같아? 더 커지기만 할 뿐이야. 우리의 목숨이 위험해질거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저 먼 곳에서는 사람들이 피땀흘리고 있다.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자식을 낳고 있다. 우리의 진짜 복수는 두려움을 모르는 새 세대의 탄생이야
정말 복수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원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기 바란다.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신다. 복수는 내가 한다. 내가 심판한다. 단 지파의 달이 심판의 달인데, 그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
창43:29 요셉이 눈을 들어 자기 어머니의 아들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이르되 너희가 내게 말하던 너희 작은 동생이 이 아이냐 그가 또 이르되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요셉이 눈을 들어 드디어 베냐민을 본다. 가장 작은 자, 성경에 별로 나오지도 않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바로의 아인에는 절대로 보일 수 없는, 그래서 갈망하지 않는 한 존재가 나오고 있다. 소자여, 네게 은혜 베푸시기 원하노라. 눈을 들어서 베냐민을 본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을 보기만 원했던 파라오의 눈과는 달리, 가장 작은 자, 한 생명을 본다는 것이다
제가 44를 보면서 빨강, 이런 것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떠오르게 하신 포스터가 있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다큐 형식으로 아우슈비츠를 그렸기에 흑백 영화인데, 그 영화 중에 컬러로 장식되어있는 것이 네 컷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이 컷이 있다. 흑백 중에서도 빨간 옷을 입은 소녀이다. 소망과 희망, 부활, 생명을 상징하는 한 여자 아이가 나타난다. 여기의 주인공 쉰들러가 이 여자 아이, 빨간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유대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유대인을 착취해서 돈을 벌려고 했던 탐욕의 사업가가, 이 빨간 옷을 입은 여자 아이를 보게되면서, 그리고 이 여자 아이가 시체 더미 위에 얹혀있다. 빨간 옷을 입었기에 딱 눈에 띄는데, 이것을 보고 쉰들러가 자기의 방향을 돌려서, 복수하고 보복하며 탐욕의 삶을 살았던 쏘네의 사람이, 샬롬의 바람, 베냐민을 보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유대인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것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 사람은 눈을 들어서 작은 소자를 보며, 소자에게 은혜 베풀기 원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 피가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의 피이고, 예수의 피가 내 안에 흐르고 있다면, 우리 주님이 이 세계, 북한, 캄보디아, 독일을 위해서 다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순 없다. 그렇다면 예수의 피가 흐르는 여러분이 그 피를 흘려야하지 않겠는가? 가서 죽으란 소리가 아니라, 닮아가는 삶, 춤추는 삶, 결합의 삶, 뜨겁게 사랑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와 같은 생명인 존재들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상 )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이 영상은 마지막에 쉰들러가 베냐민을 보게되는 영상이다. 소자여,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물질이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영상이다.
정말 고 아버지를 통해서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 것이 미워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고, 내 삶에 너무 많은 돈과 너무 많은 소유와 너무 많은 것들을 낭비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나에게 있는 시간, 소유, 돈을 통해서 이 한 생명, 주의 피가 같이 흐르고 있는데, 한 생명을 더 살릴 수 있는데, 그 예수의 피로 살지 못하는, 사랑하지 않는 쏘네의 상태인 저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보면서, 이제 나의 악한 눈이 교정되기 원한다. 우리의 아인이 정말 교정되기 원한다. 우리가 눈을 들어서, 한 생명, 베냐민을 보고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베푸시기 원하노라. 그 소자를 살리는데, 우리의 돈, 시간, 우리의 모든 소유를 사용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 쉰들러는 유대인을 1100명을 살렸다고 했는데, 디나의 강간 사건 기억하시는가? 이 시므온이 자기 누이 디나가 강간당한 사건을 통해서 보복을 한다. 피로 가득 채우고 활활 타오르게 한다. 그런데 똑같은 사람이 성경에서 있었다. 자기 누이가 강간당해서 복수했던 압살롬이 있었다. 자기 누이 다말을 강간한 암논을 죽이고, 압살롬은 아브 샬롬, 아버지에게 샬롬을 선포한다. 그 오른쪽의 세상, 베냐민의 세상을 잘라버리고, 자기가 왕, 바로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오른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을 당한 시므온은 달랐다. 시므온은 그 사건을 통해서 아버지와 함께 벧엘로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제자의 삶을 살고, 급기야 디나를 데리고와서 결혼을 한, 책임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여러분의 삶 속에 무엇이 인생의 목적이신가? 압살롬처럼 베냐민을 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해서 샬롬, 안녕을 선포하고, 베냐민을 잘라버리고, 그렇게 형들처럼 싸우기 바쁘고, 탓하기 바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데 쉰들러의 한 생명을 살렸으면 하는 절규가 있기 원한다. 나에게 돈, 시간이 있다면 한 생명을 살리기 원하는 절규가 우리 가운데 있기 원한다
재밌는 것은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고통 속에 빠졌다고 한다. 어린 소녀였고, 잔인했기에 미성년자 관람 불과였고, 11살 때 이 영화를 보고 평생을 굉장한 트라우마와 고통 속에 살다가,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감독님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18살 때 보라고 했는데, 제가 11살 때 본 것을 굉장히 후회하는데, 제가 성인이 되고 난민을 돕는 사역을 하면서, 내가 보고, 듣고, 사유했던 모든 것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불쌍한 사람, 한 소자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살겠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우리의 주위에 우리가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릴 수 있다. 내 안에 흐르는 것은 예수의 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이다. 여러분의 영혼은 스스로 이 땅에 오기로 선택한 아주 고귀한 영혼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선택을 했을 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심으로, 나도 너와 같은 생명으로 성육신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 우리의 돈, 차가 있는 이유를 기억하자. 시간이 있는 이유를 기억하자. 우리의 같은 피가 흐르는 베냐민을 위해서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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