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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예배에 생명을 걸라! 인생성공자가 되리라!”
+ 본 문 : 요한복음 4장 21절 - 24절 (신약성경 148쪽)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한대로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선포한 대로 됩니다. 내게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저를 따라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 나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배에 생명을 걸라! 인생성공자가 되리라!”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따라서 선포하겠습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라! 인생성공자가 되리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주전 170년대 유대인들은 시리아 안티오쿠스 4세 왕에게 나라를 잃고 온갖 박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시리아의 신을 섬겨야지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안식일을 지키거나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당시의 박해상황을 자세하게 보고한 책이 “마카베오서” 라는 성경 외의 외경이 있었습니다.
왕명을 거역하고 성경을 읽고 안식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광야동굴로 도망가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왕의 군대는 이런 사실을 알고 과연 안식일을 지키나 보자 하면서, 진을 치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왕명을 어기고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 공격하여 모조리 죽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뻔히 이 사실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은 왕명에 굴복하고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죽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안식일에 당당하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다가 온가족은 물론 가축까지도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볼 때, 이런 유대인들의 안식일 신앙과 예배를, 광신도적 태도로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앙은 곧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종교는 이처럼 죽음으로 지켜 냅니다.
구약의 이러한 안식일 신앙과 예배생활은, 신약교회의 성수주일 신앙으로 그 의미가 이어졌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힘 있게 살아있을 때는, 언제나 성수주일신앙이 생생하게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힘을 잃고 신앙심이 침체했을 때에 보면, 제일 먼저 성수주일 신앙이 식어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교회와 여러분이 생명을 걸고 지켜가야 할 가치가 있다면, 바로 주일예배 신앙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주일성수의 신앙과 예배드림이 없이는, 천국에 갈 수도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에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림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결론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의 진리, 우리가 지키는 주일성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생활, 성경중심, 기도중심, 교회중심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 24절에서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멘!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시작한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상반절 말씀까지는, 창조주 하나님을 엘로힘 하나님이라고,
부르다가 창세기 2장 4절 하반절부터는 갑자기 “여호와 하나님” 으로 바뀌어 불려지기 시작합니다.
2장 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라고 새로운 설명을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말씀은, 성전에서 예배사역을 맡은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의 강력한 신학은 창조의 완성은 하나님의 안식 즉 안식일 예배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드려야 할 안식일 예배는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신앙입니다.
안식일 없이 창조사역은 완성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예배는 우리 삶의 목표요.
방향이요.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이 안식일 예배를 통하여 인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누릴,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고 그 안식을 보장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을 약속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일을 많이 하셔서 피곤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해서 정말 쉬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인화해서 인간의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과 우리 인간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나와 함께 아름다운 세상에서 기뻐하며 즐기자구나.
나는 내가 창조한 너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고 싶구나. 그러면 내가 복을 줄게.”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창조사역을 마냥 기뻐하시며, 다 마친 다음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시고,
그 기쁨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우리 인간들과 함께 안식하시며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되고 모델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세상 일, 교회사역, 그리고 내게 맡겨주신 가족과 교우들, 그리고 이웃들을 보며,
“참 좋다. 함께 쉬고 함께 기뻐하자. 이것이 우리의 복이로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주일의 축복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일은 한 주간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날,
삶이 새로워지는 날, 죄가 사해지고 재창조되는 날” 우리가 주일을 통해 다시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심히 아름답게 창조된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는데,
다시 새로워지게 한, 예수님께서 부활한 주일을 신약의 안식일로 지키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와 기타 모세오경을 통하여 안식일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들은 당시 유대인들입니다.
금요일 저녁 해가 저물면 모든 유대인 가장은, 두 개의 촛불을 밝히고 안식일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 의식을 “키두시” 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구별하신 날이라는 뜻인 “카도시” 에서 나온 말입니다.
첫 번째 촛불은, 기억의 촛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택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를 잘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촛불은, 약속의 촛불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일을 잘 지켜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고, 약속하신 대로 주시는 복을 받겠다고, 온 가족이 함께 약속하는 촛불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촛불이 밝혀지면, 온가족이 함께 기쁨의 찬양을 부릅니다. 이 찬양을 통해 가정에,
기쁨의 천사가 찾아와 함께 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찬양입니다.
그리고 가족이 서로 서로 빠뜨리지 않고 축복의 말, 격려가 되는 의미 있는 말들을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상당히 긴 시간 대화를 나누며, 미리 준비해 둔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서로 따뜻하게 토의도 하고, 한 주간 있었던 좋은 일을 나누기도 합니다.
물론 안식일 아침이 밝아오면, 온 기족이 회당에 나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안식일 예배를 드립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안식일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영적인 치유와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은 노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쉬므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복을 얻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행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공동체를 돌보고 섬기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병든 사람, 고통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가 치료하고 위로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목적은 치유와 회복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시작할 때 “키두시” 라는 촛불을 켰는데,
안식일이 마쳐질 때는, 잠시 가족이 침묵기도를 드리고 “하브달라” 라는 촛불 끄는 예식을 행합니다.
그렇게 다시 한 주간의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므로 안식일을 마치게 됩니다.
이렇게 지켜왔던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교회, 그리고 교회사 과정을 통해 주일로 바뀌어졌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전해주듯이,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주일에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옛 번역에는 “안식 후 첫날”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날이 주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주일 예배시간에 헌금을 드리며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고전16:2)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 이 “매주일 첫날” 로 바뀌면서, 안식일이란 말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중 제일 나중에 기록된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서는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주의 날” 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는 과정을, 1세기 2세기 초대교회 수많은 문서들이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프랑스 파리의 가장 높은 언덕을 “몽마르뜨 언덕” 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예술가들의 무대입니다.
