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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팅가드 랭킹 순위
1. Honorable Mention
선수명 |
Yrs |
Season |
Gms |
Daequan Cook |
3 |
2008-2010 |
179 |
Jon Sundvold |
4 |
1989-1992 |
158 |
Quentin Richardson |
1 |
2010 |
76 |
Rex Chapman |
1 |
1996 |
56 |
2. 마이너 랭킹(10위 ~ 6위)
10위
#5, #55 Eddie House (6-1, 180lbs, Arizona
State)
슛 외길 인생!
4시즌(01-03/11), 225경기(주전 11경기), 16.8분, 6.8점(야투 39.9%, 3점 34.9%, FT 84.4%), 1.5리바운드, 1.6어시스트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슈팅가드 순위 선정은 메이저 순위보다는 마이너 순위 매기는 게 어려웠습니다. Honorable Mention에서 언급했던 Q나 채프먼은 Tenure가 너무 짧고 그렇다고 요리사와 발음이 볼드모트 같은 선드볼드는 지금 소개하는 에디 하우스처럼 히트에서 뛰는 동안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정말 고심 끝에 팀에서는 포인트가드 백업을 맡기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자신은 슛밖에 몰랐던 하우스를 슈팅가드 마지막 자리에 순위에 놓았습니다.
에디 하우스는 사이즈만 보면 당근 포인트가드처럼 보이지만, 히트에서
뛴 저 기간 동안 단 한번도 포인트가드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애리조나 스테이트에서 4년을 다 뛴 하우스는 애리조나 스테이트의 득점과 스틸에서 최고 기록을 가질 만큼 엄청난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다만 그의 사이즈와 모든 능력이 대학 수준에서는 최고가 될지 모르겠지만,
NBA에선 슈팅 외에는 대부분 평균 아래로 평가받아 00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서 히트에 지명이 되고, 프로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우스의 프로생활은 드래프트 전 예상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프로생활을 합니다. 모닝-티미 시대의 끝자락에 들어와서 나름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현격히
떨어지는 리딩과 드리블, 경기운영은 하우스의 발목을 잡죠. 하지만, 열심이었던 수비와 좋은 슈팅 때문에 아마도 2011년까지 (저니맨이기는 하지만)
프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히트에서는 01년
플레이오프에서 왕년의 동료들에게 처참히 깨지는 호네츠와의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자기몫을 해줬던 게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고요. 히트와 루키 게약이 끝난 뒤 여러 팀을 거치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 빅3 시대
초에 재계약했다가 10-11시즌 중 웨이브되면서 프로생활도 같이 마감합니다.
9위
#32 / #4 Harold Miner (6-5, 210lbs, USC)
'Baby Jordan'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파ㅠㅠ
3시즌(93-95), 181게임(주전 47게임), 9득점(야투 46.1%, 3점 31.1%, FT 78.5%), 2.3리바운드 1.3어시스트, 0.4스틸 – 2-time NBA All Star Dunk Champion(93, 95)
제가 처음 NBA를 접했던 건 90년이었습니다. 당시 SBS와 AFKN을 통해 근근히 접하던 NBA의 물고를 트워준 건 다름 아닌 94년 아버지가 엄청나게 많이 가져온 NBA 비디오 테이프였죠. 거기에 당시 잘 나가는 신인들도 소개하는 비디오가 있었는데, 그 중 단연 화려한 건 다름 아닌 ‘Baby Jordan’ 해롤드 마이너였습니다.
