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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산자락을 맴돌다
우선자
반가운 까치소리에 눈을 떴다. 앞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앉아 인사를 한다.
‘깍깍 까까깍, 까악 깍깍. ’ 월 2~3번 정도 때를 가리지 않고 방문하는 기분 좋은 손님이다. 햇살이 눈부시다.
아파트 베란다 뒤 창문을 활짝 열고 기린 목처럼 나도 목을 쏙 내밀어 본다.
비둘기가 무리지어 날고, 까치들은 짝을 지어 나무들의 나뭇가지 위 아래로 옮겨 날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의 노래 소리는 내 귀를 즐겁게 한다. 팔공산 해원정사를 지나 동문으로 가는 오솔길을 떠올린다.
다시금 발뒤꿈치를 치켜세우고 14 층 아래로 목을 돌리며 심호흡으로 하루를 연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그윽한 풀냄새 맡으며, 너풀거리는 초록색 잎들이 무리 진 숲의 상큼함이 내 온 몸을 정화 시키고, 동서로 탁 트인 넓은 시야에 시원한 맞바람을 만끽하며 오늘 하루도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아파트와 이웃아파트를 빙 둘러싼 사이에 조성 된 달서 문화공원을 하루에 한 시간정도 땀을 흠뿍 흘리며 걷기운동으로 남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생각을 알아 가고 공유한다. 영화 겨울왕국의 주인공 루시 남매들이 벽장문을 열고 들어서면 요술처럼 설국의 숲이 나오 듯, 아파트 뒷문을 바로 나서면 다른 세상에 온 듯
뚜렷한 사계절의 풍경이 한 폭의 유화처럼 한 눈에 펼쳐진다. 공원주변의 풍경을 즐기며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 종류도 다양한 목줄에 매달려 자유롭고 싶은 애견들, 주변의 유치원생들의 자연학습장, 기저귀를 차고도 올망졸망 줄지어 선생님을 따르는 귀염둥이들은 무리 지어 포르르 날아가는 참새가 된다.
광장 분수대를 둘러싼 벤취에서 여유로움에 이야기꽃을 피우는 환한 얼굴표정을 보면 삶의 활기를 얻는다.
20 여년이 지나가도 이사를 못하는 내가 가장 자랑하고픈 동네 공원이다. 이웃 아파트주민들의 정원이자 공원은 눈 둘 곳이 너무나 많다. 둘레 700m공원에는 꽃들의 향연을 끝 낸 나무들과 여름을 재촉하는 느티나무 숲이 우거져 14층 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초록 빛 푸른 물결에 내 눈도 시원하고 쾌청하다. 마치 꿈을 꾸는 듯 하늘을 날고 있는 듯 난 이 풍경이 너무 좋아 20년이 다 된 아파트를 떠나지 못한다.
20년 전 성서지구 도시개발로 신축 중인 신설Y초등학교로 전근 하려고 사전답사를 했다. 당시엔 여기저기 불도저가 얕으막한 산을 깍아내리고, 구불구불한 언덕을 평지로 땅을 고르고 보이는 건 온통 우뚝 솟은 시멘트불럭과 아마 와룡산 전설에 나오는 옥연 인 듯 작은 연못뿐이었다. 순간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
“위험 합니다. 나가세요.” 사방을 살펴보아도 오가는 사람 한명 없는데~? 무서웠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1976년 남편이 예비군 훈련 때 한 번 찾은 적이 있던 54단 예비군 죽전훈련장이란 것을 알고는 겨우 큰길을 찾은 생각이 났다. 그 땐 신축 중인 아파트와 정비 되지 않은 길들로 내가 본 산이 와룡산이라는 사실은 N초등 일 년 동안의 파견근무를 마치고서야 알았다.
