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사찰(寺刹) 탐방 ⑤.
마애아미타 삼존불을 품은 천년고찰 대비사(大悲寺)
하루에 3개의 사찰(寺刹), 즉 '3사(三寺)를 돌아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여
운문사(雲門寺)를 살펴본 후, 발길을 돌려 동곡마을로 나왔다.
운문사(雲門寺)와 같은 지역 내의 다른 사찰(寺刹)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운문사(雲門寺)와 비슷한 역사를 지닌 사찰(寺刹)이 대비사(大悲寺)였고,
대비사(大悲寺)와 같은 방향에 검색된 영취사와 성불사 중
먼저 천년고찰 대비사(大悲寺)를 목적지로 잡았다.
동곡에서 6km…, 말이 6km이지 처음 가는 구불구불 시골길은 꽤나 멀었다.
마을과 저수지를 끼고 한참을 달리고서야 산계곡에 숨은 대비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주차를 하고 바라본 산과 산 사이의 산세(山勢)에 묻힌 듯한 사찰은
조금은 답답하다는 느낌(?)-대부분의 사찰이 위치한 곳에 비해서-이 들었다.
주차장 옆에 비치된 대비사(大悲寺) 소개 간판을 읽고 기본 상식을 습득한 후
높은 누각 용소루(龍沼樓) 계단을 올랐다.
말 그대로라면 '용이 놀던 늪에 세워진 누각'을 말함일까?
거대하고도 잘 정리된 사찰(寺刹)인 운문사(雲門寺)를 직전에 보고 온 탓일까.
아니면, 뭔가 관리되지 않은 듯한 빈티지풍의 분위기가 풍겨서일까.
눈앞에 용소루(龍沼樓)란 간판이 붙은 높이 솟은 누각(樓閣)을 보며
왠지 천년고찰이란 유명세에 비해 많이 '뒤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용소루(龍沼樓)를 오르자 파이프를 연결한 구조물이 사찰 경내를 덮었고,
이곳저곳 공사가 한창인 듯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아마도 석탄일(釋迦誕辰日)을 앞둔 시점인지라 연등을 걸기 위한 준비작업인 듯…
대웅전 앞에 3층석탑이 떠억- 하니 버티고 선 것 또한 아이러니다.
사찰의 상징이랄 수 있는 대웅전을 석탑이 가로막고 있는 형상…?
사찰(寺刹)을 설계하고 건축한 봉황의 마음을 어찌 참새가 알랴마는
처음 본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쉽다(?)는 느낌이랄까.
대웅전과 불상을 두루 살폈으나 특별한 감성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웅전을 돌아 약사전-영산전-대비선원-삼성각-마애아미타 삼존불 입상(立像)까지
오름길 위주로 사찰 건물들이 띄엄띄엄 건축되어 짜임새가 흐트러진 듯한…
하지만, 대웅전을 지나 약사전으로 가는 길섶 바위에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들,
그리고 오래되어 낡고 빛바랜 사찰 건물들에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오름길을 오르며 밑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약사전-영산전-대비선원- 삼성각, 그리고 나무 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천년고찰(千年古刹)의 영상이 카메라에 담길 때마다 사찰(寺刹)의 현재 모습과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된 가치를 하나하나 되새김하면서...
마애아미타 삼존불 입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리 먼 거리도, 심한 비탈길도 아니었지만 평소 체력관리에 실패한 탓인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뒤에서야 마애아미타 삼존불 입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발끝만 보고 오르막을 오른 뒤 올려다본 그곳에 웅장한 삼존불의 입상과 마주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삼존불 입상은 불과 10년도 안 된 최근에 만든 것이라는…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소재의 대비사(大悲寺)는
운문사(雲門寺)와 산고개 사이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진흥왕 18년(557), 신승이 운문산(당시는 호거산)에 들어와 3년 후인
신라 진흥왕 21년(560)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오갑사를 완성하였는데,
서쪽의 소작갑사 또는 대비갑사라고 한 오갑사 중의 하나로
신라 진평왕 22년(600) 원광국사가 제1차로 중창한 사찰(寺刹)로써
이름을 대비사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나,
일설에는 당시 신라의 왕실에 대비라는 왕비가 수양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나
사실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박곡리 마을 안에 있던 것을 고려 때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이 절에 고승 대덕들이 많이 주석하고, 왕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입구 동쪽 산기슭에 줄지어 서 있는 11기의 고승 대덕들의 부도를 보고 추측할 수 있다.
대웅전은 보물 제8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면 3칸, 측면 3칸의 전형적인 다포식 맞배집이다.
대웅전 불단 내부에서 묵서가 발견되어 조선 숙종 11년(1685)에 중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비사에는 현재 절 입구에 세워진 누각 용소루와 보물 제834호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향로전과 요사채, 대웅전 우측 뒤편에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뒤 언덕에는 용두관음보살상을 새긴 바위가 있고,
더 위쪽에는 마애아미타 삼존불 입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은 높이가 7.5m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이 위치해 있다.
절 동쪽 산기슭에 소요(逍遼) 태능(太能:1562∼1649)과
취운(翠雲) 학린(學璘:1575∼1651)의 부도를 비롯한 16기의 부도와 6기의 비가 모여 있다.
대비사 지붕 넘어 억산의 깨진 바위가 우뚝 서 있다.
대비사(大悲寺)는 운문사(雲門寺)와 더불어 신라시대 사찰로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바, 많은 이들이 찾아주길 기대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