USC출신으로 NCAA에서 탑 프로스펙트였던 크리스챤 레이트너, 샤킬 오닐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던 마이너는 92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2번으로 히트에 지명됩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유망주가 프로 생활을 4년도 못한 채 끝낼지는 아무도 몰랐죠. 대학 시절까지만 보면 공격에서 슛을 만들어 내는 재능이 있는 좋은 공격수였고, 화려한 덩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Baby Jordan이라고 언론이 요란을 떨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에게 히트에서 제공되는 기회는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미 팀에는 팀의 코너스톤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스티브 스미스가 있었고, 백코트 두 자리가 모두 소화되는 스티비와 또 다른 경쟁자 브라이언 쇼에 비해 2번에 국한된 역할만 할 수 있었던 마이너가 뛸 수 있는 시간은 적었습니다. 또한 언론이 붙여준 Baby Jordan이라는 별명은 마이너 본인에게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고요. 결국 AP All American이자 당대 PAC-10 최고 선수였던 마이너는 두 번의 올스타 위크엔드 덩크 챔프라는 타이틀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8위
#21 / #31 Ricky Davis (6-6, 195lbs, Iowa)
웨이드 없으면 내가 에이스(1시즌만)
2시즌(01/08), 89경기(주전 47경기), 13.1득점(야투 43.2%, 3점 40.7%, FT 79%), 4리바운드, 3.2어시스트, 1스틸
지난 시즌보다도 더욱 부상 악령이 심했던 07-08시즌, 15승 라인업의 에이스 리키 데이비스는 원래 사우스 비치에 07-08시즌이 아닌 00-01시즌에 처음 오게 됩니다. 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해당 시즌에 7경기만 뛰고 캡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그리고 7년 뒤에 오닐-플레시 시절의 마지막 퍼즐로 히트 저지를 다시 입게 되죠(미네소타와의 트레이드, 당시 데이비스는 만기계약). 당시 보스는 7년 전 그를 트레이드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말로 그를 환영했습니다.
원래 플랜대로라면, 그는 감자(라 쓰고 앤트완 워커로 읽는다)를 대신해 3번 자리에서 웨이드와 오닐에 이은 제 3 공격옵션으로 역할을 했을 것이고 이 리스트에 없었겠죠. 하지만, 주전 중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부상을 당하고, 거기에 오닐이 보스와 언쟁과 이어진 트레이드(받아온 선수는 숀 매리언)를 겪으며 팀이 완전분해되고, 로스터 중 유일하게 건강했던 데이비스는 2번 스팟에서 웨이드가 건강할 때는 후보로 웨이드가 1번으로 출전하거나 부상으로 빠지면 2번 주전으로 해당 시즌 히트 선수 중 유일하게 전 경기 출전이라는 성과를 일궈냅니다. 데이비스의 강점은 좋은 운동능력, 준수한 슈팅으로 이뤄진 공격력입니다. 하지만, 열심히는 한다고 하지만 잘 안되는 수비와 거의 블랙홀 수준의 볼 점유와 지금 제럴드 그린은 귀여운 수준의 셀렉션은 해당 시즌 전 경기를 출전했다고는 하나 데이비스를 히트에서 더 볼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다음 시즌 히트는 데이비스와 재계약을 포기했고, 그래도 아직 쓸만했던 데이비스는 클립스로 떠나면서 히트와의 인연을 마감합니다.
7위
#34 Ray Allen (6-5, 205lbs, Connecticut)
링 하나 추가요~
2시즌(13-14), 152게임(주전 9게임), 10.3득점(야투 44.6%, 3점 39.8%, FT 89.4%), 2.8리바운드, 1.8어시스트, 0.8스틸 – 1-time NBA Champion(13) / 1st in FTM(89.4%)
셀틱스 빅 3의 주역이자 레전드인 레이 ‘슈가’ 앨런은 셀틱스와의 재계약에서 적잖이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남은 커리어에 반지를 더하고자 당대 최고의 팀인 히트에 염가(2Y 6M!!)로 전격 합류합니다(2012). 백투백 챔피언십을 노리던 히트에 앨런은 최고의 조각임이 분명했습니다. 장갑옹이 합류할 때처럼 앨런 역시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지나 있었으나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인 3점슛을 가지고 있었기에 스몰라인업을 통한 스페이싱을 중요시한 빅3 히트와 2시즌 내내 좋은 호흡을 보였습니다. 3점 때문에 영입했던 ‘십할남’ 밀러가 부상으로 신음하는 사이 강철과 같은 건강으로 히트의 막힌 3점혈을 미친듯이 뚫어주던 앨런의 시즌 활약은 대단했습니다(3점 성공률 41.9%). 하지만 앨런의 히트 커리어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근 10년 내 최고의 파이널 승부였던 13년도 파이널 6차전에서의 동점 3점슛을 뽑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극적인 파이널 3점 https://youtu.be/1s5XbKdE5GU
정말 기적 같은 3점으로 히트의 백투백을 견인한 앨런은 다음시즌 전년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팀내 최고 슈터로서 제몫을 다합니다만, 다시 만난 스퍼스와의 일전에서 팀이 맥없이 무너지는 바람에 링을 더 추가하지는 못합니다. 히트와의 계약이 끝난 뒤 소문만 무성한 채 계약한 팀 없이 조용히 은퇴하는 듯한 앨런이지만, 모르죠. 엉클 드류 최근 광고 보니 앨런의 슛은 죽지 않았더군요.
