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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음찰리 감모변색(聆音察理 鑑貌辨色)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피고 용모와 안색을 거울삼아 사람의 마음을 알 줄 알아야 한다.
聆 : 들을 령
音 : 소리 음
察 : 살필 찰
理 : 다스릴 리
鑑 : 거울 감
貌 : 모양 모
辨 : 분별할 변
色 : 빛 색
聆音察理 鑑貌辨色
영음찰리 감모변색
남의 말을 듣고서 이치를 살펴보고
용모를 비춰보아 기색을 분변한다.
음(音)을 령(聆)하여 이(理)를 찰(察)하고, 모(貌)를 감(鑑)하여 색(色)을 변(辨)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이치에 맞는지를 살피고, 용모를 보고 안색을 분별하여 처신해야 한다.
군자는 타인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시비의 이치를 심상(審詳; 자세히 살핌)하고, 타인의 용모를 보고 희노(喜怒)의 색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조심하고 삼가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 체세(處世)에 과실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관리로서 중용의 자세를 가지게 되면 소리를 듣고서 전후좌우 시시비비의 이치를 따질 수 있고, 형색을 보고 일의 정황을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용의 덕을 가져(庶幾中庸) 노겸근칙(勞謙謹勅) 하는 앞구절과 같은 내면의 덕성을 관리는 갖추고서 지금의 구절과 같은 눈과 귀의(耳目) 총명을 갖추어야 한다는 구절이다.
君子所性 仁義禮智 根於心
군자소성 인의예지 근어심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기생색야 수연현어면
盎於背 施於四體
앙어배 시어사체
四體不言而喩
사체불언이유
(孟子 盡心上)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 속에 뿌리하여, 그 색을 냄이 함치르르하게 그 얼굴빛에 나타나고, 등에 넘치며, 사지에 베풀어져, 사체(사지즉, 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우쳐 준다.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上智之人은 則聆其聲音而察其事理하니 如孔子聽子路鼓琴하시고 而謂其有北鄙殺伐之聲者 是也라.
상지지인은 칙령기성음이찰기사리하니 여공자청자로고금하시고 이위기유북비살벌지성자 시야라.
지혜가 높은 사람은 그 소리를 들어보고 사리를 살피니, 공자께서 자로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들으시고‘북쪽 변방의 살벌한 소리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다.
以容貌辭色으로 亦可以鑑其情, 辨其意하니 如齊桓公夫人之知欲伐衛와 管仲之知欲赦衛者 是也라.
이용모사색으로 역가이감기정, 변기의하니 여제환공부인지지욕벌위와 관중지지욕사위자 시야라.
용모와 말과 얼굴빛을 가지고 사람의 정을 보고 뜻을 분별할 수 있으니, 제나라 환공의 부인이 위나라를 치려고 함을 안 것과 관중이 위나라를 용서하려고 함을 안 것이 이것이다.
설문(說文)에서 영(聆)은 영청야(聆聽也)라 했으니 귀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음(音)은 그냥 소리라 할 수도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악기의 소리를 뜻합니다. 또는 음(音)을 음성의 뜻으로 보면 사람의 소리로도 새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음(聆音)은 소리를 듣는다 또는 남의 말을 듣는다로 새겨집니다.
소리를 뜻하는 한자에 성(聲)과 음(音)이 있는데, 설문(說文)에 이르기를, 음(音)이란 소리가 마음에서 생겨나와 밖으로 적절히 조절된 것을 이르고, 성(聲)이란 단순하여 곡절(曲折)의 소리가 없는 울림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고 하였으니, 음(音)이란 성(聲)이 적절히 조절된 소리이고, 성(聲)은 단순히 사물이 부딪쳐 나는 소리라 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음(音)은 음악(音樂)의 소리라 하고 성(聲)은 사람의 소리라 하기도 합니다.
