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가 전여옥의원이 박근혜님에 대해 비판한 글이라는데 전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거든요. 안 읽어보신분은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올립니다.
읽기전에.ㅡ.ㅡ 무지 깁니다.
박근혜 인기의 비결- 왜 남자들은 그녀를 좋아하는가?
누구보다 대한민국 여성대통령이 나오길 고대하고 있는 나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박근혜인가?' 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중학교 때 '10월 유신'을 맞은 나는 이른바 '박정희 독재'의 폐해를 오감으로 느끼며 예민한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대학 시절, 동포와 두려움에 떠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암울한 대학생이었다. 내가 아는 똑똑한 친구들이 반정부주의자로 끌려가 반병신이 되어 나오는 것을 수도 없이 봤다.
박정희 대통령을 다나까 가꾸에이처럼 '공도 과도 많았던 인물'이라고 표현하기엔 나의 상처는 너무나 컸다. '하필이면 왜 그 박정희의 딸 박근혜인가?' 나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가장 근접한 여성정치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에는 <박근혜가 정몽준을 만날 때>라는 제목을 단 책부터 '박근혜 대권 시나리오'를 다룬 책들이 수도 없이 나와 있다.
나는 그 책들이 음모와 술수와 협잡으로 밥을 먹고사는 정치권에서 잔머리 굴려 만든 시나리오거나 삼류저널용에 불과하리라 어림짐작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박근혜가…'로 시작되는 이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삼겹살이 고추장을 만났을 때'등등의 음식점 간판 못잖은 '현실성'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어쨌든 한나라당에서 박근혜는 이회창 다음의 대통령후보로 꼽히고 있고, 당의 '부총재'라는, 재선의원으로서는 드물게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 누구도 박근혜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녀의 발언은 반드시 기사거리가 되며 그녀가 누구를 만났는가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 어쨌든 그녀는 정치인으로 성공했다. 단순히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배경만 가지고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이뤘다.
게다가 사람들은 박근혜를 좋아한다. 몇 년 전 한나라당에서 일했던 한 여성은 '일단 박근혜가 오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박근혜 신드롬을 이야기했다. 그 여성은 "특히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정치인은 박근혜밖에 없을 걸요. 어떻게 생각히세요?"라고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 역시 한말씀 해야 할 분위기여서 "일종의 '성처녀 선망'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더니 "맞아요. 정말이에요. 남자들은 마치 성모마리아를 보듯, 입을 벌리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박근혜를 올려다봐요"라고 말했다.
무공해의 '성처녀'앞에 수줍은 털 없는 원숭이인 소년들
실제로 나 역시 그런 현장을 경험했다. 1994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대구방송에서 진행하던 이야기쇼의 손님으로 그녀가 초대됐다. 그 프로그램은 이 방송사의 간판이었으므로 거물급도 꽤 나왔고 실세도 있었다. 당시 박근혜는 가끔, 드물게 언론에 움직임이 포착되는 '은둔하다시피 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다. 대구지역의 독특한 정서 탓인지 방송사 쪽에서는 박근혜를 몇 달 전부터 모시고 싶어했다. 수많은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뒤에 마침내 그녀가 방송국에 나타났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척하는 방송사의 고위간부들이 일제히 내려와 그녀를 맞이했다. 게다가 아무리 엄청난 게스트라도 녹화를 빙자해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게 만드는 방송국이건만 그 날만은 방송국에서 한 20여분은 떨어진 고급 한정식집으로 예약까지 해 둔 것이었다. 그리고 녹화 때 코끝도 보이지 않던 높은 양반들이 같이 모시고 밥 먹겠다고 한정식집까지 따라왔다.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특별히 박근혜와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앉기만 해도 좋다는 표정으로 너무도 겸손하고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나하고 밥 먹을 때는 설렁탕 한 그릇을 '크-허-후루룩 쩝쩝. 캬-시원하다'라며 온갖 소음을 내며 먹어 나의 왕성한 식욕을 떨어뜨렸던 그들이 - 물론 나의 선배들이다 - 혹시 귀에 거슬리는 소리라도 낼까봐 노심초사하며 오물오물 새모이 씹듯 조용히 먹는 것이었다. 그것도 몹시 수줍어하면서. 나는 주인공 박근혜보다 그 남자들의 반응이 너무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십여 년 넘게 방송계에서 내가 알고 보던 인간들이 아니었다.