6위
#21 Kevin Edwards (6-3, 190lbs, DePaul)
나름 신생팀 주전
5시즌(89-93), 357경기(주전 163경기), 12.2득점(야투 42.8%, 3점 27.5%, FT 79.8%), 3리바운드, 3.2어시스트, 1.4스틸 – All NBA Rookie Team(89, 2nd) / 9th PGM, 8th Assists(1131), 5th Steals(560)
히트의 최초 드래프트에서 2번째로 드래프트(88년도 드래프트 1라운드 20순위) 된 드폴 대학 출신의 케빈 에드워즈는 초창기 히트에서 2번과 1번을 번갈아 가며 수비에서 많은 역할을 한 선수입니다. 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20순위로 지명된 에드워즈는 그를 코칭했던 감독들이 모두 칭찬할 정도로 워크애틱이 좋았습니다. 2번으로 뛰기엔 약간 작은 신장이지만, 윙스팬이 좋았고, 거기에 운동능력도 나쁘지 않아 주로 수비에서 많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좋은 윙스팬을 통해 볼핸들러를 압박하는 수비는 많은 스틸을 유발해 속공을 이끄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레이업 이외에는 딱히 공격루트라고 할 만한 무기가 없었고, 3점 레인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주전 2번으로 뛰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1번으로도 뛰기 어려운 것이 코트 비전이 너무 비좁고 가드라고 하기엔 패스에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트가 제법 성과를 내는 빅맨보다 드래프트에서 가드포지션에 중심을 둔 것 같고요. 향후 소개할 스티브 스미스가 오기 전까지는 주전으로 스티비가 온 후에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면서 2번 포지션에서 역할을 했습니다만, 결국 93년을 끝으로 히트와의 인연은 끝이 났습니다. 이 형님 자료 구하기 정말 힘들었는데 그나마 구한 자료들을 보고 내린 결론은 ‘모든 면에서 다운그레이드 된 키 작은 마이클 쿠퍼’가 에드워즈를 표현하기에 딱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교인 DePaul에서 농구팀 Staff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메이저 랭킹(5위 ~ 1위)
5위
# 22 / #21 Voshon Lenard (6-4, 205lbs, Minnesota)
약은 약사에게, 슛은 나에게
5시즌(96-00), 249경기(주전 143경기), 11.3득점(야투 42.7%, 3점 39.9%, FT 79.5%), 2.9리바운드, 2.1어시스트, 0.8스틸 / 5th 3PM(473)
히트 역사상 슈터로 탑 5안에 무조건 들어갈 보숀 레너드는 원래 밀워키에서 2라운드에 드래프트됩니다.(94) 하지만, 벅스에서는 리그 데뷔도 못한 채 95년 시즌 전 웨이브되고, 웨이브된 뒤 CBA에서 뛰던 레너드는 동년 12월에 히트와 계약해 그 때부터 5년간 히트 유니폼을 입고 뜁니다. 계약한 첫 해는 거의 존재감이 미미했지만 다음 시즌인 96-97시즌부터는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입니다. 시즌 초에는 주전 멀리의 백업으로 뛰었지만 시즌 중반 멀리가 부상당한 후로는 주전으로 올라서며 일약 히트 팀에서 티미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슈터로 발돋움합니다. 백업으로 뛸 때는 8점을 겨우 넘기던 득점이 주전으로 뛰면서 15점에 육박하고, 3점을 42.5%로 넣어주면서 주목받습니다. 특히 자신을 버렸던 벅스를 상대로 커리어 하이인 38점을 폭격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면서 벅스에게 자기를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했죠. 그리고 97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주전 슈팅가드로 나서면서 컷스로드 시리즈에서의 전쟁을 이겨내고 69승 불스와의 싸움에서도 녹록치 않은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킵니다.
