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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요새 답 안 나오는 공격력과 경기 운영으로 인해 연패에 빠진 히트, 그로 인해 많은 팬분들이 짜증과 울분을 토해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살짝 쉬어가자는 의미에서 프랜차이즈 별로 포지션 랭킹을 작성하시는 허슬 플레이어님의 게시물을 보고 여기에 착안하여, 마이애미 히트 프랜차이즈의 포지션 랭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물론 제가 본편의 작가이신 허슬 플레이어님만큼 내공이 깊지 않아, 수박 겉핥기 식의 포지션 랭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히트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팬 분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 글을 풍족하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글의 기본적인 구성은 허슬 플레이어님의 글과 유사합니다. 히트의 프랜차이즈 역사가 27년째이니, 여기에 나누기 5를 한 만큼을 기본 베스트 랭킹으로 삼고(공교롭게도 베스트 5가 되네요), 이 수만큼의 마이너 랭킹을 더했습니다. 선수소개 역시 순위 역순으로 소개를 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스탯은
- 기록 출처는 바스켓볼레퍼런스 기준, 퍼포먼스 및 해설 출처는 제 개인적인 기억과 기록물, 그리고 위키 및 구글 자료와 언론 기사입니다.
- 베스트 랭킹과 마이너 랭킹 모두 신체사이즈, Tenure, 1차 스탯을 적고, 2차 스탯의 경우 따로 표로 뽑아놨습니다.
- 주요 수상 경력도 포함됩니다.(경기 외의 부차적인 수상들도 적으려고 합니다.)
선수의 커리어 포지션보다도 히트에서 주로 뛴 포지션을 위주로 썼기 때문에 르브론 제임스는 PF, 크리스 보쉬는 C로 구분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선수의 전체 커리어가 아닌 오롯이 ‘히트’에서만의 커리어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포지션과 랭킹에 있어 논란이 있을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 할지라도 히트에서 80경기 미만 혹은 1시즌 이하로 뛴 선수, 그리고 랭킹 안에 들지 못하는 선수들은 Honorable Mention으로 따로 언급할 생각입니다.
◎ Miami Heat 약사
19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맞은 NBA는 리그의 확장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 4개의 도시에서 새로운 팀을 창단하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당시 창단된 4개의 팀은 ‘마이애미 히트’를 포함해 샬럿 호네츠(이상 1988년 창단), 그리고 올랜도 매직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이상 1989년 창단)가 NBA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모든 프로 스포츠팀의 초창기가 그렇듯 마이애미 히트도 Doormate로 프랜차이즈를 출발합니다. 당시 팀을 코치했던, 지금은 하프타임 리포트에서 해설을 해주는 론 로스테인은 3년의 코칭에서 3할 승률도 못할만큼 홈, 원정 가리지 않고 털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패가 쌓이는 만큼 선수들의 경험과 주목받는 재능- 로니 세이컬리, 스티브 스미스, 글렌 라이스 등 –들이 모이게 되고, 그 결과 히트는 창단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물론 당시 디펜딩 챔프였던 불스를 만나 아무것도 못하고 지기는 했지만요.
90년대 초반 플레이오프만 진출해도 잘했다라는 말을 들었던 히트가 진정으로 챔피언을 노리는 팀으로 거듭난 것은 95년입니다. 당시 ‘Beast of the East’인 닉스를 이끌던 팻 라일리가 사장 겸 감독으로 마이애미에 오게 된 거죠. 94-95시즌 간 미키 애리슨으로 오너십이 바뀐 이후로 부임한 팻 라일리는 팀을 송두리째 바꿔버립니다. 당시 ‘미완의 대기’였지만 딱 팻 라일리가 좋아하는 공수 겸장 센터인 알론조 모닝과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했던 팀 하더웨이를 코너스톤으로 삼고 일대 변혁을 이룹니다.
오너십 바뀌면서 홈코트도 바뀜(99-00시즌부터, 사진은 06우승하고 성지순례 시 찍은 사진)
미래의 히트 레전드가 되는 모닝과 티미가 팀에 온 뒤로 히트는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하는 팀이 아닌 진심으로 챔피온십을 바라보는 팀이 됐습니다. 둘이 주축이 된 기간(95-96 ~ 01-02) 동안 히트는 평균 60.7%의 승률(329승 213패)을 보이며 4번의 디비전 타이틀과 1번의 컨퍼런스 1위를 하며 플레이오프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때마다 히트는 90년대 후반 최고의 라이벌리이자 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라이벌리인 닉스와의 컷스로트 시리즈에서 1번 빼고 모두 졌기 때문에, 챔피언십의 꿈은 다음으로 기약하게 됩니다.
이후 티미의 노쇄화와 강철같았던 모닝의 신장병, 그리고 이해 안가는 계약(라폰조 엘리스, 클라렌스 웨더스푼 계약, 호네츠와의 빅딜 등)들로 인해 보스의 반지원정대 1기는 본인의 감독직을 SVG에게 넘기면서 막을 내립니다. 리빌딩에 들어간 히트는 02, 03년 드래프트와 라마 오덤의 FA계약으로 빠르게 리빌딩을 마칩니다. 03-04시즌에 보여줬던 독수리 오형제의 농구는 그간 히트와의 농구와는 다른 업템포를 마다하지 않는 아주 독특한 농구였고요. 특히 03년에 드래프트(1라운드 5번픽)한 드웨인 웨이드는 현재까지의 히트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히트 역사에 큰 획을 긋습니다.