박근혜는 그런 남자들의 처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마치 왕녀처럼. 그리고 가끔 우아하고 격조 있게 미소지었다. 그녀가 미소지을 때마다 나는 남자들의, 그것도 40을 넘긴 남자들의 소년처럼 붉어지는 빰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설레임도 놓치지 않았다.
박근혜의 첫 인상은 우선 아주 깨끗하다. 마치 무공해 인간을 보는 듯했다. 오랜 유행가의 한 구절처럼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동자'였다. 인상깊은 것은 그 눈동자가 다른 사람을 꿰뚫는 것 같다는 것. 혹은, 지나치게 빛이 난다기보다는 영롱하게 빛나는 눈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음식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굳이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가 분명하다. 동물이다. 동물로서 사람을 이해하면 착오가 없다. 개화된 척, 점잖은 척해도 그 사람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하게-프랑스의 여배우 잔느 모로는 사람을 가장 확실하게 아는 수단은 바로 '섹스'라고 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만나는 모든 남자와 섹스할 수도 없고 여자는 더구나 그렇다. 나 같은 이성애자로서는- 그래도 나는 차선책으로 사람들의 밥 먹는 모습을 아주 유심히 세세히 치밀하게 살펴본다.
왕성한 호기심과 탐험정신 - 박근혜는 겉모습과 아주 달랐다. 지금도 박근혜가 밥 먹는 모습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일단 그녀는 한 상 가득 차려진 한정식을 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은 '맛있겠네요'가 아니라 '예쁘네요'였다. 눈으로 먹는 다는 일본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항상 '맛과 양'에 집착하는 실속파였다. 그러나 그녀는 음식을 담음새, 모양새를 칭찬했다. 그래서 나는 '먹는 데 관심이 없나봐. 진짜 공준가 봐'라고 어림짐작했다. 물론 주위의 남자들은 그녀의 발언에 상기되었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가 거의 모든 반찬을 조금씩 맛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자동물들은 일단 시장기를 해결하며 황공해하며 밥 먹기에 열중했다. 그새 박근혜가 수십가지 반찬들을 하나하나 조금씩 표 안 나게 맛을 보는 것이었다. 그때 박근혜와 동행한 나이 지긋한 두 여성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 두 여성은 마치 조선시대 상궁처럼 그녀를 모셨고 하나하나 반찬을 맛보도록 조용히 접시들을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나는 박근혜가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의욕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음식에 대한 사람의 욕망은 곧 일과 성취 나아가 권력의 욕구와 연결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예쁘네요'라는 그녀의 말을 재해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미식가였다. 원래 '미식'이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미적 활동이다. 아름다운 것을 먹어서, 자신의 몸으로 집어넣어, '체화'시키는 것이므로.
나는 그녀가 겉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여자라고 결론지었다. 남자들은 '예쁘네요'라는 그녀의 초기발언에 현혹되어 '왜 그렇게 음식을 안 드시냐'고 안타까워했다. 한 술 더 떠 "우리 전여옥씨는 식욕 하나는 끝내주죠?"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야말로 박근혜를 관찰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건만, 남자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상을 물리고 차와 과일이 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맛본 그녀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로서도 한참 물이 간 식인종시리즈 농담까지 했다. 식인종 아들이 친구와 싸우니까 아빠가 '아들아, 먹는 것에 자꾸 손대는 게 아니란다'라고 말했다는 농담을 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하던 해묵은 농담을 했음에도 남자들은 우스워죽겠다며 데굴데굴 굴렀다. 그들은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웃었을 것이다. 마치 수녀님의 어쩌다 하는 우스개에 신자들이 턱없이 재밌어하듯이.
'정치 좀 하시지요' VS '그럼 도와주실래요?'
인터뷰에서 박근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또한 육영수 여사가 운명을 달리 한 뒤 자신이 '퍼스트레이디'로서 일했던 때를 강조했다. 박근혜는 그 시절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각국 정성의 부인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들도 빼놓지 않았다.
박근혜는 대충 5년을 '퍼스트레이디'로 청와대에 있었다. 사실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부인'이나 동반자일뿐 공식적인 정부의 직책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라도 그 자리가 그 어느 실력자보다도 '쎈'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박근혜야말로 그 어떤 여자보다도 권력의 꿀맛을 알 것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그녀는 권력이 무엇인지 실체를 알 것이다. 꿀맛뿐 아니라 결국은 부모를 '권력'이라는 이유로 가슴 아프게 잃었던 만큼 '권력의 쓰라림, 비정함, 두려움'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다른 여성들이 갖기 어려운 '권력체험'을 그녀는 자산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억압했던 아시아에서 정치 권력을 잡은 여성들은 공통점이 있다. 남편 혹은 아버지의 뒤를 잇거나 후광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정치가 '나 홀로' 또는 '날아온 돌'의 세계가 아닌 마당에 굳이 그런 여성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박근혜도?
