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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의 달인 윤승원씨 "사람들이 나더러 농사 짓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라제" |
ⓒ 이종찬 |
| | "올해는 밤호박이 참 잘되었는디 장마가 일찍 드는 바람에 베러버렸어. 밤호박 수확기에는 햇빛이 쨍 하고 나야 하는 건디. 올해는 물가가 워낙 올라 작년에 1만5천원 받았던 밤호박 상품 1박스(5kg, 7~14개)에 2천원 정도 올려야 쓰것어. 사실은 상품 1박스에 2만원은 받아야 하지만 고유가와 생필품값에 시달리는 소비자 입장도 생각해야 되것제 이~."
한반도의 땅끝 해남. 해남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산 윤선도 선생과 다산 정약용, 해돋이로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는 땅끝마을과 까만 몽돌이 예쁜 보길도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여기에 몇 가지 더 보탠다면 강진에 있는 김영랑 생가와 해남 출신 시인 김남주, 고정희, 김준태, 윤재걸, 황지우 등일 것이다.
해남은 이처럼 한반도 맨 끝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으면서도 뛰어난 문인들을 수없이 낳은 우리 문학의 고향이자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명승지다. 게다가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들에서 자라는 무공해 농산물과 윤슬이 톡톡 터지는 짙푸른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해산물 또한 넘쳐나 전국 곳곳의 사람들이 즐겨찾는 먹을거리의 고장이기도 하다.
'땅끝, 새로운 시작' 해남. 요즈음 들어 해남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이른바 '미니 단호박'이라 불리는 밤호박이 그것이다. 해마다 3월에 씨를 뿌려 4월 중순에 농장으로 옮겨 심어 7월 초순에서 중순까지 수확하는 밤호박은 설탕처럼 달콤하기만 한 단호박과는 그 맛이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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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농장 5월, 밤호박 농장에서 곁가지를 일일이 손으로 따고 있는 윤승원씨 부인 |
ⓒ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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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농장 따낸 곁가지가 널브러져 있는 단호박 농장 고랑 |
ⓒ 이종찬 |
| | 웰빙음식의 황제로 떠오르고 있는 밤호박
"삶은 밤이나 구운 밤 맛이 난다 해서 밤호박이제. 잘 숙성된 밤호박은 전자레인지에 넣어 쪄서 먹거나 죽을 만들어 먹는디, 주부들이 굉장히 좋아한당게. 애들 간식으로도 그만이고. 밤호박은 열흘 정도 숙성시키는디 잘 숙성된 거무스럼한 밤호박은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제. 밤호박을 막 딴 것은 속이 노란색인디 숙성된 밤호박은 붉은 빛을 뗘."
7일(월) 오전 11시. 전남 해남군 옥천면 동리에서 만난 윤승원(53)씨는 "밤호박은 익은 상태 그대로 먹으면 단맛이 나지 않고 파금파금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윤씨는 "밤호박은 숙성과정에서 전분 성분이 당분 성분으로 바뀐다"라며 "주부들은 큰 것을 좋아하고 직장인들은 작은 것을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비타민 B1, B2, C 등이 듬뿍 들어 있어 감기예방과 피부미용, 다이어트에 좋아 요즈음 새로운 웰빙음식의 황제로 떠오르고 있는 밤호박. 하지만 밤호박을 재배하기란 꽤 어렵다. 손품 발품도 엄청 많이 팔아야 한다. 그만큼 몸에 좋은 음식은 재배하기도 쉽지 않고 수확량도 적다는 그 말이다.
무공해 밤호박을 재배하기 위한 키 포인트는 자연산 퇴비에 있다. 농약은 얼씬도 못한다. 천연 미생물을 길러 농장에 골고루 뿌려주어야 한다. 4월부터 수확을 하기 시작하는 7월초, 중순까지 매일 곁가지도 따주어야 한다. 밤호박을 수확한 뒤에도 10일 정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숙성시켜야 비로소 상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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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꽃 노랗게 피어 있는 밤호박꽃 |
ⓒ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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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낸 곁가지 특히 가장 힘든 것은 하루밤새 쑥쑥 올라오는 밤호박 곁가지를 매일매일 손으로 따주어야 하는 일이제 |
ⓒ 이종찬 |
| | 밥 볏짚에 넣어 대나무밭에 3~4일 놔두면 미생물 부착
"요즈음 밤호박이 웰빙식품이라 해서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으니까 기나 고둥이나 밤호박 농사를 하지라. 하지만 밤호박 농사를 지어본 넘은 잘 알제. 이 밤호박 농사가 얼마나 일손이 많이 가는지. 특히 가장 힘든 것은 하루밤새 쑥쑥 올라오는 밤호박 곁가지를 매일매일 손으로 따주어야 하는 일이제."
