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3월3일(금)■
(누가복음 24장)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묵상/눅 24:13-35)
◆ 엠마오로 가는 제자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당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에 열한 제자를 비롯한 상당수의 제자가 한곳에 모여있었던 듯하다. 그들은 깊은 상심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안식일이 끝나고 아침에 여자들이 가져온 부활 소식에 한바탕 소동이 났지만, 변화한 것은 없었다. 결국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흩어졌다. 그중에 둘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이 둘은 열한 제자에 속한 자들이 아닌 듯하다. 그중에 하나의 이름이 '글로바'였고(18). 33절도 그런 추측을 하게 한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이들에게 접근해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주님께서 잠시 눈을 어둡게 하셨기 때문이다(31).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묻자 이들은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다.
슬픈 빛을 띠었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이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고 있으며, 아침에 들어온 부활 소식을 아직 믿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과 예수님에 관해서 설명했다.
'나사렛 예수는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다. 이분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선지자는 분명했지만,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실 그리스도는 아니었음에 실망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지금 시점이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라고 했는데,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트리토스'는 영어의 third에 해당한다. 즉 제 삼일이라는 의미다. 즉 이날이 주일임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는 10km정도(60스다디온.25리)된다.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 안걸린다. 그런데 엠마오에 가까이 와서는 날이 저물었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난 시간은 주일 오후 3시 넘어서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부활의 당위성을 설명하셨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제자들에게 속히 나타나시지 않고 이렇게 주변 사람들만 계속 만나실까?
무덤에 찾아온 여자들에게는 천사들을 통해 말씀만 하시고 직접 보이지는 않으셨다. 오직 남아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만 직접 만나주셨다.
여자들의 말을 듣고 무덤에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빈 무덤만 확인시키셨다. 34절에서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보이셨다는 말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빈 무덤을 확인하고 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주님께서는 왜 아침 일찍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을 알리지 않으셨을까? 이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믿음을 교훈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 더디 믿는 자들이여
예수님은 이들을 책망하셨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에서 자기에 관한 것을 설명하셨다. 거기에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특히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지 않으셨던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머리가 환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몰랐던 지식이 아니라, 알았던 지식임에도 믿지 않음으로써 망각 속에 묻혔다.
우리도 그렇다. 무수한 성경 공부와 설교와 글들을 접하지만, 그냥 참고 사항이었을 뿐 정말로 믿지는 않는다. 집회가 끝나자 어떤 형제가 와서 오늘 메시지에서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 십 년이 넘도록 수십 번 했던 내용이다. 세상에!
우리는 정말로 끔찍할 정도로 '더디 믿는 자'들이다. 성경에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마치 한글을 모르는 문맹인처럼 해독하지 못한다.
복음을 깨달은 형제들이 가끔 이렇게 한탄하는 것을 듣는다.
'성경에 이렇게 명확하게 쓰여 있는 것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요?'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안 믿었던 것이다. 자기의 편협한 상식의 틀에 성경을 욱여넣고 읽으니 제대로 해석되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간단히 테스트해보자.
성경에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심'을 입은 자(엡 1:4)라고 한다. 믿어지는가?
나는 최근에 이 말씀이 믿어진다. 그리고 믿기로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존귀한 자로 부르셨는지 느껴져서 감격한다. 내 주변의 형제들도 모두 창세 전에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생각하니,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형제들도 모두 존귀한 자로 바뀐다.
우리는 말씀을 믿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내 상황, 환경,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간증을 더 신뢰한다. 정말 더디 믿는 자들이다.
주님,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천천히 나타나신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교훈하고자 하심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주님께서는 여러 사건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 자인가를 일깨우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꼭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봐야 믿겠다고 하는 태도나 혹은 믿어져야 믿겠다는 그런 잘못된 믿음의 태도를 벗어버리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예수님께서 떡을 떼실 때 엠마오 제자들이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자, 예수님은 즉시 사라지셨다. 이들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일어나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이들은 엠마오로 가면 안되었다.
아마도 이들을 만나주신 것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하실 의도셨던 것 같다.
믿음이 없어서 흩어지는 자들을 만나주시고, 다시 세우시고 모으시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이 밤늦은 시간에 예루살렘에 다시 도착하니 제자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고, 주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있었다. 엠마오에서 돌아온 이 제자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마침내 나타나셨다. 이것에 대해서는 내일 다룰 것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충격받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날은 그리스도인들의 첫 주일이면서 떨릴 정도로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삶이 바뀌는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면 바뀐다. 예수님을 바라볼수록 그를 닮아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율법적인 삶에 더 몰두한다. 그러니 겉으로는 대단해 보여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알기에 힘쓰자. 예수님을 마음에 품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는즉 무법 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7,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