정치판의 치어리더나 당원들 커피 타주는 다방 레지형이 아니라 제대로 힘을 행사할 여성 정치인이 나오기를 열망했던 나는 박근혜의 가능성을 계산했다. 당시, 불과 7년 전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은 여전히 '독재자'로서 기억될 뿐이었다. 또한 비명에 간 부모를 둔 대통령의 아들딸들은 오로지 '동정'의 대상일 뿐 결코 '기대'나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박근혜 역시 마치 수도원의 수녀처럼, 은둔자로서 비춰질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를 보고 가능성을 보았다. 모든 접시의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그녀의 왕성한 탐구심, 그러면서도 사람을, 특히 남자를 소리없이, 벨벳처럼 장악하는 리더십도 보았다. 그 본질이 어떻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클린턴이나 케네디가 섹시함으로 많은 표를 얻었듯 '박근혜의 처녀성' 역시 정치적 상품성이 분명 있을 터였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훈련된 '품격' 역시 있었다.
나는 그녀처럼 넌지시, 은근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치를 하시면 어떠세요?"라고. 그러자 그녀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도와주실래요?" 나는 놀랐다. 이렇게 단박에, 단칼에 자신의 정치입문을 인정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격수가 되다가 갑자기 허를 찔러 수비수로 허겁지겁 나선 기분이었다. 나는 "여성들이 이제 여성들에게 표를 던질 시댑니다"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녀와의 첫 인터뷰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않는 데다가 공자님 말씀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박근혜 출연' 그 자체로 모두 만족해 했고 이상할 정도로 시청률도 높았다. 인터뷰어로서 나는 '원, 세상에' 했다. 하지만 난 언젠가는 아니 가까운 시일 안에 그녀가 '정계입문'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눈부신 정치적 약진과 성공- 그녀 자신이 이룬 모든 것
박근혜는 15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득표율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혜성이니, 정치계의 신데렐라니 하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은 정치인인 그녀에게 아주 오래전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만 사람들이 그녀가 돌아왔다고 여긴다는 것에 은근히 놀랐다. 그리고 그녀는 초선의원으로서 부총재가 되었다.
이 세상에 '부'자가 붙은 것 중에 쓸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 부총재'는 달랐다. 정치부 기자들은 그녀를 한나라당의 막강한 권력자 이회창 총재의 '입안의 가시'라고 줄곧 표현했다. 그녀의 정계 입문 때는 '전국구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건만 이제 그녀는 우리 나라 제 1야당에서 '70%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이회창 총재의 맞수로서 키와 몸무게를 불린 것이다.
나의 예상을 웃도는 성공이었다. 나는 그녀를 도와준 바는 전혀 없으나 항상 박근혜가 궁금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한 번 인터뷰를 해보리라 생각했다. 또한 대선주자로서 '태풍의 눈' '주요변수'로 평가받는 박근혜의 생각을 살펴보고 싶었다. 7년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의원회관 545호실에서 만난 박근혜는 여전했다. 짙은 카키색에 스타치를 박은 단정한 투피스 차림에 아무런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연상케 하는 머리스타일, 그리고 엷은 화장,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가녀리고 곱고 우아하고 깨끗했다. 다만 세월은 비껴가지 못한 듯 가까이 본 그녀의 머리에 몇 가닥 흰 머리카락이 비쳤다. 그러나 결코 늙고 초라하지 않았다. 남자의 흰머리만이 지혜를, 남자의 굵게 패인 주름살만이 연륜을 상징하는 시대는 지났다. 나름대로 독자적 권력을 쥔 박근혜의 흰머리와 잔잔한 주름은 '성처녀'같던 7년 전의 불안함이 아니라 한몫을 하는 '정치인'으로서 묘한 안정감으로 나타났다.
먼저 정치인으로서 눈부신 성공을 축하했다. 그녀 역시 기쁘게 인사를 받았다. 많은 기자들이 언급했듯 박근혜의 의원사무실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정작 국회의원 박근혜 자신의 사진은 없었다. 나는 자신의 사진을 걸어놓는 날이 바로 정치인으로서 박근혜가 부모로부터 '자립'하는 날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머지는 몹시 수수했다. 컴퓨터가 놓였고 따로 컴퓨터용 하얀 나무의자가 있었다. '자주 컴퓨터를 사용하는구나' 생각했다.