설문(說文)에서 찰(察)은 복심(覆審)이라 했으니, 자세히 살핀다는 말입니다. 리(理)는 이치(理致)를 말합니다. 따라서 찰리(察理)는 이치를 자세히 살핀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영음찰리(聆音察理)는 소리를 듣고서 이치를 살핀다, 또는 남의 말을 듣고서 이치를 자세히 살핀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슨 뜻으로 말을 했는지 그 의중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에 홍범구주(洪範九疇)라 하여 아홉 가지 큰 규범을 밝히고 있는데, 그 중에 두 번째에 오사(五事)라 하여 사람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일을 명시하고 이를 공경하여 행할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는 태도이고, 둘째는 말이고, 셋째는 보는 것이고, 넷째는 듣는 것이고, 다섯째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一曰貌 二曰言 三曰視 四曰聽 五曰思.
일왈모 이왈언 삼왈시 사왈청 오왈사.
태도는 공손해야 하고, 말은 옳음을 따라야 하고, 보는 것은 밝아야 하고, 듣는 것은 분명해야 하고 생각은 치밀해야 합니다.
貌曰恭 言曰從 視曰明 聽曰聰 思曰睿.
모왈공 언왈종 시왈명 청왈총 사왈예.
공손하면 엄숙해지고, 옳음을 따르면 잘 다스려지고, 밝게 보면 곧 명철해지고, 분명히 들을 수 있으면 지모(智謀)가 있게 되고, 생각이 치밀하면 성인과 같이 모든 일에 통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恭作肅 從作乂 明作哲 聰作謀 睿作聖.
공작숙 종작예 명작철 총작모 예작성.
이와 같이 오사(五事)는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사항이라 생각 됩니다. 이 가운데 네 번째의 청(聽)은 남의 말을 분명히 들어야 함을 밝힌 것입니다. 남이 말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금방 잊어 버려서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모호해지게 됩니다. 또 말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의중을 살필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지혜가 생길 수 있겠습니까?
남의 말을 들을 때는 분명이 들어야 하고 분명히 들으면 지모가 있게 된다고 하였는데 교묘히 하는 말은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다음의 예화는 숨은 질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여 당한 이야기입니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위(魏)나라 왕이 초(楚)나라 왕에게 미녀를 선사하자 초나라 왕은 그 미녀를 귀여워했다. 총희 정수(鄭袖)는 왕이 새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보자, 짐짓 그녀를 같이 귀여워하며, 옷이며 노리개 등 무엇이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골라 주는 등, 왕보다도 더 귀여워했다.
왕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여자가 남편을 섬기는 수단은 아름다움이므로, 질투는 피치 못할 자연의 감정이다. 그런데 지금 정수는 내가 새 사람을 좋아하는 줄을 알자 나보다도 더 귀여워하고 있으니, 이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효자의 마음이요, 임금을 섬기는 충신의 생각이다.”
정수는 왕이 자기를 믿고 있는 줄을 알자, 새 사람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왕은 자네의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하고 계시네. 하지만 자네의 그 코만은 싫어하시거든. 그러니 왕을 뵐 때는 코만 살짝 가리도록 하게.”
그래서 새 미인은 왕을 뵐 때마다 그녀의 코를 가렸다. 왕은 이상한 생각에서 그 까닭을 정수에게 물어 보았다.
“새 사람이 요즘 나를 대할 때마다 코를 가리곤 하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네, 알고 있습니다만...”
“어려워할 것 없이 바른 대로 말해 보구료.”
정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왕에게 새 미인을 헐뜯었다. 이것이 정수의 본마음이었다.“실은 임금님의 냄새가 싫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왕은 성을 내어 말했다.“요망한 것 같으니라구! 당장 그년의 코를 베어 버려라. 명령에 거역하면 용서치 않으리라.”
새 미인이 총희 정수의 말을 듣고 의도를 알아차렸더라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사례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넘어가는 것도 지혜가 없어서 당하는 것이니 영음찰리(聆音察理)의 지혜를 새겨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거문고 연주 소리를 듣고 연주자의 마음을 읽어냈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의 한 대목을 살펴보겠습니다.