전임지에서는 보행할 인도가 없는, 신호등조차 없는 차 도로와 인접해 언제나 학생들의 등하교시 교통안전이 걱정이었고, 특히 추운 겨울 학부모 출근 시 따라 등교한 학생이 많아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오전 7시 반부터 노란 깃발을 들고 녹색어머니와 함께 1시간이나 발을 동동 거리며 교통지도 당번을 해야만 했다. 또한 교실 부족으로 중학년(1~4학년)까지 오전 오후반 학급당 60 여명, 10학급의 학생들이 좁은 운동장에 시끌벅적 하였는데 사전 계획한 신도시로 아파트 대단지 한 가운데 자리한 와룡산자락 초등학교들은 대체로 높은 지형인 산을 이용하여 교실건물이 운동장 보다 높아 시야가 확 트여 마음속까지 후련 하였다. 운동장에서 매주 월요일 수업하기 전, 전체 학생조회 때 본 와룡산 산위 구름 한 점 없는 더 높고 파란 가을하늘은 요즘 일기예보에 요란스러운 미세먼지, 황사가 웬 말인가 싶다.
지금은 칠곡 학정동으로 옮겼지만 와룡산 자락 옛 오십사단 군부대 자리에 우뚝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 단지 중앙에 조성 된 공원 서쪽 끝 성서중학교 담 자락에는 위생적으로 잘 정비 된 급 수대와 붉은 벽돌로 단장 된 정수 시설이 밤낮으로 지하수를 퍼 올린다. 산골 계곡 맑은 물을 연상케 하는 작은 도랑 수로는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생수를 깃는 사람들이 끌채에 가족들을 위한 생수를 바리바리 연신 퍼 올릴 땐 졸졸 소리 내고, 인적이 드물 땐 콸콸 밤낮으로 흐른다. 대형 정수장 설비를 설치한 비상 급수시설은 달서 구청에서 정기적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성분 별 수질 검사한 벽보가 떡 하니 붙어 있어 이웃동네 사람들까지 사철 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장사진이다. 보일 듯 말듯 가려진 초록색 산책로에는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도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다운 이웃들과의 눈인사 나누며 줄지어 한 방향으로 걷기 운동에 열심이다. 공원 중앙에 있는 워싱턴 백악관을 연상하듯 단아한 달서노인 문화 대학인 하얀 단층 건물에서 가끔 들려오는 흘러간 유행가 가사가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의 지루함을 들어 준다.
겨울 끝자락 노란 산수유꽃은 나를 구례 산동 산수유 축제장으로 봄이 왔음을, 목련꽃 아쉬움도 잠시, 봄바람 휘날리는 벚꽃이 삼삼오오 유혹하고, 하얀 수수꽃다리 라일락 향이 앞만 보고 조킹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멈추게 함도 잠시 이팝나무엔 순백이 순수 그자체로 찬란하고, 5 월의 붉은 장미꽃 내움에 미풍을 타고 아파트 담장을 자랑한다.
한 여름 피었다가 지고 또 피어나는 나라꽃 무궁화단지는 소나기 직전의 어둠을 밝힌다. 산책로 오솔길 나무 터널엔 키가 큰 소나무, 메타세콰이어, 히말라야시다등은 한 여름 뙤약볕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창 넓은 모자요,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는 우산이 된다. 가을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주홍감들은 청도 시골길을 달린다.
마을공원은 주민들의 쉼터요 어린이들의 체험 장이다. 꽃 잔디, 옥잠화로 띠를 두르고 맥문동으로 잘 조성 된 화단 모과열매에 눈도장 찍고, 연산홍 사이사이 제비꽃, 민들레, 토끼풀들도 명함을 내민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 하는 풀꽃은 땅 바닥에 납작 엎드린 듯 탐스럽고 색깔 선명한 샛노란 민들레꽃이다.
처음부터 공원을 애용하지는 안았다. 남편과 함께 매주 2~3 번 가까운 와룡산을 찾았다. 와룡산 인근에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부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텃밭과 작은 계곡물을 볼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야트막한 산길인 이곡 중학교 서편 담장 길이 주등산로이다.
