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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사진---^^ 스크랩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⑥ : 이슬람 문화의 진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54 16.06.15 03: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 - 19()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여행 셋째 날 : 그라나다(Granada)의 알함브라(Alhambra) 궁전

 

특징 :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 주의 주도인 그라나다(Granada)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북서쪽 사면에 헤닐 강을 끼고 발달해 있는 해발고도 689의 도시이다. 이 지방에 많은 '석류'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인 '그라나다'에서 도시의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시()의 문장에도 석류가 그려져 있다. BC 5세기에 이베리아족의 정착촌인 엘리비르헤가 있었고 로마 시대에는 일리베리스라고 불렸다. 무어인이 세운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로 스페인에서 무어인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다가 14921월 가톨릭계 군주인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1세에게 함락되었다. 그라나다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의 하나로 유명한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800년간 꽃 피웠던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융합해서 만들어낸 독특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을 꼽으라면 서유럽에 자리한 아랍최고의 유적지로 꼽히는 알함브라(Alhambra)’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 알함브라는 궁전(宮殿)과 성곽(城郭)의 복합단지라고 보면 되는데 나스르 왕조의 후계자들이 1238~1358년에 걸쳐 건설했다. 1516~56년에 스페인의 카를 5세가 궁의 일부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으며, 펠리페 5세는 전각과 내부의 방을 이탈리아풍으로 바꾸었다. 이후 1821년의 지진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으나 1828년에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궁전은 서북서, 동남동의 방향으로 건물이 뻗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142,000m²이다. 견고하게 쌓아진 벽이 있으며 주위에는 13개의 타워가 있다.

 

그라나다로 넘어가는 길가 풍경, 푸름이 우거진 협곡도 보이지만 대부분 황무지에 가까운 삭막한 풍경들이다.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구릉(丘陵)의 사면(斜面)을 뚫고 들어간 집들이다. 어떤 곳은 마을 전체가 땅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알함브라 입구는 번잡하기 짝이 없다. 입장권을 끊으려는 사람들의 줄은 끝없이 길기만 하고, 매표소 옆에 만들어 놓은 알함브라의 모형도 근처도 혼잡하기만 하다. 그만큼 이곳 알함브라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도 위치> 그라나다 문 재판의 문 카를5세 궁전 포도주의 문 알카사바 코마레스 탑 사자궁전 산타마리아성당 헤네랄리페궁전




안으로 들어선다. 길게 늘어선 사이프러스나무들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하지만 가이드는 투어를 서두르지 않는다. 알함브라가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각종 특징들을 다시 한 번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어렵게 찾아온 길이니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담아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사이프러스 숲길을 지나면 1952년에 만들어진 야외극장, 오디토리엄(Auditorium theatre)을 만난다.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나무를 각이 지게 다듬어 놓은 정원(庭園)을 만난다. ‘로우어 가든(The lower gardens of the Generalife, 혹은 New gardens)인데 제법 키가 큰 사이프러스를 깍두기 썰 듯이 해 놓은 것이 독특하다. 한가운데에는 작고 길쭉한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멋진 정원이다. 하긴 무슬림이 지은 궁전인데 어찌 아름다운 정원이 빠질 수 있겠는가. 사막의 무슬림에게 푸른 정원은 어쩌면 오아시스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외모로 볼 때 이건 에스파냐(Espa?a)인들이 만든 작품 같다. 문득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정원들, 특히 탄성을 지르기 바빴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정원이 연상되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건너편에 알함브라(Alhambra)궁전과 알바이신지구가 보인다. 얼핏 궁전보다는 요새에 가까워 보인다. 하긴 8세기에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무슬림 세력이 15세기 말 스페인을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곳이 그라나다(Granada)였으니, 이곳의 언덕에 자리 잡은 알함브라 궁전은 궁궐이기 전에 요새로서의 기능이 훨씬 더 중요했을 것이다.

