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안도 을밀대야, 부벽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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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22:44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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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야, 부벽루야
금수산(모란봉) 을밀봉 아래에는 을밀대(乙密臺)가 있다.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將臺)로 세운 정자로, 이름의 유래로는 먼 옛날 을밀선녀가 이곳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설화가 있고,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 을밀 장군이 이곳을 지켜 싸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을밀대 © 권태균
정자 북쪽에는 청류벽이 있고, 벽이 끝나는 곳에 부벽루가 있다. 을밀대에서 바라보는 평양 시가지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강라는 유행가 가사 속에 남아 있는 부벽루는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모란봉 동쪽의 깎아지른 청류벽 위에 서 있는 정자다. 본래 393년에 창건된 영명사의 부속 건물로 영명루라고 불렸는데, 12세기에 이르러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정자’라는 뜻에서 부벽루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연광정과 부벽루에는 평양 기생 계월향이 그녀가 사모했던 김옹서 장군으로 하여금 왜장의 목을 베게 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벽루와 관련한 『택리지』의 기록을 보자.
정자 북쪽에는 청류벽이 있고, 벽이 끝나는 곳에 부벽루가 있는데, 바로 성 모퉁이 영명사 앞이다. 명종 때 하곡(荷谷) 허봉이 유생으로 있을 때인데, 벗들과 함께 부벽루에 놀러 가서는 감사의 사위와 약속하고 누 위에서 기생과 풍악을 크게 벌였다. 감사 부인은 그 사위가 기생을 끼고 향락하는 것을 노여워하였다. 감사를 부추겨 졸개를 보내서 여러 기생을 다 잡아 가두어버렸다. 하곡은 낭패를 당하고 돌아와서 「춘유부벽루가(春遊浮碧樓歌)」를 지어서 감사를 조롱하였다. 이 글이 사람들에게 일시에 전해지자 감사는 이 때문에 세상의 버림을 받았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 허봉은 동인의 선봉이 되어 서인과 대립하게 되고 탄핵하였다가 종성에 유배되었다. 이듬해에 풀려난 허봉은 정치의 뜻을 버리고 온 나라를 떠돌아다니다가 1588년 서른여덟 나이로 금강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을밀대야, 부벽루야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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