감히 WADE ERA라고 할 수 있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데뷔 후부터 부상까지(03~08)
2. 부상 복귀 후 Wade Almighty 시절(08~10)
3. Big 3 Era(10~13)
4. Post big 3 Era(13~ )
이 정도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데뷔 후부터 부상까지는 샤킬 오닐이라는 당대 최고의 센터와 같이하면서 그 궤를 같이했습니다. 레이커스에서 코비와의 권력싸움에서 진 오닐이 트레이드 매물로 나오자 센터성애자인 보스가 주전 3명과 드래프트 픽을 넘기면서까지 샼을 낚아채고 샼-플래시를 코너스톤 삼아 우승에 도전합니다. 거의 보스 일생에 최대의 도박- 그래서 그런지 지지부진한 SVG를 자르고 자기가 감독을 하죠- 은 히트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우승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우승 후 부상과 노쇄화로 생각보다 빨리 저 조합이 해체되고 다시 리빌딩을 하게 된 히트는 부상에서 돌아온 웨이드와 함께 플레이오프권 이상을 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당대를 주름잡았던 셀틱스 빅3에 멱살 잡혀 플레이오프 이상 날아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절친이자 셀틱스 빅3에게 멱살 잡혀 챔프를 못했던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가 FA로 팀에 합류하면서 히트는 일약 챔피언십 팀이 됩니다. 빅3 기간동안 히트는 역사상 유이한 4년연속 파이널 진출, 백투백 챔프를 경험하면서 리그 익스텐션 팀들 중 유일하게 유서 깊은 다른 구단에 버금가는 명문 구단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본격적인 포인트가드 포지션 랭킹 소개에 들어 가겠습니다.
◎ 포인트가드 랭킹 순위
1. Honorable Mention
Rory Sparrow(2시즌; 89-90 / 162게임), Carlos Arroyo(2시즌; 10-11 / 121게임), Mike James(2시즌; 02-03 / 93게임), Damon Jones (1시즌; 05 / 82게임) Rod Strickland(1시즌; 02 / 76게임),2. 마이너 랭킹(10위 ~ 6위)
10위
# 11 Rafer Alston (6-2 171lbs, CSU)
show me the money
▶2시즌(04/10) 107경기(주전 53경기) 30.2분, 9.4점(야투 37.2%, 3점 37.1%, FT 73.3%), 2.6리바운드, 4.1어시스트, 1.3스틸
AND1광고에 나오던 ‘Skip 2 my lou’이자 지금도 여전히 Jamaica, Queens의 전설인 레이퍼 알스톤이 히트 포가 랭킹 10위입니다. 많은 분들의 선입견이지만, 알스톤은 길거리 농구 경력만 있고, 언드래프티라고 아시는데, 엄연히 학교도 나오고 드래프트에서 선택(Bucks 98년도 2라운드)받은 선수였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계약과 웨이브의 나날을 보내던 중 2003년 히트와 1년 계약을 맺고 독수리 오형제의 일원이 됩니다. 당시 업템포를 추구하던 히트에 알스턴은 매우 잘 맞는 선수였습니다. 스타팅과 벤치를 오가면서 이전에 비해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인 알스턴은 양질의 패스와 좋은 볼핸들링, 그리고 팀에서 가장 믿음직한 3점슈터로서 한 시즌을 보냅니다. 특히 2004년 맵스 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거의 버저비터에 가까운 슛으로 히트에게 극적인 승리를 안겨준 것이 알스턴의 히트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로테이션의 주요 멤버로서 플레이오프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는데요. 물론 팀이 지기는 했지만, 페이서스와의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 오덤, 웨이드, 존스를 다 제치고 알스턴이 마지막 슛을 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에 랩터스와 맥밍시절 로케츠를 거치면서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하다가 선수 말년에 다시 히트로 돌아왔는데요(09-10) 결국 팀 훈련에 불참하고 팀 케미를 망가트리는 주범이 되어 10년 3월에 팀에 의해 시즌 전체 서스펜션을 먹고 결별하게 됩니다.
9위
#20 Gary ‘the Glove’ Payton (6-4, 180lbs Oregon State)
첫 반지의 꿈.. 꿈은 이루어진다!
▶ 2시즌(06-07), 149경기(주전 53경기), 25.6분 6.6득점(야투 41%, 3점 27.8%, FT 75.4%), 2.4리바운드, 3.1어시스트, 0.8스틸 - 2006 NBA Champion
커리어 전체만 놓고 보면 히트 포인트가드 중 가장 이름값이 높은 선수일 게리 페이튼. 조던의 파이널 최저 평균득점을 이끌어낸 수비 괴물이자 리그 최고 급의 게임메이커이자 강심장이었던 게리 페이튼은 자신이 13년간 뛴 슈퍼소닉스를 떠난 뒤 우승을 목표로 커리어의 황혼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전당포 멤버의 실패 후 셀틱스에서 1년을 뛴 페이튼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줬고, 결국 05년도에 히트와 베테랑 미니멈으로 사우스 비치에 오게 됩니다. 커리어 처음으로 맡게 된 벤치 출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드디어 생애 2번째 파이널을 맞이합니다. 이젠 맘만 먹으면 20점 이상 넣어주는 득점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준수한 수비력과 중요한 순간 팀의 득점을 해주는 강심장이 살아있었던 페이튼은 06 파이널 4차전을 매조지하는 슈팅 및 매 경기마다 클러치 샷을 넣는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생애 첫 반지를 끼게 됩니다. 이후 이듬해까지 히트에서 선수생활을 하지만 생애 최저 득점과 함께 40% 못 미치는 야투율, 그리고 끊임없는 부상까지 이어지자 플레이오프에서 불스에게 4-0으로 광탈한 뒤 미련없이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방송일과 함께 NBA 레전드로서 해외 홍보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8위
#20 / #22 Brian Shaw (6-6, 190lbs, UC Santa Barbara)
이탈리아 가고 싶다.
