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단지 탈출영화로만 본다면 인생철학에 대한 영화를 액션영화로만 본 것과 같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탈출의 순간이 아니라 참회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앤디(팀 로빈슨 分)’는 아내와 그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진실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직전까지 몇십년 동안 억울하기만 합니다. 누명을 뒤집어 쓴 것만 생각했죠. 그러다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외롭게 했으며 소통이 안되는 남편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한사람 ‘레드(모건 프리먼 分)’는 가석방 심사에서 매번 떨어집니다(rejected). 그 역시 몇 십년간 rejected를 당하자 어느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심사관에게 잘 보이려 하지도 않고, 자신이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어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허무하게도(?) 돌연 승인(approved)을 받습니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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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앤디로 돌아가서 앤디의 탈출은 깨달은 시점부터 탈출의 가속도가 붙습니다. 야생미가 돋보이는 미녀 ‘라퀠 웰치’ 브로마이드로 교도관들의 의심을 피한 벽 뒤로 오랜 기간 뚫어온 구멍. 이제 그곳으로 나갈 기회만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러다 천둥번개가 치던 어느 밤, 앤디는 그동안 준비해 둔 서류와 옷가지를 비닐에 몇 겹으로 봉함 후 노끈으로 단단히 몸에 묶어 마침내 교도소 밖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 장면이 그 유명한 클라이막스 장면이죠.
저는 이 영화를 아마 대여섯번은 본 것 같습니다. 90년대 개봉 때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봐왔습니다. 탄탄한 플롯과 칙칙한 감옥 배경임에도 이를 상쇄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영화적 재미로는 그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앤디의 참회와 탈출의 인과관계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 다시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참회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겐 빠진 무엇에 대해선 여전히 몰랐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최근에 법안스님을 친견한 후 다시 이 영화가 다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인생이 잘 안풀리는 것이 처음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고(과거 사주를 보면 제 성격의 모나고 거친 부분을 많이 지적받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타고난 능력과 재능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최근에는 성격과 능력, 재능 이 세 가지가 모두 부족해 지금의 내 자신밖에 안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제 인생을 가로막는 요인이 제 성격이나 능력, 재능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그동안 늘 들어왔거나 스스로 그렇다고 인정해왔던 부분이 아닌, 어떤 결정적 한 요소를 말씀해 주시며 이 부분을 기도로 극복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쉬운 대답같지만 저는 그동안 억울했던 부분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고, 스스로를 자책하던 콤플렉스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 인생 모든 것들은 그것이 생각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다 제 탓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제 인생임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제 탓이라고 비난하거나 지적하듯이 말씀하시지 않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심에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제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다짐과 무거운 책임감도 동시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정말 내가 하기에 달렸음을 뼈저리게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앤디가 탈출하기까지 사실 그는 엄청난 준비를 합니다. 사람들을 도와줘 주변의 신뢰를 쌓고, 회계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줘 교도소장과 선이 닿는 기회를 만듭니다. 또한 밤마다 조금씩 굴을 파서 가장 현실적인 탈출 준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작은 망치로 굴을 파는 건 작은 실천과 지속적 노력에 대한 은유이지 그 망치로 굴을 파는 것이 가능하냐 따위의 질문은 어리석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처절한 참회 혹은 깨달음이 있었다 해도 다음 단계로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단 한 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놓아본 적이 없었음에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정말 치열한 기도뿐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장하지는 말아야 함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비장하면 억울하고 지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신 앤디처럼 설령 교도소에 갇혀있을 지라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영혼의 자유를 겸해합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생존 그 이상의 고매한 무엇을 추구할 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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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을 올리는 것은 기도로부터 나태해지려는 저 자신을 다잡기 위함이기도 하고, 저처럼 생의 기로에서 스스로의 능력과 앞날을 한계 지으려 했던 법우님이 있다면 다시 한번 원하는 곳까지 가려는 엔진을 장착하기를 권하려 함입니다. 그 엔진은 바로 스님이 권한 지장기도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는 책을 썼듯이 저도 기도의 증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참고로 스님 친견 후 지장경을 읽으니 예전에 그냥 스치던 부분에서 새록새록 또 다른 깨달음이 생겨나더군요)
스님, 그 날 해주신 모든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저의 지금이 타고난 제 부족함과 불찰 탓이라고 하시지 않으셔서 늘 맞아왔던 화살을 더 이상 맞지 않은 듯 했습니다. 아울러 이제 누구도 다시 뚫을 수 없는 방패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 )))
* 참고로 이 영화의 원제목은 쇼생크 탈출이 아니라 쇼생크 리뎀션(The Shawshank Redemption)... 쇼생크 구원입니다. 구원이 기독교적 용어로 받아들여질수도 있겠지만 영화 내에 그런 내용은 없으며, 한국에서 마케팅을 위해 재작명한 제목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구원은 종교적이라기보다 보편적 용어로서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작가 (원작자 스티븐 킹)의 의도는 탈출이 아니었고, 구원 즉, 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 모두의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입니다.(물론 탈출로 구원이 되기는 했지만요)
첫댓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모든 소원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나모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저도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힘들때 한번씩보면
힘이나는 영화죠
힘든상황을 지장기도로 탈출한다는 말씀이군요
꾸준히오로지하면 탈출하겠죠^^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법우님의 기도를
응원합니다
오로지
꾸준히 기도하셔서
모든 소원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미타불
저도 좋아하는 영화에요 원작도 몇번이나 읽을정도로 좋아합니다 영화의 마지막도 희망한다라고 끝나죠 기도로 늘 좋은일만 가득하실겁니다
원작까지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 생각해보면 앤디가 갇혀있는 물리적 감옥과 심리적 감옥은 같은 것이었음을 느낍니다... 말씀처럼 인간에겐 희망이 가장 소중한 부분인 것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영화를 이리 이해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또 법우님 기도에 응원드립니다. 무간지옥같은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치로 땅을 파듯이 저도 그리 해야겠습니다.그럼 모두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영화지만 증명하였으니~
우리 삶도 그러하니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요. 법우님
나무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 _()_
감사합니다
지장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희망과 구원의 노래임을 느낍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는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법우님 대박나십이요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