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또다른 나와 함께 했던 100일간의 한국여행]
2002.09.28-2003.01.07
Project : four seasons
Season I : Autumn in Korea
Part 1-전주(2002.09.28-09.30)
-(8) 소리문화의 전당-
제법 커보이는 쇼핑센터가 한군데 보이길래 입구 행사장에 서있는 도우미에게 사진기 코너도 있는지 물었다.
"의류만 주로 취급하는 곳이라 카메라를 파는 곳은 없는데요."
"그럼 혹시 이 근처에 전자제품 대리점은 없나요?"
옆에 있는 동료에게 물어보는 듯 하더니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열심히 위치를 설명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알려준 곳으로 가보니 서비스센터를 겸한 대리점이 있었다. 입구에 자전거를 비스듬히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밖에서는 작아보였지만 안으로 깊숙한 곳까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요즘은 어떤 모델이 잘 나가나요?"
디지털 카메라가 모여있는 진열장 앞에 서서 주인아저씨께 물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카메라보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현상할 필요가 없어서 훨씬 경제적일 것 같았다. 예산에 맞는 것으로 몇 개를 골라서 비교해보다가 추가로 십만원 정도 하는 메모리카드도 장만해야 여유있게 쓸 수 있다고 하시길래 가격이 낮은 것으로 구입했다.
자전거 핸들에 카메라가 담겨진 쇼핑백을 매달았다.
저녁에는 어제 서점에서 샀던 할인티켓으로 연극을 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단 숙소로 가서 자전거를 반납해야 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데 건너편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자전거도 그냥 빌려주시고 신세도 많이 졌는데...'
아이스크림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자 분홍색 모자를 쓴 아가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아이스크림 담을 용기를 고르고, 진열된 아이스크림 중에서 몇 가지를 말하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퍼서 담아준다. 이제 자전거에는 한쪽엔 카메라 봉투가, 다른 한쪽 핸들에는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투가 매달려서 페달을 밟을 때마다 앞뒤로 흔들거린다.
한옥생활체험관에 도착해서 입구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물쇠를 채웠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보니 대청마루에서 두 분이 그림을 그리시는 듯 작업에 열중이셨다. 어제 산조야에서 뵌 분이어서 인사를 하며 반가워했다.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나눠 드리자 고맙다며 건네 받으신다. 두 분은 산조 예술제때 쓸 작품을 작업중이셨는데 마침 캔버스 천을 팽팽하게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연극이 시작할 때까지는 약간 시간이 있어서 잠깐동안 도와드리기로 했다.
대청마루를 가로질러 길게 늘어져 있는 하얀 캔버스 천 위에 색색의 물감이 뿌려졌다. 적당한 양의 물감이 뿌려지자 이제 밀대로 물감을 밀어 내릴 차례였다. 사무실에 계신 다른 분들도 와서 캔버스 천을 잡아당겨 팽팽하게 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밀대가 캔버스천의 길이방향으로 물감을 쓸고 내려가자 원색의 물감들이 서로 혼합되면서, 마치 물위에 뜬 기름띠처럼 부드러운 얼룩무늬를 만들어내었다. 또 한번 잡아 당겨야할 캔버스천이 있었지만 연극공연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사정을 말씀드리고 먼저 나왔다.
연극관람권을 보니 공연장은 소리문화의 전당이란 곳이었다. 셔틀버스가 운행한다고 써있었지만 이미 어두워진데다 시간도 넉넉지 않아서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다왔습니다.'
택시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소리문화의 전당은 지은지 얼마안되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표를 확인받고 공연장안으로 들어갔다. 지정석이 아닌데다 시간에 임박해서 입장을 한 바람에 맨 앞줄과 뒤쪽 몇 군데밖에 자리가 남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객석에 경사가 제법 있어서 시야는 나쁘지 않았다. 자리를 아직 못 정한 사람들과 단체관람을 온 듯 무리지어 앉아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덕분에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객석의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르자 일순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