이런 성과를 가지고 97-98시즌엔 처음부터 주전으로 뜁니다. 81경기 모두 주전으로 나서면서 13점과 40%의 3점슛 성공률로 히트의 또 한번의 대서양지구 우승을 이끕니다. 해당 시즌에는 팀의 기둥인 모닝과 팀의 3공격옵션으로는 과하디 과한 매쉬번이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사실상 티미와 함께 팀의 주축으로 히트 성적을 주도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축시즌 때 심한 부상으로 한 시즌을 거의 날리고, 이 부상은 99-00시즌까지 레너드를 괴롭힙니다. 부상 후유증으로 레너드는 멀리의 백업으로 주로 나오게 됩니다만 여전히 10점 이상의 득점과 40%의 3점을 쏘는 준수한 슈터였죠. 하지만 컷스로드 시리즈에서 3년 연속 패배한 뒤 팀 체질 개선과 로스터 정리 방침에 따라 덴버로 트레이드 돼 히트와의 인연이 끝납니다.
레너드의 강점은 3점슛입니다. 지금 히트 로스터에 레너드 갔다 놓으면 3점에 관련해서는 걱정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레너드는 믿음직한 3점 슈터였습니다. 하지만 제이슨 카포노와는 급이 다른게 카포노는 떠다 먹여줘야 3점을 넣는 반면 레너드는 자기가 만들어서 슈팅을 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죠(덴버시절 레너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다운타운 슈팅의 정확함 하나만으로 10년이 넘는 리그 프로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디 하우스와는 급이 달라요). 오히려 비슷한 유형의 멀리보다 3점 성공률, TS%, 슈팅에 관련한 모든 수치가 위에 있습니다. 수비 역시 모닝-티미 시대에 보스를 견뎌낼 만큼 평균 정도의 수비력을 보여줬습니다(그래도 수비는 멀리가 위에요). 다만 신장이 작기 때문에 슈터 이상으로는 활용도가 적었고, 좀 클라치면 부상이 생겨 필요할 때 못봤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였습니다.
4위
#9 Dan Majerle (6-6, 215lbs, Central Michigan University)
형.. 나한테 악감정 있어? 아! 나 머저리라고 읽지 마라잉!
5시즌(97-01), 278경기(주전 184경기), 7.3점(야투 39.7%, 3점 35%, FT 76.2%), 4.1리바운드, 2.6어시스트, 1.1스틸 / 6th 3PM(414)
왕년의 번개 ‘Thunder Dan’ 댄 멀리는 히트에서 5시즌 동안 마당쇠 같은 역할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스윙맨 포지션을 오가면서 전술한 레너드와 SF 랭킹에서 소개될 매쉬번이 부상으로 서로 로스터를 왔다 갔다 할 때 멀리는 묵묵하게 2번 주전 혹은 백업, 3번 백업과 같은 역할을 전천후로 소화합니다. 히트에 합류한 첫 시즌인 96-97시즌 심한 부상을 당해 많은 경기를 치루지는 못했지만, 히트에서의 커리어가 알토란 같은 것처럼 쏠쏠한 활약을 해줍니다. 일례로 해당 시즌에서 당대 최강자이자 69승 불스의 홈 44연승을 끊은 것이 다름아닌 히트인데 이 경기에서 멀리는 종료 1초전 3점을 성공시켜 불스의 기록 작성을 중단시키고, 본인이 93파이널 선즈에서 당했던 앙갚음을 조금 합니다.
01년도까지 멀리는 모닝-티미 시대의 조력자로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히트 시절 멀리의 장점은 스윙맨 포지션에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달라붙는 수비력이었습니다.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 소개했던 앤서니 카터만큼 열심히 수비하는 모습은 댄 멀리의 히트 시절을 한마디로 대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루즈볼이 생기면 P. J. Brown과 함께 가장 먼저 몸을 던지는 것도 베테랑 멀리였습니다. 또한 사이즈 대비 최고 수준의 리바운드 능력은 히트에서 도 여전히 살아있었고요. 그리고 선즈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30퍼센트 중반 대의 3점을 꽂아주면서 공격에서도 3점이 겸손했던 당시 히트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죠. 하지만 전성기가 이미 지난 나머지 선즈에서 보여줬던 폭발적인 공격력은 히트 시절 거의 없었고, 멀리 자신도 공격에서만큼은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뿐이지 보스가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99년도 단축시즌부터 약간 더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모닝-티미의 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멀리의 선수생활도 저물어갔습니다. 충격의 01년도 플레이오프 패배 뒤 멀리는 친정팀 선즈와 계약한 뒤 1년 뒤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합니다. 은퇴 후 방송과 코칭을 병행하다 지금은 대학에서 코칭을 한다고 합니다.