옛날 후한(後漢) 때의 문인이자 거문고의 명수인 채옹(蔡邕)이 진류군(陳留郡)에 있을 때, 이웃 사람이 채옹을 불러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려고 했는데 채옹이 아직 이르기도 전에 술판이 이미 무르익었다.
빈객 중 한 사람이 병풍 앞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채옹이 문가에 이르러 그 소리를 몰래 듣고 말했다.“아아! 나를 부르는 음악에 살심(殺心)이 깃들었으니 어찌된 일인가?”
그래서 결국 되돌아갔다. 명을 받았던 하인이 그 주인에게 사실을 고했다.“채 선생이 집으로 오다가 문앞까지 왔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채옹은 평소에 그 고을에서 거문고 솜씨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으므로, 주인은 재빨리 일어나 몸소 채옹을 쫓아가 그 이유를 물었다. 채옹이 자세히 사실을 말하니 괴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이 말했다.“제가 거문고 줄을 듣으려 하는데, 사마귀[螳蜋]가 우는 매미를 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매미가 날아갈듯 하면서도 아직 날아가지 않고 있는데, 사마귀가 그것을 잡으려고 몸을 앞뒤로 움직이는데 제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오직 사마귀가 그것을 잡지 못할까 두려워 하였습니다. 설마 이 때문에 살심(殺心)이 소리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까?”
채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이 정도면 그러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채옹(蔡邕)의 음악을 듣는 감지 능력이 놀랍지 않습니까? 소리를 듣고는 탄금자(彈琴者)의 마음을 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이 영음찰리(聆音察理)가 아닐까 합니다.
당현종(唐玄宗)이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현종이 양귀비를 일러 해어화(解語花)라 하며 아주 사랑스럽게 여겼지요. 그러나 젊은 양귀비는 안록산(安祿山)이란 애인을 가까이 두고 총애하였습니다.
나중에 현종이 이런 사실을 눈치채고 이를 가까이 하지 못해게 했습니다. 현종이 출궁하거나 궁을 비우면 양귀비는 자기 시녀인 소옥(小玉)을 큰소리로 불렀지요.‘소옥아~ 소옥아~’
양귀비가 소옥을 부른 이유는 시녀 소옥에게 시킬 일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애인 안록산에게 현종이 없음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양귀비가 소옥을 부르면 담 밖의 안록산은 그녀의 의도를 척 알아듣고 담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영음찰리(聆音察理)입니다. 이것은 불교로 말하면 화두(話頭)를 들 때나 선문답(禪問答)을 할 때 어떤 소리나 말을 들었을 때 그 소리나 명칭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도리를 아는데 있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척하면 삼천리요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는 말이 있듯이 소리를 들으면 그 이치를 알고 남의 말을 들으면 그 의중을 알아야 가히 지혜롭다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영음찰리(聆音察理)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감모변색(鑑貌辨色)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생활함에는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필 줄도 알아야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모양이나 안색을 보고도 그 기색을 살필 줄도 알아야 인간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음을 천자문은 넌지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모변색은 용모를 비춰 보아 기색(氣色)을 분변한다는 뜻입니다. 감모(鑑貌)에서 감(鑑)은 거울 감, 거울에 비춰 볼 감, 살필 감이고, 감자관야(鑑者觀也)라 했으니 본다는 뜻입니다. 모(貌)는 모양 모, 얼굴 모, 안색 모이니, 감모(鑑貌)는 용모를 비추어 본다는 뜻입니다.