하기는 박근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이학도다. 그 당시 전자공학과는 최고의 인기학과였다. 박근혜와 함께 서강대학교를 다닌 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엄청난 반골이었지만 그녀가 매우 뛰어난, 성품 역시 괜찮은 친구라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이학도로서 과학기술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핀란드는 활동인구의 76%가 이공계 출신이죠, 중국도 핵심 정치지도자들이 이공계 출신이잖습니까?" 그녀의 말은 박근혜의 꿈이 크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얼마 전 한 시사월간지 인터뷰를 보니 재밌던데요. 대권 도전의사를 그 기자는 줄기차게 묻고, 박의원은 '글쎄, 아니라니까요' '왜 그러세요' '잘 모르죠'하며 계속 부인하고. 두 사람 다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저 같으면 그 자리에서 '그래요. 나갈 거예요'라고 얼른 대답했을 텐데요." 남의 일이나 나도 쉽게 말했다. "글세, 자꾸 묻고 또 묻고…정치인은 참 조심스럽죠. 잘못하면 그런 뜻도 아닌데 잘못 전달돼 여파가 상상도 못할 만큼 커지기도 하고, 정말 험악한 곳이죠. 한편으로는 모든 게 다 국민 뜻 아닌가요?"
능숙한 정치적 수사를 구사하는 훈련 잘 된 정치인
박근혜는 매우 훈련이 잘 된 정치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렇게 살얼음 판 디디듯 조심하다가도 '정치적 수사' 즉 정치적 어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자신이 뱉은 말의 뒷감당을 못해 위기를 맞는다. 특히 '순진한' 여성들이 그런 실수(?)를 한다. 그러나 박근혜는 아마도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도 '정치적 수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인물일 것이다.
박근혜가 하는 말은 일관성이 있다는 정치부기자들의 평은 그녀가 확고한 정치관을 갖고 있다는 말인 동시에 여로모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둘기 같은 가녀린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뱀처럼 지혜롭다. 인터뷰 내내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내 나름대로 직접화법으로 해석했다.
질문 1: 여자들은 의외로 언급하지 않는데, 정치권 쪽 남자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아본 여성이 어떻게 큰 일을 하냐고 하는 것을 들었어요.
박근혜: (가만히 웃으며) 그래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봐요. 엘리자베스 1세도 국가와 결혼했다고 했잖아요. 내가 만약 결혼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스케줄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싶어요. 독신이니까 가능한 거죠
전여옥: (남자들은 뭐 아이 낳아 봤나 하는 이야기군. 존경하는 인물을 엘리자베스 1세라고 한 적이 있는데 여성 정치인은 결혼하면 오히려 온몸을 던져 일할 수는 없다는 말이군.)
질문 2: 벌써 2선 의원이죠. 의정활동 같이하면서 저 의원 참 일 잘한다 하는 분 있겠죠. 좋은 일이니 실명으로 밝히셔도 될텐데 누굽니까?
박근혜: (역시 미소지으며) 물론, 있지요. 하지만 굳이 이름 밝히기가… 참 훌륭한 분이 계시지요.
전여옥: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뜻은 수많은 선배 남자 국회의원들이 박근혜 의원이 나를 일 잘하는 오빠로 마음에 두었을지도 몰라하는 착각을 하도록 두려는 의도 아닐까? 적도 친구도 만들지 않겠다는 정치적 고단수.)
질문 3: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말이죠. '소모직'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어요. 공부할 시간도 없이 그저 방전만 된다는 말이지요. 조찬·오찬·만찬에 매일이 그저 파티에 잔치나 벌인다 하는 비난도 있고, 그런 생각은 안 드세요?
박근혜: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활동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다 충전이 되고 지식이 되거든요.
전여옥: (훌륭한 답변이네. 남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도 되고, 또 많은 것이 준비된 사람이라는 강렬한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고.)
질문 4: 일본의 다나까 마끼꼬 외무장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있고 튀는 행동도 과감히 하고, 장래 총리감으로 가장 유력하다는데요.
박근혜: 긍적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일본국민의 호응도 큰 것 같아요. 국민의 의사를 대신할 수 있는 비중 있는 여성정치인이란 흔치 않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전여옥: (아직 갈 길이 먼 정치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화끈하게 말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다나까 마끼꼬를 설익은 정치인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질문 5: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을 빼고 한국사회에서 존경하는 정치인 있나요?