그러나 몽마르뜨는 “순교자의 언덕” 이란 뜻입니다.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다 목이 잘려 순교한 사람들의,
머리 없는 몸이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1km를 달려갔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이 술집이나 까페 상호를 몽마르뜨라고 쓴 것을 봅니다.
아마도 코가 비뚤어지고 모가지가 굴러 떨어질 때까지, 술을 퍼 마시자는 뜻으로 그런 게 아닐까요?
제가 한 순교자 이야기를 하려고 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2세기 중엽의 순교자 저스틴이,
당시 로마 황제에게 보낸 변증서에서 일요일에 드린 주일예배를 소개하는 장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요일이라 불리는 주일에,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읽고 나면 설교 말씀이 선포되었고, 이어 성찬예식이 거행되어 졌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교회는 주일에 말씀을 선포하는 예배와 성찬예배를 함께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예배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드리고, 성찬예배는 세례받은 성도들만 남아 드렸습니다.
3세기 초엽 유명한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들과,
안식일과는 상관이 없다. 주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인 주일과 성령강림절을 거룩하게 지킨다.
우리는 주일예배를 거룩하게 드리기 위해서, 주일에는 세상의 일들을 삼가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문서 “사도들의 가르침” 에서는 주일예배에 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들은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모두 봉헌을 드리라고,
왜냐하면 한 주간의 첫 날인 주일에 우리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그리고 주일 첫날에 하늘로 승천하셨고, 주일 첫날에 마지막 날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이러한 초대교회의 주일예배를 인정하여, 주일로 지킬 것을 공포한 것입니다.
콘스탄틴이 선포하여 안식일이 주일이 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주일신앙을 인정한 것 뿐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제칠일안식일교회 교인들 역시 안식일 예배를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엔 심각한 잘못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였다는 신약의 기록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콘스탄틴 황제가 주일을 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초대교회 주일을 공포한 것 뿐입니다.
셋째, 주일성수신앙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므로 안식일과 주일의 연속적 의미를 그들은 부인합니다.
이것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를 짓밟은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넷째, 안식일에 모인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교리화 하므로 율법주의가 되어버린 잘못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우리 한국교회는 이 말씀과 함께, 신약의 주일신앙을 소중히 받아들여 주일성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말씀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동일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여기 거룩하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안식일에는 비도 안 오고, 눈도 안 오고, 바람도 불지 않는 다른 날과 다른 특별한 날로 삼으셨나요?
안식일이라고 다른 날과 달리 해가 더 크게 뜨고, 더 빛이 나고, 하루해가 더 길어지기라도 합니까?
안식일엔 교통사고도 없고, 재난도 일어나지 않고, 지구촌이 마냥 평온한 날로 삼으시기라도 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이 날을 구별되게 지켜,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된 백성임을 알고 살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을 보면 일을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숨가쁘게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한 주간 내내 가족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삽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만이라도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 가족이 함께 주일 아침 주님의 집으로 나아옵시다.
이곳에서 한 주간의 지친 육체를 달래시고,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향하므로 사는 목적을 정리하십시오.
이렇게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주일만이라도, 서로 미워하지 말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만납시다.
누군가를 향한 모든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고, 내게도 잘못이 있음을 알고 주님께 고개를 숙입시다.
성령님의 임재속에 쾌락이 아닌 희락을 맛봅시다. 말씀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삶이 새로워집시다.
이런 주일성수와 주일예배의 삶을 통해서, 나 자신이 구별된 존재임을 깨닫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일은 갈라지는 날입니다. 한 주간 세상 사람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나 사는 모습은,
그저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이 되면 한 사람은 세상으로 한 사람은 교회로 갈라집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일은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날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거룩이요. 구별입니다.
그래서 성수주일과 주일예배 드림의 거룩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주일에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것이 구별된 거룩한 일이요. 축복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헌금은 거룩한 물질이요. 구별하여 드렸으니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거룩한 벡성들인 저와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생명 걸고 지켜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몸이 아파도,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예배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술수인 세상 쾌락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거룩한 구별에 대해 하나님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 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아멘! 여러분! 진심으로 아멘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목적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예배 잘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요. 천국서 예배하는 기쁨이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너는 구별된 성도이니라. 너는 더 이상 세상의 노예가 아니니라.” 세상에서 코딱지 만한 출세,
더 잘 살 기 위해서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를 소홀히 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지금 망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높은 자리 올라가고, 아무리 돈이,
많아지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주일성수하고, 주일예배는 꼭 드리세요.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고, 천국가야 할 저와 여러분을 진짜로 지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둔 믿음의 부모님들! 잘 들으세요. 신앙 버리고 출세하겠다는 자식들을 잘 지키십시오.
하나님 앞에 가서 죽도록 매 맞지 않으려면 “주일은 나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이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용도가 분명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그런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아예 예배드리는 일 외에는 다른 스케줄이 있으면 안 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병든 자, 약한 자들을 돌보고, 공동체를 세우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생명 걸고 붙들고 살아야 할 가치는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좋아하는 세상은 다 없어지고 내 곁에서 사라집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영원합니다. 주일에까지 일 붙들고 사는, 제발 일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 드린 예배 시간, 하나님께 드린 나의 물질, 하나님께 드린 나의 은사,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집인 해남중앙교회에서 내가 했던, 그 사역들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주님의 영광만 붙들고 살아도 힘든 세상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만 위해서 삽시다. 말씀만 붙들고 삽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은 다 내려놓고 살아갑시다. 거룩한 존재로, 구별된 존재로 살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함께 몸부림을 칩시다. 여러분! 예수 잘 믿고 함께 천국 가야지요. 아멘? 할렐루야!
그래서 우린 가장 먼저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예배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어, 예배 성공자가 되어, 인생성공자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