와룡산은 해발 299.6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표지판의 와룡산의 유래를 보면
‘설에 의하면 먼 옛날 용 한 마리가 금호강에 물을 마시러 내려 왔다가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갔다고 하며 산세가 마치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듯해서 와룡산이라는 설과 산 아래에 옥연이 있어 용이 노닐다가 그 못에서 나와 승천을 하려는데 지나가던 아녀자가 이를 보고 “산이 움직인다.” 하고 놀라 소리치자 이 소리를 들은 용이 승천을 못하고 떨어져 누운산이라 해서 와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4월 중순 쯤 서대구 IC를 지나다 보면 진분홍의 영산홍이 카펫처럼 깔려있어 빨갛게 불타오르는 듯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수놓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 서대구영업소 담장을 돌아 등산로로 올라가 정상에 올라서면 영천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금호강의 아름다운 모습과 대구의 병풍이라고 할 수 있는 팔공산을 마주 보며 찬란한 일출 풍경을 볼 수도 있다. 새벽 5 시경 부터 부지런함을 보여야 하지만 와룡산 영산홍 군락지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대구에서 유명한 편이다. 사람들에 따라 대구 앞산전망대 일출보다 더 멋있다고도 한다.
은퇴 후 6년간이나 가까운 와룡산을 찾아 등산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정상까지 힘들게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양지를 찾고,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 넓적한 바위를 찾아 정답게 얼굴 마주 보며 김밥이랑 간식을 먹으며 정을 나누곤 했는데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오르막은 숨이 차 힘들어 하는 모습에 산은 점점 멀어졌다. 남편은 애초에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국민)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고등학교 졸업까지 왕복 24Km의 영양 파시골산 높은 재을 넘나들자니 산은 보기도 싫다고 했지만 학교 근무 중 동료 교사 및 부부계원들과의 친교로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남편의 심장판막 이상으로 평지 길은 오랫동안 다녀도 운동으로 괜찮은데 산길처럼 오르락내리락 오르막길은 숨이 차서 등산을 할 수 없기에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서~~아파트 문화 공원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눈이 와도 조심조심 함께 할 것이다.
2017.5.14
첫댓글 대구에 살면서도 와룡산 한번 가보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맴돈 와룡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듯한 합니다.
운동도 하시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하시는 선생님이 부럽읍니다.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와룡산에서 들려오는 까치소리와 같은 잔잔한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자연을 벗삼아 아름다운 삶을 꾸려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곳곳에 도시공원이 조성되고 체육시설이 설치되면서 이용하는 시민이 늘고 있어 우리나라가 문화·체육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와룡산, 저도 수십번은 오르내린 산이고, 용머리부터 용미까지 일주도 해 보았습니다. 시내 가까운 곳에 이렇게 산과 함께 거닐 수 있는 대구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림 같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와룡산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많이 쌓았습니다. 대구에서 인근에 산이 있는 아파트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참 공기좋고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군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이 잘 묘사하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래 사신 동네이긴 하지만 이렇게 살뜰하게 주변을 알고 계시고 좋은 점을 맘껏 누리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기에 아름다움을 보실 수 있고 감사하는 마음 또한 큰 것 같습니다.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학군단시절 여름방학이면 50사단에 입소하여 와룡산 자락에서 고된 훈련을 받든 때가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그때는 와룡산 주변은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한곳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던군요. 추억이 떠오르는 글 잘 읽었습니다.
98년 퇴직후 자주 다녔던 와룡산입니다. 92년인가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한창 회자에 오를 때 그 곳에 가면 개구리 소년 이야기가 끝이 없었지요. 25년전 개구리 소년 살았다면 30 대 후반일 아이들. 영원한 미재 사건으로 남았지요. 아침에 나가 구석구석 다니던 길이 글속에 나와서 새롭습니다. 추억속에 지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와룡산. 용이 누어있는 모습의 산이군요. 마음만 있었지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산입니다. 글 을 읽으며 서둘러 한번 가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개됩니다. 산 주변을 잘 묘사해 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