박근혜: (잠시 침묵 후) 글쎄요…
전여옥: (단 한 명도 없다는 확실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런 박근혜식 어법을 정치적 수사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녀는 말했다. "어머니는 언어예절을 강조하셨어요. 항상 존칭어 쓰는 것을 가르쳤고 그래서 저는 아직도 할머니가 야단치셨다라는 말을 못해요. 대신 할머니가 걱정하셨다라고 이야기하지요."
특별하게, 너무도 특별하게 살아온 박근혜의 삶, 특히 20년
그래서일까? 자신의 삶에 대한 표현 역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 당한 10.26이후 정치인으로 출발하기까지 2O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조용히 살았다.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너무도 사랑했던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비명에 잃은 박근혜로서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는 '온 가족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희생양이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에 동감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제가 순탄하게 살아오지 않았느냐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정말로 힘들었어요.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도 겪지 않았을텐데 생각했지요."
그녀는 그 시절을 이렇게 잔잔하게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표현 대신에 확실하게 '그냥 캭 죽고 싶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너무나 젊은 나이에 그 엄청난 충격과 사람들의 쓰라린 배신을 겪으면서 그녀는 고통 속에서 눈을 뜬다.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내가 생명을 부여받은 것을 감사하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어요. 그때 식물원을 참 많이 찾아다녔지요."
그녀는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거리를 혼자 다니면 화장품코너 아가씨를 붙들며 '메이컵 해보고 가라'고 할 정도였다. 혼자서 많은 곳을 다녔다. 그 20년의 세월을 박근혜는 "다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힘겨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헤매지 않고 바르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추스렸다. 주어진 운명에 끝까지 바르고 지혜롭게 대처하고자 다짐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찾아오는 분노, 실망, 무기력함, 이 모든 것이 가혹한 운명에 대한 '비애'를 느끼게 했다. 휩쓸리면 운명에 질 것이다. 운명과 싸우자고 다짐했던 시간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냐는 물음에 그녀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낮고 확고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38선은 괜찮은가?'를 생각했다
그 20년 동안 그녀는 외국에도 나가지 않았다. 잊혀진 권력자의 자녀들 대부분이 도피 겸 견제 겸 '자의반 타의반' 유학을 가는게 보통이지만 그녀는 줄곧 한국에 있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버지 기념사업, 기념관 짓는 문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 잡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왜 이 땅을 떠나지 않았을까? 아마도 도저히 떠날 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박근혜는 아버지의 사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 단체장을 맡고 있었고 문인협회 회원이 되어 서너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는 될 수 없었다. 박근혜는 이미 한 자연인, 한 사람의 여성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
그녀 스스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랏일'을 했다고 표현했다. 퍼스트 레이디로서 보낸 5년이라는 시간을 박근혜는 그렇게 표현했다.
"저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께 여론전달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녁 식사시간에 아버지께 말씀드리곤 했지요" "아버지께서 박 의원의 말을 받아들이셨나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 받아주시니까 제가 말씀을 드린 거죠."
그녀의 말은 자신이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시사한다. 그녀는 5년 동안 한국현대사에 너무도 많은 것을 남긴 정치인 박정희를 벤치마킹한 셈이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국익을 위해서라는 아버님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요. 청와대에 있으면서 어느 특정한 지방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생각했지요.'
이어 그녀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3.8선은 괜찮은가? 였어요" 아버지가 저격 당한 그 와중에 '3.8선은 괜찮은가'를 걱정했다니 "정말요?"라고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짧고 단호한 그녀의 답이 되돌아왔다. "네, 그럼요"
박근혜는 자신의 정치 입문 역시 이렇게 설명했다. "IMF위기 속에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을 때 너무나 기가 막히고 절망적이었죠. 아버지가 그렇게 애쓴 나라인데 하는 생각에 거리를 걷다가도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어요." 무슨 일에나 다 때가 있고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데 지금 용기를 내지 못해 나서지 않는다면, 훗날 엄청난 후회를 할 것 같아 별다른 준비 없이 선거전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맏딸을 특별히 사랑한 어머니 '내가 남자라면 근혜와 결혼하고 싶어'
아버지의 죽음, 그 순간에도 3.8선을 걱정한 그녀지만 어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인 듯했다. 모든 엄마들에게 맏이는 특별하지 않은가? 더구나 맏딸은 친구이며 자신의 거울이며 절절한 자신의 자화상이다. 언젠가 박근혜는 인터뷰에서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어머니'라고 답했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박근혜를 보면 사람들은 훌륭한 이미지 메이커였던 육영수 여사를 떠올린다. 대중적 지지도나 이미지 전달 면에서 육영수 여사는 성공한 퍼스트레이디였다.