3위
#3, #8 Steve Smith (6-7, 200lbs, Michigan State)
원래 3번은 나!
5시즌(92-95/05), 202게임(주전 181게임), 14.4득점(야투 45.1%, 3점 34.6%, FT 80.2%), 3.8리바운드, 4.8어시스트, 1스틸 / NBA All Rookie Team (92, 1st) / 8th FT%(80.2%)
이미 대학시절 대학 선배인 매직 존슨과 비견되던 매직 존슨 키드, 스티브 스미스는 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마이애미 히트에 지명됩니다. 이미 대학시절 미시건 스테이트를 매직 시대 이후 처음으로 NCAA 토너먼트 16강까지 올려놓은 스티브 스미스이기에 팬들과 팀의 기대가 매우 컸죠. 12년 뒤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의 선수가 히트의 코너스톤이 된 것처럼 스티브 스미스도 드래프트 된 그 해부터 기존의 코너스톤이던 로니 세이컬리, 글렌 라이스, 그랜트 롱과 함께 히트의 주축 선수로 활약합니다.
포인트가드 부문 다룰 때 언급이 나왔듯 스티브 스미스는 히트에서 포인트가드로 불려도 좋을 만큼 포인트가드의 역할을 많이 요구 받았습니다. 포가로 뛰기에 적합한 코트 비전과 볼핸들링, 경기운영이 가능한 6-7짜리 가드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스티비를 그래도 슈팅가드에 올린 이유는
1. 포인트가드를 롤을 요구받았지만, 정작 슈팅가드로 붙여준 파트너들이 브라이언 쇼를 제외하면 포인트가드만 맡을 수 밖에 없었던 점
2. 경기 초반엔 게임을 운영한다 해도 득점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글렌 라이스와 스티브 스미스가 득점을 올려주는 스윙맨 역할을 계속 맡았다는 점
때문에 스티비를 슈팅가드 포지션으로 구분했습니다.
스티브 스미스는 자신의 큰 키 때문에 당시 왠만한 백코트 매치업과는 항상 신장에서의 우위를 점했습니다. 팀에서 부여한 역할과 글렌 라이스라는 팀내 최고의 외곽자원이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패싱과 경기 운영에 신경쓰다가 득점이 필요한 때가 되면 득점 사냥에 나서는 형태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평균 이상의 퍼스트스탭과 워낙 출중한 볼핸들링으로 인해 돌파에 큰 강점이 있었고, 미드레인지든 3점이든 믿음을 줄 수 있는 점프 슈터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타적인 마인드도 넘치는 선수라(득점을 올릴 선수도 많았고요) 동료의 찬스를 봐주는데도 능했습니다. 또한 포스트업에도 일가견이 있어 이로 파생되는 공격에도 능했고요. 하지만 수비는 걸출한 공격재능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워크애틱과 경기 중 집중력이 좋아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일은 크지 않았지만, 보기보다 발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키에 비해 마른 몸을 가졌기 때문에 전성기적 멀리나 조대인, 드렉슬러 같은 근육깡패들과의 매치업에서 재미를 보지는 못했죠. 충격의 트레이드 전까지 3시즌 동안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던 스티브 스미스였고, 팀 역시 스티브 스미스의 합류 이후 최초의 플레이오프와 2번째 플레이오프를 모두 경험하는 경사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스티브 스미스는 오너십의 변경이 있었을 예정이던 94-95시즌 2경기만 뛰고 원정을 가는 도중에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4일전 히트 최초 드래프티였던 로니 세이컬리를 보내버린 히트는 또 다른 코너스톤인 스티브 스미스를 그랜트 롱과 함께 케빈 윌리스를 받기 위해 호크스로 트레이드 해버립니다(이게 정말 웃긴게 전 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호크스와 난투극을 벌였었는데 그 주역인 긴 형님이 호크스로 갔다는 거죠.). 전문가들이 뻘짓이라고 질타한 이 트레이드를 통해 호크스로 넘어간 스티브 스미스는 본격적으로 재능을 만개해 전성기를 구가했고, 히트는 애리슨 패밀리로 오너십이 바뀐 이후 더 이상의 뻘짓을 막기 위해 한 남자를 뉴욕에서 데려옵니다.
