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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농작의 4대 원리/ 갈라디아서 6:7-1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_gx3TMyKdUA
이청준 작가가 쓴 ‘벌레이야기’가 이창동 감독에 의해 ‘밀양’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서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려고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살인범이 신애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도 없이 너무도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애에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죄를 다 용서해 주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때 주인공 신애는 하나님을 향해, 교회를 향해 오열을 쏟아냅니다. “내가 용서해 주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해 주었다고, 하나님이 용서해 주었다고, 나 그 하나님 믿지 않을 거야?” 이청준 작가는 이 책 제목 ‘벌레 이야기’가 말하듯이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이라고 교리를 입으로만 시인하고, 죄를 짓고도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으며 죄책감도 없는 인간을 벌레라고 꼬집은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인 중에 그 살인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독교를 오해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갈라디아서의 일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말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이신칭의의 심장이요, 종교개혁의 엔진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신칭의의 기초가 되는 갈라디아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 바울 사도는 믿음만으로, 은혜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있어야 진짜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잘못한 대가를 예수께서 치르셨기에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고, 그래서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리는 것들 중에 진짜 중요한 것들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우리가 심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농악놀이를 할 때 항상 크게 앞세우는 글귀가 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입니다. ‘농사짓는 것이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큰 뿌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농작의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씨로부터 번성하여 80억의 인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과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씨를 주셨고, 그것들이 열매 맺고, 또 열매 맺으며 역사가 흘러가면서 번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농작의 4대 원리를 나누겠습니다.
1. 파종의 원리
열매를 얻으려면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산에 가면 사람들이 “야호~~”하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야호~~”하고 외치면 곧 저쪽에서 “야호~~”하고 메아리가 돌아옵니다. 그때는 너도나도 산에 가면 그렇게 외쳤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산에 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야호~~”하고 외쳤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야호를 외치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실례를 범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도 제 옆에서 깜짝 놀라며 “왜 그래요”라고 하더군요. 인생에는 메아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마 7:12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대신관계도, 대인관계도, 대물관계도 심는 대로 거둡니다. 메아리의 법칙입니다. 이것이 일종의 파종의 원리입니다.
어느 봄날, 한 농부가 씨를 뿌리기 위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한참 밭을 갈고 있는데, 갑자기 숲속에서 노루 한 마리가 재빠르게 뛰어 나오더니 농부가 일하는 밭을 가로질러 뛰어갔습니다. 그러더니 그 노루가 밭둑에 서 있는 나무를 머리로 들이박은 후 죽었습니다. 농부는 뜻밖의 횡재를 만나, 그날 저녁 가족과 함께 노루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농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굳이 힘들이면서 밭갈이를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밭가는 것을 그만 두고 숲속에 몸을 숨긴 채 또 다른 노루가 달려와서 나무에다 머리를 박고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밭은 갈지 않고 노루가 달려와서 나무에 머리를 박고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농부는 날마다 그렇게 노루가 달려와서 나무에 머리를 박고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 농부는 그해에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습니다.
세상에는 이 어리석은 농부처럼 아무 것도 심지 않으면서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아니하고 하늘만 처다 보며 축복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입니다. 7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도 바울의 삶의 원리를 보여주는 말씀이 골 1:29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기본이었고,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고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기도하며 긴 장대를 구해 와서 하늘을 쳐다보며 힘들게 감을 땄던 것입니다.
예전에 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펌프를 사용했습니다. 펌프에서 물이 나오게 하려면 물 한 바가지를 부어넣어야 합니다. 그 물이 마중물입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부은 다음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땅속에 있는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옵니다. 만약 마중물을 붓지 않으면 백날 펌프질을 해도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농부들에게는 파종하는 씨앗이 마중물입니다. 마중물을 부어야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농부가 씨앗을 심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창 26:12,13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을 때 ‘백배나 거뒀다’는 부분과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라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결과는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라는 부분이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입니다. 이삭이 심지 않았다면 이삭은 아무것도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100배나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지만, 또 이삭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삭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을 때 하나님께서 거두게 해주십니다. 내가 심지 않으면 하나님은 거두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풍성한 거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처럼 땀을 흘리며 인생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진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가르쳐주는 잠언에서는 부지런히 살라고 말씀합니다. 잠 10:4입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됩니다. 반면에 부지런한 사람은 부하게 됩니다. 영적인 면도 그렇고 경제적인 면도 그렇습니다. 시 126:6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농부는 어떨 때 울며 씨를 뿌릴까요? 당장 먹을 것이 없지만 미래를 위해서 씨를 뿌리는 상황이거나, 몸이 너무나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할 때일 것입니다. 그 외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최선을 다해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씨앗의 원리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이것은 비단 농사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반드시 심어야 거둡니다. 그리고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래서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는 것일까요?
