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들을 위한 복날 음식, 추어탕
“복날 양반들이 삼계탕이나 백숙을 먹었다면 사대문 밖 서민들은 귀한 닭 대신 미꾸라지를 넣은 추어탕을 즐겨 먹었어요. 추어탕은 서민의 보양식이라고 할 수 있죠. 평소에도 추어탕을 즐기는 편인데 여의도의 한주면옥이나 평창동의 형제추어탕에 자주 가는 편이에요. 특히 형제추어탕은 대학교 때 4·19 혁명 시위에 참여해 경찰에 쫓겨 피신했던 곳이기도 해요. 무작정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우리를 쫓아내기는커녕 고생한다며 추어탕을 한 그릇 주셨죠. 그 한 그릇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납니다.”
여름철 복달임 음식 중 하나로 서민들이 즐겨 먹던 추어탕은 흔히 가을철 보양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영양학적으로 미꾸라지의 생식선이 발달한 여름에 먹어야 좋다. 미꾸라지는 소화흡수가 잘되는 양질의 단백질뿐 아니라 불포화지방산과 칼슘, 각종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다.
추어가 음식의 형태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조선 선조 때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추두부탕’이라는 음식으로 소개된 것이다. 솥에 두부 몇 모와 물, 미꾸라지 50~60마리를 넣어 불을 때면 미꾸라지가 뜨거워서 두부 속으로 기어들어가 추두부가 되는데 이것을 참기름으로 지져 탕으로 끓여 먹었다.
옛날부터 농촌에서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가을걷이를 한 후 논에 물을 빼고 도랑을 파는 도구를 쳤다. 이 도구를 치면 겨울잠을 자려고 논바닥의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간 미꾸라지를 잔뜩 잡을 수가 있는데, 살이 통통하게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한여름 더위에 지친 동네 노인들을 모셔놓고 동네잔치를 열었다. 추어탕은 여름철 더위와 일에 지친 농촌 사람들과 노인들의 영양을 보충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추어탕 역시 다양한 지방색을 가지고 있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재료와 양념, 조리방법이 있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아우르는 남원에서는 미꾸라지를 잡아다 불을 피우고 대파 속에 넣고 구운 ‘미꾸라지 대파구이’를 즐긴다. 또 잘 말린 시래기와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고 푹 삶아 끓인 남원 전통식 추어탕에 추어전, 추어조림까지 즐겨 먹는다. 경기도 고양시 서릿골 마을에서는 장마철이 되면 논두렁에서 소쿠리로 잡아 올린 미꾸라지로 별미를 만들어 먹는다. 갖은 채소와 수제비, 국수를 섞어 푹푹 끓이면 영양만점의 미꾸라지 털레기가 완성된다. 추어탕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후루룩 말아 먹는 국수보다는 영양 면으로 뛰어난 경기도식 미꾸라지탕이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고추장을 풀어 부추, 미나리, 감자 등을 넣고 무쇠 솥에 끓여 깊은 맛의 얼큰한 추어탕을 즐겨 먹었다. 경상도식은 국물이 맑고 시원한 게 특징인데 특이한 점은 산초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냄비에 넣고 끓인다. 추어탕과 구분해 ‘추탕’이라 하는데 걸쭉한 전라도식 추어탕에 비해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특징이다. 육개장과 비슷한 맛으로 곱창이나 사골 국물을 이용하여 맵게 끓인다.
추어탕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민물고기인 미꾸라지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해야 한다. 굵은소금으로 점질물을 깨끗이 제거한 후 식이섬유가 풍부한 우엉이나 우거지, 호박순을 넣고 끓이면 추어탕의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 또 추어탕에 넣는 산초가루는 한방 약재로도 쓰이는데 비린내를 없애줄 뿐더러 산초의 상쾌한 향기와 매운맛이 위장을 자극해 신진대사 기능을 촉진하고 추어탕의 영양가를 한층 높여준다.
추어탕
기본재료 미꾸라지 200g, 숙주 37g, 삶은 우거지·불린 고사리·파 50g씩, 부추 3g, 청양고추 개, 풋고추·홍고추 개씩, 들깨가루 컵, 물1컵, 후춧가루·소금·산초가루 약간씩 미꾸라지 밑 손질 : 소금 큰술, 물 4컵
향채 양파 개, 파·마늘 10g씩, 생강 8g
양념장 된장 큰술, 고추장 큰술, 다진 파 큰술, 다진 마늘 2g
만드는 법
1 냄비에 미꾸라지를 넣고 소금을 뿌린 후 뚜껑을 덮고 5분 정도 해감을 한 다음 깨끗이 씻어 체에 밭친다.
2 삶은 우거지와 불린 고사리는 씻어서 4㎝ 길이로 자른다. 숙주는 뿌리를 떼고 파는 길이 4㎝, 폭 1㎝ 크기로 자른다.
3 청양고추는 씻어서 폭 0.1㎝로 썰고 풋고추와 홍고추는 길이로 반을 잘라 씨를 제거한 후 잘게 다진다. 부추는 폭 0.5㎝ 정도로 다진다.
4 냄비에 ①의 미꾸라지와 물을 붓고 센 불에서 12분, 중불에서 1시간 정도 삶다가 향채를 넣고 약한 불에서 30분가량 더 삶는다.
5 ④의 미꾸라지를 체에 내려 미꾸라지 국물을 만들고 뼈는 버린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숙주와 파를 1분 정도 데친다.
6 냄비에 미꾸라지 국물을 붓고 양념장을 풀어 넣은 후 센 불에서 12분 정도 끓이다 삶은 우거지와 고사리를 넣고 중불에서 30분 정도 더 끓인 다음 숙주와 파를 넣고 30분 더 끓인다.
7 청양고추, 풋고추, 홍고추, 부추, 들깨가루, 후춧가루, 소금을 넣고 한소끔 끓여 산초가루와 함께 낸다.
/ 여성조선
취재 강부연 기자 | 사진 이보영, KBS <한국인의 밥상> 제작팀
도움말 및 요리 레시피 윤숙자 소장(전통음식연구소), 김영빈(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