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틈만 나면 새하얗게 삶아 빤 행주를 들고,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장독대를 누비며 그 많은 독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닦곤 하셨더랬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씩 검지손가락을 조심스레 펴서는 간장·고추장을 찍어 맛을 보시곤
‘쪽’ 소리 나게 손가락을 돌려가며 말끔히 빨기도 하셨구요.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우르르 달려 나가 제일 먼저 장독 뚜껑부터 닫으셨지요.
너풀거리며 젖어가는 빨래부터 걷어야 할 것 같은데, 늘 장독대부터 먼저 달려가시는 엄마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간장에 둥둥 떠다니는 시커멓고 더러워 보이는 숯이 그랬고,
빨간 고추가 통째 헤엄을 치고 있어도 짠맛만 나는 간장이 그랬고,
갓난아기가 난 집에만 두르는 새끼줄과 숯·솔가지를 독마다 둘러놓는 것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지만 어린 제게 장독대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터에 불과할 따름이었지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숯은 냄새와 불순물을 걸러주고,
고추의 붉은 색과 솔가지의 푸른 색, 그리고 왼새끼는 잡귀가 싫어하므로
잡귀가 먼저 맛을 보아 장맛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집 장독에서 본 일은 없지만 종이버선을 거꾸로 붙여 놓기도 하는데
이것은 장맛이 변했더라도 다시 제 맛으로 돌아오라고 붙이는 것이랍니다.
아, 숯의 또 한 가지 역할은 잡귀를 물어뜯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나요.
* * * 경기도 여주로 7대째 옹기를 빚고 있다는 무형문화재 김일만(63) 씨를 찾아가는 길,
까맣게 잊고 있던 유년의 놀이터 - 장독대가 새삼 그리워져 가슴조차 설레는 것이었습니다.
[ 오부자 옹기 ] 라는 표지를 따라 들어가니 줄줄이 늘어선 항아리며 갖가지 옹기들이
저 먼저 반갑다고 맞아주고, 작업장에 들어서니 김일만 씨와 셋째 아들 창호 씨,
막내 용호 씨가 제각각 분주했습니다. 마침 큰 아들 성호 씨와 둘째 정호 씨는
다른 작업장에 나가 있어, 5부자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없는 점이 퍽 아쉬웠습니다.
행여 방해가 될새라 저는 김 씨의 물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큰 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막내 용호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굽이 있는 자기(瓷器)는 주로 양반들, 굽이 없는 옹기(甕器)는 서민들이 사용했지요.
자기는 입자 고운 돌가루가 많이 섞인 백토로 빚어 1300℃ 이상에서 굽고,
옹기는 점토로 빚어 1200℃ 이하에서 굽습니다.
또한 옹기 유약은 나무나 콩깍지 등의 재와 부엽토를 일정비율로 섞은 잿물을 사용하고,
자기는 장석·규석·석회석 등의 석분으로 만든 유약을 씁니다 ] 라며 자기와 옹기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 김 씨는 물레 위에 흙덩이를 놓고 방망이로 두드려 편편하게 편 다음
점금대로 크기를 정해 나무칼인 밑가새로 동그랗게 도려내는 밑창작업을 마치고,
가래떡처럼 생긴 흙타래를 돌려 그릇의 첫단계를 올리는 태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레는 사용하는 사람의 신체에 맞추어 조절하기 때문에, 물레마다 주인이 따로 있다더군요.
* * * 사실 7대째 200년의 가족사는 온통 가난과 천대로 점철되어 있지만, 속 모르는 남들은
아버지와 네 아들이 함께 전통 옹기를 빚는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고 부러워도 합니다.
그것도 겨우 전통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 이즈음의 일일 뿐입니다.
김 씨 부친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북 안동에 자리를 잡고
[ 점놈 ] 이라 불리는 옹기장이가 되어 백정이나 다름없는 천민의 길로 접어든 것이
험난한 가족사의 시작이었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가출을 하고, 1974년에는 납 성분이 함유된
유약을 쓴 광명단 항아리 사건이 터져 옹기 수요가 갑자기 준 데다,
설상가상 불이 나서 5년치 가마 땔감을 재로 날리는 바람에 나중엔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워졌지만, 김일만 씨는 옹기를 빚는 일 외에 다른 일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점점 편한 것만 추구하다보니 플라스틱·스텐레스 등 가볍고 깨지지 않는
재질들에 밀려 옹기는 점차 명맥을 잇기 힘들게 되었고, 주위의 옹기장이들 심지어
그의 형제들마저 옹기일을 작파하고 떠났지만 그는 하루도 물레를 쉬어본 적이 없었답니다.
하루라도 물레를 쉬면 그릇 한쪽이 꼭 찌우뚱해져 하루의 태만을 가차 없이 나무라기 때문입니다.
옹기에 불고 있던 개화바람에 맞추어 전동물레와 기계틀·가스가마를 썼다면
그나마 생활은 좀 피었을지도 모르지만, 김 씨는 50년 동안 자신이 보고 배운
옛날방법을 고수하며 아들들에게도 그것이 진짜 옹기라고 가르쳤습니다.
