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집 살구나무
갑자기 마음이 밝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앞을 스쳐 갔기 때문이다. 아련한 추억이다. 회상은 미소가 되나 보다, 얼굴이 펴진다. 봄이 다 지나가고 소나기가 퍼붓는 시기에 웬 나무 타령인가.
신작로를 건너, 동네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연분홍 화사한 꽃을 달고 우뚝 서 있다. 거무죽죽한 수피에, 이쪽저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 그 한 가지가 우리 마당으로 뻗어 있다. 마당이 환하다. 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저렇게 과묵한 나무에서, 어떻게 저처럼 아름다운 꽃이 다 필까,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같았다. 살구나무는 어디를 봐도 무뚝뚝했다. 평소에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그냥 우람한 덩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살구꽃은 손짓을 하지 않았지만, 그 앞으로 길이 나고,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고개 들어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살구나무는 우리 동네의 대표다. 살구나무뿐만 아니다. 손꼽아 보면, 길옆에서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꽁지샘”도 있고, 특이한 이름답게 물맛도 특이하다. 또한 겨울이면 읍내 아이들이 다 모여드는 미나리꽝도 있다. 다른 동네에 없는 것이 있어 괜히 좋다. 얼음이 얼면 멋진 스케이트 장이 되고, 얼음 밑에는 산들거리는 미나리가 다 보인다. 모두가 동네의 상징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 그 살구나무 동네!”, “아, 그 꽁지샘, 그 미나리꽝,” 하면서 무양동보다 동네 상징물을 들썩인다. 찬바람과 훈풍이 번갈아 부는 변덕 심한 봄날에 그 나무 하나 있어, 동네가 훤하다. 오가는 사람들은 몇 번이고 쳐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살구나무가 있어 봄이다.
우리 동네는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다. 별난 사람도 없고, 재미있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먹고살기에 바빠 근심에 찌들어 있다. 친구 아버지들은 대화가 없었다. 고단한 일정에 쫓겨 귀가하면 쉬기 바쁘다. 어머니들만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긴 한다. 어쩌면 그냥 조용한 사람들 뿐이다. 내 눈에 아버지들은 모두 근엄한 양반의 후예 같아 보였다. 아버지들의 특징은 말씀이 거의 없다는 거다. 잔소리가 없고, 뭐든 찾아서, 알아서 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오늘이 그날이 그날 같다. 이때부터 벌써 개인주의의 삶을 사시는지 의문이다.
지나가는 길손들이 이 동네 사람이 되어 떠든다. 다른 곳이 아닌 살구나무 밑에서 풍성한 말을 만들어 낸다. 한적한 동네에 살구나무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꽃나무 밑에 길이 생기듯, 길 난 살구나무 밑은 쉼터가 된다. 변덕이 죽 끓듯 변하는 4월의 늦은 봄날, 집안보다 바깥 햇살이 더 좋은 날, 살랑이는 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할머니들은 목도리를 두른 채 양지바른 담벼락 쉼터에 앉아 줄곧 옛이야기를 펼친다.
“저 나무는 내가 시집올 때, 쪼맨했는데, 저렇게 클 줄은 몰랐다.”고 추억에 잠긴다. 옆 할머니는 “저 나무를 심은 사람을 내가 알지!”하며, 나무의 역사를 원조 할매처럼 은근히 자랑하신다. 그러자, 햇수가 짧은 할머니는 “저 꽃을 볼 때마다, 젊어지는 것 같다.”며, 자기도 한 때 꽃송이였음을 회상하신다. 모두가 이 살구나무 한 그루를 칭송하고 있다. 그도 그럴만 했다. 살구나무는 키가 크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아담했다. 사랑받을 만큼 위로도, 옆으로도 가지를 시원하게 뻗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화사한 꽃이 탐스럽게 피자, 온 동네에 불을 켜 놓은 듯 밝기만 했다. 아름다운 꽃은 살구나무뿐만 아니다. 그 사촌들의 꽃도 마찬가지다. 벚나무가 그렇고, 복사나무, 매화나무가 그렇다. 이들 일족은 모두 화려한 장미과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옆에 가만히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입을 여신다. 흠, 음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고운 목소리로 창을 하신다.
