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럴까요? 책임질 수 없는 길이라면, 또 옳지 않은 길이라면 절대로 가서는 안 됩니다.
학창 시절, 늘 컨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컨닝은 낭만이라면서 말했고, 이렇게라도 좋은 성적을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컨닝만 해서일까요? 커서도 남의 답안지만을 보려 했습니다. 남 따라 하고, 남처럼만 살면 행복하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적 고귀한 발전을 빼앗긴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때 인권은 추락했지만 경제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국가 소득이 오르고 고속도로가 생기고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먹고살 만해졌습니다. 그래서 군사 쿠데타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는 민족의 근대화를 이뤘다면서 일제 강점기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덕이 중요합니다. 즉, 바른길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의도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결과주의로는 올바른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도덕이 행복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더 중요한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닦아드립니다. 이를 본 유다 이스카리옷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 12,4)라고 말합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다는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 버립니다. 더 큰 가치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은돈 서른 닢을 성전에 내던지고 목매달아 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 12,7)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죽음과 향유로 적셔질 당신의 몸을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이 부활의 기쁨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예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물질적인 가치로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바른길이 중요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옳지 않은 길로 가도 된다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강조하셨던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유다의 말도 사랑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위한 사랑은 바른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용기를 갖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세요. 그 어떤 것도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파울로 코엘료).
사진설명: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첫댓글 빠다킹신부님 강론입니다.
그렇지요
아주 오랜 세월에 들은 얘기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말말말...
오늘도 좋은 말씀속에
감사합니다
요셉 형제 님~
감사합니다~🙇🏻♀️
부활로 향하는 성주간입니다.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