➀생각이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을 보신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느냐를 보신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이 말과 행동을 만들기 때문에 생각은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생각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생각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렘 6:19입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재앙을 당한 것은 그들이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을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의 재앙은 생각의 결과였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자기 자신의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습니다. A그룹 100명에게는 저녁에 잠들기 전에 각각 커피 세잔씩 마시게 했습니다. B그룹의 100명에게는 저녁에 잠들기 전에 마시면 잠이 잘 오는 우유 세잔씩 마시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커피 세잔씩 마신 사람들에게 어젯밤 잠을 편히 주무셨습니까? 물었더니 100명중 65명은 엎치락뒤치락 잠을 설쳤다고 했고, 100명중 18명은 간신히 잠이 들었다고 했으며, 17명은 날밤을 새웠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우유 세잔씩 마신 사람들은 모두 다 평안히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카페인은 커피가 아닌 우유 속에만 넣었습니다. 반대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커피를 마신 사람들은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마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유를 마신 사람들은 우유엔 카페인이 잔뜩 들어있었음에도 잠이 잘 오는 우유를 마셨으니 잠이 잘 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잠을 잘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게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➁말이 씨앗입니다.
약 3:4, 5입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배는 키로 방향을 결정합니다. 아무리 큰 배라도 키를 잡은 사람이 키를 움직이는 대로 배는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키를 오른 쪽으로 움직이면 배는 오른 쪽으로 갑니다. 키를 왼쪽으로 돌리면 배는 왼 쪽으로 갑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결정 됩니다. 누에는 입에서 나오는 300m의 실로 자기 몸을 감아 고치를 만들고 자기가 만든 고치 안에 갇힙니다. 사람도 자기가 한 말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말은 씨앗입니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씨를 뿌리면 나뿐 열매를 거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고, 긍정적인 말을 하시고, 잘 될 것을 말하시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말해야 합니다.
잠 18:20,21입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배부르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말한 대로 열매를 얻게 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습니다. 죽는 말을 하면 죽는 것이고, 사는 말을 하면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혀가 맺는 열매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에 힘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민 14:28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두고 맹세하셨습니다. 뭘 맹세하셨습니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우리가 말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말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말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서도 말이 중요합니다. 대인관계에서도 말은 심은 대로 돌아옵니다. 어느 부부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대판 싸웠습니다. 신호 대기를 하는데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본 남편이 “당신 집 식구들이 저기 있다.”라고 했습니다. 기분 나쁜 아내가 받아쳤습니다. 창문을 내리고 개에게 “시아버님, 나오셨습니까?”라고 인사했습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마땅히 멸망 받아야 할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죄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축복을 경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제과 사장 다케다 씨는 제과점의 왕으로 불리는데, 그는 자기 직원들에게 빵과 과자를 만들고 포장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3,000번 말하게 한답니다. 일할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감사의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제과가 일본 제과 시장의 60%를 점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입김을 시험관에 담고 거기에 모기를 넣으면 모기가 오래 오래 살았는데, 욕을 할 때 그 입김을 받아 시험관에 담고 모기를 넣으면 모기가 금방 죽었다고 합니다. 감사하면 공기도 복을 받고, 저주하면 공기도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니 감사가 얼마나 좋습니까? 무조건 감사해 보십시오. 인생이 달라집니다.
➂선행이 씨앗입니다.
9, 10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가 선을 행하지만 당장에는 좋은 열매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애들러(Alfred Adler)는 우울한 환자들에게 독특한 처방을 내리곤 했는데, 그건 다음과 같은 처방이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실천하십시오. 이 처방을 따르기만 하면, 당신은 2주 내에 당신의 우울증이 치료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엉뚱한 처방을 따랐던 사람들이 우울증에서 벗어나 다시 활력을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선행이 씨앗입니다.
➃기도가 씨앗입니다.
기도는 마치 저금통장에 돈이 쌓이듯이 쌓입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누리게 됩니다. 정말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린 기도를 기억하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사 38:5입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해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건강이 회복 되게 하셨고,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행 10:4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임에서 설교할 때 마치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임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셨습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말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기도가 씨앗입니다. 우리가 지금 기도의 씨앗을 심으면 언젠가 열매로 돌아옵니다. 잣나무를 심으면 때가 되면 열매를 나도 따먹고 내 자녀들도 따먹고 내 손주들도 따먹습니다. 왕하 8:19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유다 사람들은 다윗 한 사람 때문에 복을 누렸습니다. 다윗은 죽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유다가 범죄해도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의 복이 대대로 흘러갔던 것입니다. 기도의 열매도 이런 것입니다.