"아직도 어머니가 그립죠. 어머니와 저는 대화를 할 기회가 많았어요. 청와대에 있을 때 수업이 없으면 아침도, 점심도 어머니와 함께 할 때가 많았어요. 어머니는 뭔가 짚이는 게 있으셨는지 제게 자립심을 길러주려고 애쓰셨죠. 예를 들면 어딜 가도 네가 직접 전화해 보고 가라. 버스 타고 가봐라 하는 식으로요."
"솔직히 자식도 다 같지 않잖아요. 박근혜 의원이 어머니께서 가장 사랑한 자식이었나요?" "뭐, 아들도 있었고…. 글쎄,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이러셨죠. '근혜가 남자라면 난 근혜랑 결혼하고 싶어'라고요(웃음). 어머니는 성실한 사람을 제일 좋아하셨지요."
많은 이들이 바로 그녀를 보고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떠올린다. 게다가 그녀의 모습은 어머니를 닮고자 한 흔적도, 의도도 있다. 그런 그녀를 '육여사의 카피'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특히 그 유명한 머리형이 그렇다. 한동안 박근혜의 머리형은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박근혜의 공주병 증세'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손꼽혔다. 가령 모 기자는 박근혜의 일상을 쓴 기사에서 '대단한 체력을 지녔다. 건강관리는 아침마다 하는 물구나무서기와 단전호흡으로 한다. 유명한 머리손질은 하루 두 시간쯤 걸린다. 이회창 총재마저도 박근혜 의원과는 마음대로 약속을 잡지 못한다. 머리손질이 안 끝나면 아무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여인천하'의 중전머리 스타일처럼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참, 기껏 걸려야 20~30분이예요. 저 혼자 머리 손질할 때도 많아요. 10분에서 20분이면 하죠. 화장도 간단히 하니까 그렇게 시간 걸리지 않아요. 사실 단전호흡도 꽤 시간이 걸리잖아요. 매일 못 하죠."
한때 그녀는 대학생 때처럼 중간길이의 단발머리도 했으나 다시 청와대시절의 '어머니형 머리'로 돌아갔다. 이유는 대충 짐작할 만하다. 정치적인(?) 이유일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투표장 기표소에 들어가면 대개 10~20초 사이에 누구를 찍을까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때 가장 뚜렷하게 떠오르는 사람을 선택한다. 물론 그 순간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이미지'이다. 박근혜의 머리스타일이야말로 확실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아마도 주변에서 다시 돌아가도록 '강추' 했을 것이고 본인 역시 나름대로 계산을 했을 것이다.
언젠가 독자적인 박근혜 머리스타일이 나올 수 있을까? 하긴 그녀를 마주보고 있으면 굳이 새로운 박근혜 스타일이 필요한가 생각하게 된다. 머리스타일, 흐트러짐 없는 태도 등이 바로 '그녀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머니를 닮아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는 표현이 야박하고 유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어머니와 딸' 아닌가?
"지역구 다닐 때는 점퍼에 바지차림에 운동화 신고 다닐 때가 많아요. 요즘은 스커트 길이를 길게 해서 입어요. 행사에 가면 서너 시간 넘게 한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많은데 긴치마를 입으면 한결 편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인터뷰 시간 동안 그녀는 단 한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집중력을 지니고 인터뷰에 응했고 질문의 핵심을 잘 파악했다. 원론적인 이야기- 국익을 위해, 국민을 위해,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등등을 인터뷰 내내 되풀이했다- 외에는 분명한 자기의견이 있었다.
국민을 대변하는 공주라면 공주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
그녀는 진짜 공주병인가? 그녀의 공주병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말한다. 그 증세가 심각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말한다. '초선 의원인데도 행사장 맨 앞줄에 당연하다는 듯이 턱 앉더라. 정치초년병으로 초선의원이면 초선이 앉을 자리가 따로 있는데도 말이다. 자기집 안방 아랫목 차지하듯 상석에 앉는다. 마치 부총재처럼….' 지금은 정치권에서 발을 뺀 이 분의 말을 나는 퍽 재미있게 들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 박근혜의 정치적 능력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H하다.