 


정원을 따라 가다보면 아치(arch)형의 문이 나타난다. 안으로 들면 데스카발가미엔토 안뜰(Patio de Descabalgamieno)’이 나오는데, 다음 건물의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에서 내리는 용도로 사용된 벤치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데스카발가미엔토 안뜰에서 헤네랄리페(Generalife)로 들어가려면 또 다른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 위에 작은 문양(文樣)이 보인다. 누군가는 코란에서 얘기하는 다섯 개의 계율(신앙, 자비, 기도, 금식, 순례)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글쎄다. 헤네랄리페(Generalife)알함브라외곽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14세기에 세워진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알함브라궁전에서 거주하던 왕들이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던 별장이란다. 시골 별장을 닮은 이 궁전은 무하마드 2(Muhammad II)가 지었는데 이슬람식 정원의 전형적 특징을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쉽게도 이곳은 모두 파괴되어 두 개의 소궁전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넓은 정원이 잘 정돈돼 있다. ‘헤네랄리페(Generalife)’라는 이름은 우아한 천국을 의미하는 아랍어 야나트 알 아리프(Jannat al ?Ar?f)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면 아름다운 정원(庭園)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아세키아 중정(Patio de la Acequia)'이다. 아세키아란 수로(水路)란 뜻으로 이름처럼 중정 가운데에 기다란 연못을 두고 그 좌우에 있는 많은 분수(噴水)들이 가느다란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이곳의 분수들은 궁전을 지을 당시부터 있었던 시설이란다. 인공의 동력인 전기(電氣)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에 오로지 물의 낙차(落差)만을 이용해서 저런 시설을 만들었다니 신비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경이롭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친화적인 삶과 물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아랍 사람들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아세키아 중정의 옆면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사암으로 된 벽면 색깔이 황금색이다. 알함브라의 건물들은 모두 붉은색이라 들었는데 이상하다. 이곳 헤네랄리페 별궁만의 특징일까. 누군가는 이를 두고 인도의 사막도시 자이살메르(Jaisalmer)’에서 보았던 황금색이라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헤네랄리페의 실내를 마감한 사암들은 금빛을 띠고 있었다. 의아스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벽면에 새겨 넣은 장식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마치 찰흙을 빚어 정교한 부조를 만들어 놓은 듯, 정교한 문양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새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을 정도로 아라베스크(arabesque : 원래 고대 그리스 공예가들에게서 유래했으나 1000년경 이슬람 공예가들이 종교적 이유로 새·동물·사람 등을 제외시켜 매우 정형화시킨 이슬람 장식 문화)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경이 그 자체였다.



회랑은 예쁜 아치로 된 문들이 창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원형의 문을 통해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이 멋있다. 그 오른편은 알바이신지구이다. 

 


정원의 앞쪽 포르티코(Portico : 건축의 앞면, 앞면의 출입구 부분에 설치된 열주랑 부분) 쪽으로 간다. 아세키아중정의 머리 부분인 이곳은 관례적으로 제왕의 홀(Sala Regia)'이라 부른다고 한다. 홀의 전면에는 다섯 개의 연속된 회랑 아치들과 끝에 설치된 알코브(서양식 건축에서 벽의 한 부분을 쏙 들어가게 만들어 놓은 부분)들이 이슬람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벽면을 빈틈없이 메운 아라베스크의 향연들. 우상 숭배를 금한 이슬람의 율법은 인류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포르티고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면 또 하나의 정원이 나온다. ‘왕비의 안뜰(Patio de la sultana)’이다. 왕비의 안뜰은 긴 네모의 연못에 분수가 물을 뿜으며, 연못의 안에는 작은 연못이 두 개가 더있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돌 분수가 물을 내뿜는다. 흡사 정원의 모든 분수들을 총 지휘하고 있는 것 같다. 하여간 별궁 곳곳에서 자그마한 분수들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사막에 익숙한 무슬림들에게 연못과 분수는 정원의 필수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기 동력 없이도 물이 솟구치는 분수를 만들어냈을 테고 말이다.



