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최우진에게 체념과 비슷한 색의 감정이 몰려들어 왔다.
그는 결국 엄마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신...외할머니는 만날 수 있었다.
'말은 내가 잘 전해 놓겠다. 그러니 너는 신경 쓰지말고 너가 가는 길을 계속 걷거라.'
그의 엄마는 자영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으로 오기 단 몇일 전에 시작한 일이었다.
이제는 지나간 옛날 일, 언젠간 발목을 붙잡을 옛날 일, 그런것에 자유롭고 싶어 한국에 온것이었지만,
오히려 더 가슴에 무언가 쌓이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그는 깨달았다.
절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그는 결국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에.. 축구를 계속했던것 아닌가.
그런 결론이 나오는데는 몇 시간이 지나서였다.
점심때 쯤에 방문한 외가를 나서고 큰 아빠네 집으로 돌아오니 얼추 저녁때 쯤이었다.
*
"하하하,우리 우진이....많이 컸네1?"
"형......어제도 그말 했잖아.."
사촌형 두준과 그의 여동생 아라와 먹는 저녁밥,
불판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우진은 생각했다.
나날마다 영국의 맛 없는 밥을 먹는 것... 그것도 나름의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 였지만...
지금 이렇게 누군가 함께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다.
이것은 축구와는 또 다른 즐거움 이라고나 할까.
즐거운 저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꺼지자, 재빨리 그들의 앞에 주섬주섬 주웠던 핸드폰을 꺼내보이면서 말했다.
"아...맞다. 두준형, 나 이거 핸드폰 주웠는데 어떻게 하지? 전화가 왔는데 받는 방법을 모르겠어.
배터리도 이제 거희 다 되는것 같은데..."
"음....이거...스마트 폰이네.......와.........나 같으면 솔직히...유심칩 빼고 가지겠어."
"으이구 이 밥통같은 놈아, 그걸 해결책이라고 가르쳐 주고 자빠졌냐,응?줘 봐."
핸드폰을 아라에게 건네주고, 아라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전화를 받았다.
쩝,나는 문맹인인 것인가.
그런 자기혐오에 우진은 말없이 양파를 쌈장에 찍어서 입으로 가져가 우물우물 씹어먹기 시작했다.
간만에 한국적인 맛을 느끼자 그에게 묘한 기분이 들어왔다.
역시 나는 한국인 인가.
런던 생활을 오래 해도 한국적인것이 역시 그의 몸에 맞는다.
"이거 제 동생이 어제 주웠는데요. 어...지금까지 전화를 받는 방법을 몰랐대요.일부로 그런건 아니구요.고등학생 이신가요?"
점점 구워지는게 아닌 검은색으로 고기가 태워지는 수준까지 가고 있자, 보다못한 두준이 아라의 손에서 가위를 가져와 고기를 잘게 쌀랐다.
괜시리 찔리는 기분에 우진은 핸드폰 주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음..알았어요. 그럼 내일은.. 내일은 가능하다 이거네요?네,그럼 내일 점심때 보는걸로 하겠습니다.네."
"...뭐라디?"
"응,내일 점심 때 보자는데..어쩔래,우진아?"
"아,내가 갖다줄게.좀 미안하네.전화도 그냥 무시한 것 같고..오해는 직접 풀어야지."
"응,... 그래,그러면."
"그냥 너가 내일 친구랑 약속 있어서 그런거 아니냐?대신 가져다 주기 귀찮아서...?ㅋㅋㅋ"
"아니거든!"
불에 뜨겁게 달궈진 젓가락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자 두준이 몸을 움츠렸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많던 것일까...
우진은 그리 생각하며 고기 한점을 집어먹었다.
그렇게 두준과 아라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두준이 갑자기 생각난듯 말했다.
"으앗!갑자기 중요한게 생각났다."
아라와 우진이 한꺼번에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머쓱은듯 그는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이내 옆에 앉은 우진의 어깨에 팔을 얹어 어깨동무를 하였다.
"..왜..왜 이래;;;"
"우리의 멋진 축구소년 우진이....흐흐, 형이 부탁이 있다."
"무슨?"
"있어 ㅎㅎ...남자만의 대화지...소녀는 끼어들지마시길..아무튼 우진아.들어줘.응?꼬옥~!"
"느글 느글 해가지고...아무튼,우진아..이상한거면 나한테 전화해?응?"
"하하하..."
참으로 훈훈한 저녁이라고,우진은 생각했다.
*
"어..그러니깐요, 공을 더 강하게 차시려면 디딤발을 딛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킥을 머릿속에 그려야 해요."
'내가 이게 무슨 짓이지....'
모두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고 모인 그들. 그들의 기본기를 잡아주는건 그들보다 나이가 6~7살은 어린 최우진이었다.
우진은 여름들어 빠른 시간에 뜨는 아침해가 이 날따라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하핫, 고맙다 동생. 이번 경기에서 너가 잘 뛰어 주면,내 친구의 여동생 소개시켜 줄테니까는, 기대하고 있으라구1"
"...하하하."
별로 그런거 기대는 않는데...
우진은 속으로 중얼 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흐하하하 두준이! 어디서 이런 귀여운 동생을 데리고 왔당가!"
"그라게 말여잉!이쁜 영준이 동생들도 좀 이따 같이 점심 들러 올것이니 기대하고 있어잉!"
"오오미!이쁜 동생들도 불렀단 말인가잉!"
"...;;"
바보같아.
이 말을 삼키고 우진은 알아들을수 없는 말투를 쓰는 두준과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주위에 굴러다니는 공 아무거나 잡아서 그는 리프팅을 시작했다.
간단하게 가벼운 몸 풀기. 리프팅 횟수가 20번이 가까워지자 두준의 친구중 한명이 말했다.
"흐흐.저 동생이 축구를 그렇게 잘한단 말야? 쟤만 있으면 광주공고 출신 김영민도 아무것도 아니라 이거징."
"아따 그렇당게....우리 우진이의 수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당게..오죽하면 우진이랑 축구하면 상대였던 애들이
아따 뭔 벽을 축구장에 세워놨소? 이런 소리가 나오겠어."
수...수..수비를 시킬 생각이었구만..
최우진은 허탈한 기분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웃음이 쓴 웃음에 불과 했지만....
'레이너...나는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흑..'
바닥에 쭈그려 앉아 신세한탄을 할때 쯤에 두준의 친구가 소리쳤다.
"응?저거 영준이 동생인데!"
"아,아니!벌써 왔단 말야!?"
"으오옷!어디!어디!"
모두가 환호하며 바라보는 곳에는 찌푸린 인상을 가지고 스텐드에 앉아 거울을 보는 소녀가 있었다.
츄리닝 바지 차림에 단순한 라운드넥 티셔츠를 입은것이,그닥 꾸민 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남자들은 모두 환호하고 있었다.
뭐지?눈을 게슴츠레 뜨고,우진 또한 마찬가지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
"에이씨 진짜 덥네.뭔 아침인데 이리 더워?이래서 아디다X 츄리닝은 여름껄 따로 사야된다니깐?하지만 난 거지...응?"
투덜거리는 모습이 우진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짧은 거리도, 그렇게 먼거리도 아니었지만, 그 소녀의 모습만은 확실히 보이는 거리였다.
"어어...."
"..,.어...?"
그리고, 그 순간 서로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첫댓글 오랜만입니다^^ㅎ
넹 ㅎㅎㅎ 요즘에 일이 있어가지공 ㅎㅎㅎㅎㅎ
오랜만입니다ㅎㅎ 잘봤습니다!
ㅎㅎ 댓글 감사합니당 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 ㅋㅋㅋ
넵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