▶ 3시즌(92-94), 191경기(주전 120경기), 24.2분, 7.9득점(야투 40.5% 3점 42.2% FT 74.3%), 3.9리바운드, 4.1어시스트, 0.9스틸
맞습니다. 레이커스 3연패 시절 백업 가드였던 그 브라이언 쇼, 너겟츠 감독으로 유쾌하지만 않았던 그 브라이언 쇼가 맞습니다. 대학시절 대표팀에 뽑히기까지 했던 쇼는 히트가 창단된 88년 드래프트에서 셀틱스에 22번 픽으로 뽑혀 프로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듬해 그는 이탈리아 팀과 계약을 해 셀틱스를 떠나게 됐고(90), 이에 셀틱스는 쇼에게 소송을 걸었고, 여기서 진 쇼는 결국 다시 셀틱스로 돌아와 5년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91). 이미 미운털이 박혀 있었는지 92년 시즌 중 쇼를 히트로 트레이드했고, 히트에서 3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가드로서는 큰 키를 바탕으로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었고, 패싱도 좋은 수준이었으며 3점이 준수한 선수였지만, 주전으로 나오면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적이 많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히트 팀 기록인 1경기 최대 3점슛(10개) 기록을 가진 유이한 선수이기도 합니다.(나머지 하나는 마리오 찰머스)
7위
# 25 Anthony Carter (6-1, 190lbs, University of Hawaii)
내 성도 카터야
▶ 4시즌(00-03), 246경기(주전 80경기), 22.2분 5.5점(야투 38.3%, 3점 11.1% FT 67.1%) 2.4리바운드, 4.3어시스트 1.1스틸 / 10th Assists
항상 말씀드리는 바지만 팻 라일리의 언드래프티 발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지금 소개하는 앤서니 카터 역시 하와이 대학 출신의 언드래프티로 팀 하더웨이의 후보로 발굴된 뒤 03년 히트를 떠날 때까지 팀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강점? 별로 없습니다. 슈팅 올라가는 건 정말 시원한 데 성공률이 신통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패스와 드리블이 포인트 가드로서 리그에서 살아남기엔 부족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서니 카터가 2012년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은퇴 후에는 (타팀이기는 하지만)코치가 되어 리그에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부지런을 넘어 독종이라고 할 만큼 열심히 하던 수비였습니다.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보이기 위해 정말 머리가 절로 숙여질 만큼 수비에서 악착같이 자기 마크맨을 따라다니고 부지런하게 로테이션하는 모습은 농구 선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보면 좋을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닝-티미 시대의 마지막에 리빌딩을 온몸으로 감내했던 선수라 더 정감이 갑니다.
6위
# 30 Norris Cole (6-2, 175lbs, Cleveland State)
난 링 2갠데..ㅠㅠ
▶ 4시즌(11-15), 274경기(주전 35경기), 21.9분, 6.2점(야투 40.7%, 3점 31.8%, FT 72.8%), 1.8리바운드, 2.6어시스트 0.8스틸 – 2012, 2013 NBA Champion
추억의 찰콜네의 둘째 노리스 콜은 클리블랜드 주립대학을 다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서 전년도 준우승팀인 히트에게 1라운드 28번째로 드래프트 됩니다.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콜은 신장에 비해 좋은 운동능력과 바디를 가지고 있고 미드레인지 슈팅에 능하며 볼 간수가 나름 좋은 가드라는 평가였습니다. 다만 리그 3점 레인지보다 적은 슈팅을 가진지라 3점 슈팅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좁디 좁은 코트비전으로 인해 혼자서 게임을 조립하기 힘들다는 점과 평균보다 낮은 파울 슈터라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됐었죠. 하지만 콜은 12년 홈 오프닝 데이에 셀틱스를 맞아 자신의 장점인 미드레인지 슈팅을 보여주는 한편 셀틱스가 무섭게 쫓아오는 클러치 상황에서 승부를 매조지하는 슈팅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숨겨진 장점인 담대함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일약 당해년도 챔피언십의 주요 로테이션에 끼며 팀의 백투백 우승에 좋은 역할을 했습니다. 공수에서 좋은 활약을 하던 콜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벤치에서 나오는 선수의 기준에서 좋았던 거지 주전 포인트가드로 나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임을 지난 시즌 보여줬고, 결국 수많은 기회를 받은 콜이었지만 그 기대에 충분히 화답하지 못해 트레이드로 펠리컨즈로 넘어가게 됩니다.