한사코 옹기장이의 길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에 장남과 차남은
초등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옹기를 배웠지만, 근근히 고등학교를 마친 셋째와 막내는
무엇을 한들 이 일보다 못하랴 싶어 무작정 집을 뛰쳐나오기도 수 차례.
그러나 결국 이들을 다시 물레 앞으로 돌려보낸 것은 그토록 진저리를 쳤던
물레며 흙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집 나간 아들들이 걱정 되지 않더냐는 질문에 빙그레 웃기만 하는 김일만 씨는
흙 속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고 자란 아들들이 언젠간 다시 돌아올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고진감래라더니 1996년 김일만 씨가 노동부에서 인정하는 옹기기능전승자가 된 데 이어
작년에는 무형문화재로 선정되고 노동부 산업포장도 받았으며, 조상에게 물려받은 100년 된 가마터도
경기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7대 200년에 걸친 고단한 외길 걷기에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봐야 평생 옹기를 빚어온 그의 수중에 지금 남은 것은
남의 땅을 빌려 지은 비닐하우스 작업장과 그 옆의 옹색한 집 한 칸뿐이랍니다.
* * * 옛날이야기를 듣는 동안 김 씨는 벌써 몇 층인지 흙타래를 쌓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발로 물레를 천천히 돌려가며 바깥쪽은 수레, 안쪽은 도개로 딱딱 박자 맞춰 두드려 펴고
일정한 두께를 만들기 위해 근개로 고루 다듬어주자 독의 아랫도리가 부끄러운 듯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9층을 쌓자 독의 키는 벌써 허리께를 웃돌고, 서서 물레를 차는 김 씨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연신 굴러 떨어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호 씨는 안쓰러운 듯
[ 대독은 쌓아갈수록 밑바닥까지 손이 닿지 않아 힘들기 때문에 옛날엔 50세만 넘으면
옹기 빚는 일을 그만 두었다 ] 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씨가 물가죽으로 주둥이 모양을 잡고나자 드디어 대독이 하나 뚝딱,
마치 도깨비 방망이라도 두드린 것처럼 지어졌습니다. 다 만들어진 독을 들보를 이용해
조심조심 옮겨 놓고는 부자가 멀찍이 떨어져 감상을 하는데, 용호 씨가 먼저
[ 아버지, 배가 너무 홀쭉해요 ] 라고 하자 김 씨는 멋쩍은 듯 허허 웃고 맙니다.
대독을 지을 때 기운이 달리면 날씬한 독을 만들어내게 된다며 주름살 깊게 패인
아버지의 이마를 바라보는 막내아들의 눈빛에서 애틋함이 묻어나왔습니다.
빚은 옹기는 일주일 간 애벌 말린 후 잿물을 입히고 문양을 그려 넣는 환치기를 거쳐
드디어 가마 속으로 들어갑니다.
일주일 동안 피움불·돋굼불·중불·벗김불·큰불·녹임불로 이어지며 최고 1200℃의
소나무 장작불에 몸을 맡기고, 그을음의 애무도 받으면서 단련되는데,
불이 너무 세면 그릇이 주저앉고 너무 약하면 수분이 많이 남아 갈라집니다.
가마에 불 놓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 가마 불을 지피는데
비가 오면 사흘씩 연기해야 하므로 어느 날이 될지는 당신들도 모른다는 대답이었습니다.
* * * 옹기는 흙을 만드는 생질꾼, 생질꾼이 만든 흙을 체에 걸러 앙금 앉히는 수비꾼,
흙을 떡가래처럼 길게 늘려주고 빚어진 옹기에 잿물을 입히는 건아꾼, 물레를 돌리는 대장,
가마에 불 때는 화부 등 공정의 모든 사람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때 제대로 된 옹기가 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50년의 관록으로 옹기제작의 전 과정을 두루 꿰고 있는 최고수 장인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모시고, 서로를 잘 아는 형제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게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이라고 셋째 창호 씨가 말하더군요.
장남 성호 씨는 흙의 배합과 유약, 둘째 정호 씨는 물레 성형, 셋째 창호 씨는 장식용 옹기,
막내 용호 씨는 큰 옹기 만들기에 각각 재주와 관심이 있는 데다, 셋째 창호 씨는
여주대 도예과에 늦깎이로 입학, 옹기의 이론적 배경까지 공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황토살이 배겨도 단단히 배긴 못 말리는 옹기가족 아닙니까.
창호 씨와 용호 씨가 장차 옹기에 관한 모든 유·무형의 자료들을 모아
[ 옹기골 ] 을 조성하고 가마도 더 들일 것이라며 청사진을 펼쳐 보이자
묵묵히 듣던 김 씨가 [ 말은 잘한다! 진짜 해야 하는 거지! ] 하며 대뜸 면박을 줍니다.
그러나 옆에서 보기에도 그건, 퉁명스러운 말투 속에 대견함을 감추는 김 씨 식의
애정표현법이란 걸 단박 알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임을 잘 아는 형제는
민망해도 않고 씩 웃는데, 그 모습이 저만치 놓인 오지항아리의 소박함과 정겨움을 닮은 듯했습니다.