변색(辨色)에서 변(辨)은 변판야(辨判也)라 했으니 구별한다, 판별한다, 분별한다, 분변한다는 뜻입니다. 색(色)은 빛깔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색안색야(色顔色也)라 했으니 안색을 말합니다. 따라서 변색은 안색을 분변한다는 뜻이니 이는 곧 기색을 분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감모변색은 용모 즉 안색을 비춰보아 기색을 분변한다는 뜻입니다. 기색이란 얼굴에 나타난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 따위를 말합니다. 또는 용모와 안색을 거울삼아 상대의 심중을 살핀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상태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얼굴에 그 표정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표정뿐 만 아니라 행동거지에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풍모(風貌)에 그 사람의 인품이 묻어나는 것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의 친구가 재주 있는 어떤 사람 하나를 소개하며 능력이 있으니 기용해 보라고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 보았는데 그의 얼굴을 보고는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얼굴에 진실성이 없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진실성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링컨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생과 마음가짐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자기 확신이 서는 나이라 모든 행위에 대하여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가짐 행동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게 되지요. 그러니 척 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링컨의 안목이 바로 감모변색(鑑貌辨色)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임금이 신하를 보면 간신(奸臣)인지 충신(忠臣)인지 볼 줄 알아야 하고 신하가 임금의 얼굴을 보면 어심(御心)이 어디로 향하는지 간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는 남편이든 아내이든 아니면 부모이든 자식이든, 직장에서는 상사이든 부하이든 친구이든 그들의 얼굴을 살피면 거기에 희노애락 뿐만 아니라 심신의 성쇠(盛衰)나 기분의 명암(明暗)까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굴만 잘 보아도 심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 이에 잘 대처한다면 생활에 어려움이 덜할 것입니다. 상대의 기분이 지금 어떤지도 모르고 들이대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자칫 심기를 건드려 분난(紛亂)을 자초할 수도 있을 것이니 기색을 분변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제환공(齊桓公)이 제후들을 회합하니 모두 도착했으나 위후(衛侯)만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법에 의거하여 그를 죽일 것일 생각하며 궁(宮)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문득 위비(衛妃)가 비녀를 풀고 앞에 와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대왕이여, 청컨대 위후(衛后)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제환공(齊桓公)이 말했습니다.“내가 아무에게도 말한 바가 없는데 부인께서는 어떻게 나의 마음을 아십니까?”
위비(衛妃)가 말했습니다.“첩은 세 가지 남편의 안색(顔色)을 살핍니다. 기쁘고 즐거운 안색은 만족하고 온화하며, 술과 고기를 즐기는 기운의 안색은 일없이 즐거워하고, 군사(軍事)의 기색은 얼굴 색이 장열(壯熱)하므로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에 위후(衛侯)를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그 뜻을 말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관중(管中)이 조회(朝會)에 들어와서 위후(衛侯)의 죄를 사하여 주는 은혜에 감사한다 하니 제환공이 말했습니다.“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아는가?”
관중이 말했습니다.“대왕의 말과 안색의 기미로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이 말했습니다.“안에는 부인이 있고 밖에는 관중(管中)이 있으니 무슨 근심을 하겠는가?”
이와 같이 안색을 잘 살피면 죽을 사람도 살리는 수가 있는 것이니 안색을 살피고 기색(氣色)을 분변하여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려 아는 지혜를 함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낯빛을 교묘히 꾸미는 교언영색(巧言令色)도 잘 분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서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번지르르 하게 발라 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을 꾸미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
남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겉모습을 그럴 듯하게 꾸미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실할 리가 없습니다. 진실하지 못하면 시기심과 속임수가 많게 마련이어서 배신과 모략이 나무하게 되는 것이니 교언영색을 감모변색하는 안목을 갖추어야 이 사회가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묘한 말[巧言]과 환심을 사기 위해 꾸며진 낯빛[令色]에 속아 넘어가는 수가 많습니다. 자기의 표정을 감추고 칼을 품는 경우도 있지요. 구밀복검(口蜜腹劍)과 소리장도(笑裏藏刀)가 그것입니다.
구밀복검이란 말은 달콤하나 속은 악랄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소리장도는 웃음 속에 칼을 숨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유화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음흉한 흉계가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안색을 살필 때는 그것까지 알아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은 영음찰리(聆音察理)와 관계 지어 생각해 본다면 소리장도(笑裏藏刀)는 감모변색(鑑貌辨色)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감추어진 그 너머 진실까지 알 수 있는 혜안이 열린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천자문에서 영음찰리와 감모변색에 나타난 속뜻은 무엇일까요? 다음의 글에서 그 뜻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장(子張)이 물었습니다.“선비는 어떻게 하면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무슨 뜻이냐?”
