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철학에는 크게 나누어 실체가 무엇인지를 논하는 존재론, 진리를 어2. 흄에게서 무아(無我)를 배우다떻게 인식하는지를 논하는 인식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논하는 가치론 등의 분야가 있다.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 즉 코기토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은이래, 근대철학의 꽃자리는 인식론이 차지해왔다. 반면 중세에는 신의 존재를 논하는 존재론이 중심이었고, 윤리학에서는 당연히 가치론이 중심을 이룬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존재론은 공(空)사상이고 인식론은 유식(唯識)사상이며 가치론은 보살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근대 인식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대륙에서는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인간 주체의 이성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합리주의(rationalism)를 발전시켰다. 이와는 달리 섬나라 영국에서는 존 로크(1632~1704)를 시작으로 전통적인 실용주의의 입장에서 이성의 독단을 비판하는 경험주의(empiricism)를 태동시켰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통하여 진리를 파악하려는 입장이고, 경험주의는 경험에 의해 진리에 접근하려는 입장이다. 비유하자면 합리주의는 이상주의이고, 경험주의는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합리주의는 먼저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낸 뒤 그것으로부터 개별적인 지식을 끌어내는 연역법을 선호하고, 경험주의는 경험에 의해 지식을 모아나가는 귀납법을 선호한다. 합리주의의 체계는 전체를 지향하며, 경험주의의 체계는 집적(集積)을 지향한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대립은 이미 중세에서도 있었다. 대륙에서는 실재론(實在論, realism)을 추구했고, 영국에서는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을 선호했다. 전자는 '보편이 경험 이전에 실재한다(universalis ante res)'는 것이고, 후자는 ‘보편이란 개별에서 추상된 것으로 공통적인 특징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universalis post res)’는 것이다. 따라서 중세의 실재론이 근대화된 것이 합리주의이고, 근대화된 유명론이 경험주의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보편성 위에 세워진 대륙철학은 역삼각형이라 그 기본 원리가 부정되면 전체가 위태로워지지만, 관찰된 사실이 쌓여서 만들어진 영국철학은 바른 삼각형이라 결함이 있어도 고쳐나가기에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대륙에서는 전면적 ‘혁명’이 일어나곤 했지만, 영국에서는 늘 부분적 ‘개선’을 선택해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세계관도 역삼각형 구조였던 것 같다. 그것은 주자의 성리학을 기초로 형성되었는데, 우리나라가 근대화가 되면서 수입된 서구사상에 의해 성리학의 이념이 무너지자 그만 전체 세계관이 함께 무너져 내린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학생과 지식인이 사서삼경과 성리학의 이기론을 공부했지만,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그런 이론이 그저 역사적 유물로 잠깐 언급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리학은 현실적인 경험주의가 아니라, 이상적인 합리주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전통적으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영국에서 17세기 이후 대륙의 합리주의에 대항하여 경험주의를 발전시켜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경험주의의 창시자 존 로크는 ‘보편이란 타고난 것’이라는 보편의 본유(本有) 관념은 오직 명목일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경험 이전의 인식은 빈 칠판(tabla rasa)이고, 경험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로크의 철학에서 우리가 유의해서 보아야할 점은, 대륙 합리주의에서 확립된 관념들이 경험을 통해 증명되는지 검증하는 대목이다. 그는 관념을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으로 나누었다. 예컨대 ‘금’이나 ‘송아지’처럼 사물에 대한 실제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은 단순관념인데 비해, 이것들이 합쳐서 만들어지는 ‘금송아지’는 복합관념이라는 것이다. 즉 복합관념이란 오성(understanding)이 단순관념들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어서 실체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로크는 합리주의에서 실체라고 인정하고 사용하는 ‘신’ ‘이성’ ‘도덕’ 등의 여러 관념들이 복합관념으로 실제 세상에 있는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로크는 이렇게 기존 관념이 실제 경험에 의해 증명되는지 따져봄으로써 공허한 편견과 선입견의 잡석을 제거해감으로써, 스스로의 작업을 ‘철학의 금세공’이라고 불렀다.
이 머릿속 관념의 청소작업은 로크 당대에서는 완성되지 않았다. 비록 로크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를 비판했지만, 데카르트가 사용한 ‘정신’과 ‘물체’라는 기본 실체관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대에 한창 뻗어나가던 영국의 과학을 위하여, 실체 관념들을 불가지(不可知)로 남겨두고 그 개연성을 인정하였다. 모두 부정해버리면, 과학이 설 자리가 없어질까 저어했던 것이다. 로크의 철학은 결국 미완성 경험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지금까지 본 것처럼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에 대한 논의도 앞에서 본 ‘의식의 대법’의 구조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두자.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서로 상대적인 대칭구도에서 누가 중심을 차지하느냐를 가지고 투쟁해온 것이 근대철학사의 주된 흐름인 셈이다.
