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나쁜나라다◀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대한민국
▲사진 이도영 박사가 {월간 말지}에 공개한 사진 중 일부 오른쪽 사진 벽돌이 쌓여있고 우측에 서 있는 사람이 미군으로 보임(사진제공:전주대박물관) ⓒ 김영희
한국전쟁시기 발생한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유해를 화장 후 지역별로 합사하려던 정부가 제주4.3 유족들의 반발로 이를 철회했다.
12.3 윤석열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내란이 3개월이다 되어가지만 후유증에 시달려 국민들의 피로감이 절정에도달하였다. 극우파쇼들의 난동이 계속되고있고 내란방조 세력들이 구치소에 수감 되어있는 내란수괴 윤석열을 면담하며 정치적인 타협점을 모색하는 반민족적이며 헌법을 유린하며 헌재의 판결까지도 무력화 시키려 조직적으로 윤석열의 탄핵을 취하 하라고 땡깡을 부리고있다.
조국의 해방 공간에서 수많은 애국충정 국민들이 미군과 이승만정권 으로부터 집단학살당하였다. 제주 4ㅡ3 여순사건 한국전쟁에서 130만명 이상의 비무장 민간인이 전국지역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애국자를 비롯 보도연맹원을 학살하였다.그러나 통칭 과거사란 이름으로 불리워지며 지금까지도 진실규명이 되지않고있다.
이승만이 그들을 빨갱이로 몰아 반공정권의 정당성을 확보 하기위한 눈에거슬리는 반대파를 몰아죽였다.이승만은 장기독재정권을 유지하려고 반일 민족주의 성향의 애국자들을 탄압하였다.바로 연좌제의 그물망 이었다
친인척 8촌까지 적용되었다.저와같이 민간인학살 진실규명활동을 하시다가 목숨을 잃은 저의 선배님 유족과 동료 유족들애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올해로 발발 75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미국과 소련, 중국, 자유진영과 공산진영과 같은 거대한 이해관계의 전쟁이기도 했지만, 한반도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죽음, 혹은 생존의 문제였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은 이승만 정부, 미군, 한국인 간에 벌어졌고,
사실상 전쟁을 주도한 모든 세력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옥에있는 이승만의 만행을고발한다.이승만 정치 패권주의와 서북청년단 만행은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 에게 문화를 수용하도록 조작된 이념를 말한다.
이승만은 미국을 등에 업고 해방후 정치 패권을 잡기 위하여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당시 반공주의 강요는 지배계급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로서 모든 일상생활과 사회에 깊이 스며 사회를 통제하였다.결과적으로 대중사이코 이데올로기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극우적 사이코이즘에 빠져 극단화된 집단이다.대표적인 사례가 서북청년단이다.서북청년단과 이승만의 함수관계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1947년까지 북한인구의 10%에 이르는 100여만 명이 월남했다.이념적 성향은반공· 반북적이었다.
서북청년단의 배후에는 미군정 경찰이 있었고, 행동의 철학은 이승만으로부터 나왔다. 서청은 경찰로부터도 자금지원을 받았으며 특히 치안책임자이자 조병옥과 장택상은 서청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이승만은 사설단체인 서청을 친일부역 군인과 경찰로 전격 교체하는 일에 앞장섰다.
단원들이 한국군에 6500명, 국립경찰에 1700명이 공급되었다. 단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비대 경찰복장을 하고 제주도로 들어왔다. 단원들은 바로 경사나 경위 계급장을 달고 일선 지서주임 등을 하면서 악명이 높았다.
당시 경찰전문학교는 서울 광화문에 있었다.
거기서 서청단원들이 간단한 면접시험을 봤다.경찰관이 돼서 취조하려면 최소한 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자깨나 아는 사람은 경찰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군인 이등병이 되었다.이때 경찰 합격자가 200명이 되어서 '2백 명 부대'라고 불렀다. 군인으로 된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았다.
서울에서 14일 동안 제대로 교육받은 189명은 '제주경찰 9기'가 됐고, 나머지 11명은 '제주경찰 10기'가 됐다.
1948년 12월 20일 대전에서 200명으로 서청 '특별중대'가 편성되었다.'특별중대'는 소대 단위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토벌전을 벌였다.
특히 간부급의 경우 이북출신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1955년의 경우 총경의 40%, 경감의 30.3%였다.
경찰에서 이북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 것은 서청 출신들이 다수 진출했던 것과 연관이 있었다.눈에 핏발 서린 서북 청년단의 악마적 만행은 서청단원들은 이승만 정권을 위하여 인간이기를 거부 했다.
