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한나절이 기울고 잠깐 땡볕을 피해 툇마루에 누워계시던 엄니가
“얘~ 소뜯기러 안 가냐?
발새 세 시여........“
얼굴과 팔다리가 금방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애처럼 새까맣고
빡빡머리에 반바지,민소매 러닝셔츠를 걸치고 하릴없이 마루 끝에 앉아 꺼먹고무신을 발끝에 걸치고 달랑달랑 흔들고 있던 소년은 “야! “
대답하고는 외양간으로 소고삐를 풀러 간다.
시골의 재산목록 1호가 소가 아닌가?
부모님은 누렁이 암소가 해마다 새끼를 낳아 식구를 늘려 가는 재미에 푹 빠지셔서 그럭저럭 네 마리로 늘려 놓으신 거다.
이 소로 자식들 등록금을 대고
논밭도 갈고,
외양간에서 나오는 쇠똥으로 쌀농사, 보리농사, 콩농사를 야무지게 지어 오시는 거다.
소년은 네 마리의 쇠고삐를 풀어서 마당으로 내몬다.
소들도 어디로 가는지 아는 듯 반가운 기색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투레질을 한다.
제일 오래된 암소가 앞장을 서며 싸립문을 나서면 줄줄이 그 새끼들이 뒤를 따른다.
첫 새끼는 소년의 중학교 등록금으로 팔려 나가고 나머지 새끼들을 먹이고 있다.
지난봄에 제일 어린 새끼가
코뚜레를 했다.
그 게 어제 같은데 뿔도 제법 자라고 의젓하니 틀이 잡혔다..........
아버지는 봄이 되면 작년에 낳아 일 년 남짓 큰 소의 코를 뚫고 코뚜레를 꿔어 소를 길들이신다.
먼저 한 뼘쯤되는 노간주나무를 다듬어 끝을 뾰죽하게 깎아 송곳을 만들어놓고, 노간주나무를 미리 불에 구워서 동그랗게 구부려놓은 코뚜레도 준비하고, 그곳에 어머니가 퍼다 주시는 묵은 된장과 참기름을 반죽한 것을 나무송곳 끝에다 그리고 코뚜레에 듬뿍 바르신다.
그러곤 어린 소를 기둥에 바투 매시곤 쇠코를 엄지와 검지로 움켜잡으시고
콧속에 제일 얇은 곳에 나무송곳을 쑤셔 넣고 몇 번을 돌리곤 코뚜레를 꾀어 노끈으로 묵고는 그 줄을 목줄에 잡아매면 끝이다.
어린 소는 눈을 까뒤집고 발버둥을 치지만 기둥에 바투 묶어놓은 밧줄 때문에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작은 소는 연신 혓바닥으로 붉은 피와 된장이 뭍은 콧구멍을 훑어내린다.
된장이 지혈과 소독을 하고 참기름이 윤활작용을 하는 건가 보다.
보름쯤 후에 상처가 아물면 이렇게 묶어놓은 노끈을 풀고 발동기 피댓줄로 묶어서 도래를 연결하고 거기에 고삐를 달면 완성이다.
“잘혀, 남 곡석 뜯어먹게 허지 말구.“
“야!“
집 앞의 작은 개울을 건너 동쪽으로 죽 이어진 농로를 따라 절레절레 방죽 쪽으로 난 길을 콧바람 휙휙! 날리면서 어미소가 나서며 길섭에 나있는 길초를 혀로 우득우득 뜯어가면서 나가면
그 뒤를 새끼들이 촐랑촐랑 나서며 그 어미의 그 새끼 아니랄까 봐
똑같은 짓으로 리허설을 하며 따른다.
소년은 혹시 길 옆 밭두렁에 심어논 옥수수잎을 소들이 뜯지나 않는지 앞뒤로 살펴가며 소들을 몰구 나간다.
방죽 좌측 산으로 난 길로 소를 몰아가면서 산풀이 실하게 난 곳을 살펴본다.
그리고 논 밭하고 거리를 가늠하면서 소를 풀어 놀 마땅한 장소를 찾는 것이다.
소년은 소고삐를 하나 둘 잡아끌어 소 고삐를 목에다 칭칭 감아산으로 몬다.
이제부터는 소들의 원하는 대로 다니면서 풀을 뜯는 방목을 하는 거다.
소들이 어미를 따라 하나 둘 숲으로 사라지면 안심한 듯 소년은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혀진 문고판 소설책을 꺼낸다.