경험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경험주의를 완성시키는 사람은 흄(1711~76)이다. 로크에 이어 흄은 이성의 추리가 쌓아올린 세계관이 실제로 맞는지를 밝히는 경험주의를 끝까지 밀고나감으로써, 합리주의가 인정한 물체와 정신의 실체성이 허상임을 밝히게 된다. 즉 합리주의가 믿고 있던 지식들이 인간의 정신적인 습관의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에서 이성의 월권과 독단에 의한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흄이 하고자 한 것은 이성의 독단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근대문명을 구축한 주된 동력이었던 이성 역시 음양의 이중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성의 밝은 면은 인류의 발전에 필요한 계몽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림자가 있어서, 지나친 추리와 생각 과잉으로 인한 정신분열의 고통스런 마음병을 근대인에게 겪게 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어두운 유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또한 지나친 과학주의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등 그 사회적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 뜻에서 흄은 우리에게 ‘이성이 과도한 자기 확신에 도취되어 어두운 망상의 독단에 빠지는 매카니즘’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성의 영광과 함께 이성의 약점을 알아두는 것은 정신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성으로 육체와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적인 강박관념은 많은 근대인들의 마음을 억눌러왔다.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에 의해 서구에서는 정신분열적인 문제가 개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흄의 문제의식은 인간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즉 ‘진짜 그런지 한 번 대봄으로써’, 모든 종류의 선입견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자는 것. 이런 흄의 ‘경험적 인간학’ 실험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스코틀랜드인이었던 그는 12살에 에든버러 대학에 들어갈 정도의 천재였다. 하지만 학위를 마치지 않고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홀로 문필가를 꿈꾸며 공부했다. 그는 병이 날 정도로 열심히 사색했는데, 그 주안점은 ‘경험주의의 끝장을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요양 차 가있던 프랑스 전원도시에서 《인성론(A Treatise of Haman Nature)》을 집필하고 고향에 돌아와 출판한다.
아직 20대의 순수한 젊은이가 쓴 이 무명의 책을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보내온 책을 읽은 일부 학자들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이해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고독 속에서 그는 메아리 없는 철학서적을 당분간 쓰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직 관념의 때가 묻지 않은 한 젊은이의 순수한 열정은 근대철학사상 최고의 스캔들을 불러일으킬 만큼 강력한 문제제기를 만들어냈다. 경험주의를 정직하게 밀고 나가면, 어떤 전통적인 지식이라도 그것이 참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던 것이다.
‘신’이건, ‘정신’이건, ‘진리’이건, ‘과학’이건, ‘물질’이건, ‘주체’건, ‘자연법칙’이건, ‘인간성’이건, 그 어떤 관념도 객관적 실체로 증명되지 않는다. 흄은 모든 지식은 인상과 관념의 묶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정신’이나 ‘주체’라는 범주는 해체되고, 철학은 물론 과학마저 위기를 맞게 된다. 흄의 책은 오히려 프랑스 등 국외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흄의 강력한 회의주의는 근대철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된다. “인간의 동일성, ‘나’라는 주체의 동일성에 대한 견해를 엄밀히 검토한 결과, 나는 완전히 미궁에 빠져서 어떻게 그 견해들을 수정해야 할지 또 어떻게 그것들을 일관되게 만들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 이 정직한 고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 탈출구를 모색한 사람이 칸트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흄의 인식론
한마디로, 흄은 데카르트가 내세운 ‘근대적 주체’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는 인식의 과정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관념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자아’ 관념이었다. 흄의 인식론은 이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추상관념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외부의 사물을 오감으로 받아들일 때, 정신에는 먼저 인상(印象, impression)이 새겨진다. 밖의 사물이 사라지더라도, 인상은 관념(idea)으로 변하여 뇌리에 남는다. 비유하자면, 사고로 다쳐 장님이 된 사람이 지금은 시각적 인상을 가질 수 없지만, 과거에 보았던 인상에 의하여 관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의 머리에서 ‘사과’는 하나의 관념으로 떠오른다. 한편 선천성 장님은 시각적 인상도 관념도 지니지 않는다. 대신 다른 감각기관으로 통해 얻은 인상과 관념을 지닌다.
인상과 관념이 합쳐서 지각(perception)을 만들고, 지각에서 지식이 만들어진다. 사물이 지각되어 인상과 단순관념으로 남을 때까지는 왜곡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지각 경험이 반복되면 이성이 단순관념을 생각과 추리를 통하여 추상화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비현실적인 ‘복합관념’, ‘고정관념’, ‘관념연합’ 등 독단의 망상을 자아내는 것이다. 즉 관념들을 합성하는 이성의 능력 때문에, 거짓된 복합적 관념들이 형성되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이성의 습관적 왜곡현상을 하게 되는 것을 구약에서는 소위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표현했다. 흄이 지적하는 것은, 선행적으로 사물과 대응하는 인상 없이 만들어진 모든 복합적 관념은 허구라는 사실이다.
이성이 왜곡하는 관념현상의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리가 고양이를 보면 바로 고양이의 인상이 정신에 찍힌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면, 인상은 단순관념으로 변하여 남는다. 인간은 실물을 보지 않아도, 고양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같은 시스템에 의해 우리는 뿔이라는 관념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성은 추리를 통해 관념들을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예컨대 고양이와 뿔의 관념을 결합하여 ‘고양이 뿔’이라는 복합관념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관념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인상에 대응하느냐 아니냐를 따져보면 금방 드러난다. 우리는 고양이 뿔이 망상인 것을 금방 안다. 그에 대응하는 실제 인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2007. 12)를 읽으면, 그 행간을 바로 알아듣는다. “요즘 북한에도 자본주의가 스며들고 있어, 아줌마들이 상인이 되어 장마당에 나앉고 있다. 평양뿐 아니라 함흥이나 청진 등 주요도시에서 그런 시장이 활성화되어서, ‘고양이 뿔 내놓고 없는 게 없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이렇게 누구나 알아듣는 비현실적인 복합관념이 있는 반면, 마치 실제처럼 교묘한 관념들도 많다.
