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시작되어 매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상. 수상 순간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상. 상금 액수만 우리 돈 13억 원에 달하는 상.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 중 최고 수준에 도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 가을이면 각국의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상. 바로 노벨상(Nobel Prize)이다. 수상자는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의 3개 과학상과 평화상, 문학상, 경제학상을 합쳐 총 6개 부문에서 선정한다.
노벨상은 전 세계 모든 학자와 활동가들이 꿈꾸는 상이지만, 실제로 받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이기도 하다. 2011년 물리학상을 받은 솔 펄머터(52, Saul Perlmutter) 교수도 “자신이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예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을 정도다. 2013년 문학상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지난 11월 17일 별세한 여류 문학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도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갑자기 몸이 나빠져 입원하게 되었다”며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세계적인 인물도 감히 탐내지 못하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떠한 성과를 이뤄야 할까. 지난 8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최근 30년 동안의 노벨 과학상 수상 패턴을 분석해 화제를 모았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분야의 노벨상은 대부분 패러다임(paradigm)을 변화시킨 연구가 차지했다. 1962년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제안한 패러다임은 기존의 이론이나 사상을 뒤엎을 만큼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사용한다. 노벨 과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서 기존 학계에 변혁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다. 2013년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도 그만큼 혁신적인 연구 업적을 이뤄냈을까.
물리학상을 받은 솔 펄머터 교수, 애덤 리스(42, Adam Riess) 교수, 브라이언 슈미트(44, Brian Schmidt) 교수는 ‘초신성(supernova)’을 연구해 우주의 팽창이 점점 빨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으로부터 137억 년 전 빅뱅(Big Bang)이 발생하면서 우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팽창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920년대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이 이 사실을 처음 알아낸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도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 속도가 갈수록 느려진다는 이론을 지지했다. 그런데 1998년 펄머터 교수 연구진이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우주의 별이 최후를 맞아 폭발하며 밝게 빛나는 초신성(supernova) 중에는 크기가 크든 작든, 질량이 높든 낮든 폭발할 때의 밝기가 거의 같은 집단이 존재한다. 빛의 세기가 일정하므로 거리를 판단하는 기준점으로 삼기에 적당하다. 우주의 팽창이 느려지고 있다면 지구와 초신성의 거리도 많이 늘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관측 결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어두워졌다. 빛의 세기는 일정하니 결국에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팽창을 가속하는 원인으로는 암흑 물질이 거론되고 있을 뿐 확실히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연구 방향을 급선회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화학상은 마틴 카플러스(Martin Karplus) 교수, 마이클 레빗(Michael Levitt) 교수, 에리 워셜(Arieh Warshel) 교수가 수상했다. 이들은 분자의 화학반응을 알아내는 컴퓨터 프로그램 ‘참(CHARMM)’을 개발한 주역들이다. 지금까지는 고분자의 움직임과 반응을 정확하게 알아내려면 직접 실험을 하거나 전자현미경, 회절촬영기 등으로 관찰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참’을 사용해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
분자의 반응을 예측하려면 각 원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실험이나 관찰만으로는 알아내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의 존 포플 교수와 월터 콘 교수는 원자의 움직임을 양자역학으로 풀어내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가우시안’을 만들어 199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카플러스 교수 연구진이 만든 ‘참’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분자의 반응도 예측할 수 있다. ‘가우시안’이 100개 이하의 원자를 다뤘다면 ‘참’은 10만 개 이상의 원자 반응도 척척 계산해낸다. 전 세계 화학자와 생물학자 중에서 비커나 전자현미경을 만지지 않고도 컴퓨터만을 이용해 연구를 완성하는 비율도 많이 늘어났다. 실험실의 풍경을 바꿔놓은 것이다.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로트먼 교수, 랜디 셰크먼 교수, 토마스 쥐트호프 교수는 세포 간 물질 전달 원리를 밝혀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우리의 몸은 호흡이나 소화의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이를 각 세포에 전달해서 생명을 유지한다. 때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전달의 핵심은 소포(vesicle)가 쥐고 있다. 소포는 여러 종류의 생분자를 포함하고 있는 일종의 주머니로, 다른 요소들과 결합을 함으로써 특정 물질을 온몸 곳곳으로 보낸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도 정확히 어떤 원리로 소포 전달이 이루어지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로트먼 교수 연구진은 소포의 막을 구성하는 단백질이 다른 요소와 결합할 때 자물쇠와 열쇠처럼 조합이 맞아야 반응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전자의 내부를 검사함으로써 특정 조합을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규명한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생화학과 유전학이라는 분리된 학문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은 새로운 연구를 통해 기존의 이론과 방향을 완전히 돌려놓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만큼 혁신적인 업적을 이뤄야 한다는 교훈이다. 당장 성과에만 매달리기보다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우리나라도 노벨 과학상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