이에 자장이 대답하였습니다.“나랏일을 하게 되어도 이름이 나고, 집안에 있어도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명성이지 통달한 것은 아니다. 진실로 통달한 이는 소박, 정직하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과 안색을 헤아리고 살피며, 생각은 깊고 몸가짐은 겸손하다. 그러므로 나랏일을 하거나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성을 바라는 사람은 겉으로는 인도(仁道)를 행하는 척하면서도 행동은 어긋나며, 그렇게 살면서도 아무런 의혹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나랏일을 하거나 집안에 있으나 겉으로만 헛된 명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是聞也, 非達也.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여기에서 통달한 사람이란 헛된 명성을 추구하지 않는 성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의로움을 사랑하며 남의 말과 안색을 헤아리고 살펴서 그들을 잘 이해하며 사려가 깊고 겸손한 이를 말합니다. 즉 인의(仁義)를 갖춘 군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통달이란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이 없는 지혜가 열려서 마음의 실성(實性)인 진여(眞如)의 이치를 훤히 아는 지혜의 완성인 해탈(解脫), 열반(涅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대인관계에서 사람구실을 할 수 있는 인격과 도덕성을 완벽히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의 말씀 중에 찰언이관색(察言而觀色)은 바로 영음찰리와 감모변색과 통하는 말이니, 이는 바로 인의(仁義)를 갖춘 군자가 취하는 마음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면 그의 말을 바르게 헤아리고 잘 이해하며 남의 얼굴빛을 보고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도량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영음찰리와 감모변색을 통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이 무슨 말을 할 때는 잘 경청하여 그 뜻을 헤아리고 그 사람의 안색을 잘 살펴서,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넉넉하고 지혜로운 성품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가정에선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일가친척, 사회에 나가면 친구와 동료, 상사와 부하 등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상호 신뢰 속에서 도탑고 원만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남이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경청하여 그 뜻을 헤아리고 용모와 기색을 잘 살펴서 그 의중을 파악하고 헤아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언제나 진실하여 나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믿음직하게 보이도록 정심정행(正心正行)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바른 마음, 바른 행위로 늘 얼굴빛이 환하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 聆(영)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令(령)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令(영)은 신의(神意)를 듣다의 뜻입니다. 여기에 이(耳)를 붙이어, 듣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들을 聞(문), 들을 聽(청)이다. 용례로는 귀로 들음을 이령(耳聆), 여러 사람의 보고 듣는 일을 첨령(瞻聆), 소리를 듣고 그 거동을 살피니 조그마한 일이라도 주의하여야 한다는 영음찰리(聆音察理) 등에 쓰인다.
▶ 音(음)은 지사문자로 言(언)의 口(구)속에 또는 一(일)을 더한 모양으로, 노래 부르거나 외거나 할 때에 곡조(曲調)를 붙인 말, 또는 목구멍 속에서 나는 소리, 뚜렷한 말이 되지 않는 음성을 뜻한다. 音(음)을 글자의 성분으로 하는 글자에는 어둡다는 뜻이 있다. 부수로서는 일반적으로 음(音)이나 음성, 음악의 뜻을 나타낸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리 성(聲), 운 운(韻)이다. 용례로는 목소리를 음성(音聲), 소리 내어 읽음을 음독(音讀), 음넓이의 한자 이름을 음역(音域),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음악가(音樂家), 음에 대한 감각이 무딘 상태를 음치(音癡), 악보에서 음의 길이와 높낮이를 나타내는 기호를 음표(音標), 소리의 가락을 음조(音調), 뜻글자의 음과 뜻을 음훈(音訓), 소리의 속도를 음속(音速), 소리의 울림을 음향(音響), 소식이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는 음신불통(音信不通) 등에 쓰인다.
