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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씨앗과 같다. 씨앗속에는 생명의 비밀이 들어있다. 작은 깨씨 속에는 깨의 일생이 하나님의 글짜로 프로그램되어 있다.
말씀은 씨앗과 같다. 우리의 심령의 밭에 심어지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 열매를 맺는다. 참된 씨앗은 예수 그리스도 생애 자체이시다. 생명의 씨앗, 우리를 살리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오신 한 알 썩어진 밀알은 우리 주님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참 밀알이신 우리 주님의 희생으로 이 세상에는 생명의 밀알들로 가득하고, 그 밀알이 부수어지고 빻아져 우리의 생명의 떡이된다. 매일 먹는 우리의 양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이다.
1866년 8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만호가 대동강 유역에 나타나서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응하지 않자 대포를 쏘며 행패를 부린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평안감사 박규수는 유황과 건초더미를 가득 실은 작은 배들에 불을 붙여 셔만호에 충돌시켜 불태웠고 선원 24명은 전원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비극적인 배에 조선에 전도할 목적으로 승선했던 영국의 토마스(Robert G. Thomas) 목사가 타고 있었다.
그 때 토마스 선교사의 나이는 27세였다. 그 때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병사퇴교 박춘권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 사람을 죽인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들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할 때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 붉은 베를 입힌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고 권하였다.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않을 수가 없어서 받아왔노라"
또한 당시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목격한 최치량이라는 13세 된 소년이 토마스 선교사가 흘린 성경 3권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서양인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온 것이 무서워 다시 그 책을 평양성 대동문을 지키던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주게 된다. 박영식 역시 책의 내용은 두려웠으나, 당시 서양 종이(양지)는 질이 매우 좋고 귀했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소지하긴 무서웠던 그는 기발한(?) 생각을 해냅니다.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찢어서 자신이 운영하는 주막 방의 벽지와 천장지로 발라버린 것입니다. 글자가 안 보이게 뒤집어 바른 것도 아니고, 글자가 똑바로 보이게 사방을 도배했습니다.
성경책으로 도배된 이 방은 기이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주인 박영식은 방에 누우면 천장도 성경, 옆을 봐도 성경이었습니다. 박영식은 등잔불 밑에서 누워 지내며 벽에 적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같은 구절들을 매일 의도치 않게 읽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그의 마음에 박히면서 그는 결국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최치량의 회심: 성경을 전해줬던 최치량 역시 이 주막을 드나들며 벽에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아 회심하게 됩니다.
마포삼열 선교사의 매입: 1893년, 평양 선교를 개척하러 온 미국의 마포삼열(Samuel A. Moffett) 선교사가 평양에 집을 구하러 다니다가 이 최치량의 주막(구 박영식의 주막)을 방문하게 됩니다. 선교사는 방 안 가득 성경책으로 도배된 모습을 보고 전율을 느꼈고, 이 주막을 사들여 평양 최초의 예배처소인 ‘널다리골 예배당’을 세웁니다.
성경책 벽지로 도배되었던 그 주막 자리는 훗날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 중 하나인 평양 장대현교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1907년 한국 교회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영적 진원지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의 성경책 벽지 위에서 피어난 셈입니다.
후에 그 성경 중의 하나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읽혀지게 된다. 우리말 성경은 이렇게 순교자의 피로 이 땅에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성경은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다. 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민들레 홀씨 처럼 온 세상에 가득하다.
*글리(R. Glee) 박사는 성경을 다음과 같이 예찬하였다 "성경은 다른 어떤 책보다 뛰어나다. 마치 강물이 한 방울의 물보다 뛰어남같이, 태산이 한 줌의 모래보다 뛰어남같이, 성경은 순례자들의 얼굴을 시원케하는 샘물이 되고, 온세상의 성도들이 마음의 안식을 취하는 베개가 되고,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주며, 고통을 제하여 주며, 죽음의 독침을 제하여 주며, 무덤의 슬픔을 제하여 주며, 영원하고 확실한 소망을 안겨주는 책이다."