왕비의 안뜰에는 말라 죽은 나무 하나가 서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죽은 나무를 왜 그냥 놔두고 있는지 궁금하겠지만 여기에는 다 사연이 있다. 옛날 이 나무 아래에서 왕비와 아벤세리하스 가문의 귀족이 밀회(密會)를 즐겼단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왕에게 들켜버렸던 모양이다. 분노한 왕에게는 밀회의 장소를 제공한 나무까지도 괘씸했을 것이다. 그 결과 수로(水路)까지 다른 곳으로 돌려가면서 일부러 나무를 고사(枯死)시켜 버렸다니 말이다.

  


알함브라의 특징 중 하나는 수로(水路)가 잘 나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지을 당시 아랍세력들은 외부 세력과의 장기적인 전쟁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네바다산맥에서 물을 끌어옴으로써 알함브라를 요새화(要塞化) 시켰던 것이다.



왕비의 안뜰을 지나 두 개의 사자상이 있는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정원이 있다. 헤네랄리페 별궁과 그 건너편에 있는 알함브라궁전이 한눈에 잘 들어오는 빼어난 전망대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상부의 정원은 커다란 나무들이 즐비한 것이 흡사 울창한 숲속에라도 들어 선 느낌이다. 이어서 넝쿨식물로 만든 터널을 따라 알함브라궁전으로 향한다. 얼마쯤 갔을까 아까 별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났던 야외극장이 오른편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알함브라궁전은 이곳에서도 조금 더 걸어야 나온다. 날씬한 사이프러스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멋진 길이다. 그런데 아까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헤네랄리페별궁과 알함브라궁전은 매표소 근처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길은 해자(垓字)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알함브라궁전으로 연결된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해자가 아니다. 성벽(城壁)과 내성(內城) 사이의 공간으로 성을 지키던 군사들의 이동 통로로 이용되었을 듯 싶다.

 


다리를 건너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곳 모두 성벽을 걷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왼편은 물의 탑공주 탑을 둘러볼 수 있고, 오른편으로 갈 경우에는 또 하나의 멋진 물의 정원인 파르탈 정원을 둘러볼 수 있다. 우리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성벽 위를 걷다보면 멀리 산 중턱에 지어진 헤네랄리페 별궁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성벽을 따라 걷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까 해자로 오해했던 이동통로의 안쪽에 겹으로 쌓은 성벽의 위이다. 성벽에는 망루의 역할을 수행했음직한 탑들도 보인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아담한 연못과 야자수가 진짜 오아시스처럼 보이는 파르탈 정원(Patio de Partal)’이 나온다. 성벽 방향에 귀부인의 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지어져 있다. 하지만 연못 위로 비치는 풍경이 더 아름다우니 절대 놓치지 말 일이다. 풍부한 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 눈 녹은 물을 끌어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일 테고 말이다.



파르탈 정원엔 크고 작은 연못과 거미줄 같은 수로, 그리고 잘 가꾸어진 조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 물 등 자연이 건축물 및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유럽인들이 이곳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치형 문을 통해 알바이신지구가 보인다. 맨 꼭대기에 산 니콜라스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가 있다. 알바이신 지구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경사진 언덕에 베이지색 지붕을 쓰고 있는 하얀 색 집들이 사이프러스 나무와 함께 가득 메우고 있다. 알함브라와는 사뭇 다른 명랑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낭만적인 풍경이다.

 

 


왼편에 산타마리라 성당(Lglesia de Santa Maria)’이 보인다. 1581~1617년 사이에 옛 왕궁의 일부와 이슬람사원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슬람 사원의 일부를 고치는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헐어버리고 새로 지었지만 이 성당은 스페인에 있는 많은 성당들 중에서 그 규모가 크지도 않을뿐더러 내부 장식 또한 그다지 화려하지 않단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가이드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 덕분에 난 귀국을 한 후에야 이 건물이 성당인줄을 알 수가 있었다.