흄의 당대에 많은 사람들은 인간과 날개가 결합한 복합관념인 ‘천사’가 실재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 고전시대에는 신화에 나오는 페가수스(天馬)를 실재 존재로 믿은 이가 많았을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마 무수히 많은 ‘복합관념’을 사실로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명되었다 하지만, 점집이 줄어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아마도 점집에서 오가는 용어들은 대부분 복합관념들일 것이다.
한편 고정관념이란 몇 번의 접촉을 통해 생기는 선입견을 고정시켜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하고 판정해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를 떠올려 보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아마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이기 쉽다. 실제 주변 사람은 그때그때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데, 우리는 어느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시켜서 그 이미지에 집착해버린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면, 미리 예단해놓은 이미지로 상대의 말과 행동을 왜곡시켜서 받아들이게 된다. 예컨대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고부 사이’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다.
자아의 허구성
흄이 그 허구성을 특별히 강조한 ‘관념연합’의 가장 적합한 예는 ‘자아’라는 관념이다. 앞에서 본대로, 주관은 ‘의식의 대법’에 의해 객관과 함께 생겨나는 임시적인 이미지이다. ‘나’라고 하는 관념은 객관적 상대가 나타났을 때만 나타나는 것. 즉 ‘자아’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만 떠오르는 자의식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 생활에서는 수시로 자아의식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무심히 산책하거나 청소를 할 때, 나라는 생각은 없다.
생각의 망상은 이 수시로 생멸하는 자의식을 습관적으로 연합시켜 실재하는 실체로 착각하게 만든다. 마치 영화를 볼 때, 실제로는 스틸 사진이 1초에 24컷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눈은 착시현상에 의해 움직이는 영상으로 느끼는 원리와 같다. 사진 같은 관념을 습관적으로 연결하여 영화 같은 관념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관념들을 연결한 관념연합을 ‘나’라고 착각한다. 그리고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스스로 단정해버리고, 그 이미지에 끌려 다니게 된다. 모든 관념은 인상과 대조되어 일치되어야 실제로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아의 정체성’이란 관념을 실제 인상과 대조해 본다면, 그것이 허구임을 금방 알아낼 것이다. 스스로 돌아볼 때, 우리들의 실제 인상은 지금 여기 이대로의 존재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관념은 틀림없이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관념은 실제가 아니라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지금 이 자리의 실제 인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인상이란 아무리 그 현실성을 인정하려고 해도 기껏 ‘습관’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습관을 실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이 ‘자아’라는 관념연합을 실체로 착각하여 집착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불교적 통찰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우선 손호연 여사의 ‘단가’ 한 편을 떠올려본다.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시인은 저세상에서의 재회를 예감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팔십 된 아내도 괜찮은가요, 그대를 만날 날은 다가오는데.”
단테는 《신곡》에서 인간들이 자기 생의 어느 결정적 순간의 그 모습 그대로 고정된 채 지옥이나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간다고 묘사했다. 만일 천국이 있어서 사후 그곳에 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곳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늙음도 없을 텐데, 우리는 이팔청춘, 중년 아니면 노년 중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유한한 인간이기에 그려볼 수 있는 이런 소박한 소망은, 한편으로 우리 모두가 어떤 한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그 집착이 관념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흄에 의하면 ‘자아’란 ‘의식의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무대 혹은 스크린일 뿐.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상을 모아서 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이성의 속성이 우리도 모르게 허구의 자아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망상이 집착하는 잔상의 연결 습관을 알아챈다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이질적인 자아의 수많은 컷 중에서 어떤 하나의 장면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집에선 가장의 역할을, 회사에서는 직원의 역할 등등을 하는 일종의 배우이다. 그 수많은 배역인물들에서 공히 일관되는 동일성을 지닌 인격적 실체라는 생각이 현실에서는 들어맞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무의식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아무리 자아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봐도, 무의식에는 나도 모르는 수많은 나의 모습들이 도사리고 있다. ‘중생(衆生)’이란 무의식 속에 여러 인물(衆)이 살고 있다(生)는 뜻이기도 하다. 무의식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
복합관념, 고정관념, 관념연합 등을 실제 사물에서 얻는 인상과 대조하여 허상을 추려내는 경험주의 철학의 엄밀한 작업 앞에서 자아의 정체성, 정신의 동일성, 물질의 항구성 등의 관념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사실 이것은 그 얼마나 시원한 정신적 풍경인가. 집요한 관념의 잎사귀들이 떨어져나가는 나목의 이미지는 흄이 인류에게 선물한 귀중한 정신유산이다.
