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면 상남리 영각사. 장수 장계에서 육십령을 넘어 두 어번 지나쳤던 길이었다. 오늘은 반대로 진입한 탓도 있겠지만 함양안의 계곡의 거연정 동호정 군자정 지금은 불탄 달을 희롱한다는 농월정을 벗삼아 달리던 한적한 그 길의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굽이굽이 펼쳐진 좁고 아늑했던 길도 넓어졌지만 설상가상으로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준공으로 풍광을 훼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고속도로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등공신인 사회간접자본이며 민초들에게는 도시로 향하는 마음속의 인프라로 자리매김하지 않겠는가?
어젯밤 내린 눈에 쌓인 산사는 고즈넉하기 그지 없건만 이런 날씨에도 덕유산 설경을 만끽하려는 등산객으로 절집 주변은 번잡하다.오늘 영각사를 찾은 목적은 산신탱과 부도를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해설사 분들도 예전에 찾지 못했다고 하여 걱정이 앞섰다. 영각사 창건 자료를 전통사찰관광정보에서 옮겨왔다.
통일신라 후기인 877년(헌강왕 3) 심광(深光)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초에 들어와 937년(태조 20)에 중건이 있었다. 1449년(세종 31) 원경(圓瓊) 스님이 중창하였고 1460년(세조 6) 무렵에 지감(智鑑)․선옥(善玉)․도천(道天) 스님 등이 함께 중수하였다. 1509년(중종 4)부터 1523년 사이에 성묵(性黙) 스님이 학전(學田)․법숭(法崇) 스님 등과 함께 중창하였다. 1684년(숙종 10) 선혜(善惠) 스님이 중수하였고, 1734년(영조 10)에도 사중의 스님들이 합심하여 중수하였다.
1770년 상언(尙彦) 스님이 장경각을 짓고 화엄경 목판을 조성했다. 그런데 상언 스님이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아무도 새겨듣지 않았는데, 얼마 뒤에 큰 홍수가 나서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1831년(순조 31) 화재로 화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가, 1886년(고종 23) 강월용 스님이 중창하여 사세를 일으켰다. 1907년에도 불이 났으나 강용월(姜龍月) 스님이 덕월(德月)․신월(信月)․우담(優曇)․서인(瑞仁) 스님 등과 함께 중건했다고 한다.
덕유산 자락 그 자체만으로도 속계를 벗어난 성의 영역이어서 일주문을 애초에 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돌담길 끝에 슬며시 비켜 앉은 천왕문이 부끄러운 듯 수줍게 자리하고 있다. 덕유산영각사 현판이 걸린 천왕문은 한국동란시에 소실 후 가난한 절집 살림살이 탓에 최근에 벽화로 사천왕을 조성하였다.
구광루.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우진각 지붕이다. 모르긴해도 영각사의 텃주대감 같다. 본래에는 다른 사찰처럼 법요식 등 큰 행사시에 활용한 루대 건물이 분명한데 누하를 막고 1.2층 모두 방으로 활용했다. 건물 뒷쪽에는 겨울철 난방으로 고려하여 산골 민가처럼 통풍이 용이하도록 굴뚝을 높게 조성하였다.
신구의 조화?
윗층은 애첩이 거주하는 방처럼 화장하고 멋을 낸 창을 중앙에 걸고 양측면에는 원형의 투각창살문을 가구했다. 아랫층은 동백 기름에 쪽진머리의 조강지처 분위기의 띠살문 창을 걸었다. 산사 절집의 불사는 탐탁치 않지만 루대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요사 불사가 시급하리라 여겨진다.
화엄전. 영각사의 금당이다. 김봉렬 교수의 견해처럼 해인사, 범어사, 부석사를 비롯 영각사도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봉안한 화엄사찰이어서 진입동선을 슬쩍 틀어 천왕문을 조성했을까? 보고 싶었던 산신탱은 산신각에도 없어 화엄전을 기웃거렸지만 조용히 참선 삼매에 젖은 처사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문을 닫았다.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마침 요사에서 나오신 스님에게 산신탱의 행방을 탐문했지만 모른다고 하셨다. 다행히 부도전의 위치은 확인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답사후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산신탱은 도난 방지를 위해 영각사에서 별도로 모시다가 해인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았다.
함양 영각사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었던 이 山神幀은 현재 사측에서 별도 보관 중이다. 絹의 틈이 넓은 명주를 바탕재료로 하여 액자 형태로 제작되어 있는 이 탱화의 화면에는 산신이 호랑이 등에 타고 앉아있는 모습을 그려져 있으며, 뒷면에는 朱書된 全身舍利寶篋多羅尼가 있고, 다시 그 아래쪽에는 墨書된 銘文이 附記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산신탱은 조성 당시에 화면을 액자틀에서 조금 비스듬히 구획하였던 것이 후대로 오면서 틀의 뒤틀림과 함께 화면이 향좌측으로 조금 더 비틀어져 있기도 하다. 또한 제작된 지 오랜 세월의 경과와 관리소홀로 인하여 화면 하단 호랑이 부분과 상단 향우측 구름 부분의 견이 박락되어 있으며, 화면 상부에는 그을음과 함께 채색의 변색이 진행된 상태이다.
눈꽃이 핀 부도. 내마음이고 싶다.
언제 철 들꺼니? 중생아!!!
부도밭을 지나며...정 호 승 201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