3. 메이저 랭킹(5위 ~ 1위)
5위
#12 Bimbo Coles (6-1, 180lbs, Virginia tech)
나도 한때 유망주ㅠㅠ_01
▶ 7시즌(91-96/04), 462경기(주전 196경기), 25분, 8.7득점(야투 43.9%, 3점 27.5%, FT 80.1%), 2.3리바운드, 4.2어시스트, 1.0스틸 / 10th FT%
올드팬들이라면 한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보셨을 빔보 콜스. 88년 올림픽 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버지니아 텍 소속으로 그 대학에서는 할거 다했던 빔보 콜스(버지니아 텍에서 영구결번 됐거든요)는 4학년을 다 마치고 드래프트에 나옵니다. 당시 킹즈가 그를 지명했는데(2라운드 40번), 그 권리를 당일 히트의 베테랑가드인 Rory Sparrow와 맞바꿔 히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히트에는 이미 전년도 올 루키 팀에 뽑혔던 셔먼 더글라스가 주전 포가로 있었기 때문에 벤치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셔먼 더글라스 – 브라이언 쇼 트레이드 이후에는 쇼의 백업을 맡거나 쇼가 부진하면 대신 주전으로 나서는 등의 발전을 보여주다 브라이언 쇼가 나간 94-95시즌부터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게 됩니다.
콜스의 강점은 좋은 운동능력과 함께 사이즈 대비 긴 윙스팬, 그리고 오픈코트에서 코트 비전이 좋고 마무리에 능하며 좋은 퍼스트 스탭과 안정적인 볼핸들링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셔먼 더글라스가 3.3개의 턴오버를 하는 것과 극명히 배치되는 장점이었고요. 하지만 평균 이하의 야투율과 3점이 채 안되는 레인지, 생각보다 별로인 수비는 콜스가 더 성장하지 못한 이유라고 봅니다. 저는 이 형 볼 때마다 왕년에 스퍼스 가드이자 맵스 감독이었던 에이버리 존슨의 다운 그레이드가 콜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보스가 히트에 부임하면서 팀 하더웨이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서부로 넘어가게 됐고, 이후 몇 개의 팀을 더 거친 다음 은퇴시즌인 03-04시즌에 히트로 돌아와 커리어를 마감합니다.
4위
#11 Sherman Douglas (6-0, 180lbs, Syracuse)
작지만 별명은 'The general'
▶ 3시즌(89-91), 159경기(주전 141경기), 32.3분, 16.0득점(야투50.0%, 3점 14.3%, FT 68.7%), 2.6리바운드, 7.9어시스트 1.7스틸 – All NBA Rookie team(89, 1st) / 7th PG%, 6th Assists
대학시절 시라큐스에서 주가를 올렸던 셔먼 ‘더 제네럴’ 더글라스, NCAA의 올타임 어시스트 레코드를 올렸던 더글러스였지만 신발을 벗으면 6피트가 안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작은 키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생각보다 많이 밀립니다. 결국 28번째(2라운드 1번)로 두 번째로 드래프트에 참가한 히트에 드래프트 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합니다.
일단 셔먼 더글라스는 현재는 가드들의 무기로 추앙받는 러닝 플로터를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선구자로 일컬어집니다. 작은 키에도 야투율이 50퍼센트를 상회하는 건 다 이유가 있죠. 게다가 돌파에 이은 어시스트는 셔먼 더글라스의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에 자유투를 따내는 능력도 상당히 뛰어났고 오픈코트에서의 코트비전은 왜 그가 제네럴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알려줄 정도로 속공 전개 및 마무리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경기당 2개에 가까운 스틸을 보여주면서 나름 상대 볼핸들러를 잘 압박해줬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나온 더글러스는 올 루키 NBA 퍼스트팀의 영광을 차지하고 2번째 시즌에는 이보다 더욱 발전해 팀내 최고 득점(18.5)과 최고 어시스트(8.5)를 보여주며 한껏 주가를 올렸었죠. 하지만, 발전이 없는 3점 슛과 개선이 안 되는 프리드로우, 여기에 생각보다 더 개선이 안되는 턴오버 및 클러치 상황에서 득점하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히트는 한창 주가가 오른 영건을 트레이드합니다. 먼저 소개한 브라이언 쇼와 말이죠.
여담이지만, 당시 성장 속도로 봐서는 아무리 3점 레인지에 문제가 있는 선수였다고는 하지만 히트가 너무 빨리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쉽습니다. 레인지에 문제가 있었던 건 비단 더글라스 뿐만은 아니였으니까요. 또한 별명처럼 매우 리더십이 좋은 선수였다고 하는데, 이 선수가 있었더라면 프랜차이즈 초장기에 팀 케미스트리가 높아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 트레이드 된 후 90년대가 암흑기라 부르기 주저않는 셀틱스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았으니까요.
3위
#55 Jason Williams (6-1, 190lbs, University of Florida)
첫 우승 주전 포인트가드
▶ 3시즌(06-08), 187경기(주전 164경기), 30.1분, 10.6득점(야투 41.4%, 3점 35.4%, FT 88.3%- 프랜차이즈 No.2), 2.2리바운드, 4.9어시스트, 1.0스틸 – 2006 NBA Champion / 2nd FT%, 9th 3PM
05년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에서 피스톤즈에게 아쉽게 진 히트는 전력 보강을 위해 주전 슈팅가드인 에디 존스를 멤피스로 보내고 멤피스의 주전 포인트가드인 제이슨 윌리엄스와 주요 식스맨인 제임스 포지를 영입합니다. 당시 히트는 3점에 강점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별로였고, 특히 수비가 강한 상대를 만나면 쪼그라들었던 포인트가드 데이먼 존스와 결별을 확정하고 적어도 상대 포인트 가드에게 압살당하지 않는 볼핸들링 및 득점이 가능한 가드를 얻기 위해 6년간 동고동락한 에디 존스를 멤피스에 보내고 왕년의 화이트초콜렛, 제이슨 윌리엄스를 받아왔습니다.