 


코너를 돌면 조금 전까지 보아왔던 건물들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의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카를로스 5세 궁전(Palacio de Carlos )’으로 1516~56년에 스페인을 다스렸던 카를 5(카를로스 1: 1516-1556)가 궁의 일부를 허물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새로 지은 것이란다. 그는 당대에 유행했던 르네상스 양식으로 궁전의 건축 양식을 수정하는 한편 겨울 궁전은 아예 허물어버렸다고 한다. ‘개악(改惡)’이라는 낱말이 있다. 개선(改善)의 반대말로 고쳐서 도리어 나빠지게 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건축물들의 숲 속에 들어앉은 투박한 건축물이 주변 풍경에 전혀 동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카를 5세의 행위에 대해 비분강개로 일관하고 있는 가이드의 느낌 또한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펠리페 5(1700?1746) 같은 군주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주위 전각과 내부 방을 이탈리아식으로 바꾸긴 했지만 무어 인의 양식을 거부하기보다는 좀 더 완성도를 가미했을 따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궁전은 스페인 르네상스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물론, 스페인왕실 건축물들 중에서 보석으로 불린단다. 건물의 벽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돌 의자가 있고, 마차를 끄는 말들을 매어 두었던 고리도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거대하지만 투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입구 쪽 파사드만은 섬세하면서도 우아하다. 벽에는 황제를 묘사했는데 벽 아래쪽에 전승기념부조를 도리아양식으로 조각해 승리의 문을 만들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의 중정이 나온다. 궁전의 외관이 정사각형이었기에 의외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카를로스5세가 이슬람 궁전 안에 의도적으로 짓다보니, 기존의 이슬람 궁전과는 다른 뭔가를 원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 네모진 이슬람 궁전의 틀을 벗어난 원형의 중정을 만들었을 테고 말이다. 참고로 옛날에는 이곳에서 투우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은 매년 여름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열린단다.

  


중정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둥근 회랑과 열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층으로 된 대리석 열주(원기둥)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이란다. 두 가지 양식의 기둥들로 둘러싸인 원형의 중정이 우아하고, 간결하면서도 기품 있게 보인다.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 1층에는 알함브라 궁전 관련 물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고, 이층에는 그라나다 관련 회화와 공예작품이 소장된 주립미술관이 있다.



이곳에서도 가슴 뿌듯한 풍경을 만난다. 기념품 가게에 태극기가 내걸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기가 유일하다. 자기나라의 국기마저도 걸어 놓지 않았을 정도이니 가슴 뿌듯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점하고 있는 위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위상은 해외여행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20여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해외출장이 잦았던 내 눈에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던 우리나라의 위상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력 증가와 비례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출입국의 최전선에 서있던 나 자신을 많이 자랑스러워했었다. 그 현장에서 한걸음 물러난 지금, 새롭게 바라본 세상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나와 궁전을 등지고 오른편으로 가면 나사르궁전(Palacio de Nazaries)의 입구이다. 그러나 가이드는 궁전으로 안내하지 않고 그냥 통과해 버린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결과적으로 우린 나사르궁전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곳을 빼먹었으니 어찌 알함브라 궁전을 관광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가이드의 뒤를 졸졸 따르느라 바쁘기만 했다. 귀국 후 여행기를 정리하면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사전에 헤네랄리페별궁과 알함브라궁전을 구별할 줄만 알았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이드에게 항의를 해서라도 꼭 들어가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여행을 떠나왔던 내 방심을 원망해 볼 따름이다.

 