이런 흄의 인식론에 의하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할 때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나를 ‘생각’ 속에 지나치게 가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해체주의 철학자들은 오히려 생각하지 않을 때, 나의 참모습에 더욱 가깝다고 말한다. 흄 당대의 사람들은 ‘자아란 인상의 다발일 뿐’이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하여, 그를 ‘회의주의자’라고 불렀다. 심지어 그가 살던 거리를 ‘세인트 데빌 스트리트(聖惡魔街)’라고 비하했다. 흄의 순수한 정신은 합리주의의 독단을 자각하게 하여 후에 칸트를 비롯한 많은 지성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부정에서 대긍정으로
흄이 데카르트와 로크의 철학을 완전히 독자적으로 검토하여 이런 생각을 해낸 것은 놀랍다. 하지만 맑은 사색을 통해 불과 20살을 전후하여 도달한 견해였기 때문에, 곧 책으로 써서 발표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실망하여 자신의 철학을 더 발전시키지 않았다. 만일 그가 자신의 철학을 더욱 밀고 나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요슈타인 가아더는 《소피의 세계》에서 흄의 철학을 언급하면서 불교와의 유사성을 이렇게 말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삶을 정신과 육체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이 과정에서 인간은 순간마다 새로워진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젖먹이는 어른과 같지 않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나는 ‘그것이 나의 것이다’고 말할 수 없고, 또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자아나 변치 않는 인격적 실체 따위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흄이나 석가모니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관념이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 순간 새로워지면서 한없이 자유로운 참나를 자아의 관념으로 묶을 수 없다는 뜻. 그것은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라서,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관념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자아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선입견 또한 실체가 아니며, 그런 고정관념들은 어디까지나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선입견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관념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념도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다는 사실도 납득하게 된다.
인간 이성의 월권을 제지하고 인간을 겸허한 진실로 돌려놓고자한 흄은 최대한 정직하게 경험주의의 방법론을 따라갔지만, 관념의 건축물이 무너진 폐허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심연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젊었던 것일까? 그는 허무주의의 벼랑 앞에서 돌아서고 말았기에, 그 부정의 절벽(禪에서는 ‘은산철벽’이라고 부른다)을 통과할 때 비로소 피어나는 대긍정의 꽃을 보지는 못했다.
불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진 자리에 비로소 오롯이 진실이 드러난다.(心身脫落盡 唯有一眞實)” 몸과 마음에 관한 모든 선입견이 무너질 때, 인간은 관념에서 벗어나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그리고 관념의 색안경을 벗고, 세계와 자신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불교는 망상이 자아내는 ‘복합관념의 매카니즘’을 어떻게 볼까? 이 관념의 작용을 모르는데서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기본 입장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두카(苦)’란 어원적으로 바퀴가 축에서 빠져 맞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즉 인간은 머릿속의 관념으로 인해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어긋나게 되기에, 고해 속에서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흄의 복합관념이 곧 불교의 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석존이 고행의 무의미함을 자각하고 우유죽으로 몸을 추스른 후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겼다가 마침내 49일째 새벽, 샛별이 반짝일 때 정각을 얻었다고 전해온다. 그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경전에 의하면, 그때 그가 숙고했던 것은 12연기법라고 알려져 온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동안 그 내용을 음미하고 확인했다고 한다.
석존의 문제의식은 ‘인간은 왜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고해에 빠진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따져본 것이 12연기이고, 그 결론은 인간의 모든 괴로움은 ‘무명(無明)’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고통의 병고를 겪고 있는데, 그 원인이 바로 무명이라는 것. 모든 괴로움은 바로 ‘무지’에서 나온다는 통찰이었다.
무명이란 곧 ‘스스로 만들어 놓은 복합관념에 속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이것은 관념의 문제이기에, 그 해결을 위해서는 또 다른 관념으로 구성된 지식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째로 깨버리는 근본적인 깨달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석존은 바로 그 점을 확인하고, 반야(바른 앎)를 통해 보리(깨달음)를 얻어 고통의 병을 치유한 것이다.
12연기(緣起)는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 육입(六入) - 촉(觸) - 수(受) - 애(愛) - 취(取) - 유(有) - 생(生) - 노사(老死)이다. 무명이 있어서 행이 있고, 행이 있어서 식이 있다는 식으로 이어나가는 것을 유전연기(流轉緣起)라 하고, 무명이 없으면 행이 없고, 행이 없으면 식이 없고 하는 식으로 이어나가는 것을 환멸연기(還滅緣起)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은 보통 무명, 행(행위), 식(의식화)의 상태로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밖에서 명색(실체화 된 객관)을 대하면 여섯 감각기관인 육입을 통해 촉(접촉), 수(지각), 애(애착), 취하고, 그에 대응하여 아상이 생겨서(유) 이것이 생과 노사의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이 모든 연쇄작용의 첫 시작에 무명이 있다. 관념에 속는 데서 모든 괴로움이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무명이 무엇인지 다른 각도에서 지적한 것이 반야심경의 핵심구절인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다. 관자재보살이 ‘오온이 빈 것’을 비춰 보고 일체고액을 건넜다는 것이다. ‘오온’이란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쌓임)인 색(色, 물질), 수(受, 지각), 상(想, 생각), 행, 식이다.
여기서 12연기와 오온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행’과 ‘식’이다. 따라서 12연기를 오온에 대입하면, ‘무명-행-식 = 상-행-식’이므로, ‘無明 = 想’이란 답이 나온다. 상(想)이 바로 ‘복합관념’이므로, 무명의 정체는 복합관념이 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을 모르느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복합관념, 고정관념, 관념연합 등의 오염된 관념(想)들을 지어놓고 나아가 그 허구의 관념들에 속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을 보지 못하고 관념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 자체를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다.
지각인 수(受)가 흄의 인식론에서 인상과 단순관념에 해당하고, 상(想)은 오도된 복합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명상(冥想)은 ‘복합관념을 떨쳐내는 것’의 의미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복합관념’이란 ‘없는 것을 공연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있는 것을 있다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곧이곧대로 보는 것’이 명(明)이고, 그 반대가 무명이다. 고양이 뿔에 속지 말고, 사실대로 보라는 것.