밀레니엄 킹즈의 인기를 주도하던 J-Dub은 05-06시즌 이전의 화려함으로 인해 당시 가장 과소평가 받는 포인트가드였습니다. 히트와 같이한 3시즌 동안 그의 턴오버는 평균 1개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고, 이전 시즌 데이먼 존스가 못했던 페이스 조절, 게임 운영, 유려한 패싱 및 적절한 오픈 코트 운영을 보여줍니다. 또한 베테랑답게 돌파면 돌파, 슛이면 슛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절히 해줬습니다. 이와 함께 전년도 데이먼 존스가 했던 만큼의 3점 퍼포먼스를 동시에 보입니다. 이와 함께 티미 이후 없어졌던 포인트 가드의 수비를 다시 윌리엄스가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윌리엄스는 히트에서 좋은 수비력을 보여줬습니다. 윌리엄스의 히트 시절의 하이라이트는 대부분 05-06시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6차전에서 전 시즌에서 데이먼 존스를 지워버린 파이널 MVP 천시 빌럽스를 상대로 10/12의 야투 퍼포먼스를 보이며 21점 6어시스트(턴오버 1)의 성적으로 히트의 첫 동부 우승에 일조합니다.
하지만 향후 자신의 커리어를 앗아가게 하는 시발이 된 무릎 부상이 히트 시절 발생하고 이로 인해 평균 20경기 이상씩 결장했던 건 윌리엄스의 히트 커리어 중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이 부상으로 인해 매년 안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게 됐고 결국 히트와 결별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클립스와 계약하나 부상으로 은퇴한 뒤 2009년 다시 매직에서 복귀한 다음 2011년 멤피스에서 완전히 은퇴하게 됩니다. 은퇴 후에는 화려한 플레이와는 대비되는 조용하고 정갈한 스타일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윌리엄스답게 왕년의 슈퍼스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가족과 함께 평온하게 살고 있답니다.
2위
#6 / #15 Mario Chalmers (6-2, 190lbs, Kansas)
Top 10 Guard
▶8시즌(09-16), 525경기- 프랜차이즈 No.4(주전 383경기), 8.8득점(야투 42.2%, 3점 36%, FT 77.6%), 2.4리바운드, 3.8어시스트, 1.5스틸 – 2012, 13 NBA Champion, All NBA Rookie Team(09, 2nd) / 4th GMs, 6th Minutes, 4th 3PM, 3rd Assists, 2nd Steals
알래스카 출신 농구선수 중 최고의 스타이자 NCAA 결승에서 데릭 로즈의 꿈을 꺾고 우승한 남자, 그리고 자신을 탑10가드라 자칭할 수 있는 마성의 찰득이, 마리오 찰머스. 그가 히트를 거쳐간 포인트 가드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전 선수를 통틀어서도 4번째로 많은 경기를 히트 저지를 입고 경기를 치뤘습니다. 맑은 눈동자를 머금으며 트레쉬토크를 하고 언제 턴오버로 억장을 무너트릴지 몰랐던 찰머스는 정말 8시즌 동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안하다가도 진정 3점이 필요한 순간 캐치 앤 슛으로 점수를 내주는 완소의 역할을 해내는 마성의 선수였습니다.
히트에서의 커리어를 보자면, 루키 시절이 가장 성적이 좋았을 정도로 선수 본인의 성장은 실패했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빅3라는 큰 틀에서 어찌 보면 가장 잘 맞는 포인트가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다고 찰득이가 탑 10 가드라는 것은 아닙니다.- 빅 3 Era에서 히트 우승에 많은 공을 쌓은 게 찰머스라고 생각합니다.
찰머스의 장점은 어느 순간에나 터트려 줄 수 있는 3점입니다. 다만 이게 꾸준히 잘 안 들어간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필요한 순간에는 상대에게는 한숨을 히트에게는 환희를 가져다 줄 정도로 좋은 무기였습니다. 이와 함께 패싱 레인을 잘 읽고 손이 빨라 스틸이 나쁘지 않고 발도 빠르고 스크린에도 잘 걸리지 않아 수비만 볼 때 자기보다 큰 포인트 가드가 포스트업만 안한다면 수비적으로는 크게 문제 삼을 게 없을 정도로 수비에서는 큰 장점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정줄 놓고 경기를 보게 만드는 찰머스의 턴오버와 자기가 내쉬인 줄 알고 하는 찰머스의 서커스 샷은 히트 경기를 가끔 막장으로 몰고가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중 자기보다 더 베테랑인 르브론과 보쉬에게 대놓고 대드는 모습도 간간히 보여주기도 했고요. 또한 자기 자신의 입으로 탑10가드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겸손한 게임 운영과 코트 비전, 그리고 패싱 스킬은 왜 찰득이가 탑 10 가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이와 함께 코트 안팎으로 집중력을 잃는 모습은 찰득이가 더 발전하지 못하고, 매년 성장과 퇴보를 반복한 중요한 이유라고 보고요.
