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그야말로 극적으로 성사가 되었다.
(요즘 남북회담 분위기로)
당초 전주 산울림산악회에서 메일로 산행계획을 알려온 것이 시초였는데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민주지산과 삼도봉을 종주한다고... 하지만 이 산악회를 따라서 혼자만 간다는 건 여러가지로 불편함이 따르기에 짝을 맞춰서 가야되는데 그게 여의치가 않았다.
안선생님은 군에간 큰아들 면회를 가기로 했다기에 범위에서 벗어났고 지난주 월요일날 서산으로 왔던 두철은 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집안 사정이...
그러던 중 금요일날 오후, 남북대치가 극에 달하며 경계수위가 높아져 군장병들의 외출 외박 면회 등이 모두 금지되었다고... 당연히 토요일 아침운동도 되살아 났고 일요일날 산행도 의사타진을 해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일요일 07:00 진북동 학생회관에서 빨강색 버스에 올라타고 충북영동으로 향하게 된 것.
해발 800미터에 이르는 도마령이라는 고개까지 버스가 올라가고 거기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09:50)
주요 봉우리들이 1200m대니까 기껏 400미터의 표고차를 오르내리며 가볍게 능선길을 걷는 정도로 생각되겠지만 길이 만만치가 않고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암벽코스가 많아 결코 쉽게 볼 수준이 아니다.
맨 처음 산에 발을 들여놓고 계단식 오르막을 따라 도착한 곳이 840고지의 상용정, 그리고 이후에 계속해서 오르막으로 상당히 길게 이어지더니 50여분 만인 10:38에 1,176m의 각호산 봉우리에 도착한다.
이때까지는 산악회 대열의 뒷쪽에 적당히 섞여서 흐름을 따라갔는데 이후로 사람들이 휴식을 하는 동안에 계속 앞서 나가며 속도 또한 점차로 높혀간다.
11:34에 민주지산을 0.4Km남겨둔 능선에서 무인대피소를 만났는데 안선생님이 들었다는 사연에 의하면 예전에 이곳에서 특전사 대원들이 훈련도중 저체온증으로 사고를 겪었다고 하고 그 뒤로 이 시설이 만들어졌다고
하긴 혹한기에 길도 좋지않은 이 능선에서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최단경로의 하산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11:41 민주지산 도착.
1,241m로 아직까지 여기는 충북영동군에 속해있다.
산행을 시작한 이래로 짙은 운무가 온 천지에 가득해서 능선의 조망은 극히 일부만 되고 있어서 볼거리는 떨어지지만 그 대신에 햇살이 비치지 않아 그 덕은 솔솔하게 보고 있다.
둘이서 500ml 물 한병이 전부인데...
오늘 산행의 가장 높은 대표 봉우리인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달랑 김밥 두줄씩을 먹는 것이 식사의 전부인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어지간히들 싸가지고 와서 판을 벌리고 있다.
배낭이 컸던 이유가 다 있었구만!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식사를 마치고 석기봉을 향해 출발하는데 웬 중년의 남자가 중간에 끼어들어 뻠쁘질을 해댄다.
둘 사이에 끼어서 앞질러 가겠다고...ㅎㅎ
대체 어느정도의 체력이길래 저런 무모한 도발을 하는지 시험도 해볼겸 속도를 최대치로 올려서 뽑아본다.
산악마라톤 수준으로 가는 런너들을 앞선다는 건 무리일텐데 아니나다를까 어느 순간부터 뒤따라오던 자취가 느껴지지 않더니 끝내 산행을 마칠때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사람은 그렇다치고 안선생님은 각개격파로 잘 오고 있는지 궁금했던 차 석기봉에 이르러 통과한다고 문자를 보내놓고 사진을 찍고 있다보니 얼마지 않아 등장하며 역시나 런너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12:45 석기봉(1200m)
이후부터는 길이 완전히 달라지며 좋아졌는데 인부들이 동원되어 정비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바위와 돌을 움직여 계단을 만들고 길 양쪽의 덤불을 정비하며 길바닥엔 흙을 깔아주는 작업이 주된 내용인데 인부 몇명이서 곡괭이와 해머 등만을 가지고 수작업으로...
일하는 분들을 지나쳐가는 등산객들마다 수고하신다 감사하다는 덕담이 이어고 기분좋게 삼도봉에 올라선다.
13:10 삼도봉(1,176m)
이제까지 몇개의 봉우리완 달리 이곳은 비주얼도 다르고 사람들 북적거리는 것도 완전히 딴세상 같다.
민주지산이나 각호산은 그냥 이름만 빌려준 얼굴마담이고 실제로는 이 삼도봉이 핵심인 듯.
평평하고 넓은 봉우리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올라가는 형상의 상징물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삼면엔 각각 충북 영동, 전북 무주, 경북 금릉군이 표기되어 있다.
지리산의 삼도봉이 전남북과 경남의 삼도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로 비춰지는 것에 비하면 이곳은 전라 경상 충청의 경계이니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사람들 틈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기념사진을 찍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물한계곡을 향해 하산길에 오른다.
30여분 하산하던 중 아늑한 계곡이 있길래 그곳에서 몸을 씻고 발을 담그며 머문다.
산행에서 젖은 옷들도 모두 갈아입고
어차피 내려가봐야 한도끝도 없이 기다릴게 뻔하기 때문에 14:20까지라도 있다가 가자고 했는데 행여나 다들 단축코스로 하산해서 기다리고 있을까봐 두시가 조금 넘어서 털고 일어선다.
14:50 주차장까지 도착했는데 버스기사님 말씀이 최소 한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거라고...
내 이럴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예고편일 뿐
냇물에서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씩 둘씩 내려온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 한잔씩 하고...
하지만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최종맴버가 도착한다.
6시가 되어서야 버스가 움직일 수 있었으니 5시간 산행에 에누리없이 3시간을 기다렸다는 얘기.
기다림의 미학, 인내의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인 내공이 필요한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