▶ 察(찰)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宀; 집, 집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祭(제, 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察(찰)은 조상을 모시다, 친절하게 자잘한 일을 하다, 더러움을 깨끗이 하다의 뜻인 祭(제)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집에서(宀) 빠짐없이 생각하여 살핀다는 뜻이 합(合)하여 살피다를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시(視), 볼 감(監), 살필 성(省), 보일 시(示), 볼 람/남(覽), 볼 관(觀), 살필 체(諦), 볼 열(閱)이다. 용례로는 잘 조사한 후 들어 줌을 찰납(察納), 환히 들여다 봄을 찰람(察覽), 얼굴빛을 살펴 봄을 찰색(察色), 문서나 편지 같은 것을 자세히 읽어 대조함을 찰조(察照), 대중을 규찰함을 찰중(察衆), 미루어 명백히 앎을 찰지(察知), 직무를 총괄하여 보살핌을 찰직(察職), 너무 자세한 모양을 찰찰(察察), 잘 살펴 보고 생각함을 찰험(察驗), 현명함 또는 총명하다는 찰혜(察慧) 등에 쓰인다.
▶ 理(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구슬옥변(玉=玉, 玊; 구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里(리)가 합(合)하여 다스리다를 뜻한다. 음(音)을 나타내는 里(리)는 길이 가로 세로로 통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뜻하고, 뜻이 갈라져서 사리(事理)가 바르다, 규칙이 바르다의 뜻과 속에 숨어 있다의 두 가지 뜻을 나타낸다. 玉(옥)은 중국의 서북에서 나는 보석이다. 理(리)는 옥의 원석(原石)속에 숨어 있는 고운 결을 갈아내는 일을 말하는데 나중에 옥에 한한지 않고 일을 다스리다, 사리 따위의 뜻에 쓰였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이(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치(治), 간략할 약/략(略), 지날 경(經), 다스릴 할(轄), 다스릴 리/이(釐)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지러울 란/난(亂)이다. 용례로는 일을 다스려 치러 감을 처리(處理), 사람을 통제하고 지휘 감독하는 것을 관리(管理),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을 이해(理解),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히 바로잡음을 정리(整理), 옳은 이치에 어그러짐을 비리(非理),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규범을 윤리(倫理), 말이나 글에서의 짜임새나 갈피를 논리(論理),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審理),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 사이를 비유하는 연리지(連理枝), 사람이 상상해 낸 이상적이며 완전한 곳을 이상향(理想鄕),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가 명백하다는 사리명백(事理明白) 등에 쓰인다.
▶ 鑑(감)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금속,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監(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거울의 본 글자 監(감)은 물거울을 뜻하는 글자이므로 금속으로 만든 거울을 나타내기 위하여 金(금)을 더하여 鑑(감)자를 만들었다. 鉴(감)은 통자(通字), 鍳(감), 鑒(감), 鑬(감)은 동자(同字)이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울 경(鏡)이다. 용례로는 감정하여 분별함을 감별(鑑別), 어떤 자료에 대하여 그 진위나 가치를 보아 감별하고 결정함을 감정(鑑定), 감별하여 조사함을 감사(鑑査), 예술작품을 깊이 음미하고 이해함을 감상(鑑賞), 감정을 하여 식별함을 감식(鑑識), 환히 봄을 감지(鑑止), 표의 진짜와 가짜를 가리어 알아냄을 감표(鑑票), 모양과 거동으로 그 마음속을 분별할 수 있다는 감모변색(鑑貌辨色) 등에 쓰인다.