* * *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 옹기 ] 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두루 이르는 말로, 질그릇은 진흙으로 만들어 구워 잿물을 입히지 않은 그릇이며,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다시 구운, 윤이 나고 단단한 그릇입니다.
다양한 쓰임새와 지역적인 특색을 가졌지만, 갓난아기의 태를 담는 태항아리부터
뚝배기·시루·푸레독·술병·굴뚝·기와는 물론 똥을 담아 놓는 합수독아지에 시체를 넣는 옹관까지 이르면,
한반도에 터를 닦고 살아온 백성들의 의식주와 생사에 늘 함께 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옹기의 매력은 뛰어난 [ 저장성 ] 입니다.
우리나라가 각종 장류와 김치 등 발효음식의 종주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옹기라는 저장성 뛰어난 그릇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즉, 옹기의 기본재료가 되는 점토 속에는 작은 모래 알갱이도 섞여 있는데 이런 것들이
구워질 때 녹으면서 만들어진 미세한 공간으로 안팎의 공기가 드나들어, 온도와 습도를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담긴 음식물이 썩지 않고 서서히 발효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철에 장 항아리에 하얗게 소금기가 서려 있거나 독 표면이 끈적끈적한데
이것이 바로 옹기가 숨구멍을 통해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 숨 쉬는 그릇 ] 이란 증거랍니다.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닦아주었던 것도 항아리가
계속 호흡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햇빛에 의존하여 서서히 발효시켜야 했으므로, 비교적 일조량이 많은 남부 지방 옹기는
입이 좁고 배가 부르며, 중·북부 지방은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입이 크고 배가 덜 부릅니다.
비록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처럼 우아하고 세련된 자태를 갖진 못했지만
이 땅의 자연과 민초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완성시킨 옹기이기에, 무엇보다도 가장
한국적인 선과 모습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오부자 옹기집에서 만난 외곬수 옹기장과 그의 네 아들이 빚어낸 옹기들을 보면서
이제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회한 때문에, 또한 세상의 돈벌이와는 무관한 길을 걷느라
고단하기 짝이 없는 장인의 삶 때문에,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겨웠습니다.
옹기장이들이 자연에게 빌린 최소한의 흙·물·불·바람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만든 옹기는
농투성이 서민들의 거칠고 고달픈 삶과 사랑과 애환을 담고 있다가, 깨지면 다시 흙이 되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줄 아는 겸허함을 지녔습니다.
지체 높은 양반 댁 사방탁자 위에 사뿐 올라앉은 고려청자며, 은은한 묵향에나 취하던 백자 연적이
투박한 뚝배기 속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처럼 구수한 사람냄새를 어찌 알겠습니까…
------- Let me see ------------------------------------
* * * 은선님, 옹기는 그동안 무겁네, 자리 많이 차지하네, 잘 깨지네 하며 외면을 많이 받았지요. 하긴 간장이며 된장 든 항아리를 이사갈 때 옮기는 일, 그거 보통 일 아니잖아요. 그리고 현주님, 물개님 눈물 흘리며 자꾸 우셔야 정신 건강에 좋아요, 냅두세요~ ^^ 그리고 저와 약속하신 그거, 언제 지키실 건데요?
첫댓글 친구의 글만 읽으면 왜 자꾸 눈물이 나올까요?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종이버선을 붙여놓는 이유는 흰빛이 햇살에 반사함으로서 잡벌레의 근접을 막음도 있지요. 게다가 균형스럽게 들어간 목질띠 역시 그릇에 어깨를 받쳐주는 노릇도 하지만 벌레의 근접을 한번 걸러내는 역할을 하지요.그리고 그 자체가 문양이 되기도 하구요.
* * * 물개님이 요즘 핑계대고 울 꺼리를 찾으시나 봅니다~ ^^ 그리고 춘화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지요? 그 버선이 그런 과학적인 의미도 있었군요. 제가 모르는 것까지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좋은글 보고 가네요. 옹기의 중요함에 대한 글을요.....
오랜만입니다...좋은 글... 자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시길요...그래야 조오기 물개가 눈물 흘리며 반성을 할지 누가 압니까? ㅎㅎㅎ...물개에게 물리기 전에 도망가장...
도예 전공자보다 더 안목이 높고 깊은 님의 안목을 경탄하지 않을 수 없군요....
* * * 은선님, 옹기는 그동안 무겁네, 자리 많이 차지하네, 잘 깨지네 하며 외면을 많이 받았지요. 하긴 간장이며 된장 든 항아리를 이사갈 때 옮기는 일, 그거 보통 일 아니잖아요. 그리고 현주님, 물개님 눈물 흘리며 자꾸 우셔야 정신 건강에 좋아요, 냅두세요~ ^^ 그리고 저와 약속하신 그거, 언제 지키실 건데요?
* * * 해숙님,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진작 알고 있던 내용이 아니라, 이번에 기회가 닿아 어쩔 수 없이 조금 공부하게 된 것인데 그런 과찬을 들으니 솔직히 민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