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쫓는 말굽 소리 들판을 가르고,
시위는 바람 속에 활끝은 별빛처럼 빛나네.
냥(獵)의 흥취에 장수와 왕이 나란히 달리니, 사냥한 기세 번개 같아 천리마도 숨을 죽이네.
과연 인간의 재주와 말의 힘이 하나 되어, 과거의 전장 기운이 오늘 들판에 되살아나네.
미인들은 꽃 같은 얼굴로 장막을 밝히고, 미묘한 노래와 춤이 산천마저 흔들리게 하네.
인연 따라 모인 자리 술잔에 달빛이 어리고, 인간의 영화와 정취가 한때 꿈처럼 흐르네.
놀음이라 하나 그 속엔 기예와 기상이 겨루어, 놀라운 솜씨마다 천하의 이름을 다투네.
이 순간 웃음과 환락도 구름처럼 스쳐가니, 이 모든 영화 또한 덧없음을 바람이 전하네.
[九雲夢] 42. 사냥과 미인(美人)놀이
이튿날 새벽에 승상은 일찍 일어나 군복을 입고 활과 살을 차고서 눈빛같이 흰 천리 계산마(戒山馬)를 타고 사냥군 삼백 명을 불러 호위케하며 성문 밖 남문으로 향할새 경홍과 섬월은 금가 옥을 아로새기고 꽃을 수놓아 잎새를 그린 의복으로 치장을 하고 각기 부하 기생을 거느리고 화초말 금안장에 걸터앉아 산호편(珊瑚鞭)을 들어 구슬 고삐를 느직히 잡고, 승상의 뒤를 가까이 따르며, 팔십 명 기생들은 각기 빠른 말을 잡아 타고 적경홍오가 계섬월의 좌우를 호위하여 나아가다가, 중로에서 월왕을 만나니, 월왕의 사냥군과 기악(妓樂 )이 족히 승상의 편과 더불어 맞먹겠더라.
월왕이 승상과 더불어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나아가더니 월왕이 승상에게,
“승상이 타신 말은 어느 나라의 종자이니까?”
승상이 대답하되,
“대완국(지금의 아프카니스탄)에서 났나이다. 대왕께서 타신 말도 완종(宛種)인 듯 하나이다.”
월왕이 이에 대답하기를,
“그러하외다. 이 말의 이름은 천리 부운총(浮雲驄)인데 상 년 가을에 천자를 모시고 상림원(上林苑)에서 사냥할새 나라 마굿간에 만여 필이 모두 바람같이 빠르되, 이 말을 능히 따르는 것이 없고, 장부마(張駙馬)의 도화총(桃花驄)과 이장군(李將軍)의 오추마(烏騅馬)가 다 용마라 일걷되 이 말에 견주면 매우 둔하외다.”
승상이 말하기를,
“연정에 토번을 칠새 깊고 험한 물과높고 가파른 석벽이 있어 사람은 도저히 발 붙이지 못하거늘, 이 말은 그곳을 평지 밟 듯하며 한 번도 실족함이 없었으니 소유의 공을 이룬 것이 실로 말의 힘을 입은 것인즉, 두자미(杜子美:두보)의 이른바 사람과 더불어 한마음이 되어 큰 공을 이룬다 함이 곧 이것인가 하나이다. 소유가 군사를 돌이킨 후에 작품(爵品)이 높아지고 벼슬이 한가하여 편히 평교자를 타고 평탄한 대로를 서서 다니는 고로 사람과 말이 한가지로 병이 나려 하니 청컨대 대왕과 더불어 채짝을 휘둘러 한 번 준총(駿驄)의 빠른 걸음을 견주며, 옛 장수의 나머지 용맹을 두루어 보심이 어떠하나이까?”
월왕이 매우 기껍게 응낙하되,
“그 역시 나의 생각이로다!”