결국 이번 시즌을 끝으로 사치세 등의 이유로 인해 찰득이가 사우스 비치를 떠나게 됐습니다. 트레이드 된 데서 나름 주요 로테이션 멤버로 살아남는 모습을 보면서 찰득이가 그래도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램도 드네요.
1위
# 10(Retired) Tim Hardaway (6-0, 175lbs, UTEP)
90년대는 내가 짱임!
6시즌(96-01), 367게임(모두 주전), 17.3득점(야투 41%, 3점 35.6%, FT 80.1%), 3.2리바운드, 7.8어시스트, 1.5스틸 – 2-time All Star(97,98), 3-time All NBA team(97,98,99), / 9th Minutes, 7th Points, 2nd Assists, 6th Steals, 1st 3PM(806), 10th FTM, 10th FT%
지금은 크로스오버 마스터가 아이버슨이니 폴이니 커리니 논쟁이 많지만, 저 때 크로스오버=Tim bug이었습니다. Killer Crossover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죠. Run TMC의 한 축으로 리그 공격에 불을 댕겼던 팀 하더웨이는 96년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히트와 함께합니다. 아직은 어수선한 히트였기에 플레이오프는 겨우 갔지만, 72승 불스에게 힘도 못써보고 털렸었죠.
하지만 주축과 부분이 맞은 이듬해 97년 시즌은 엄청났습니다. 당시 히트 프랜차이즈 기록인 61승으로 대서양지구 패권을 차지하고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를 치루게 되죠. 당시 하더웨이는 팀 공격을 주도하면서 백코트의 모든 것을 총괄했습니다. 20.3점에 8.6어시스트, 그리고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승의 공로는 MVP 투표에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정받았었죠. 97년도 플레이오프에서는 리그 최대의 라이벌리인 컷스로드 시리즈가 개막하며 서전을 히트가 이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69승 불스에게 또 막혀 파이널은 커리어 내내 바이바이가 되고 말았죠.
모닝이 신장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티미는 모닝과 함께 히트의 첫 전성기를 꾸준하고 솔리드하게 이어나갑니다. 물론, 밉살스러운 닉스와의 전쟁에서 첫 전투 후 모두 패배해 체면을 구기지만, 그래도 모닝과 티미가 건재하는 한 동부 패권뿐만 아니라 파이널도 멀지 않게 느껴졌죠. 하지만, 골스시절 당했던 무릎부상과 햄버거를 사랑해 마지 않는 티미의 식습관과 부상들이 겹치면서 티미의 컨디션은 신장병으로 모닝이 쓰러지기 전부터 안좋아지기 시작합니다. 통한의 통통샷으로 1라운드 패배를 당했던 99년도 이후 티미의 퍼포먼스는 급격히 나빠집니다. 물론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뽑히지만, 그의 속도는 전성기와 비교해봤을 때 슬로모션으로 생각될 정도로 매우 느려졌죠. 이로 인해 티미는 3점과 롱2에 더 의존하는 공격패턴을 보이고, 결국 01년도 1라운드에서 왕년의 동료였던 몬스터 매쉬와 P.J.브라운, 그리고 배산적의 호네츠에게 광탈하고 티미와 히트와의 인연은 트레이드로 끝나게 됩니다.
히트 시절 팀 하더웨이는 골스 시절에 비해 돌파가 많이 줄어든 하더웨이였습니다. 아무래도 93-94시즌 큰 부상 이후로 무릎을 항상 조심해야 할 하더웨이였으니까요. 줄어든 돌파만큼 3점이 늘었는데요. 그런데 이 형이 돌파만 잘하는 게 아니라 35%정도로 3점을 때려주는 형이었기에 스피드가 맛이 가기 이전까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돌파의 횟수가 줄었지 여전히 나오는 킬러 크로스오버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냈죠(따라도 많이 했죠.). 그리고 히트 가드들 중 가장 좋은 타이밍의 앤트리패스와 랍패스를 띄워줬고, 오픈코트에서도 단연 빛나는 코트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리가 무뎌진 99년도 이전까지는 수비에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일단 몸이 땅땅하기 때문에 배산적급의 가드가 아닌한 포스트업으로 밀리는 일이 없었고 당대 최고의 블라커인 모닝의 존재가 있어서 그런지 돌파도 여간해서는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윙스팬이 긴 양반이라 그런지 드리블을 곧잘 훑어내기도 했었죠.
여하튼 몸이 완전히 축나기 전까지의 티미는 당대를 아우르는 포인트가드로서 명성이 높았고, 그 명성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물론, 그 명성과 퍼포먼스에 비해 올라간 곳이 턱없이 낮지만, 그래도 티미는 히트 팬들에게 소중하고 승리를 더 많이 선사해준 선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포인트가드 탑 10 성적 정리 표
※ 시간이 좀 남아 허슬 플레이어님 글 따라 해봤는데.. 보통 어려운게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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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알공갈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위에 본문과 더불어 영감님의 업적도 엄청나네요. 하더웨이&모닝, 샥&웨이드, 빅3까지 항상 우승전력을 만들어 내는 것 보면 참 대단해요
엄청나죠. 보스만큼 3 decade에 거쳐서 우승 전력을 만들어낸 인물을 떠올리려면 레드 아워백까지 가야할 거 같아요
스티비는 그럼 다음회 2번에서 다뤄주시나요
넵ㅋㅋㅋ 정신 없어서 둘째 글 댓글을 먼저 달고 첫글 댓글을 이제 다네요
정성어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슈팅가드 편 기대되네요~~ 앤쏘니 카터는 진짜 작년 델라베도바 같았어요. 내일은 없다는 듯이 수비했죠. 별로 재능은 없어보이는데 진짜 죽어라고 뛰니까 응원을 안 할 수가 없더라구요.
