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5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저희 마음이 산란하오니
만약 평화를 팔고 사는 가게를 보셨다면 평화를 사러 가시겠습니까? 담는 그릇은 얼마나 커야 할까요? 평화를 준다는 사람이 있다면 따라가시겠습니까? 평화를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줄 수 없다면 사기꾼이라고 하시겠습니까? 평화를 잠시만 맡아 달라고 하시면 맡아 주시겠습니까? 그 때 보관료는 얼마나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보관료를 지불하시겠습니까? 평화를 저울로 단다면 무게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평화의 부피를 잰다면 얼마나 클까요? 평화를 깨트리는 망치나 폭탄은 어떤 것이 가장 좋을까요? 남자가 평화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여자가 더 많이 가졌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평화를 아니 당신의 평화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줄 수 있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를 파는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평화입니다. 잠시만 맡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저울로도 달 수 없고, 크기도 측량할 수 없는 평화를 주시고 그 무엇으로도 깨트리고, 폭파시킬 수 없는 그런 평화를 남녀노소, 빈부, 유식 무식을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 평화는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답니다. 세상의 악으로부터 제자들을 지켜 주실 당신이 이제 잠시 후면 군사들에게 잡혀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슬픔으로 산산이 조각나듯 찢어질까봐 걱정이 태산 같으신 예수님의 고별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이별의 말씀은 "샬롬"입니다. 그 평화의 원천이신 당신 자신을 송두리 채 내 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를 해치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제자들이 슬픔으로 마음이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산란(散亂)이란 말은 슬픔이나 괴로움으로 마음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평화는 굳건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마음을 하나로 주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주님을 떠납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평화를 "언 발에 오줌 누듯" 세상 것에서 얻으려고 하고 임시방편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산답니다.
두 번째의 것은 바로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좌불안석(座不安席)이나 바늘방석과 같이 불안한 것입니다. 욕심으로 부풀어 오른 모든 기대 수준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봐 불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나 싸움터에서 상대방을 이겨야겠다는, 또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것이 평화를 깨트립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곧 부활하시고,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겠다는 말씀을 다시 들려주시면서 현성용(顯聖容)처럼 하느님의 본성을 제자들에게 되돌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왜 불안한가요? 그러면 우리는 지금 마음이 왜 산란한가요? 그 원인들이 예수님이나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없는 일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경우 바로 그 산란함과 두려움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 모르는 체 하고 살고 있지는 않나요? 모두 하느님 나라에 가고 싶어 하지만 지금 당장 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제 주님은 세상과 싸워서 영원한 승리를 쟁취하러 죽음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세상의 우두머리들에게 가시는 것이지만. 주님에 대하여 아무 권한도 없는 사람들이 하느님이신 주님을 심판하러 오지만, 주님은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잡혀가십니다.
죽으러 가는 이 판국에 평화를 주시겠다는 주님은 정말 이상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하느님과 당신 자신이심을 말씀하시며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리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얻게 되는 평화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의 것에 산란하고 두려워 겁을 내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산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다시 강조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