성경은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이다. 그런데 그 구약 39권중에 인봉된 책이 한 권이 있었다. 그 인봉된 책이 무엇이었을까? 계시록 10장에서는 그 작은 책이 인봉이 열리면서 일어나게 될 놀라운 일들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다. 한국교회를 진동시킨 성경 한권의 역사처럼, 세계 역사를 진동시킬 작은 두루마리에 대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
“[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계 10:1-4)
계시록 9장에서는 다섯째 여섯째 나팔을 통하여 동로마에 대한 심판이 나왔고, 계시록 11장 후반에서는 일곱째 나팔을 통하여 세상나라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사건이 나온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 11:15)
계시록 10장, 11장은 그 사이에 들어간 삽입구이다. 작은 책, 인봉되었던 책 다니엘서가 열리면서 잠든 세상을 깨우며, 주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강력한 재림기별의 전파와 재림운동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이다. 구약 39권중에 유일하게 때가이르지 않아서 인봉되었던 책은 다니엘서이다. 그 책이 드디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안에서 봉인이 해지되는 것이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단 12:9)
1800년대 성서공회들이 생겨나게 된다. 1804년 런던에서 최초의 성서공회가 조직되고, 1809년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1816년 미국성서공회 (American Bible Society, ABS )를 통해 미 대륙의 개척지를 중심으로 성경을 보급운동이 일어났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국의 성서공회가 발족되고, 드디어 다니엘서의 깊은 연구를 통해 그 작은 책의 비밀도 열리게 된다.
그 책이 드디어 열리는 것이다.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계 10:2-3)
일곱 우레처럼 큰 소리로 세계적인 대각성 운동들이 성서공회의 활동과 더불어, 말씀이 이해되고, 깨어쳐 지면서 일어나게 된다. 펼쳐져서 공개되고 세계적으로 전파되어야할 다니엘서 기별의 중대성과 그 능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19세기 초에 다니엘서의 연구와 함께 일어난 재림의 대각성 운동은 참으로 힘 있는 운동이었다. 그 당시 이 운동에 불을 붙인 대표적인 사람들의 활동을 소개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 매뉴얼 라쿤자 신부:다니엘서를 연구하여 남미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을 전파하였다.
- 에드워드 어빙:다니엘서를 연구하여 영국에서 재림 소식을 전파하였다. 영국 국교회의 700여명의 목회자들도 이 일에 가담하였다.
- 요한 벵겔:다니엘서를 연구하여 독일, 러시아, 프랑스,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증거하였다.
- 요셉 볼프:다니엘서를 연구하여 1821~1845년까지 아프리카, 이집트, 아비시니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페르시아, 인도, 미국 등을 여행하면서 재림기별을 전하였다.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8-10)
주님은 자신을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48)라고 선포하셨다. 떡을 먹고 소화하여 힘을 얻는 것처럼, 말씀을 받고 이해하고 깨닫는 경험을 먹는 다고 표현한다. 에스겔도 예레미야도 이렇게 설명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3:3)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10)
1800년대 미국, 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재림운동은 실로 엄청난 경험이었다. 이 세상 역사가 끝나고 그렇게 소망하던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의 나라가 시작된다는 재림의 소식은 실로 꿀처럼 달고 행복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다니엘서에 대한 이해는 재림운동으로 이어졌다. 독일에서는 요한 뱅겔,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어빙, 미국에서는 본래 침례교 신자였던 윌리엄 밀러 (William Miller, 1782~1849)의 재림운동과 규모는 단순한 '종교 소수파의 광풍'을 넘어, 미국 동부와 뉴잉글랜드 지방 전체를 뒤흔든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침례교 교도였던 윌리암 밀러라는 사람은, 특별히 예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그 동안 가려졌던 성경의 많은 비밀들을 밝혀냈다. 특히 다니엘서 8장과 9장에 나오는 2300주야에 관한 예언 해석을 하게 되었고. 그 마지막 결론을 예수의 재림으로 해석하였다.
▸윌리암 밀러의 착오:밀러 당시는 아직 성소에 대한 빛이 밝혀지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2300주야가 마치는 ‘성소의 정결’ 사건을 예수의 재림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2300주야의 예언 해석에 대한 전개가 너무도 분명하였기 때문에, 2300주야가 마쳐지는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믿음도 확고하였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윌리암 밀러가 2300주야에 대한 해석과 예수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1818년의 일이다. 그의 양심 속에 그 기별을 전하라는 소리가 있었으나,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의 성격 때문에 13년을 주저하고 있다가 1831년부터 예언에 근거한 예수 재림의 긴박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반응과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밀러의 가르침을 따라서 예수의 재림에 대한 열렬한 신앙을 고백하며 재림 운동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도처에 퍼져나갔다.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는 말씀을 성취되고 있었던 것이다.