핑거롤님이 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스의 키드들이 다 앤서니 카터 같죠. 언론에서는 재능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하는 거보면 알짜배기인데다 경기에서는 항상 목숨거는.. 최고의 노력가들이었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추억의 선수들이 많네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Zo까지 다 써야 할텐데.. 어쨌든 짬 나는대로 끝까지 가보렵니다.
에공,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가 어설프게 연재를 하고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어 한도 끝도 없이 속도가 느려 1년에 겨우 두 프랜차이즈 다룬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럼을 중심으로 직접 응원하시는 골수팬 분들이 비슷한 기획으로 좋은 글들을 올려주신다면 제 입장에서는 이런 좋은 글들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보람차기도 하고요, 느린 연재속도로 인해 스스로도 답답하던 마음의 응어리도 풀리는 듯한 기분입니다. 부디 다른 포럼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어 포럼 활성화에 기여가 되면 좋겠네요. 제가 어설프게나마
준비해서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응원하시고 훨씬 더 많은 경기를 봐오신 팬분들의 깊은 안목과 견해로부터 더 알찬 내용들이 나올 테니까요. 그리고 본문의 내용에 조금 보탠다면, 브라이언 쇼는 루키 시즌을 보낸 뒤 보스턴 측의 재계약 의사를 뿌리치고 이탈리아 팀과 2년 계약을 맺었다가 향수병 등으로 1년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원소속팀이던 보스턴과 다시 5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이, 보스턴과 계약한 후 곧바로 마음이 바뀌어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남은 1년 계약을 마친 뒤 보스턴에 합류하겠다고 통보한겁니다. 보스턴측은 당연히 반발했고, 소송까지 가서 결국 쇼가 패했죠. 보스턴이
소송을 건 시점이 쇼가 이탈리아로 떠난 직후가 아니라, 그가 돌아와서 보스턴과 재계약한 뒤 바로 엉뚱하게 변심하여 당장 합류를 거부한 시점이었죠. 결국 쇼는 패소로 인해 보스턴으로 복귀했으나, 셀틱스 팬들은 프랜차이즈를 버리고 떠났다가 어거지로 돌아온 그를 곱게 보지 않았고 경기때마다 야유를 퍼부어댔죠. (보스턴 팬들의 열기와 극성도 상당합니다...) 쇼는 주전 포인트가드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시즌 내내 홈팬들의 증오의 시선에 시달리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결국 시즌 후반 슬럼프에 허덕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을 거듭했죠. 안그래도 밉상인데 플옵에서 삽질까지 했으니 팬들의 시선은 더욱 냉담해졌
고 이듬해 초반에는 부상까지 겹쳐서 제대로 출전도 못하던 와중에 결국 보스턴에서 그를 보내기로 한겁니다. 한편 셔먼 더글라스의 경우, 마이애미에서 거의 에이스급으로 출중한 활약을 보여줬고, 그 결과 매직 존슨의 갑작스런 은퇴로 부랴부랴 주전 포인트가드감을 찾고 있던 레이커스가 FA던 그에게 7년 장기계약 오퍼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마이애미측에서 이 오퍼에 매치해버린거죠. 하지만 이미 더글라스도 마음이 떠 있었고 (그는 신생팀인 약체 마이애미에서 계속 뛰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둘의 관계는 계속 갈 수 없는 상태였죠. 결국 그래서 보스턴에서 붕 떠버린 쇼와 트레이드된겁니다. 마이애미측은 애초에
더글라스와 함께 가길 원했으나, 이를 달가워하지 않은 더글라스가 결국 빅마켓 팀의 오퍼를 수락했고, 걍 더글라스를 내보내기 아쉬웠던 히트는 이에 매치했으나 관계 회복이 이미 힘든 상태가 된지라 트레이드 카드로 써버린거죠. 그리고 제 개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포지션 쪽에서 좀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본 글에는 스티브 스미스의 이름이 빠져 있는데, 스티브는 애틀란타 시절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슈팅가드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프로 초창기 마이애미에서 뛸 때에는 오히려 포인트가드로 기용되었습니다. 6-7의 장신이었으나 1번도 볼 수 있을만큼 다재다능했던 그는 당대 대표적인 "매직 존슨 키드"로서 전도유망한 장신 포인트가드
재목이었죠. 스스로도 매직이 우상이었구요. 마이애미에 입단해서도 루키 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기용되었는데 아직 루키기도 했고 팀에 빔보 콜스라는 베테랑 포인트가드가 있었기에 풀타임 포가까지는 아니고 1-2번 포지션을 두루 오갔죠. (시즌 중반에 부상도 있었구요...) 시즌 후반에는 브라이언 쇼가 스타팅으로 올라왔는데, 쇼는 오히려 윌리 버튼 대신에 주전 2번으로 올라온겁니다. 2년차때인 92-93시즌에는 초반에 부상으로 많은 경기 결장했다가 중반 이후 겨우 합류했고, 그때까지 히트의 1, 2번 주전은 빔보 콜스와 케빈 에드워즈였죠. 그러다가 스티브가 복귀하고 또 공교롭게 그때 즈음에 에드워즈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쇼가 다시 주전 2번으로 올라섰습니다. 이듬해에는 스티브는 풀시즌을 주전 1번으로 보냈고, 쇼는 덩크왕 해럴드 마이너와 주전 경쟁을 벌였었죠. 물론 스티브는 플레이스타일이 정통 1번 타입은 아니었고, 매직의 스타일을 신봉했으나 1번으로서 매직만한 재능은 없었기에 장신 포가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애틀란타에서 풀타임 2번으로 뛰면서 기량이 만개했죠. 쇼 역시 포인트가드로서의 기량 자체는 오히려 스티브보다 나았지만 팀에서 어쨌든 스티브를 1번으로 밀어주니까 그와 함께 스타팅으로 나왔을 때에는 주로 오프-가드로 뛰었고, 보스턴 시절에는 영 젬병이던 외곽슛을 많이 가다듬어 스팟업 슈터로서도