동리에서 3천여 평의 밤호박 농장을 꾸리고 있는 윤씨는 "시중에서 파는 퇴비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앞인 2003년, 처음 밤호박 농장을 할 때 시중에서 파는 퇴비를 썼다가 쓰라린 맛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윤씨는 그때부터 퇴비보다 훨씬 비싼 현미겨를 퇴비로 사용하는 쌀겨농법을 하고 있다.
윤씨는 "밥을 볏짚에 넣어 대나무밭에 3~4일 놔두면 미생물이 부착한다"라며 "미생물이 부착되면 흑설탕을 뿌린 쌀겨에 재웠다가 그 쌀겨를 밤호박 농장에 골고루 뿌린다"고 설명한다. 미리 쌀겨가 뿌려진 농장에 미생물이 부착된 쌀겨를 골고루 뿌리면 미생물이 병충해를 잡아먹기 때문에 농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때부터 매일매일 쑥쑥 자라나는 단호박 곁가지를 일일이 손으로 따내는 일도 쉽지 않다. 윤씨는 "다른 사람들은 호박줄기를 두 줄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외줄만을 고집한다"며 "한 줄기에 상품 4개만 나오면 쓸 만한 농사"라고 말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밤호박은 한 줄기에 열매가 여러 개 달리면 4~5개만 남겨 두고 스스로 낙과시켜버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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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농장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린 밤호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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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밤호박은 한 줄기에 5~6개 열매만 남기고 스스로 낙과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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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앗 값 일본에 갖다 바친다는 생각하면 분통 터져
가격과 판매도 문제다. 지금은 밤호박 생산 농가가 그리 많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전화로 주문을 직접 받아 택배로 보내고 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하지만 밤호박이 주부들과 직장인들의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재배 농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밤호박 판매가가 저마다 달라 다른 농장 눈치를 보는 것도 새로운 고민거리다.
윤씨는 이에 대해 "밤호박 상품은 해마다 농가들이 모여 가격을 공동으로 정하고 있지만 중품과 하품은 농장주가 임의로 정할 수 있어 오히려 소비자들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밤호박 중품과 하품의 가격이 너무 비싸도 소비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너무 싸면 코방귀를 뀌며 외면한다는 것.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씨앗(종묘)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는 밤호박 씨앗을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밤호박 씨앗 값도 만만치 않다. 직거래를 하면 씨앗 한 알에 320원, 시중에서 사면 씨앗 한 알에 500~600원씩 한다. 때문에 일부 밤호박 농가에서는 "쪽바리들 좋은 일 다 시킨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밤호박 씨앗을 직접 채취하면 되지 않느냐는 나그네의 질문에 윤씨는 "2년 동안 그렇게 해봤지라"라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동안 농장에 매달린 밤호박 중 가장 크고 실한 것을 골라 씨앗을 채취해 그 다음 해 심었더니 기대했던 밤호박은 열리지 않고 희한하게 생긴 변이종 호박이 열리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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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지금 해남 동리에서는 밤호박이 익어가고 있다 |
ⓒ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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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한 줄기에 상품 4개만 나오면 쓸 만한 농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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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씨는 "우리나라 종묘연구소에서는 지금까지 대체 뭘 연구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해마다 비싼 밤호박 씨앗 값을 일본에 꼬박꼬박 갖다 바친다는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질 것 같다. 밤호박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늘면 늘어날수록 일본에 물어야 하는 씨앗 값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철을 맞은 밤호박이 주부들과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밤호박은 단호박에 비해 당도와 맛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바쁜 직장인들의 한 끼 식사로도 거뜬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씨앗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한다는 것이다. 고유가 시대,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종묘연구소의 보다 발 빠른 대책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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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호박 삶은 밤이나 구운 밤 맛이 난다 해서 밤호박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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