이후 스티비는 호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포틀랜드, 산왕(여기서 반지 득템)을 거치고 은퇴 시즌에 다시 히트로 와서 샥-플레시 로스터의 일원으로 뛰다가 컨파에서 피스톤즈에게 진 뒤 미련없이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TNT의 일원으로 방송에서 해설로 좋은 분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위
#6 Eddie Jones (6-6, 190lbs, Temple)
누구보다 히트 유니폼이 잘 어울린 사나이
6시즌(01-05/07), 387경기(주전 374경기), 16득점(야투 42.8%, 3점 38.1%, FT 83%), 4.5리바운드, 3어시스트 1.3스틸 / 10th GMs, 8th Minutes, 9th Points, 9th FGM, 2nd 3PM, 9th FTM, 4th FT%, 10th DRs, 7th Assist, 7th Steals, 8th Blocks,
2000년 여름, 3년 연속 닉스에게 플레이오프 패배를 당한 보스는 트윈테러를 넘고 챔피언십을 위해 다시 한번 로스터를 손봅니다. 이러던 중 모닝-티미의 주요 조각이던 브라운과 매쉬번을 주요 매물 삼아 호네츠에서 메이슨과 에디 존스를 영입하게 됩니다. 에디 존스는 센터를 사랑하는 만큼 공수 겸장 슈가를 사랑한 보스에게 그간 코칭했던 슈팅가드 중 최고의 자원이었습니다.
트레이드 후 신장병으로 쓰러진 모닝의 아웃으로 보스의 큰 그림이 날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존스는 같이 넘어온 메이슨과 함께 솔리드한 시즌을 보냅니다. 물론 트레이드 파트너인 호네츠를 만나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광탈을 경험해 시즌이 끝나지만, 리빌딩에 들어가 샥-플레시 시대가 올 때까지 팀의 중심을 잡아준 고맙고 사랑스런 가드였습니다. 독수리 오형제 시대를 거치고, 샥 영입할 때도 웨이드와 함께 팀의 중심으로 삼았던 존스는 아쉽게도 04-05년도 컨퍼런스 파이널 이후 팀의 재조정을 원한 보스에 의해 멤피스로 트레이드 됩니다. 공교롭게도 이듬해 히트가 파이널에서 프랜차이즈 첫 우승을 했고, 존스는 팬들에게 가장 고맙고 안타까운 선수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듬해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금 히트로 오지만 그해 1라운드에서 불스에게 광탈하면서 히트에서의 생활을 마감합니다.
히트 시절 존스는 퍼리미터를 압살하고 도움수비도 능하고 거기에 리바운드와 블락에도 좋은 모습을 보였고, 수비보단 저평가받던 공격에서도 제몫을 다해줬습니다. 먼저 수비를 살펴보자면, 존스 혼자서 밀레니엄 들어 망가져버린 히트 백코트와 스윙맨 포지션 수비에서 유일하게 제몫을 다하고 다른 선수가 못하는 부분까지 커버쳐주는 대단한 수비력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디펜시프 팀에 들었을 때보다는 조금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상과 노쇄화로 팀이 망가지는 상황에서 팀의 제 1 공격옵션이자 수비에서 에이스 역할을 적절히 수행했다는 건 존스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퍼리미터 디펜스에서 존스는 완벽합니다. 핸들러 압박도 좋고 패싱 레인도 잙 읽으며, 그러면서도 스틸에 올인하지 않고, 모든 드리블과 샷에 컨테스트 해주는 그의 수비는 엄청난 수준이었죠. 거기에 항상 저평가 받았지만, 공격에서도 부드럽고 유려한 돌파에 이은 아름다운 핑거롤과 스쿱샷은 예술이었죠. 또한 히트 역사상 가장 믿음직스러운 3점 슈터 중 하나였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든 다음에는 발도 느려지고 공격에서도 3점이 주무기가 되기는 하지만, 팀의 중심이 웨이드로 넘어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조력자로서 주연의 자리를 내주는 아름다운 베테랑의 모습이었다고 보고요. 어쨌든 히트 선수들 중에서 가장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존스가 이 리스트의 2위입니다.
