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마음
현택훈
극동 설비 옆에 혜초 여행사가 있다
날이 저물면 푸른 간판도 불을 밝힌다
가야 할 길은 언제나 펼쳐져 있다
푸른 입김의 걸음이 결빙을 푼다
배낭 속의 지도 한 장과
시집 한 권과 낡은 사진 한 장
아직 익지 않은 푸른 불빛은
서쪽을 향해 빛나고
도시의 시선들이 모여
멀리서 보면 별이 되겠다
둔황 석굴 속에서 천 년간 잠들어 있던
왕오천축국전 이 도시도
한 천 년 잠들 듯 흐를 수 있을까
가파르고 높은 희망이라는 파밀 고원
가난한 순례자에겐
이 도시가 타클라마칸 사막이어서
도처에 사구가 드리워져
슬픔도 모래 속에 파묻히곤 한다
설령(雪嶺),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겠지만
뱀이 서린 듯 얼어붙은 얼음길*
캘커타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푸른 사원이 펼쳐질 것인가
혜초 여행사 길 건너
버스 정류장이 푸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구도의 길이
오늘밤 거처 없이 어루만지는 경전이기에
*뱀이 서린 듯 얼어붙은 얼음길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중에서
현택훈
1974년 제주 출생. 2007년《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지구 레코드』『남방큰돌고래』
카페 게시글
#......詩 감상실
혜초의 마음 - 현택훈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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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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