‘무명 즉 상’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아상(我相)이다. 내가 나를 느끼는 것은 좋거나 싫다는 어떤 특수한 지각에 부닥칠 때뿐이며, 지각없이 자신을 붙잡을 수는 없다고 흄은 말했다. 그렇게 파도 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인상을 한 줄로 꿰어서 실체로 만들어 고착한 것이 아상이다. 거울은 무엇인가 오면 그대로 비추고 가면 빈다. 상(相)이란 이미 지나가고 없는 것을 마치 항상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으로, 그래서 거울에 때가 끼었다고 비유하는 것이다. 단순한 인상의 연속이 무지와 착각을 통하여 ‘자아’라는 습관적 관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일단 만들어진 자아는 끊임없이 탐진치를 생산한다. 한 번 때가 끼면 계속 이지러진 모습을 비추게 된다. 우리들의 마음거울에는 이런 관념의 때가 끼어있는 것이다.
가을바람에 본질이 드러나다
젊은 흄은 자아라는 것이 순간적인 인상의 생멸일 뿐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서양의 주류사상이었던 주체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회의주의에 빠졌다고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여기서 출발한다. 객관은 물론 주관마저도 모두 부정되고 난 뒤 허무에 떠는 서구와는 달리, 불교는 그때라야 비로소 인간정신이 해방된다고 본 것이다. 객관과 주관이 부정되어 관념의 찌꺼기가 모두 떨어진 그 자리에 대해, 제자가 선사에게 물었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답하여 이르되, “가을바람에 본질이 드러나지.” (樹凋葉落時 如何? 體露金風)
단지 이때의 진실된 본질은 다시 관념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기에, 언어를 초월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관념의 산물이니까. 본질은 항상 언어의 침묵을 넘어서 나타난다. 그것은 사실상 ‘항상 있는 존재’이다. 생각하는 나(잎)는 왔다 가지만, 생각이 떨어져 가을바람에 드러나는 몸통은 춘하추동 그 자리에 여여(如如)히 있는 것이다. 마음의 시선을 생멸하는 대상만 쫓아다니게 할 것이 아니라 항상 그대로 있는 마음자리에 착안할 때, 그것은 인간에게 불성, 본성, 신성으로 드러난다. 오만 생각을 다 내버려도 실상은 여전히 살아있다. 오히려 버릴수록 생명력 자체는 천진스럽게 생생히 살아난다. 원래 인간도 그렇고 세상도 여여한데, 생각으로 엉뚱하게 그려놓는 것이 문제다.
경험주의 철학이 ‘인상에 대응되는 단순관념만이 사실이고, 머리가 만들어낸 복합관념, 고정관념, 관념연합 등은 사실이 아니다’는 것을 밝히고, 나아가 일반적으로 인간들이 사실이라고 믿어온 관념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았을 때, ‘인간성’ ‘자아’ ‘신’ ‘도덕성’ 등의 고상한 관념들은 모두 실제적인 ‘인상’을 갖지 못하기에 허구인 복합관념일 뿐이라고 판명되고 말았다. 현실적으로 있지 않는 복합관념(고양이 뿔)이 ‘상(想)’이며, 그것을 거짓인 줄 모르고 실제인 줄로 아는 것이 ‘무명’이다. 거짓된 복합관념을 사실로 믿으니까, 왜곡된 행동인 ‘행(有爲)’이 나오고, 그 습관이 쌓여서 ‘식(의식화된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상은 여여한데, 혼자서 관념에 속아 지지고 볶으며 난리를 치는 것이 문제다. 새끼줄을 가지고 뱀이라고 착각하여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석존이 지적하기를, 관념의 허상에 놀아나는 무명의 상태를 자각하고, 일단 그 관념의 굴(‘매트릭스’는 이것을 가리킨다.)에서 빨리 나오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화살의 비유’에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았는데, 먼저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그 화살이 어떻게 생겼으며, 재료는 무엇이고, 누가 쏘았는지 등을 논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화살은 물론 왜곡된 관념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다. 화살부터 뽑아야 한다. 이런 복합관념을 《금강경》에선 ‘상(相)’이라고 부른 것이다. 상(相, 想)을 실체라고 착각하는 것이 무명이다.
무명이 걷혀지면, 유위(행)가 아니라 무위(應無所住而生其心, 머물지 않고 내는 마음)가 되며, 무위가 되면 의식의 찌꺼기(식)가 끼지 않으며, 의식이 맑으면 밖의 사물이 명색(실체로 착각된 객체)으로 대해지지가 않으며, 그렇게 되면 여섯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이 접촉(촉)되어도 에고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다루지 않아 수, 애, 취가 일어나지 않으며, 객관을 취하지 않으면 주관인 에고도 생겨나지 않아서 결국 아상(유)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생로병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무명에서 벗어나 인생을 걸림 없이 사는 이는 ‘이렇게 왔다(如來)’가 또 ‘잘 가는(善逝)’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여래’와 ‘선서’는 ‘불타(깨달은 사람)’의 다른 이름들이다.
