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충성하는 달☜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冕旒冠)을 네게 주리라(계2:10)
계1:6-16절)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
요즘 우리들은 해리포터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나 소설을 통해 판타지 문학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 해리포터가 나왔을 때, 전 세계 어린이들이 얼마나 이 책을 좋아했는지, 게임을 하지 않고. 밤에 이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해리포터 그 다음 책이 나온다고 하면, 새벽 일찍 서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작가 조앤 롤랭은 책에서 볼트모트라는 악(惡)한 초능력자(超能力者)를 만들어서 그 어린 해리포터와 대결하게 하는데, 아이들은 도저히 긴장을 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는 볼트모트라는 대마 왕 외에도 수시로 악한 인물들을 동장시켜서 아이들과 대결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든 책입니다.
대개 판타지 문학의 특징이 선과 악의 세력(勢力)이 싸우는데, 선은 어린아이같이 약(弱)한 사람인 반면, 악의 세력은 불을 뿝는 용(龍)이라든지, 머리는 사자요, 독수리의 날개를 단 괴물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를 전후해서 약 백년 간 이런 판타지에 가까운 묵시문학이 많이 유행을 했습니다.
이런 판타지 문학의 특징은 비현실적인 공상적(空相) 요소가 강하고, 용(龍)이나 이상한 괴물(怪物)들이 선의 세력(勢力)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이런 묵시문학은 저자가 익명(匿名)으로 되어 있고, 허황(虛荒)된 내용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메시지 자체는 결코 허황(虛荒)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요한계시록을 읽은 우리들은 요한계시록이 무조건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판타지 문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판타지 문학답게 예수님도 머리가 희고, 옷이 희고,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용(龍)이 나오고, 바다에서 괴물(怪物)이 나와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대결을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판타지는 단순히 재미로 보여주는 공상(空相)소설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에도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하나님의 계획(計畫)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Ⅰ.그리스도인의 지위(상)
우리가 이 세상(世上)에서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이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世上) 사람들과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세상(世上)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노력해서 성공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 세상(世上) 사람들과 다른 목적(目的)을 위해 존재하는 자라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실패(失敗)한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1:5절 끝부분과 6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에 대한 모든 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지금 이 상태로 두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라는 것은 우리가 사탄(詐誕)에게 인질(人質)이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여행을 하다가 해적(海賊)이나 산적(山賊)을 만나면, 아무 이유 없이 붙들려서 인질(人質)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다가 마귀(魔鬼)에게 걸려서 모두 인질(人質)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귀(魔鬼)는 이 인질(人質)을 석방시켜 주는데, 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마귀(魔鬼)는 너무나도 악(惡)하게도 인질(人質)이 한 명 석방되는데, 다른 사람의 피를 요구했습니다. 즉, 한 사람을 살리려면, 다른 한 사람이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들은 영원히 죄에서 풀려 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우리의 지위(地位)는 근본적(根本的)으로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높은 지위(地位)에 있어도 여전히 마귀(魔鬼)의 인질(人質)이요,마귀(魔鬼)의 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魔鬼)에서 풀려나 자유인(自由人)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아니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제사장(祭司長)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1:6절)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나라로 삼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市民權)을 가진 자들입니다. 특히 이 당시 로마 시민권(市民權)을 가진 사람들은 대단한 특권(特權)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統治)를 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福)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혜택(惠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통치(統治)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깨닫고, 스스로 순종(順從)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順從)하면, 부흥(復興)이 오고, 축복(祝福)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福)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외국 명품 브랜드 매장이 들어옴으로써 외국에 가지 않아도 명품(名品)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福)을 그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祭司長)으로 삼으셨습니다. 제사장(祭司長)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재앙(災殃)이 오는 것은 인간들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심판(審判)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世上)의 도덕(道德)이나 윤리(倫理)는 모두 죄를 잠시 가리우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지, 근본적(根本的)으로 씻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禮拜)를 드리면, 하나님은 그 죄를 씻어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축복(祝福)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사람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옷만 바꾸거나 직장만 바뀐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 씻음을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世上)을 축복할 수 있는 권한(權限)이 있습니다. 교회(공동체)가 이 세상(世上)을 축복(祝福)해 주어야만 이 세상(世上)은 복(福)을 받습니다.
반대로 교회(공동체)가 이 세상(世上)을 저주(咀呪)하면, 이 세상(世上)이 복(福)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영적(靈的)인 부흥(復興)을 일으켜서 세상(世上)이 복(福)을 받게 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만을 위해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救援)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사장(祭司長)들입니다.
그 뿐 아니라, 제사장(祭司長)은 죄와 싸우는 자입니다. 세상(世上)에 전염병(傳染病)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어갈 때, 의사나 간호사들은 그 질병(疾病)과 싸워서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전염병(傳染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죄(罪)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와 싸워서 사람들을 살려내야 할 사명(使命)을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능력(能力)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찬양(讚揚)하고 있습니다. 즉 요한은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것은 예수님이 이 모든 일을 충분히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세상(世上)에 충성(忠誠)할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主)님이신 예수님에게만 충성(忠誠)하면 되는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다음 날 계속 ⇨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