그늘을 찾아 널적한 돌멩이를 하나 줏어다 깔개로 앉아서 책갈피가 접혀진 페이지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가끔가다 달려드는 쇠파리, 모기가 그대로 드러난 팔이며 다리를 뜯을 땐 철썩철썩! 제 살을 때려가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가다 들려오는 어미소의 풍경소리로 소들이 어디쯤 있는지 가늠해 가면서...........
조용한 산속,
이따금 들려오는 꾀꼬리의 높은음과 휘파람새의 기교 섞인 울림을 빼고는 온산이 잠자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제 사내는 소녀의 웃옷을 벗기고 손이 아래로 내려가 치마 속을 더듬고 있을 때’ 종아리가 아려오기 시작한다.
“에이 이놈의 쇠파리” ”짝“ 반사적으로 손을 놀리곤 정신이 뻔쩍 들었다.
소년의 손에는 쇠파리 배가 터져 묻어 나온 시뻘건 피가 엉겨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잉 벌써 이렇게 시간이 갔나? “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스믈거리며 빠른 속도로 주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며 “소들이 어디 있지?‘
소년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책을 집어던지고 소를 찾으러 이리저리 움직인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언덕을 뛰어올라 주위를 살폈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곧바로 산꼭대기로 치달려 올라갔다.
종아리를 억새풀이 휘갈기고 가시가 팔뚝을 긁었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시간은 점점 가고 어둠은 시꺼먼 입을 벌리고 점점 다가오고.......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오르고.........
이러다 집으로 내 달렸다.
혹시 '지들끼리 집으로 갔나??' 해서
그러나 허사였다.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시고 나서신다.
“소는 어디 가고 너 혼자오는겨?”
식구들 전부가 소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은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대답을 하려 해도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큰 일 났네 이 게 웬일여... “
어머니도 나서신다.
“다 나 따러와! “
아버지가 남폿불을 손에 들고 앞장을 서신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온 집식구가 소를 찾아 산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 거 필시 간첩이 잡아 간겨 ~~~~
아니군 이렇게 소들이 집에 안 올 리 웁서“
소년은 실성한 사람이 되어 뒤를 따를 뿐이고 ........
“간첩은 무슨 간첩이라구 그랴........“
어머니는 소년을 위로하려는 듯 한마디 하신다.
시꺼멓게 어둠이 내려앉은 산을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훑어 내렸으나 허사였다.
“이제 상급학교는 다 갔구나?????? ”
순간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이제 시골에서 농사나 지며 살아야 되는 겨......
아부지처럼..........
‘소년은 어깨가 쪼그라들고 다리에서 힘이 전부 빠져나간다.
‘이 게 뭔 일이랴........“
어머니가 또 한마디 하신다.
“틀림 웁스 간첩이 잡아간겨........“
아버지는 확신이라도 하시는 듯 연신 간첩이라 신다.
더 높이 더 깊이 산속으로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였다.
“가만있어봐유!”
.
.
.
소년의 목소리에 순간 온산이 쥐 죽은 듯 적막이 흘렀다.
잠시 후 ‘짤랑짤랑’ 멀리서 풍경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저기여유 저기 병풍바위 있는 디”소년이 손이 가리키는 곳을 주시했다.
이 병풍바위 밑은 낙엽송아름드리가 쫙 들어박혀 낮에도 어둠 컴컴하니 소름이 돋는 곳이다.
우르르 몰려갔다.
“어 이게 뭔 일이랴.”
소들이 한 군데 얽혀있는 게 아닌가?
서로 머리를 마주대고 꽁지를 치 세우고 밖으로 한 채.....
소들의 커다란 눈에서 시퍼런 불덩이가 뚝뚝 떨어진다.
얼마나 우리를 반가워하는지 모르겠다.
소들이 머리를 우리 식구들의 얼굴이며 몸에 막 문지르며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손에 고삐를 잡지도 않았는 데 절레절레 잘들 따라온다.
“이 눔의 큰 짐성이 뭐가 무서워 내려오지도 못하구 거기서 꼼짝 못하구 있는 겨..”
“에이! 학 퇘 !”
아버지는 멋쩍으신지 나오지도 않는 가래를 연신 내뱉으신다.
이렇게 그날의 사건은 끝나고 그 책이 어디로 갔는지 다음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 됐는지........
소년의 상상 속에 잠들어있다.
이제 그날의 사건은 오십여 년의 추억 속에 고이 잠든 채.....
가슴속에 멍울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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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뱜바우의 추억 속 한 페이지 들춰봅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날 하세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