1위
#3(Will be retired) Dwayne Wade (6-4, 220lbs, Marquette)
Living Legend
13시즌(04~현재), 802경기(주전 793경기), 23.9득점(야투 48.9%, 3점 28.8%, FT 76.6%) 4.9리바운드 5.9어시스트. 1.7스틸. 0.9블락
3-time NBA Champion(06, 12, 13), 11-time All Star, 1-time NBA Final MVP, 1-Time Scoring Leader(09) 8-time All NBA team(1st - 09.10 2nd - 05, 06, 11 3rd - 07, 12, 13), 3-time NBA All Defensive team(2nd - 05, 09, 10), All Rookie team(1st-04) / 리바운드(4위), 블락(2위), 3점(6위), FT%, FG% 외 죄다 프랜차이즈 1위
마켓이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 또한 히트가 배출한 슈퍼스타이자 리빙 레전드인 드웨인 웨이드는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마켓에서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고 03년 NCAA에서 팀을 거의 자기 힘만으로 파이널 포에 올리는 저력을 보여주며 일약 주목받는 신예가 되죠(당해년도 토너먼트에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 유망주들로 가득했던 03년도 드래프트에서 5번픽을 가진 히트는 피스톤즈가 밀리시치를 뽑아주는 바람에 원하던 웨이드를 지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트위너라서 리그에 정착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모두 똥으로 만들고 드래프트 후부터 지금까지 히트 프랜차이즈의 성공을 이끈 주역으로 코너스톤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수리 오형제 시절 안맞는 포인트가드를 약간 봤을 때를 제외하고는 웨이드는 당대 최고의 슈팅가드가 누구냐를 논할 때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리그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를 논할 때는 코비, 르브론, 던컨 등과 함께 항상 논의되는 이름이었습니다. 알론조 모닝 이후 MVP 후보이자 챔피언십 컨텐더로서 코너스톤의 역할을 톡톡히 한 웨이드는 계약에서도 언제나 로열티를 보여준, 어찌보면 히트 팬이라면 안티가 될 수가 없는 선수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히트 팬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웨이드의 플레이 스타일은 빅3시절 두번째 큰 부상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공격과 수비 모두 ‘플레시’라는 이름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리그 최고급의 운동능력과 균형감각을 기반으로 3점을 제외한 모든 공격에서 엄청난 성과를 보였습니다. 노비츠키와 함께 리그 내에 남은 유이한 미드레인지 아티스트로, 하지만 노비츠키의 아름다운 슈팅 게임과는 달리 유로스텝, 플로터, 덩크가 포함된 돌파, 20ft 안 어느 곳에서든 던질 수 있는 미드레인지 슈팅, 포스트업, 컷 등 여러 가지 무기를 바탕으로 그 경기에서 마음을 먹는다면(피를 보거나 화를 돋구는 등) 40점은 우습게 넘기는 전천 후 공격수였죠. 수비에서도 정말 어이없게 퍼리미터에서 엄청난 압박을 보여주며 스틸을 우습게 하는 엘리트 퍼리미터 디펜더이면서 말도 안되는 운동능력과 운동량을 바탕으로 리바운드와 블락에서도 엘리트 급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선수가 웨이드였습니다. 이런 웨이드의 능력 때문에 블락 외에는 리그에서 뛸 툴이 없는 조엘 앤서니가 히트의 빅맨으로 장수 할 수 있었죠. 하지만 빅3시대 마지막 해에 당한 부상은 웨이드가 더 이상 플래쉬급의 운동능력을 앗아가서 현재는 저런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원채 기술이 좋고 노련해졌기 때문에 공격에서는 맘만 먹으면 20점대 득점도 가능하고 여전히 클러치에서는 기어를 올려서 운동능력이 죽지 않음을 보여주더군요. 하지만 수비에서의 웨이드는 병장농구 모드가 가끔 나와 이전의 웨이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죠. 하지만 운동능력이 있었던 예전이나 없었던 지금도 자기가 득점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르브론, 샼, 보쉬 등이 온파이어할 경우에는 리바운드, 어시스트, 수비에 집중하며 블루워커가 부럽지 않을 든든한 살림꾼의 모습을 보여 어떤 경우라도 팀에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웨이드의 업적은 랭킹이 아니라 웨이드 한 사람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할 정도로 많습니다. 히트 프랜차이즈가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이기 때문이죠.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히트 팬들에게 더없는 행복과 승리를 안겨준 웨이드이기에 말년에도 히트와 같이 하면서 또 한번의 우승을 경험하면서 은퇴하기를 기원합니다.
