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범죄영화 강국’이 됐나?
마동석 주연 <범죄도시2>, 1000만명 돌파
지난 10년간 韓영화 흥행 통산 10위 내에 평균 3편의 범죄영화 포함
이문원 대중문화 평론가월간조선 입력 2022.08.21 06:00 |
한국영화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는 ‘여름 영화 시즌’
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번 대목의 최대 승자는 일찌감치 결정
되다시피 했다는 중론이다. 5월18일 개봉한 마동석 주연 영화
<범죄도시 2>의 흥행 돌풍 탓이다.
여름이 오기 직전 개봉해 여름 시즌 전반부를 휩쓸면서 극장
개봉이 거의 마무리되는 8월3일 현재까지 무려 1269만 1812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4분의 1이 본 영화, 그것도 극장까지 찾
아가 본 사람만 그 정도라는 것. 그야말로 ‘국민영화’의 탄생이다.
<범죄도시 2>는 2017년 688만 관객을 동원했던 <범죄도시>의
속편이다. 제목대로 범죄영화 장르에 속하며, 두 편 모두 실제
범죄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잘 알려졌다.
1편이 2004년 중국 조선족 범죄조직 ‘왕건이파’ 사건과 2007년
조선족 범죄조직 ‘흑사파’ 사건을 엮어 각색했다면, 2편은 ‘필리
핀 연쇄 납치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각각의 사건을 벌
인 일당들을 마동석이 분(扮)한 가상의 강력반 형사 마석도가
소탕한다는 전개다.
이렇듯 전편 인기에 이어 속편에서 ‘1000만 영화’ ‘국민영화’ 자
리까지 오른 <범죄도시> 시리즈이지만, 다른 ‘1000만 영화’들에
비해 그 흥행 비결에 대한 분석은 대중문화 전문미디어에서조차
뜸한 수준이다.
액션스타 마동석의 스타성 정도만 반복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이유가 있다. 애초 한국영화시장에서는 자국(自國) 범죄영화가
유난히 인기 있고, 그중에서도 실화 소재 범죄영화들은 사실상
‘흥행 보증수표’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탄탄한 흥행 입지를 누려
왔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범죄영화 사랑
여기서 저 한국영화시장의 유난한 자국 범죄영화 인기를 좀
더 살펴보자. 흥행 성적을 토대로 보면 상황이 보다 명확히
파악된다. 지난 20년 동안, 그러니까 2002년부터 2021년까
지 연도별 한국영화 연간 흥행통산 10위 내 들어간 영화 200
편 중 범죄영화의 비중을 따져 보면 무려 57편이 그에 해당된다.
매년 한국영화 흥행통산 10위 내에 평균적으로 3편씩은 범죄
영화가 끼어있었다는 얘기다. 그중에는 <베테랑>이나 <극한
직업> <도둑들> 등 ‘1000만 영화’도 다수 포함돼있다. 거기다
범위를 넓혀볼수록 더 대단한 결과가 나온다.
예컨대 2017년은 한국영화 연간 흥행통산 20위 내에 10편이,
그러니까 정확히 절반이 온통 범죄영화로 채워져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세계영화의 메카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만 해도 그렇다.
같은 기간, 똑같이 매년 흥행 상위 10편씩 200편 중 범죄영화에
해당되는 영화는 놀랍게도 단 5편뿐이다. ‘007 제임스 본드 시
리즈’나 ‘제이슨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스파
이 영화들을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
범죄영화도 흥행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중급 규모 흥행에
머무르기에 그 정도를 현실적 목표로 삼고 중급 규모 예산만 투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그 정도 흥행도 장담 못해 점차 넷플릭스 등 OTT 오리지
널 영화로 흡수되는 추세(趨勢).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은 또 어떨까.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탐정 또
는 유사(類似)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물(推理物)의 인기가 엄청
나니 뭔가 다를 것도 같지만, 그런 일본조차 한국만큼은 아니다.
같은 기간 200편의 일본영화 중 범죄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실사
(實寫)영화는 모두 28편, 한국의 딱 절반 정도다. 흔히 떠올리기
쉬운 야쿠자 영화들은 ‘V시네마’라 불리는 비디오시장 전용 B급
영화로서 소화되는 수준이지, 주류(主流) 극장용 영화로 등장하
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밖에 웬만한 영화 강국(强國)들, 세계 10대 영화시장들을 두
루 살펴봐도 한국만큼 자국 범죄영화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찾
아볼 수 없다. 특히 실제 범죄사건 소재 영화가 ‘흥행 보증수표’
소리까지 들으며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실제 범죄가 주는 특유의 무게감과 진지함 탓에 상업적 오락영
화로서 소화되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그린
<그놈 목소리>,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추격자>, ‘부산 고시생
살인사건’ 토대인 <암수살인> 등이 모두 큰 성공을 거뒀고, 심
지어 형식상 범죄영화 분류에 들어간다고 보기도 힘든 ‘조두순
사건’ 모티브 <소원>, ‘광주 인화학교 사건’ 바탕의 <도가니>,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등까지도 모두
흥행 성공을 얻어냈다. 흥행 공식이 다른 나라들과 정반대다.
◇美 범죄영화, 과거에는 인기 장르
앞서 미국에서는 범죄영화가 그리 대단하게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의아해할 이들도 많을
듯싶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에서 그럴 것이다.
이들에게 미국 할리우드는 철을 가리지 않고 히트 범죄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던 ‘범죄영화의 메카’처럼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사실 틀리지 않다. 미국에서 범죄영화의 전성
기는 따로 있었다.
크게 두 차례, 1930~40년대와 1970~80년대다. 한국의 중장년
층 이상은 이중 1970~80년대 전성기를 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1930~40년대에는 갱스터영화와 탐정영화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에 <스카페이스>나 <공공의 적> 등 갱스터영화들이
인기였다면, 1940년대는 <말타의 매> <빅 슬립> 같은 탐정영
화들이 선풍을 일으켰다.
반면 1970~80년대는 형사영화 등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액션
영화 중심으로 범죄영화 유행이 재개(再開)됐다. 당장 떠오르는
1970년대 미국 범죄영화들만 해도 <프렌치 커넥션>
<더티 해리> <데스 위시> <원 웨이 티켓> 등등 수도 없다. 클린
트 이스트우드, 찰스 브론슨, 버트 레이놀즈 등 액션스타들이 이
시기에 최전성기를 누렸다.
단적으로, 197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영화를 단 한 편 꼽는다면,
아주 간단하게, 이탈리아계 마피아조직을 다룬 범죄영화 <대부>
가 꼽힌다.
한편 1980년대 역시 1970년대만큼은 아니어도 기억에 남는 범
죄영화 히트작들이 많았다. <비버리 힐스 캅>과 <리쎌 웨폰> 시
리즈를 필두로 <위트니스> <언터쳐블> <아메리칸 플레이보이>
등등 흥행작들이 속속 탄생됐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즈음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여
전히 흥행 장르이기는 했지만, 연간통산 10위 내에 들어갈 만큼
‘대박’ 흥행은 또 거두기 힘든 장르로 서서히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