그녀는 자기 '안방'인 '정치무대'에 돌아온 것이었다. 아마도 퍼스트레이디로서 '대통령의 파트너'로서 모든 것을 좍 내려다보고 꿰뚫었던 그녀에게 정치판은 '나의 판'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이 이발소를 가듯, 여성들이 백화점 문화센터를 가듯 정치판은 그녀에게 '원래 있던 곳'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만 보면 까무러치고 뒤로 넘어갔던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이리 오세요. 박의원'하며 앞자리에 앉혔다는 말도 들린다. 공주마마 모시듯이 말이다.
그녀는 공주병에 걸린 척하고 공주모시는 이들을 따라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다른 초선의원의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어떻게 내 코끝이라도 카메라에 잡힐 수 있을까 할 때 그녀는 청와대 시절 갈고 닦은 우아한 미소로, 풀 사이즈로 TV화면을 꽉 채우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부총재가 앉을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가 진짜 초선의원인데도 부총재가 된 점이다.
대단한 정치적 역량이다. 결론은 이렇다. 그녀가 공주병 환자가 아니라 공주대접을 하는 이들을 잘 이용하고 다스려 공주로서 얻을 것을 착실히 얻어낸 것이다. 이제는 공주병 이야기에도 익숙해진 듯 "국민을 대변하는 공주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라며 우스개로 받아넘길 정도로 '공주'는 달라졌다.
박근혜에게는 확실히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어떤 허튼 소리도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태도라든가 기품 있고 명석한 두뇌로 사람을 즐겁게 한다. 또한 그녀가 하는 말은 일관성이 있다고 한다. 소신발언을 하는 드문 국회의원이라는 괜찮은 평가도 있다. 그녀는 바람직한 정치인의 모습을 '첫째, 뚜렷한 국가관, 둘째 국민에게 받는 신뢰, 세 번째는 화합'이라고 꼽았다.
박근혜가 존경하는 정치인은 엘리자베스 1세이다. 성공한 정치인으로서는 대처 영국총리를 꼽았다. 또 박근혜가 즐겨본 비디오로는 '측천무후 시리즈'가 있다. 진짜 '측천무후' 시리즈(엄청 길다)를 다 보았냐고 물었더니 "재밌어요"라고 대답하며 "연약한 여성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여황제로 권력을 잡는 것이 뜻깊어요. 그 극복의 과정, 극적이지요. 볼 만했어요."라고 말한다. 이 세 여성에게는 바로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온갖 굴욕과 핍박을 견디며 여왕이 되었다. 그 이후도 수많은 음모와 축출 의도 그리고 암살의 위기 속에 적들보다 더 지혜롭고 더 잔인하고 더 냉정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굳건한 권력기반을 이뤘다.
대처도 만만치 않다. 보수적인 영국의 정치풍토에서 남성적인 권력투쟁을 통해서 장기집권 총리가 되었다. 영국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과연 그녀가 치유했는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한 정치'로 영국경제를 냉동실에서 일단 냉장고로 옮겨놓았다. 측천무후는 말할 것도 없다. 권력을 위해 남편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인 여성 아닌가?
권력에 대한 그녀의 해석 '권력은 칼, 아주 예리한 칼이다.'
엘리자베스 1세를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대처를 '성공한 정치인'으로 측천무후 시리즈를 '재미있게 보았다'는 것은 그녀를 분석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재료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는 그의 일기 모음집에서 '권력은 칼이다. 권력은 크면 클수록 그 칼은 예리하다… 그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 할 사람은 당사자이다. 깊은 철학을 지니고 수양을 많이 한 사람, 하늘의 가호를 받은 사람 아니면 누구도 제대로 된 큰 권세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썼다. 박근혜는 권력을 좋아하고 이해하고 그 위험성도 잘 알고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 형제들의 오늘의 삶이 바로 '박정희 가의 권력에 대한 대차대조표'아닌가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정치부 기자는 박근혜의 글솜씨를 칭찬한다. 또한 그녀가 과학도라는 점을 평가했다. 과학적 합리성과 인문학적인 지식을 고루 지닌 균형 잡힌 지식인형 정치인이라고 했다. 사안을 보는 눈도 괜찮다. 가령 '중국이 잘 살고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외려 기회일 수 있지 않냐'고 말한다.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어느 나라든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야지요. 이젠 여름이 있다고 해서 얼음장사가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시대지요'라고 말한다.