◎ 슈팅가드 탑 10 성적 정리 표
오늘로 휴가가 끝나기 때문에.. 연말이 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안날 것 같네요.. 어쨋든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자료 찾고 글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빠진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 미진한 부분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_+ 전 에디하우스의 파이팅 넘치는 수비가 기억나던데요ㅎㅎ 잘 뚫리긴해도 몸사리지 않던 이미지로 기억남네요ㅎㅎ
아.. 저 문구가 원래는 대학 후배인 제임스 하든과 같은 무개념 수비가 아닌 그나마 봐줄만한 수비와 슈팅력으로 살아남았다는 건데 편집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듯합니다. 빨리 고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다시 읽기는 읽어봤는데 많이 읽어본게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도 나오네요. 수정하며 논란이 될 수 있는 하든 부분도 빼버렸습니다.
이번 글도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히트 프랜차이즈에서는 멀리보단 레너드를 더 높게 보고 싶습니다. 멀리가 마당쇠 역할을 잘해주긴 했지만 이름값에 걸맞는 활약까진 못보여줬고 결국 그 자리에 레너드가 깜짝 등장하며 훌륭한 퍼즐이 되어줬죠. 케빈 에드워즈는 그 키에 하이라잇 덩크를 종종 찍어줄만큼 운동능력이 참 좋았고 어느 팀 가도 제 몫 해줄만한 살림꾼인데 부상이 너무 아쉬웠죠. 히트에선 그래도 건강하게 뛴 편인데 네츠 시절엔 눈물이 ㅠㅠ 다시금 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약간 늦어지더라도 다음 시리즈 천천히 잘 기대하고있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고민한 부분을 잘 맞추시는지 모르겠어요^^ 멀리와 레너드 사이에서 순위를 정말 10번은 왔다갔다 했었는데, 결국 마지막에 그래도 히트에서 꾸준하게 활약한 멀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레너드는 모닝-티미 시절 슈가로서 최고의 퍼즐이었지만, 부상이 너무 아쉬웠죠. 케빈 에드워즈는 히트 시절 자료 찾기가 꽤 어렵더라구요.. 좋은 의견과 응원 감사드립니다^^
잘봤습니다
90년대 티미시절은 저도 재미있게 보던 시절이라(뉴욕과의 플옵 혈투는 정말 최고의 대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너드가 눈에 들어오네요
제 기억으론 키는 작아도 몸빵수비는 상당히 괜찮아서 요새 같이 미친듯한 운동능력의 가드들이 아니면 매치하기 좋았던것 같은데 기억의 오류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ㅎ
퉁퉁치고 등지다가 던지는 미드레인지는 카셀과도 상당히 비슷한 공격패턴이기도 했고요
스티비 설명도 감사합니다
네 맞습니다.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에 전문 슈터임에도 수비에서도 악착같이 임했죠. 팻 라일리가 발굴한 무명 선수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근성, 투지... 뉴욕 시절 스탁스와 메이슨, 마이애미에서 레너드, 브루스 보웬, 앤써니 카터, 마이크 제임스, 유도니스 하슬렘, 조엘 앤써니 등등... 이른바 라일리 키드들은 한결같이 그랬죠.
먼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요, 먼저 닉스와의 컷스로드 시리즈는 히트 팬이라면 지금도 이를 가는 시리즈입니다. 당시 스릴과 재미를 느꼈지만, 생각만하면 화나요..ㅋㅋㅋ
레너드는 부상 전 2시즌 동안 히트에서 가장 꾸준한 멤버였습니다. 특히 주전으로 풀로 뛴 97-98시즌의 레너드는 티미와 함께 타팀이 무서워할 만한 백코트를 이뤘죠. 지금 로스터에 레너드만한 슈터 하나만 있으면, 정말 히트 강력할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천천히 올려주세요
관심과 응원 감사드립니다^^
에디존스의 핑거롤이 그립네요 ㅎㅎ
저도 에디의 핑거롤이 그립네요.. 물론 플로터가 대세이기는 하지만, 아이스맨 말처럼 요새 제대로된 핑거롤 하는 선수가 거의 없죠.. 시대가 변해서 그런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