“나하고 너하고 살구나무, 바람 솔솔 소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아홉 시무나무, 처녀애기 자장나무,” 하더니 침을 한번 삼키고는, “산에 올라 산나무, 불에 붙여 향나무, 한치래도 백자나무, 푸르러도 단풍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목에 걸려 가시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하시고 앞에서도 살구나무, 뒤에서도 살구나무로 끝을 맺는다. 총기 있는 할매였다. 이처럼 화사한 분홍빛 살구꽃을 보노라면 노래가 빠질 수가 있을까, 마음이 즐거우면, 입이 열리게 되어 있다. 스스로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내신다. 텁텁한 막걸리가 있어야 했다. 맹물을 안 탄 진짜배기 막걸리가 있어야 제격인데, 다들 입맛만 다시는 것 같아 보였다.
잎이 나기 전에 꽃피는 살구나무는 그 꽃이 아름다운 분홍색이기 때문에 제약을 받아 왔다. 분홍은 봄바람을 연상케 했다. 여인네는 바람이 불면 갈대가 되고, 남정네는 바람 막기에 급급했다. 어디에나 바람은 무서웠다. 무서운 건 피해야 했기에, 살림집 담장 안에 심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우리 앞집에는, 너하고 나하고 살자고 하는 살구나무가 집 안에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인간적인 바람이자, 씨와 과육을 원하는 살구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금지는 허용의 다른 말이다. 복스러운 살구꽃이 좋아 동네마다 꽃을 피운다. 꽃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준다. 누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살구꽃은 봄날의 끝이 되는 4월에 핀다. 미풍에 흩날리는 살구꽃이 떨어질 때면 못내 아쉬움으로 빈 가지를 쳐다본다. 하지만,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히는 게 섭리인지라, 유월, 칠월의 살구를 기약한다. 살구나무는 꽃과 살구만으로 상징되는 건 아니다. 살구 씨앗을 깨면 행인이 나온다. 이것을 모아다가 한약방에 갖다주면 돈 몇 푼을 준다. 우린 이 돈으로 과자 몇 개를 사서 먹곤 했다. 과자를 먹겠다고, 모여 앉아 씨를 깰 때, 동네 어른이 하시는 말씀이, “야들아, 이거 먹으면 죽으니 절대로 입대 대면 안 된다.” 하셨다. 우린 씨를 깨다 말고, 놀랬다. “이 독한 걸 어디에 쓸까?”하면서 겁을 집어 먹었다. 어른들이 많던 시절이라, 오가시는 분들이 한마디씩 하셨다.
포교당에 다니시던 할머니 한 분이 새로운 것을 알려 주셨다. “너들 목탁 알지, 스님이 쓰시는 거 있잖아, 그 목탁을 이 나무로 만든단다.” 하시면서 살구나무를 쳐다보신다. 우린 살구나 따먹고, 꽃이나 보고 지냈지, 이 나무로 목탁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목탁은 저승으로 간 물고기의 영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두드린다고 했다. ‘왜 해필 물고기일까. 인간과 더불어 다른 생명도 많이 있는데,’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뒤에 들은 이야기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 제자가 있었고, 어쩌다가 그 제자가 죽어 물고기로 태어났고, 스승은 물고기의 고통을 헤아려, 목탁 소리를 듣고 제자가 바른길로 들어서라고, 인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이 효험이 있어 제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 소리가 청아해, 저 멀리 고통의 심연에 빠져있는 이들을 구원하는 소리가 되는 살구나무, 그는 참으로 고마운 나무였다.
멀리서도 보이는 살구꽃이고, 동네의 상징이었던 나무였다. 그렇던 동네의 명물이 모두가 없어졌다. 살구나무도, 맑은 물이 샘솟던 꽁지샘도, 스케이트장 미나리꽝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길재의 오백년 도읍지가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을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래도 그땐 산천만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정든 우리 동네의 어르신들, 그때 나무 노래하시던 할머니들, 모두 다 가셨다. 그분들과 함께 자랑거리였던 살구나무도, 꽁지샘도, 미나리꽝도 의구하지 않다. 이젠 시멘트 동굴이 된 아파트가 그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서 있다. 제일 슬픈 게 뭘까? 그때의 낯익은 모습이 사라지는 거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만이 그때를 일깨워 준다. 기억이 증발하기 전에 끄집어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