두디어 시종에게 분부를 내려 두 집의 손과 기녀들을 군막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 채찍을 들어 말을 치려 할 즈음, 마침 큰 사슴 한 마리가 사냥꾼에게 쫒겨 월왕 앞을 지나치기에 왕이 말 앞의 장사를 시켜 쏘라하니 여러 장사들이 일시에 활을 당기되 맞추지 못하므로, 왕이 노하여 말을 제쳐 나아가며 한 살로 그 옆구리를 맞추어 죽이니 모든 군사가 일제히 천세를 부르고 승상을 축하하기를,
“대왕의 신통한 화살은 여양왕(활 잘 쏘는 당나라 왕자)과 다름이 없나이다.”
월왕은 이에 겸양하여 이르기를,
“작은 재주를 어찌 그토록 칭찬하리오? 내 승상의 활 쏘는 법을 보고자 하나이다.”
말을 마치지 못하여 때마침 천아(天鵝) 한 쌍이 구름 사이로 날아오니, 모든 군사가 말하기를,
“이 새는 가장 쏘기 어려운지라, 마땅히 해동청(海東靑)을 쏘아야 되겠나이다.”
승상이 다급히 이르기를,
“너희는 쏘지 말렸다!” 하고,
살을 빼어 우러러 천아를 쏘아 눈을 맞추어 말 앞에 떨어지게 하니, 월왕이 크게 칭찬하되,
“승상의 묘한 수단은 이제 양유기(養由基:초나라 때 대부로 활을 잘 쏨)와 같도다!” 하고,
두 사람이 채찍을 한번 휘두르매 두 말이 일제히 날라 번개같이 달리며 귀신같이 번득이어 순식간에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높은 산에 이르니 두 사람이 고삐를 당겨 나란히 서니라.
산천의 경계를 둘러보고 양승상과 월왕이 활쏘는 법과 검술을 논의 하는데, 추종들이 비로소 따라와 사슴과 천아를 은반에 담아 바치니, 두 사람이 말에서 내려와 풀밭에 앉아서 허리에 찬 칼을 빼어 고기를 베고 구워먹으며 서로 술을 권할새, 멀리 보매 홍포를 입은 두 관원이 급히 오며 그 뒤에 사람 한 무리가 따르니 이는 성중으로부터 나오는 자이더라.
삽시간에 한 사람이 달려와 아뢰되,
“양전궁(兩殿宮)에서 술을 내리셨나이다.”
월왕이 군막에 등대하니 두 내관이 어사하신 술을 따라 두 사람에게 권하고, 이어서 용봉의 무늬가 든 시전지(詩箋紙) 한 봉을 주니, 두 사람이 세수하고 꿇어앉아 펴본즉 산에서 크게 사냥함을 글제로 하여 글을 지어드리라 하셨더라.
월왕과 승상이 머리를 조아려 네 번을 절하고 각기 글을 지어 내관에게 주어 드릴게 하니, 승상의 글을 읊었으되,
새벽에 장사를 몰아 들로 나아가니
칼은 가을 연꽃 같고 화살은 별 같더라
장막 속 뭇계집은 천하 백이요
말 앞에 쌍 날개는 해동청이더라.
어사하신 술 나누매 다투어 감동을 머금고
취하여 금칼을 빼니 비린 것을 베었더라.
뒤이어 지난해의 서새 밖을 생각하니
대황산 풍설에 왕정에서 사냥하였더라.
월왕의 글에 읊었으되,
접섭히 나는 용마가 번쩍하는 번개 같으니
안장을 어거하고 평탄한 언덕에 섰더라.
흐르는 별은 기세가 빨라 푸른 사슴을 베고
밝은 달 형상은 영려 흰 거위를 떨구었더라.
살기는 능히 호기로운 흥을 가르쳐 발하고
성은은 머물러 취한 얼굴을 붉게 하더라.
여양왕의 신통히 쏨을 그대는 말을 말라
다투어 아침에 얻은 살진 고기 많도다.