안심법문(安心法門)
흄의 문제의식은 합리주의적 망상의 독단을 경험주의로 비판하는 것이었다. 경험주의의 현실적이고 명징한 사고 앞에 ‘자아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흄의 철학적 사고는 멈췄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문제의식은 ‘왜 인생은 괴로운 것인가?’ 하는 의학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실존을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 ‘고양이 뿔’ 같이 허망한 관념에 붙잡혀 있는 정신을 발견해낸 것이다. 그는 반짝이는 샛별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무명’의 실체를 보고, 마침내 자신의 마음병을 치유하였다. 그리고 그 치유법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기 시작했다. 석존의 첫 법문인 ‘고-집-멸-도’의 사성제란 고대 인도의 의학체계인 ‘발병-원인규명-치유-완쾌’에 마음병을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이 법이야말로 내 가르침의 진수라고 도장을 콱 찍어놓은 삼법인(三法印)인 ‘일체개고(一切皆苦, 관념에 물들어 살게 되면 무엇을 해도 고통스러운 결과를 벗어날 수 없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주관과 객관 그 어느 것도 정해진 자아라는 관념으로 실체화되지 않는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행업은 생멸할 뿐 영원하지 않다)’도 실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으라는 간곡한 의학적인 메시지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다가 열반적정(涅槃寂靜, 이것을 바로 보고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은 常, 樂, 我, 淨의 상태에서 살게 된다)을 더해서 사법인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인생의 고를 불가피한 병으로 인정하지만 그 치유책인 깨달음의 세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놓은 것이다. 석가모니의 체험은 거창한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정신의학적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法)라는 것도 만일 그것을 정해 놓으면, 그것은 복합관념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진리를 정해 놓지 않는다. 그러면 상황 속에서 오히려 진리가 정확히 드러난다. (無有定法 因緣生法) 그래서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것이다. 머무는 마음은 고정관념이 된다. 만일 밖에서 ‘부처’라는 복합관념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집착하면, 자기 안에 있는 진정한 부처(佛性)를 보지 못한다. (밖의 부처와 안의 부처는 서로 보지 못한다. 佛佛不相見) 석존이 돌아가실 때, 《열반경》에서 “나는 일찍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 것도 진리는 정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석존뿐만 아니라 선가(禪家)의 역대 조사들도 모두 한 마음 한 소리로 이런 마음의 원리를 강조해왔다. 선불교의 초조 달마가 미래에 2조가 될 혜가가 찾아왔을 때 행한 유명한 ‘안심법문’은 복합관념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선불교의 대표적인 에피소드이다. 사실상 선의 전등(傳燈)이 시작되는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혜가: “제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부디 스승님께서 제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달마: “그 편치 않다는 마음을 가져오면, 안심시켜 주지.” (祖曰, 將心來, 與汝安.)
혜가: 묵묵히 (마음을 찾아본 후) “마음을 찾았지만 끝내 얻지 못하겠습니다.” (可良久, 曰, 覓心了不得.)
달마: (정히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너에게 확실한 안심을 주노라.” (祖曰, 我與汝安心竟.)
달마가 혜가에게 한 가르침도 바로 관념에 대한 바른 인식이었던 것이다. 혜가가 괴로워하며 편코자 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의 복합관념으로서 당연히 허구라는 것. 아무리 찾아도 실체가 없는 것을 붙들고 고민하고 있지만, 정말 냉정히 따져보면 ‘괴로운 마음’이라는 것은 ‘고양이 뿔’에 불과하다. 마음은 인연 따라 생겼다 없어지는 것이기에 결코 고정된 자성을 지키지 않는다. 현실 속의 실제 인상과 대응되지 않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수경》에 나오는 ‘죄는 자성이 없이 마음 따라 일어난 것뿐이다. 만일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죄 역시 없는 것이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하는 것도 똑같은 말이다. 죄 역시 인식할 때만 존재하는 것으로, ‘고양이 뿔’이다. 관념의 놀이에 속지 말고 직시하라는 메시지이다.
이하 2조 혜가가 3조 승찬의 “저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요청에, “죄를 가져오면 죄를 멸해주겠다”고 하는 것, 그리고 3조 승찬이 “해탈법문을 내려달라”는 4조 도신에게 “누가 너를 묶었느냐? 너를 묶은 사람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해탈법문을 구하나?” 하고 말하는 등 역대 조사들이 제자에게 지적해주는 핵심은 바로 “왜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나?” 하는 것이었다.
실제 있는 것만 상대하고 살면 생활이 단순해지고 걱정할 것도 별로 없을 것을, 우리는 있지도 않는 것을 실체로 착각하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 노끈을 보고 뱀이라고 착각하여 두려워 떨고 있다.’는 석존의 비유도 이 점을 가리킨 것이다. 선방에 가면 섬돌 옆 기둥에 “관념에 속지 말고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만 직시하라.”는 뜻인 ‘발밑을 보라.(照顧脚下)’가 써 붙어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미 선가에서 너무도 유명한 에피소드인 신수와 혜능의 ‘게송 배틀’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선명히 이해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모두 5조 홍인의 제자로서, 신수는 북종(北宗)의 시조가 되고 혜능은 남종의 시조가 된다. 혜능이 살았던 곳이 조계산이었기에, 한국의 조계종은 혜능의 가르침을 잇는 선종이라는 뜻이다. 5조의 법을 잇기 위해 벽에 써 붙인 신수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身是菩提樹)
마음은 명경대와 같나니 (心如明鏡臺)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時時勤拂拭)
먼지와 티끌이 끼지 않게 하자 (勿使惹塵埃)
학식과 인격이 고매했던 신수는 5조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인 수많은 제자들에게서 이미 맏형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남쪽 오지에서 새로 온 막내이자 나무꾼 출신으로 글자도 몰랐던 혜능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이 시의 내용을 듣게 되자, 즉각 이 시의 작가가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이 깨달음의 나무임을 체험한 사람은 그런 관념적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마음이 맑은 거울처럼 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명경대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표현은 모두 ‘상상의 산물’이자 ‘희망사항’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털고 닦는’ 유위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혜능은 비록 신분이 천하고 나이도 어렸지만, 안목은 바로 열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래의 시를 써 붙이게 된다.