좋은 활약을 해주었죠. 다만 워낙에 1번으로서의 재능도 좋다보니까 스티브와 함께 뛸 때에는 사실상 투 가드나 다름없었고, 오히려 플레이메이커로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팀의 기조는 장신 포가로 스티브를 밀어주는 거였기에 쇼의 역할은 보조자에 그쳤고, 오히려 다른 2번 선수들(버튼, 마이너)과 주전 자리 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따라서 히트 시절만 두고 보면 오히려 스티브를 포인트가드 랭킹에, 쇼를 슈팅가드 랭킹에 놓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은데 제 개인 의견이니 아무쪼록 참고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편 글들도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에공 그러고보니
괜히 히트 포럼에 난입해서 어지럽게 댓글 길게 단 것 같아 조금은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도 드네요^^;
@허슬 플레이어 정성 어린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사실 스티브 스미스를 포가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상당히 고민했었는데요. 스티브 스미스가 다른 백코트 파트너들과 나올 때는 허슬플레이어님 말씀대로 스티비를 팀에서 1번으로 밀어줬지만 사실상 게임을 조율하고 운영하는 역할은 스티비보다는 제가 언급했던 가드들이 조금 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고, 스티비 역시 1번으로 출전했다고는 하지만, 2번으로서의 역할이 더 많이 수행했으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레퍼런스의 기록들이 스티브 스미스를 히트에서도 2번으로 표기했기에. 2번으로 구분했습니다. 선수 포지션 구분할 때 가장 고민하던 부분 중 하나였는데 정말 힘들더군요.
@허슬 플레이어 그리고 셔먼 더글라스 관련 내용은 잘 몰랐습니다. 팀과 저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었다면 팀이든 선수든 같이할 수 없었겠네요. 브라이언 쇼의 내용은 제가 선후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군요. 항상 디테일한 부분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20년 히트 팀을 좋아했다고 하지만 그 시작이 고등학교 때라 95년 이전의 히트는 글로만 접한 수준이거든요.^^ 그리고 이 작업이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자료 보고 해석하고 글쓰고 이 작업 만만치 않더라고요..^^
@mourning33 예 포지션 분류가 애매한 부분이 참 많죠. 포지션이 딱딱 명확하게 구분 안되고 정체성이 모호한 선수들이 더러 있어서 말이죠. 음 근데 이것도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나 레퍼런스 사이트의 포지션 분류는 좀 객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역대 선수들의 포지션을 다 매겨보려 한 점에서는 의의가 있으나 디테일하게 따져보면 틀린 부분들이 더러 나오죠. 이를테면 13-14시즌 달라스에서 칼데론과 함께 뛰던 시절의 만테이 엘리스를 포인트가드로 분류해놓았습니다. 이것도 처음엔 칼데론을 슈가로, 엘리스를 포가로 해놨다가 지금은 칼데론은 포가로 수정됐으나 엘리스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다보니 칼데론, 엘리스 두 선수가 나란히
@mourning33 주전이었음에도 둘다 포가인것처럼 되었죠. 이게 왜 그런가 하면 엘리스가 칼데론보다 어시스트가 더 많고 신체조건이 딸려서(키는 같은데 웨이트 덜나감) 그렇습니다. 나름 플레이-바이-플레이 데이타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에서 오류들이 더러 있어 참고 자료로는 괜찮으나 절대적 근거자료로 삼기에는 신뢰도가 약간 떨어집니다. 저도 보스턴 작업할때 옛날 세대의 잘 몰랐던 선수들 포지션 분류를 대충 레퍼런스 믿고 이렇겠거니 했다가 나중에 디테일하게 따져보니 틀렸어서 애먹은 사례들이 더러 있습니다. 레퍼런스같이 신뢰도 높은 사이트의 정보임에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만큼 포지션 분류는 애매한
@mourning33 그리고 까다로운 영역인것 같습니다.
@허슬 플레이어 포지션 분류 정말 까다롭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 경기를 본 선수들도 약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데 보지 못한 선수들의 분류는 너무 어렵네요. 포지션 분류부터 시작해서 성적을 기반으로 나름의 순위를 매기고, 거기에 선수소개까지 쉽지 않네요. 기획하신 허슬 플레이어님의 내공과 꼼꼼함에 한 번 더 대단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글 써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정도 퀄리티 있는 글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드는 작업입니다. 추천 백개 드리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ㅎㅎ
백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