▶ 貌(모)는 형성문자로 䫉(모)는 고자(古字), 㒵(모), 㹸(모), 皃(모)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갖은돼지시변(豸; 짐승, 돼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皃(모)로 이루어졌다. 본디 한가지 동물의 이름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주로 皃(모)의 뜻으로 씌어졌다. 皃(모)는 사람이 탈을 쓴 모양을 본뜬 상형으로 본을 뜨다, 모양을 뜻한다. 전문(篆文)에 皃(모)는 상형자로, 白(백)은 사람의 두부(頭部), 儿(인)은 사람의 모양을 본떠, 이미 정신적 활동이 없는 사람의 곁모양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주문(籒文)에 貌(모)는 豸(치)와 皃(모)의 형성자로, 豸(치)는 또렷한 무늬가 있는 표범의 상형으로, 모양의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모(貌)는 사람의 얼굴을 나타냅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양 상(像), 모양 자(姿), 얼굴 용(容), 모양 형(形), 모양 양(樣)이다. 용례로는 꼴이 꼴 같지 않음을 모불사(貌不似), 모양을 모상(貌相), 용모은 모용(貌容), 됨됨이가 활발하지 못함 모침(貌侵), 교제하는 데 겉으로만 친한 척할 뿐이고 마음은 딴 데 있다는 모합심리(貌合心離) 등에 쓰인다.
▶ 辯(변)은 형성문자로 弁(변)은 통자(通字), 釆(변)은 본자(本字)이다.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辛+辛(변; 재판하는 일)으로 이루어졌다. 말다툼하여 옳은지 그른지를 정하다, 나누다, 명백(明白)히 하다의 뜻이다. 辯(변)은 분별한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 또는 참되고 거짓됨을 가리기 위하여 씌어진 글에 붙인다. 용례로는 사리를 밝혀 알림을 변고(辨告), 판단하고 생각함을 변교(辨校), 묻는 말에 옳고 그름을 가리어 대답함을 변대(辨對), 일을 맡아 처리함을 변리(辨理), 어떤 잘못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밝힘을 변명(辨明), 사물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어 앎을 변별(辨別), 손해본 것을 갚아 줌을 변상(辨償), 빚을 갚는 것을 변제(辨濟), 시비를 분별하여 논란함을 변론(辯論), 변명할 길이 없다는 변명무로(辨明無路) 등에 쓰인다.
▶ 色(색)은 회의문자로 사람(人)과 병부절(卩=㔾; 무릎마디, 무릎을 꿇은 모양)部의 뜻을 합(合)한 글자로 사람의 마음과 안색은 병부절(卩=㔾)部 처럼 일치한다는 데서 안색, 빛깔을 뜻한다. 절(㔾)은 무릎 꿇은 사람의 상형(象形)입니다. 무릎 꿇은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모양에서, 남녀의 정애(情愛)의 뜻을 나타냅니다. 파생하여 아름다운 낯빛, 채색의 뜻을 나타냅니다. 음형상(音形上)으로는 색(嗇), 측(畟)과 통하여, 이성(異性)을 구슬리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절(㔾)은 절(節)의 본자(本字)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얼굴빛에 나타남이 부절(符節)을 맞춤과 같이 맞으므로, 인(人)과 절(㔾)을 합하여 안색이라는 뜻을 나타내며, 나아가서는 널리 빛깔, 모양, 색정(色情)의 뜻을 나타냅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빛 광(光), 빛 휘(暉), 빛 경(耿)이다. 용례로는 놀라거나 성이 나서 얼굴빛이 변함을 색동(色動), 남녀 간의 욕정을 색사(色事), 남녀 간의 성욕을 색욕(色慾), 빛깔을 색채(色彩), 빛깔에서 받는 느낌을 색감(色感), 여자의 곱고 아리따운 자태를 색태(色態), 글을 읽을 때 글자 그대로 의미를 해석하고 문장의 원 뜻은 돌보지 않고 읽음을 색독(色讀), 겉으로는 엄격하나 내심으로는 부드러움을 색려내임(色厲內荏), 안색이 꺼진 잿빛과 같다는 색여사회(色如死灰), 안색이 깎은 오이와 같이 창백함을 이르는 색여삭과(色如削瓜), 형체는 헛것이라는 색즉시공(色卽是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