깨달음에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아니다.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本來無一物)
어디에 먼지가 끼고 티끌이 앉을 것인가? (何處惹塵埃)
혜능은 통쾌하게 고정관념을 깨부순 것이다. 미리 진리라고 고정시켜 놓은 온갖 관념들이 싹 걷히고, ‘본래 한 물건도 없을’ 때, 존재의 실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신수는 3차원의 세계 내에서 ‘털고 닦는’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고, 혜능은 4차원의 세계에서 ‘털고 닦을 것도 없는 이치’를 밝히고 있다. ‘자아’라는 관념이 주체가 되어 수행하는 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아만 더 강화될 뿐이다. 왜냐하면 ‘자아가 바로 티끌’인데, 티끌이 티끌을 털고 닦아 봤자 티끌이 더 묻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혜능의 입장에서는 그런 헛 노력을 아예 그만 두고, ‘자아라는 주체’ 자체를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자아가 주체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저절로 ‘어리석게 구하는 마음(痴求心)’이 쉬게 된다. 주체로서의 자아가 사그라들면, 객체로서의 보리수나 명경대나 티끌이나 먼지나 모든 것이 따라서 사그라든다. 우리는 앞에서 ‘대법의 원리’를 통해 이 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객을 이어주는 의식이 끊어지면, 주체나 객체나 모두 ‘한 물건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주체가 나서서 무언가를 행위 하는 세계를 3차원이라 하고, 나서서 설치려는 주체 자체를 자각하여 내려놓는 순간 탕탕 무애하게 확연히 열리는 실상의 세계를 4차원이라고 할 때, 확실히 신수는 아직 3차원 내의 일을 언급하고 있고, 혜능은 4차원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차원의 세계는 복합관념과 ‘의식의 대법’에 사로잡혀 움직이는 곳이고, 4차원은 관념이 떨어져나간 ‘무의식의 대법’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선은 4차원에 대한 눈뜸을 가장 중시한다. 그래서 5조는 결국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혜능에게 물려주게 된다. 하지만 중생심에 의해 움직이는 일반 제자들이 반발할 것을 예견한 5조는 한밤중에 혜능을 떠나보낸다. 혜능이 다시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십수 년이 흐른 뒤의 일이다.
이렇게 선은 ‘관념의 허상’에 매우 민감하다. 그리고 그 관념을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만 ‘깨달을’ 뿐이다. ‘고양이 뿔’이 원래 없는 것이란 걸 알면 그만이지, 그걸 없애려고 하는 것도 허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어찌 없애나?” 제자들은 이 말을 알아듣고,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뛰어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들의 실상을 고요히 비춰보고, 일체의 괴로움을 뛰어넘었다.(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다. 선의 역대 조사가 모두 복합관념에 속지 않는 안목 하나로 꿰뚫어지고 있다. 선에서 ‘바른 안목(正法眼藏)’ 하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실천적인 무아를 위하여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미 고정관념에 젖어 마음이 영악해진 사람에게는 ‘아는 것’ 만으로는 실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이미 관념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오온설’에 따라 인간의 마음병을 진단하면, ‘상-행-식’의 증세가 있다는 것이다. ‘상’은 현재에 망상(고양이뿔)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행은 무명으로 인해 유위(有爲)를 행하여 결국 업(業)을 짓는 것이며, 식은 그 결과 의식화된 것이다. 즉 ‘행-식’은 소위 말하는 ‘업식’으로 과거에 망상을 지어 쌓인 것이다.
병의 원인을 밝혀내면 약을 써서 치료하는 것처럼, 마음병도 치료를 통해 회복된다. 하지만 아무리 망상의 매카니즘을 알았다 하더라도, 앎만으로는 치유가 안 된다. ‘알면 안하면 되지’ 해봐도, 그렇게 말하는 주체가 이미 ‘에고’이다. 따라서 ‘멸’ 즉 치유의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수행이라는 방편이다. 아무리 병에 대해 잘 알아봤자 아는 주체가 에고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마음병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에고는 더욱 커져만 간다. 도둑이 도둑을 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실천적 치유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에 망상을 지어가는 ‘상’을 치유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명상’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요가 등 일반 명상은 물론이고, (불교용어를 사용해본다면) 기도, 염불, 사경, 위파사나, 오체투지 등이 해당된다. 현재의 마음을 릴랙스 시키고 무언가에 집중함으로써, ‘상’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다. 대개 이런 방법만으로도 왠만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업식’까지 맑힐 수는 없다. 산속이나 수행처에서 기도할 땐 평화롭다가도, 세속으로 나오면 여지없이 다시 혼란 속에 말려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산속에선 관념의 회전 작용이 일시적으로 멈췄지만, 세속에 나와 실제 경계에 부닥쳤을 땐 오히려 더 힘차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만큼 과거 습관적 망상의 관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망상의 뿌리인 업식 작용을 통째로 뽑아버리는 수행을 참선이라고 한다. 한국에선 그 중에서 특별히 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인 ‘간화선(看話禪)’의 전통이 이어져온다. 화두란, 선사들이 깨달음의 과정에서 체험한 ‘문제의식’을 정형화한 것이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분별, 분석하려는 생각의 작용을 멈추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망상이란 무엇을 알려고 할 때 생기는 부작용이므로, 알려고 하는 작용 자체를 정지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따라서 논리에 의해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의식의 작용 자체를 멈추게 하는 마음의 원리를 이용한 수행법이다.