이에 두 집에 손들이 차례대로 늘어앉아 하례하매, 술도감이 주안상을 드리는데, 낙타의 신기한 맛과 성성(猩猩)의 연한 입술은 은가마에서 나오고, 원나라(東越)의 여지(藜枝)와 영가(永嘉) 고을의 귤은 옥소반에 가득하니 서왕모의 요지연(瑤池宴)이 아니면 한무제의 백량회(柏梁會: 시를 짓던 모임) 이겠더라.
수백 명의 기녀들이 촘촘히 모여들어 갑옷으로 장막을 이루니 패물소리는 우레와도 같고, 한 붐 밖에 아니되는 가는 허리는 마치 버들가지처럼 부드러우며 아름다운 얼굴은 꽃빛처럼 곱고 풍악소리는 곡강(曲江 )의 물이 끓어 올게 하니 노래소리는 종남산(終南山)을 움직이는 것 같더라. 술이 거나하여진 승상한테 이르기를,
“승상의 두터운 정을 입었기로 구구한 정성을 드릴 것은, 데리고 온 첩 수인으로 하여금 한번 승상의 즐거움을 돕고자 하니 청컨대 앞에 불러 노래하며 춤추게 하소서.”
승상이 사례하되,
“소유가 어찌 감히 대왕의 총첩(寵妾)과 더불어 대면할 수 있겠소이까마는 온전히 남매의 정의만을 믿고 감히 참람한 생각이 있사온즉, 소유의 첩 수 명이 역시 구경코자 따라왔으니 또한 불러들여 대왕의 첩과 더불어 각기 잘하는 기예(技藝)에 다라서 흥을 돕고자 하나이다.”
왕이 하는 말이,
“승상의 말씀 또한 좋소이다!” 하기에,
이에 섬월과 경홍과 월왕궁의 네 미녀가 분부를 받고 일어나 장막 앞에서 절을 드리니, 승상이 말하기를,
“옛날 영왕(寧王)이 한 미인을 두었으니 그 이름은 부용(婦容)이라, 이태백(李太白)이 영왕께 간청하여 겨우 미인의 목소리만 듣고 그 낯을 보지 못하였다 하는데, 이제 소유는 마음껏 너희들의 낯을 보니 그 얻은바가 이태백보다 낫도다. 네 미인의 성명은 무엇이뇨?”
네 미인이 일어나 대답하기를,
“첩들은 금능(金陵)에서 두운선(杜雲仙)과 진류(陳留)에서 온 소채아(蘇彩娥)와 무창(武昌)에서 온 만옥연(萬玉燕)과 장안(長安)의 호영영(胡英英)이옵니다.”
승상이 월왕을 보며 칭송하기를,
“소유가 지난날의 선비의 몸으로 떠돌며 놀 적에 옥연낭자의 이름을 들었는데, 이제 비로소 그 낯을 보니 실로 그 이름보다도 아리땁소이다.”
월왕도 또한 섬월과 경홍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지라 말하기를,
“두 미인을 온 천하에 추앙하더니, 이제 승상부로 들어왔음은 주인를 잘 만났도다. 승상은 언제 이 미인들을 얻었나이까?”
승상이 대답하되,
“계씨는 소유가 고하거보러 올 적에 낙양에 도착했을 때 제가 스스로 따랐고, 적시(狄氏)는 일찍이 연왕궁(燕王宮)에 들어갔다가, 소유가 사신으로 연나라에 가매 제가 몸을 빼어 나와 소유를 다랐나이다.”
월왕이 이말을 듣자 손벽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적랑의 호방한 기상은 양가의 집불기생(執佛妓生)에 견줄 바 아니로다! 그러나 적낭자는 양한림(楊翰林)이 귀한 사람임을 알고서 따랐을거니와, 계낭자는 한낱 서생을 따랐음은 능히 오늘의 부귀를 앎이니 더욱 기이하도다!”
다시 이어서 월왕이 묻기를,
“어찌하였기로 승상이 언 길 도중에서 만났나이까?”
