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斷食)의 의미
단식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기간에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아니함이다. 그러나 건강상 다이어트를 이유로 단식할 수도 있고, 어떤 목적을 위해 항거하거나 투쟁의 의미로 단식을 하기도 한다. 또한 종교적인 의례에서 행해지기도 하며 음식을 절약하여 먹는 절식(節食)의 의미이다.
옛 관습으로 종교적 전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교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한 달을 코란을 읽고 금식하며 기도한다. 또 가톨릭교는 사순 시기에 단식을 권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단식과 절제, 기도, 자선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와 정화의 시기이다. 한 끼의 식사를 줄여 그것으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것이다.
단식은 육적인 단식과 영적인 단식이 있다. 육적인 단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지만, 오늘날에 영적인 단식을 권하고 있다. 영적인 단식은 과학과 물질의 만능시대에 자기의 능력과 뜻의 삶에서 물질적 유혹과 이기적 욕심의 고리를 끊고 하느님의 삶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 자유롭고 편하면 그 길에 젖어 신의 존재를 잊으며 산다. 그러나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면 그제야 신을 의식하여 찾으며 돌아선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생적으로 천주교 신앙이 태동하긴 했지만, 선교지 신앙으로 선교사에 의해서 신앙이 전파되었다. 유럽은 국가가 종교를 받아들여 그들의 삶 자체가 신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상 삶과 신앙의 삶이 분리되어 있다.
내 안에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으면 그는 신앙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법에 얽매여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져 신을 등지는 참 어처구니없는 행위이다. 법은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앙관이 바뀌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 되어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었다. 자유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호소하며 책임과 의무를 의식하라는 것이다.
주일을 빠짐없이 지키는 신자가 20% 미만이라고 한다. 나머지 80%가 주일미사를 거르는 형편이다. 몇 번 거르다 보면 스스로 쉬는 교우로 인식하여 교회의 우리를 떠난다. 주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오히려 신앙의 기쁨을 앗아가고 있다. 그런 ‘오직’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워지고 신앙의 기쁨을 얻는다.
오늘날 교회의 사목은 우리 안의 순한 양을 돌보는 것보다 길 잃은 양을 찾는 것이 더 시급하고 올바른 일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순 시기에 기도하고 자선을 베푸는 일도 중요하지만, 길 잃고 헤매는 양들을 돌보아 우리 안으로 인도하는 일도 단식의 또 다른 상징적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