➄물질이 씨앗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물질과 헌금이 주제입니다. 대표적인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이 두 구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 숙제를 줍니다. 먼저 우리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중에 경제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분인데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가난하게 되신 이유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부요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기에 우리가 부요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대로 부요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두 번째 숙제는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돈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돈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돈이 붙습니다. 돈을 하찮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돈도 귀하고 남의 돈도 귀합니다. 남의 돈을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말고 남의 돈도 잘 대접해야 합니다. 돈을 귀하게 여기고 최대한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색하면 안 됩니다. 왜 인색하면 안 되느냐하면 돈이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일에 인색하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없듯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돈을 심는 일에 인색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고후 9:10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나님은 물질을 먹을 양식과 심을 씨앗으로 주셨습니다. 먹을 양식은 내가 사용하는 것이고 심을 씨앗은 심어야 합니다. 내가 물질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그 물질의 씨앗이 열매 맺게 하셔서 나를 풍성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 경제적으로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말씀을 깨달은 후부터 힘들고 어렵지만 물질의 씨앗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과 이웃에게 열심히 심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는 생활에도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심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를 주셨습니다. 제 사례비에 비해서 훨씬 풍성하게 살게 해주셨습니다.
물질을 심으면 물질로 거두기 때문에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심어야 합니다. 제가 월드비전 거마지회 총무입니다. 이번에 월드비전 거마지회 시무식에서 좋은 일을 하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심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몇 년 전에 지역의 교회가 힘을 모아서 잠비아에 수도시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도 힘을 모았습니다. 그 후에 지역 교회와 월드비전이 2억을 모아서 잠비아의 다 쓰러져가는 초등학교를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도 초등학교 신축을 위하여 501만원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월드비전에서 2년 동안 탄자니아의 어느 지역의 수도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기로 했습니다. 물탱크를 10개 만들어서 그 지역 모든 마을들에 파이프를 연결하고 수도시설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1개에 약 1천5백만 원 정도 소요되는데, 거마지역에서 2개를 맡기로 했습니다. 이 선한 일에 우리 교회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동전을 모으는 사랑의 빵을 추수감사절에 거두겠습니다. 목표 금액은 150만원입니다. 만약 사랑의 빵으로 모은 돈이 부족하면 나머지는 저희 가정에서 하겠습니다. 물질이 씨앗입니다.
➅복음 전파가 씨앗입니다.
복음전파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이진 사명입니다. 복음전파는 주님의 명령이고 부탁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닫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신자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영생을 받았습니다.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롬 1:14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우리도 빚진 자들입니다. 무슨 빚을 졌습니까? 사랑의 빚입니다. 복음의 빚입니다. 빚진 자는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므로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고,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140여 년 전에 선교사님들이 흑암 가운데 있던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열매를 누리고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생명을 바치고 눈물 흘린 대가로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왔고,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고, 그 결과 지금의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의 씨를 뿌리러 왔을 때, 이 나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지금 동남아의 국가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140여 년 전,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입니다. 대한민국은 복음의 빚을 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교회는 열방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사를 후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현장에 가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사역의 현장에 갈 수 없다면 기도로 후원하고 물질로 후원하며 빚을 갚아야 합니다.
3. 분량의 원리
고후 9:6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농작의 세 번째 원리는 분량의 원리입니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제과업자의 경험담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가난한 농부로부터 버터를 구입해 빵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하루는 버터를 유심히 보니 기준보다 양이 적은 것 같았습니다. 며칠 동안 일일이 버터를 저울에 달아보니 추측한 대로 양이 부족했습니다. 잔뜩 화가 난 그는 농부를 고소했습니다. 재판을 하던 중 놀라운 진술이 나왔습니다. 저울이 없었던 가난한 농부는 그 제과업자가 만들어 파는 1파운드짜리 빵 무게에 맞추어 버터를 만들어 납품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1파운드짜리 빵의 양을 줄여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빵을 줄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많이 주면 많이 거두게 되고, 적게 주면 적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주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거두게 하십니다. 한 일의 씨앗을 심으면 몇 십 배 혹은 몇 백배로 돌려받는 것이 농작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농작의 원리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게 하십다. 눅 6:38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우리가 주면 하나님은 돌려받게 하시는데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십니다.
4. 인내의 원리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 ‘때‘라는 말은 가장 확실한 때, 가장 완벽한 때를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배추씨를 심으면 적어도 두 달은 지나야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더덕 같은 것은 금년에 심으면 3~4년 후에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식물들은 수확할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씨앗을 심은 후 저녁에 거두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씨앗을 심고 나서 수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농부에게 필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는 때와 성실과 인내입니다. 농부는 성실하게 열심을 다하여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열매가 맺힐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쌀미(米)자는 여덟팔(八)와 열십(十)자 그리고 여덟팔(八)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농부가 논농사를 지으려면 봄부터 가을까지 농부의 손이 88번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농사는 절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수고와 인내가 없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적당한 햇빛과 비와 바람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이 88번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설교는 농작의 4대 원리를 나누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농작의 원리대로 사셔서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첫댓글 감사(2024.7.14.주일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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