1844년 5월 한 해에만 약 500만 부의 재림 관련 인쇄물이 발행되었으며, 1850년대까지 누적 1,000만 부 이상의 소책자와 전단지가 배포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최소 48개 이상의 재림 전문 잡지 및 신문이 발행되어 전국으로 유통되었습니다. 건물이 부족하여 거대한 이동식 대형 천막(Traveling Great Tent)을 제작해 전국을 순회했는데, 이 천막은 한 번에 4,000명에서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 미국 최대 규모의 천막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1844년의 실망과 성경 연구의 열기:열화와 같이 번져가며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동조하여 움직여가던 재림운동의 분위기는, 1844년 10월 22일, 예수의 재림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재림 신도들은 대실망을 경험하게 되었다. 입에서는 달았지만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그 쓴 맛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계 10:11)
대실망은 영원한 실망으로 끝날 것인가? 주님은 다시 오시지 않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랬듯 일점일획도 오차가 없다. 단지 인간의 이해의 부족과 조급함이 오해와 편견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대실망의 경험을 당한다. 제자들은 메시야의 초림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의 선생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야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크게 실망하여 모든 희망을 잃게 되었다.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눅 24:20-21)
구속의 역사가 실망으로 끝날 것인가? 결코 아니다. 곡해하고 있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구약에 기록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펼쳐서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다시 가르쳐 주셨고(눅 24:27,44,45), 그 예언을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된 제자들은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충성스럽고 신실한 증인들이 된 것이다. 오늘 우리도, 예언을 통해서 예수의 재림을 다시 한 번 확신하여 그분의 신실한 증인이 되는 영적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될 뿐이다. “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재림의 때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 세상을 진동시킬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의 재림의 소식을 다시 알려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그 빛으로 온 세상이 환하여 질 것이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계 18:1)
재림운동은 불발탄처럼 보였으나, 그 일을 인도하신 놀라운 섭리가 있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던 십자가가 사건이야 말로 가장 구체적이고 놀라운 희망의 절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대실망을 통하여 하늘 성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주님의 대제사장 사역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게 되었다.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히 8:1-2)
첫째, 각 교파와 교회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던 성경의 진리와 올바른 교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재림 운동은 초교파적으로 일어났다. 재림 운동의 후기에는 재림 운동에 동참하는 교인들이 각 교회로부터 출교당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각 교회의 출교자들이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초교파적으로 재림 운동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1844년 대실망 후, 많은 사람들이 재림 운동의 대열에서 이탈하였지만, 여전히 성경의 확실한 약속으로 남아 있는 예수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모여 성경을 깊이 연구하므로 흩어져 있던 진리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광범위한 영적 부흥과 각성 운동을 일으켰다. 중세 종교 암흑 시대를 지나면서 완전히 꺼져버린, 영적 부흥의 분위기를 살려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과 예언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면서 일어난 재림 운동의 결과 상당히 크고 넓은 규모의 영적 각성과 부흥의 운동이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보아 대단히 큰 역사를 이룬 것이 분명하다.
셋째, 성경 예언 해석의 올바른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미 반복 공부한 바와 같이 성경 예언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성소를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소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예언을 올바로 해석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1844년의 대실망을 토대로 하여 성소 진리가 밝혀지면서 예언에 대한 더욱 밝은 이해가 시작되었다.
1844년 10월 22일 대실망 후, 뉴욕 주 포트깁슨 지역의 지도자였던 하이람 에드슨(감리교회 목사)이 실망한 무리를 위로하기 위하여 옥수수 밭을 지나가던 중에 하늘 성소에 대한 비전을 보게 되었다. 이 비전을 통해서 하이람 에드슨은, 성소가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의 재림이 아니라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지성소 봉사, 즉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성소에 대한 새로운 빛이 나타나면서, 실망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예언에 대한 새로운 빛을 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해석될 수 있다.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계 10:5-6)
“지체하지 아니하리니”의 난하주에는 1)또는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의 의미는 2300주야 이후로는 시간에 대한 예언은 다시 없을 것이니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언제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가지고 살아가야할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이다. 시기와 징조,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건의 중심, 복음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시선을 고정시키고 주님을 닮아가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https://youtu.be/_3A5-89pY9s?list=RD_3A5-89pY9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