주민들을 모아놓고 서로 뺨때리기를 시키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손자 간에도 빰때리기를 강요했다.세게 때리지 않으면 달려들어 죽도록 팼다. 돈을 빼앗 가든가, 소를 끌고 가야 그 짓이 끝났다. 주정공장 창고 부근에는 부녀자와 처녀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자들을 겁탈한 후 고구마를 쑤셔 대며 히히덕 거리기도 했다.처모와 사위를 대중이 모인 가운데서 정조를 맺게 하고 총살시켰다.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명분 아래 백색테러를 노골화하였다. 청년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고문과 구타를 공공연히 자행했다. 테러에는 도끼·방망이는 물론 총기와 폭탄 등도 동원되었다.
서북청년회가 제주에 등장한 것은, 1947년 3·1시위사건 발생 직후 제2대 제주도지사로 발령받은 유해진이 경호원 자격으로 서북청년회원 7명을 데리고 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제주도본부가 정식으로 결성된 것은 1947년 11월 2일이다. 위원장에 장동춘(張東春)을 선출했다. 서청에게 ‘제주도는 악몽의 섬’이었고,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서청은 악몽의 그림자’였다.
3·1사건 이후 제주경제는 경찰과 우익 청년단들을 부양하게 되어 더욱 악화되었다. 경찰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뇌물을 받아 이를 보충했고 서청은 정기적인 봉급이 없었고 완전히 빈손으로 살아가야 했다.제주 4·3 발발 직후 4·3 진압요원으로 서북청년회원 500명이, 여수·순천사건 직후인 1948년 11월에서 12월까지 두 달 사이에 최소 1,000명 이상의 회원들이 경찰이나 경비대원의 신분으로 들어와 진압작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서청단장 문봉제(文鳳濟)는 4‧3사건이 나자마자 단원들을 경찰전투대 요원으로 보낸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백색테러단 서청은 '반공을 전매특허로 하는 극우'였다.
조병옥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이라고 지칭했고, 김재능(金在能) 서청 제주도지부장은 제주도를 "작은 모스크바"라고 불렀다.
우리는 지옥에있는 이들을 공개수배한다!
독일 히틀러가 나치가 유대인 프래임 씌워서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처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학살범 일본전범친일 민족반역자 매국노 독재자들이 개인의 권력 탐욕 때문에 독재하기 위해서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며 대한민국 사람들 젖먹이 갓난 아기포함 130만명 이상을집단학살시켰다.
대통령이요, 자유당 총수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문제보다는 수하들의 부정부패와 측근들의 비리.감언이설로 인해 국민들의 원하는 것을 몰랐고, 당시 국민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4.19 같은 큰 사건을 당하게 되었고,결국 말년엔 고국땅에 들어오지도 못한체, 하와이 에서 생을 마쳤다.
또한 광복이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의 앞날은 창창히 보장되었지만 최대 경쟁자인 우파민족주의자 김구선생의 피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있었다는 사실과 친일파 숙청에 미온적인 태도 그리고 강도높은 북진통일을 외치며, 대북강경노선을 채택하였다. 민족적 비극인 6.25가 일어났으며, 비록 53년 휴전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채결하여미군이 영구주둔하게되었다.
이같은 결의사항 다음에는 전국피학살자유족회 간부들의 명단이 모두 나와 있다. 회장은 노현섭(마산) 씨고, 이 문건을 보관해온 이원식 씨는 사정위원장으로 명단에 올라 있다.
이 간부들 대부분은 5·16쿠데타 바로 다음날인 5월 17일 군부에 끌려가 쿠데타 정권이 반대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소급입법한 특수범죄 처벌법에 의해 징역 10년, 무기징역, 사형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되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바로 그 법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하지만 6.25 초반의 어이없는 패퇴, 언론을 조작하여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는 오보로 인해, 수많은 시민들이 공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무엇보다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또한 52년에 발췌개헌, 조봉암 사건등 경쟁자를 물리치고, 독재정권의 발판을 마련하였고,수하인 이기붕과 곽영주, 정치깡패 동대문 상인연합회 이정재, 임화수.유지광등을 통하여, 야당을 탄압하는 등,말년의 정권유지를 위한 움직임은 충분히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승만은 집권후 국부로 행세하며 보여줬던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은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독재라는 예민한 사건을 건드리면서, 현재 국사책과, 현대사에서는 이승만이 부정적으로 비추어지고있다.
잠재적으로 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짐작 예측만으로 빨갱이 프래임 씌워서 고문 강제징용 위안부 성폭행 사법살인 학살 시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충성하며 같이 범죄를 하며 정치적 금전적 종교적 이득 얻은 수많은 기득권을 타파하여여만 민족의정기를 바로세울수있다.
만일 윤석열의비상계엄이 성공하였다면 어땟을까? 생각만하여도 끔찍한일이다.극우파쇼 윤석열이 나타나 잘못된 역사를 정리하지 못했기때문이다.대한민국은 더이상 나쁜나라가 되어서는 않된다.
2025년 2월11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명예의장 윤호상/상임대표의장 최상구/부의장 이창준/상임대표박운희/상임대표김만덕/상임대표선용규/상임대표 박명수/상임대표/정명호/상임대표 사윤수/운영위원장 이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