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다해 19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마르코 3,1-6)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안식일은 대체 무엇을 하라고 있는 날인가?>
오늘 복음도 안식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가셨는데 그곳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이 마르고 있다는 말은 생명이 빠져나간다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일을 하시나, 하지 않으시나만 관찰합니다. 그들은 참다운 안식이 하느님 안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것을 모릅니다. 그저 안식일에 일만 안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는 것만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을 하지 않는 목적이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임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데 어떻게 좋은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지 않을 수 있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어 오신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안식일의 주인으로 섬기려면 그리스도를 믿고 희망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존재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나의 생명을 구원하신 분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편안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신학생 선배가 제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는 것을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부드러운’ 분이 아니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배운 예수님은 정의와 심판을 하시는 딱딱 떨어지는 그런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예수님은 잠깐만 읽어보아도 너무 착하시고, 너무 부드러우시고, 너무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예수님과 함께 머물 때와 그분이 예수님과 머물 때, 누가 더 편안함을 느끼겠습니까? 당연히 예수님을 더 자비롭고 사랑 가득한 분으로 믿는 사람이 더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신학교에서 예수님에 대해 많이 공부해도 그분을 더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공부라면 실제로 점점 예수님과 함께 머묾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사람을 살리시는 착한 분이시라는 체험을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노숙인 무료 숙박 시설을 운영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시설에는 40여 명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에도 열댓 명밖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따듯한 방도 있고 침대도 있고 따듯한 물이 나오는 깨끗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노숙인은 추운 곳에서 자면서도 여기에 잘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저는 그분들이 그곳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이 그만큼 자비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하늘 나라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하느님 자비를 믿지 못하는 이들은 불편해서 차라리 지옥으로 가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저지른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여겨 숨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그분의 자비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를 위해 안식일이 필요합니다. 하루 동안 그분과 함께 지내며 그분이 너무 착하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는 보지 않으시고 다만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시는 분이라는 것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로스트 인 스페이스 시즌 1’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가족이 지구에서 더는 살 수 없게 되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해 커다란 우주선, 레솔루트를 탑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우주선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탈출하여 이상한 별에 불시착합니다.
이때 로빈슨 가족 중 막내 윌이라는 어린아이가 한 로봇을 구해주어 그 로봇과 함께 왔는데 때마침 자신의 일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로봇은 윌에게 충성을 다하는 터라 가족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윌의 가족은 로봇의 능력과 함께 아무리 이상한 행성이라 하지만 안전함을 느낍니다.
문제는 그 로봇이 자신들의 우주선을 파괴한 주범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로봇이 윌을 따르고는 있으나 그 능력이 인간이 감당할 수는 없기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계를 합니다. 이때 스미스라는 박사는 로봇의 힘으로 그들이 다시 우주선으로 돌아가게 되면 감옥에 갇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로봇에 대한 미움을 갖게 만들어 그 로봇을 총으로 쏘고 결국엔 자신들 밖으로 몰아내게 만듭니다. 하지만 로봇이 없으니 외계 행성에서 그들을 도와줄 것이 하나도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로봇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안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같은 한 로봇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편안해합니다. 그 이유는 로봇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이십니다. 그분은 심판하시기도 하시고 구원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심판하는 분이심을 잊어버리십시오. 심판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로빈슨 가족처럼 그분과 함께 지내며 그분이 좋으신 분임을 믿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로마로 유학을 하러 갔을 때 누구나 그랬겠지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지려 했습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이니 기도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도를 통해 몹시 어렵지 않게 유학 생활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믿고 함께하다 보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러면 그분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더 커집니다. 그럴수록 매일이 안식이 되는 것입니다.
로빈슨 가족이 로봇과 함께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것, 이것이 안식일의 목적입니다. 그렇게 그분에 대한 신뢰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분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과 함께 머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지옥에 보내 달라고 스스로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주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그분이 하느님이시기에 그 믿음만으로 모든 날이 안식이 될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라고 있는 날입니다.
출처: 원글보기; ▶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