그라나다는 에스파냐 지역에서의 마지막 이슬람왕국이다. 원래 그라나다는 아랍인들에 의해 고대도시 일리베리스 근처에 세워진 도시인데 이 고대도시를 중심으로 무하마드 이븐 나스르(Muhammad ibn Nasr)가 나스르왕조(그라나다왕국, 1231~1492)을 열면서 번창했다. 그라나다에 근거지를 정한 이븐 나스르는 한때 베르베르인들이 축성한 알카사바(Alcazaba)라는 요새가 서 있던 언덕 위에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요새를 코란에서 묘사한 지상천국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하고, 토목전문가로 하여금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개울의 물줄기를 바꾸어 운하와 수조 · 분수 · 정원에 물을 댈 수 있도록 관개수(灌漑水)를 개발하게 했다. 그의 계획은 여기까지였다. 뛰어난 이슬람 건축물인 알함브라궁전을 완성하는 것은 그의 후계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당시 번성했던 예술과 과학을 바탕으로 화려한 이슬람문화를 꽃피워 내었다. 이 화려한 건물들은 무어인과 스페인의 미술이 결합된 형태이다. 건축 당시는 아랍 계열 인종의 거주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이었으므로 궁전은 안달루시아 지방 미술의 절정기 하반부를 장식한다. 이슬람 왕국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었으므로 예술가의 창작 배경이 더욱 자극될 수 있었던 점도 알람브라 궁전 내의 독특하면서도 왕궁의 위엄을 드높인 한 요소가 되었다. 이후 기독교 세력이 이곳을 재정복(1492)하면서 정복자들이 궁전을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흰 빛깔의 도료로 바뀐 것도 이때 이뤄진 일로서 도금과 회화 작업도 이 시기에 추가되었고 기존의 가구는 개보수 되거나 혹은 없어졌다. ‘알람브라(alHamra)’는 성벽을 지을 때 붉은색 점토를 이용한데서 생겨난 이름이라니 참조한다. 참고로 지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알람브라 궁전은 유럽에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물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다시 붉은 담장이 높다란 요새의 통로를 지나면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알카사바(Alcazaba)가 나온다. 알카사바는 성채(城砦)를 뜻하는 아랍어가 스페인어 화된 말로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알함브라의 나머지 영역과 완전히 구별되는 초기의 성채도시(城砦都市)이기도 하다. 9~13세기에 지어진 요새(要塞)로서 전성기 때에는 24개의 망루와 군인숙사, 창고, 목욕탕까지 있었던 곳(Plaza de Armas : 아리마스 광장)이었는데 현재는 그 자취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이곳이 요새였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군인들이 묵었다는 숙소(Barrio castrense)는 지금은 미로 같은 담장들만 남아 있다.


 

안으로 들면 황토색 바닥에 황토색 성벽과 망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각진 형태의 황토색 벽들이 마치 상기된 얼굴 같다. 벨라탑(Torre de la Vela)에 오른다. 알카사바요새의 중앙에 감시탑으로 지어진 망루이다. 탑 위에는 그리 크지 않은 종이 하나 매달려 있다.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를 함락한 기념으로 걸어놓은 종이라고 한다.

 


벨라탑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빼어나다. 알함브라의 전경과 알바이신지구, 그리고 집시촌인 사크로몬테(Sacromonte)언덕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반대편의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 시가지는 물론이고 멀리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산맥까지 조망된다. 참고로 하얀 언덕 마을인 '알바이신(Albaicin)'은 구시가지로 아랍인이 집단 거주하던 지역이다. 현재도 유서 깊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마을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환상적인 전망이 펼쳐진다고 한다.

 

 


요새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성벽의 위에 수없이 많은 홈들이 파여 있는 게 보인다. 옛날 돌을 올려놓았던 구멍이란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들에게 굴러 떨어뜨릴 용도의 돌들이다. 성벽 너머로 바라보이는 그라나다 시가지 풍경이 일품이다.

 


알카사바를 빠져나와 아까 그냥 지나쳤던 산타마리아 성당(Lglesia de Santa Maria)의 곁을 지난다. 이번에도 역시 그냥 지나친다. 앞서가는 가이드는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다. 해가 떨어질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고, 호텔에 들어가 저녁식사만 하면 오늘 일정은 끝이 날 텐데도 말이다.

 

이어서 잘 다듬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오면 산프란시스코 수도원(Convento de San Francisco)'의 부속 건물로 보이는 성당이 보인다. 수도원 건물이 현재 호텔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니 저 건물의 용도 또한 같지 않을까 싶다. 잠시 후 매표소에 이르게 되면서 알함브라궁전의 투어가 끝을 맺는다.

 

 


그라나다에서 머문 카미노호텔(Camino de Granada), 깔끔한 객실과 외부 수영장 등 나름대로 시설이 괜찮은 호텔이었다. 특히 호텔 내의 바에서 마신 맥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침 식사는 중급 수준, 하지만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에서의 먹었던 질이 떨어지는 식사에 대한 느낌이 강했었던지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식탁에는 계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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