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론으로 정의하자면 인식론이자 존재론이라고 한다.
인식론이라 하든 존재론이라 하든 연기를 말하는 것이다.
인식이란 '나'라 할 이것을 중심으로 이것 혹은 저것을 감지함으로서 업을 짓는다는 것이고, 업이란 그 자체로 보면 연기인 것이다.
존재란 이것과 저것이 함께 할 때 그것이 있음의 측면으로 드러났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그러한 있음은 유전연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연기는 환멸연기와 항시 함께 하는 것이기에 유전연기를 말하면 환멸연기 또한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존재라 했지만 연기를 존재로 설명했기에 연기에 의하여 그 존재를 허물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인식이든 존재든 연기를 말하고 있다.
인식론적 서술은 유심론에서 알라야식을 중심으로 불법을 펼칠 때 주로 사용하는 개념이고
존재론적 서술은 중론의 이것과 저것의 연기를 인과론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유심론에서는 알라야식을 중심으로 12연기를 설하며 마나스라는 식으로 나를 세웠고
중론에선 중생이 오온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오온이 공하다고 하여 나라할 것을 허물었다.
인식론으론 세우고 존재론으론 허물었다.
이렇게 인식론과 존재론은 서로 역설적으로 일체를 세우고 다시 일체를 허물어 가며 이 현상계를 설명하였다.
현상계는 뭔가?
이것과 저것이 서로 감지하여 존재하게 되는데..
이 존재라고 하는 것이.. 고정적인 존재자체가 아닌 현상으로서 생동하는 것을 말함이다.
존재가 존재자체로 있는 것이라면 허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과 저것이 서로 감지하여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연기를 말하는 것이므로 그 존재는 허물어지기도 할 수 있으니...
존재라 인식되는 그것이 있음이 되었다가 없음이 되기도 하며 생동하는 현상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현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나라고 할 이것은 ...
<‘나’라 이름 할 ‘인’>이... <대상이라 할 ‘연’>을 만나 인식으로 나투게 된 것이며 그러한 나툼을 업이라 하는데
그 업을 나라고 동일시 함으로써 <‘나’라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 할 현상계>라고 이름 한 순간 그 현상계는 주관이 되는 것이다.
<나를 ‘인’>이라 했고 <대상을 ‘연’>이라 하여 <나라 이름 할 ‘인’>이 <대상인 ‘연’>을 감지하여 드러난 세계라는 뜻이니 주관적 세계가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나'를 중심으로 현상계가 펼쳐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어서 주관이라 하고있다.
그렇지만 기실은 '인'은 '연'을 감지했고 '연'은 '인'을 감지하여 '업'으로 나투었으니 무엇이 더 주체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업은 연기이므로 주체적으로 ‘나’라 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인연에서 ‘인’도 공하고 ‘연’도 공하며.. 인과 연이 만나 이루어진 ‘인연’ 또한 공한 것이어서 주관이라 이름 할 현상계도 실상은 공하며 누가 누구의 주체적 주관인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 할 무엇은 드러나지만, 나라는 주체적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이렇게 '나'라 할 무엇은 있으니....
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있지 않기도 하고 없지 않기도 한 것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나'라 할 이것은 드러남으로 보면 업이기에 자성적 무엇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그 자체적 실상으로 보면 연기이기에 '공' 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마음을 공부하는 불자들에게는...
나에 대해 자성적 실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지장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나라 할 주관적 현상계가 있다해도 지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위와 같기에 .. 불법을 말함에 있어 좀더 용이하게 설명키 위해 표면적으로 주관적 현상계라고 말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말했듯...
인연으로 드러난 것... 업 즉 연기는 실상으로 보면 존재자체가 아니라 현상이라 하였다.
업으로 본다면 유전연기 이지만... 유전연기가 환멸연기를 함유한 것이기에 이것을 고정된 존재자체가 아닌 현상이라 하는 것이다.
이 현상이라는 것은 연기의 드러나고 감추어지는 성질인 것이며 ... 연기의 작용으로 드러난 이 세계가 바로 현상계인 것이다.
유전연기와 환멸연기는 그냥 말 그대로 연기인 것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어서... 유전연기와 환멸연기가 함께하고 있으므로 현상계가 생동할 수 있다.
유전연기라 할 있음을 배경으로 환멸연기라 할 없음이 드러났다 사라지며,
또한 환멸연기인 없음을 배경으로 유전연기인 있음이 드러났다 사라지니 이를 두고 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동한다 하니...
이를 현상적 측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현상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상계라 함은 무엇이 무엇보다 더 주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
연기를 인식론이자 존재론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는 '자'>인 인간의 입장을 떠나서 설하여지는 것은 아니므로 ..
현상계를 이름하여 <나는 나대로의 하나의 섬>이며, <너는 너대로의 하나의 섬>이 되어 우리는 각자 하나의 섬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각자의 현상계인 섬을 구성하지만
나라는 하나의 섬은 너라는 섬이 있기에 성립하기도 하며, 너라는 하나의 섬은 나라는 섬이 있기에 또한 성립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의 섬은 너의 섬으로 부터 온 씨앗의 영향을 받기도 하며, 너의 섬은 나의 섬으로 부터 보내진 씨앗의 영향을 받기도 하니 각자의 섬이 고립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섬과 너라는 섬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는 있으면서도 또한 서로에게 영향을 주므로 독립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건립되어 있다 하더라도 각자 고유의 성질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너의 섬에서 날아온 씨앗이 나의 섬에서 싹을 틔웠다 할 때... 나의 섬에서 싹 튼 그 씨앗은 <나의 섬에 조건지어져> <나의 마음이 만들어 낸 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섬으로 부터온 씨앗이라고 했으나 나의 섬에 싹 틔워진 모습은 너의 섬에서 싹튼 씨앗의 모습과 별개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섬에서 너의 섬으로 날아간 씨앗도 <너의 섬에 조건지어져> 싹을 틔울 것이기에 <너의 마음이 만들어 낸 꽃>으로 드러날 것이다.
현상계는 이렇게 각자 하나의 섬이지만..
다른섬에서 날아온 씨앗의 싹을 틔우기도 하며 성립하므로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서로를 담아내며 건립 되어가는 세계이면서도..
나라고 하는 고유의 섬은 너의 씨앗을 받아 나의 조건에 맞추어 발아하므로서 나의 섬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너라고 하는 고유의 섬 또한 그러하니 참으로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섬은 각자의 섬으로서의 고유함을 유지 하지만 또한 여타의 다른 섬을 비추고 반사하므로 일체 법계 전체를 비추고 반사하고 있기도 하다.
나라고 할 현상계가 일즉 다의 이치를 함유한 것이며, 그리고 너라고 할 현상계 또한 일즉 다의 이치를 함유한 것이고
나의 현상계 그리고 너의 현상계 그외 일체의 현상계가 다즉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현상계는 생동함이 생명이며.. 독립적임이 또한 특징이며,... 그러함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건립된 세계이니...
그 각자의 섬이라 할 현상계는 참으로 발랄하면서 또한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화려한 꽃봉우리로 피어나는 세계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