그런데 이 간화선은 매우 차원 높은 수행법으로, 아직 업식의 휘두름 자체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참자가 들어오면 화두를 가르치기 전에 적어도 몇 년 동안은 허드렛일을 하는 행자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의 오랜 업식을 정화하도록 했다. 우리는 옛날이야기에 도를 배우려는 사람은 먼저 3년간 밥 짓고 나무하고 청소만 한다는 일화를 많이 들었다. 몸과 마음을 먼저 맑히면서 자연히 수행의 준비를 시켰던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에게 한국식 간화선을 널리 가르친 숭산스님은 이 점을 깊이 이해하고, 화두를 들기 전에 먼저 절과 염불을 하도록 시켰다. 인간의 업식은 몸과 입과 마음(身口意)을 통해 짓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몸을 정화하는 오체투지의 절과 입을 정화하는 염불을 권장한다. 그런 다음에 비로소 마음을 정화하는 화두를 들게 하는 것이다. 숭산스님이 개척한 미국과 유럽의 사찰에서 백인들이 절을 하거나 합장한 채 다라니를 한국식 발음으로 외우는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숭산스님이, 식이 유달리 발달되어 머리가 복잡한 서구인들에게 제시한 방편적 화두가 ‘오직 모를 뿐!’인데, 그 의미는 제자들의 사고 작용을 우선 멈추게 하려는데 있다. 하지만 ‘모를 뿐’만 지켜서는, 아직 미완성이다. ‘오직 모를 뿐!’의 부정은 ‘오직 할 뿐!’의 대긍정과 대(對)를 이루어 중도(中道)를 구성함으로써 완성된다. 이런 중도의 매카니즘에 대해선 나중에 하이데거의 철학과 함께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원래 전통적인 화두는 예컨대,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하는 제자의 물음에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라는 식으로 대답한 에피소드를 ‘존재에 대한 근본물음’으로 공식화시킨 것이다. 당연히 이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동문서답 같은 것이며, 상식으론 도무지 모를 이야기다. 그 목적은 ‘의식의 대법’ 작용을 끊기 위해, 제자에게 강력한 의문 즉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를 불러일으키는데 있다. 문제는 질문한 사람이 ‘그 대답을 알아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깨쳤다(言下便悟)’는 역사적 사실에 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 자리에서 손뼉을 치고 박장대소를 하며 스승에게 큰절을 올렸을까? 그는 바로 듣고 깨달았는데, 왜 나는 그렇지 못할까? 이런 의문이 뭉치고 뭉쳐서 강력한 에너지의 덩어리(疑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짙은 업식의 무명 칠통(漆桶)을 깨부술 힘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을 만들지 못하듯이 (항생제는 세균만 치료한다), 그리하여 바이러스로 인한 병은 내부의 자가면역기능이 깨어나서 스스로 치유할 수밖에 없듯이, 정신의 바이러스인 업식도 그것을 치료하는 외부의 약은 없다. 어떤 외부의 약이라도 오히려 업식의 먹이로 먹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업식의 주체인 자아는 강하다. 물론 업식 자체는 실체가 아닌 허상이며 일종의 습관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습관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간화선의 화두란, 비유하자면, 바이러스(업식의 번뇌망상)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가면역기능인 자성(自性)을 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방편이다. 가장 보편적인 화두인 ‘이뭣고(What is This?)’는 바로 자성을 찔러 들어가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름길(徑截門)이라고 한다. ‘이(This)’는 자가면역기능인 본성을 직접 가리키는 말이다. 자가면역기능이 내 안에서 작용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무어냐고 바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 질문이 적중만 한다면, 바이러스는 바로 떨어져나가고 질문의 기운(疑團, 의심덩어리)만이 온몸에 가득 찬다. 선사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이런 상태에만 이르면 며칠 내에 결판이 난다고 한다. 간화선에 대해선 나중에 하이데거나 데리다의 철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흄과 불교를 통해 인간 정신의 실존적 상황과 그 치유의 길을 더듬어보았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선입관념이 실제 인상과 일치하는지 점검해보아 그 관념에 속지 않는 것이 무명을 벗어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흄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는 그 어떤 관념일지라도 모두 ‘고양이 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했다. 특히 ‘자아’라는 관념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 망상이 없어질 때, 우리는 진정한 자기자신을 바로 보고 그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문명의 과도한 흐름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관념에 속지 않는 철학을 익혀두면 조화롭고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요긴한 지혜가 될 것이다.
흄에게서 우리는 무아를 배운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앎에서 그치지 않고,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각자 자신에 맞는 실천(수행)을 곁들여야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이다.
첫댓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