이에 승상이 천진교 주루에서 섬월을 만났을 적에 글을 지었던 전후 경위를 낱낱이 아뢰니, 월왕이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이 지난날 과거에 장원함에 쾌한 일이라 하였더니, 이야기는 더욱 상쾌한 일이오니 그 글이 필연 오묘할 터이니 가히 들을 수 있겠소이까?”
승상이 대답하되,
“취중에 무심코 지은 것을 어찌 기억할 수 있겠소이까?”
월왕이 섬월에게 묻기를,
“승상은 비록 잊었으되 낭자는 혹시 기억할 수 있겠느뇨?”
섬월이 여쭙되,
“전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마는 종이에 써 드리오리까? 혹은 노래로 아뢰오리까?”
월왕이 더욱 기꺼워하며 이르되,
“노래를 아울러 들으면 더욱 기쁘리로다.”
섬월이 앞으로 나아가 노래를 부르니 가즉히 모인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지라, 왕이 대단히 공경하며 칭찬하되,
“승상의 글재주와 섬월의 맑은 노래는 세상에 으뜸이요, 그 글 가운데 꽃 가지가 미인의 단장을 부끄러워하니 가는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입이 이미 향기롭도다 라는 구절이 족히 섬월의 자색을 그려냈은즉, 마땅히 이태백으로 하여금 물러서게 할 터이니 감히 한마디로는 창찬하지 못하리로다!” 하고.
술을 금잔에 가득 부어 섬월과 경홍에게 상을 내리더라.
이어서 월왕궁의 네 미인에게 노래 불러 헌수케 하니 주객이 알맞은 호적수이더라.
월왕이 스스로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모든 손들과 더불어 장막 밖으로 나아가, 무사들이 칼로서 충돌하는 형상을 보고 승상을 향해 이르기를,
“미인이 말을 타고 활 쏘는 것 또한 볼만하기로, 우리 궁중에 활과 말에 익숙한 수십인이 있는지라, 승상 부중의 미인 중에도 북방으로부터 온 자가 있으니, 영을 불러내어 꿩을 쏘고 토끼를 쫒아 한바탕 웃음을 돕게 함이 어떠하나이까?”
승상이 매우 기뻐하며 분부를 내려 미인 수십 인을 골라 월왕궁의 미인들과 더불어 내기를 하게 하니 경홍이 일어나 아뢰기를,
“첩이 칼과 활에 능치 못하오나, 오늘 시험코자 하나이다.”
승상이 기꺼워하며 즉시 몸에 찬 활을 주니, 경홍이 활을 잡고 서서, 모든 미인네게 다집하기를,
“비록 맞지 못할지라도 모든 낭자는 웃지 마옵소서.”
말을 마치자 경홍은 준마를 잡아 나는 듯이 올라타더니 장막을 달리는데, 마침 꿩 한 마리가 풀 속에서 날아오자, 경홍이 잠깐 가는 허리를 젖히고 활시위를 당겨 올리매 꿩은 오깃색을 펼친 채로 말 앞에 떨어지니, 승상과 월왕이 한가지로 손벽을 치며 즐거워하더라.
장막 밖에서 몸을 굴려 말에서 내린 경홍이 서서히 걸어 자리에 나아가니, 모든 미인들이 각기 하례하되,
“우리들은 십 년 공부를 헛것 하였도다.” 하기에,
섬월이 생각하기에,
“우리 두 사람이 비록 월왕궁 기생들에게 첫째를 빼앗기지는 아니 하였으되, 저들은 네 사람이요, 우리는 한 쌍이라 심히 외롭고 기세가 등등하지 못하니, 춘랑을 끌고 오지 못함이 매우 한스럽도다. 노래와 춤이 춘운의 장기는 아니나, 그 고운 용모와 아름다운 말씨가 어찌 두운선의 머리를 누루지 못하리오?”하며
안타까이 한숨 짓는데, 무득 멀리 바라본즉 들 너머로 두 미인이 다가오더라.
출처: 구운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