박근혜는 현재 대권주의자로 꼽히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종교가 없다. 아마도 박근혜는 자기자신을 믿을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견딜 수 없던 수많은 날을 거쳐오며 이 세상에 믿을 것은 바로 나 자신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마 세상 그 어느 남자보다도 강한 여자일 것이다.
한국의 여성대통령, 화합과 투쟁, 창의성이 보장된다
-한국의 여성대통령,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성지도자의 출현은 세계적인 추세지요.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화합의 사회가 되리라 봅니다. 분열의 사회가 아니라. 또 섬세하고 창의성을 기반으로 정치의 질 자체가 올라가지 않겠어요? 또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 경제적이고 알뜰한 나라살림을 꾸릴 수 있겠지요. 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욕심이 없잖아요?"
-하지만 '여인천하'도 있잖아요? 여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브레이크가 없다던데….
이 부분에서 그녀는 크게 웃었다.
-여인천하 안 보세요?
"아뇨, 몇 번 봤어요. 그런데요, 그래도 여성이 남성보다 사심이 없는 것은 사실 아닐까요?"
그녀는 설득할 필요도 없는 나의 눈을 성의 있게 응시하며 설득한다. 몹시 훈련된 그러나 타고난 정치적 접근이다.
-대통령 할 생각이죠?
"단정적으로 제가된다 안 된다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지요. 목적을 두고 정치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국민에게 선택받는 입장이잖아요."
정치가에게 대통령이 될 생각이 있냐고 묻는 질문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구멍가게를 차린 사람이 대형 슈퍼마켓 주인을 꿈꾸듯, 어찌 정치를 한다는 이가 대통령을 꿈꾸지 않겠는가? 만일 꿈꾸지 않는다면, 원치 않는다면 그는 '프로페셔널 정치인'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우리 정치사에서 아주 드물게 '대통령에 근접한 여성'이 되었다.
그녀가 넘어서야 할 험한 산과 거센 강물들- 박근혜의 선택은?
유감스럽게도 당분간 이런 여성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태생적으로 획득한 지명도와 그 이유야 어째됐건 만만치 않은 대중적 지지도, 정치에 대한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뛰어난 권력감각, 좋은 두뇌와 대중을 원하는 바에 선천적으로 반응하는 타고난 감각, 남자들이 뒤로서는 형이 아니라 왠지 보호해주고 싶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시옵소서, 공주님'하게 만드는 성별을 초월한 지지능력(굉장한 자원이다)을 지녔다.
게다가 그녀는 독신이다. 얼마든지 몸을 던질 수 있다. 걸릴 것이 없다.
학처럼 우아하고 비둘기처럼 보호 충동을 일으키는 것은 진짜 그녀의 모습이 아니다. 진짜 그녀의 모습은 허허로운 하늘을 고독하게 날며 한 순간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독수리의 모습이 아닐까? 아니면 가혹한 벼랑 끝 테스트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한 마리 사자가 아닐까?
참으로 고민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기 드문 이 여성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제 선택은, 우리 손으로 넘어왔는지도 모른다. 박근혜의 부모는 분명 그녀에게 힘이 되었지만 앞으로는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나오면 TV를 끈다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게 후진국형 정치지, 아무개의 딸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한다니 대물림 정치,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 말이 되냐고 하는 이들도 많다. 그녀를 육영수 여사와 착각하며 손을 잡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할머니들을 보며 과연 이 나라는 희망이 있는가하고 자문한다는 이도 있다. 그 뿐인가.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신상발언을 통해 아버지이자 정치인 박정희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신체제 아래 억울하게 고통받고 피 흘리고 실종되고 죽기까지 했는가.
이 모든 질문은 그녀가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다. 그녀가 실족할 수도 있는 산이고 빠질 수도 있는 깊은 강이다. 마치 동전의 앞면처럼 산을 넘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우선 아버지 박정희와 혀를 무는 아픈 결별을 뜻하고, 이제 고집해왔던 어머니 스타일의 머리를 잘라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뜻한다. 과연 박근혜는 그 산과 강을 건널 것인가? 그녀를 선택해야 할 우리는 그 산너머, 그 강 끝에 서 있다. 그녀가 그 수많은 산과 거친 물살을 건너기를 고대하면서
첫댓글 제귀에는 전부다 칭찬으로 들립니다.............. 박근혜님은 미래의 대통령입니다...준비된 대통령을 두번이나 물리친다면 이미 우리는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선택한거나 다름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