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절 차례상 '5열 7원칙' 기억하자
설 차례상엔 밥 대신 떡국 올려…상차림은 열마다 홀수로 배열 복숭아·'치'로 끝나는 생선 금물…고춧가루·마늘도 사용하지 않아
[세계일보]
명절 차례상 차림은 가가례(家家禮)에 따른다. 지방에 따라,
가풍에 따라 조금씩 형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대동소이하다.
설 차례상이 일반 제사상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제삿밥 대신 떡국을 올린다는 점이다.
이 점을 제외하면 제사상 차리는 원칙을 준용해도 된다.차례상은 북쪽에 둔다.
젊은 후손이라면 집안의 어른이 차례 때 따르는'5열 7원칙'을 기억해 두면 좋다.
7원칙은 4자의 한자로 표현된다.
음식 배열에 관한 성어가 주된 말들로 표현은 이렇다. 먼저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둔다.
생선과 고기의 위치를 설명한 어동육서(魚東肉西)에 따라 어류는 동쪽,
육류는 서쪽에 둔다.
머리와 꼬리가 구별되는 음식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둔다. 두동미서(頭東尾西)라 한다.
조율이시(棗栗梨枾)는 과일 배치 순서로 대추·밤·배·감의 순서로 둔다.
색깔에 따른 분류도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로,
붉은 색깔의 과일은 동쪽, 하얀색 과일은 서쪽에 둔다.
날것과 익힌 것에 따른 자리 배치는 생동숙서(生東熟西)를 따른다.
김치는 동쪽, 익힌 나물은 서쪽에 둔다.
밥과 국의 위치를 표현한 좌반우갱(左飯右羹)에 따르면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에 둔다.
이때 지방(신위)을 모신 곳이 북쪽, 제주(祭主)가 상을 봤을 때 오른쪽이 동쪽이다. 상차림은 총 5열이 기본이다. 제주와 가장 멀리 있는 곳을 1열로 삼는다.
상차림은 열마다 홀수로 배열한다. 신위를 기준으로 1열에는 밥과 잔을 올린다.
반서갱동의 원칙이 적용된다.
서쪽부터 떡국 잔반(술잔과 받침대) 시저(숟가락과 젓가락) 잔반 떡국을 놓는다.
2열에는 어동육서에 따라 국수 전 육적(고기 구운 것) 소적(채소 구운 것)
어적(생선 구운 것) 고물 떡을 놓는다.
이때 두동미서 원칙에 따라 생선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3열에는 주로 탕을 놓는다. 탕의 개수는 1, 3, 5와 같은 홀수로 맞춰야 한다.
고기 채소 생선을 끓인 육탕 소탕 어탕을 놓는다.
4열에는 좌포우혜와 생동숙서의 법칙이 통용된다.
서쪽 첫 번째에는 북어, 고기, 오징어, 문어 중 한 가지를 말린 포로 놓는다.
이어 숙채, 청장(간장), 침채(흰 나박김치), 식혜 건더기를 놓는다.
마지막 줄은 조율이시와 홍동백서를 따른다.
밤 배 곶감 약과 강정 사과 대추를 차례대로 놓는다.
제기에 과일을 올릴 때는 조상을 위해 정성으로 다듬어
놓는다는 의미로 홀수 개를 놓는다.
과일의 위아래는 깎아 놓는다.
상차림에는 시접과 잔반을 먼저 올린다.
향로와 향은 차례상 앞에 마련한 작은 상 위에 올려놓는다. 퇴주잔은 상 아래에 놓는다.
또 유의할 점이 있다. 복숭아와 '치'로 끝나는 생선은 사용하지 않는다.
잉어처럼 비늘이 있는 생선도 올리지 않는다.
과일 중에는 복숭아를 차례상에 두지 않는다. 고춧가루와 마늘 양념도 사용하지 않는다.
국물 있는 음식은 건지만 쓰고, 붉은 팥 대신 흰 고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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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 추석 차례지내는 법
* 설과 추석은 명절(名節)이다. 제삿날이 아니다. 따라서 차례(茶禮)라고 한다.
◎ 설은 새해를 맞이하는 기쁜 날,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님께는 감사의 예(禮)를 올리고, 웃어른들께는 만수무강하심을 비는 세배(歲拜)와 만수금(萬壽金)을 올리고, 반면에 웃어른들은 후손들에게 “복을 받으라.”는 덕담(德談)과 세뱃돈(복)올 내리는 축복(祝福)의 날인 것이다.
◎ 추석은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한 8월 한가윗날,
햇곡으로 떡을 빚고 술을 담그고 통통히 살이 오른 가축을 잡고, 잘 익은 햇과일들로 푸짐하게 차려놓고,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조상님들께는 감사의 예(禮)를 올리고, 일가친척 모두가 따뜻한 정을 나누며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겁게 노는 기쁨의 날인 것이다.
따라서 설과 추석에는 제삿날과는 달리 제례(祭禮)법 같은 것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방도 전 조상님을 모셔놓고 지내는 날이라 현 전조상님 신위 라 한 장으로 쓰고. 설에는 떡국 3그릇. 추석에는 밥 3그릇에 송편 1그릇을 차리고. 기타는 일반제사상 차리는 법에 따라 차리면 되는 것이며, 기타 아무 것이라도 푸짐하게 차리면 되는 것이다.
왜 3그릇이라고 했는가하면, 설이나 추석은 전 조상님을 모시는 차례(茶禮)임으로 떡국이나 송편 등을 많이많이 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음으로 모든 것, 전부라는 뜻의 3그릇만 차리라는 것이다. 물론 9그릇을 차려도 된다. (아래의 설, 추석 차래 상 참고)
그리고 설과 추석에는 무축단작(無祝單酌)이라 하여 독축을 하지 않으며, 아헌, 종헌, 합문을 생략하는 것이다. 즉 술도 제주만 한잔씩 올리고 (9잔을 차렷을 땐 어른들이 나누어 올려도 된다.) 그 외 가족들은 모두 첨작으로 한잔씩 올리는 것이며, 조상님들 식사시간에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 때는 조상님께서 편히 식사하시도록 밖에 나갔으나, 명절에는 전 조상님과 후손들이 모두 모여 함께 즐긴다는 뜻에서 나가 지않는 것이다. 그리고 추석에는 온 가족이 조상님의 산소에 다녀오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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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焚香降神)
분향은 향을 피운다는 뜻이며, 강신은 조상신께서 내려오셨다는 뜻이니, |
향을 피워 조상님들을 모셔 들이고, 모두가 "어서 오십시오." 절을 하는 것이다.(첫 번째 절). (향을 피우면 향을 따라 조상님이 오신다고 믿었던 것임), ※지방도 “현 전조상님 신위”라고 1장만 쓴다. |
2.참신(參神)
신께서 참석하셨다는 뜻이니, |
천지신명께 “조상님제사를 지내고자 하오니. 굽어 살피소서”라며 술을 잔에 조금 따라 향을 쏘인 후 땅에 붓고 모두가 절을 하는 것이다.(2번째 절).
※ 향을 쏘이면 그 제물(祭物)이 신에게 도달한다고 믿었던 것임. * 실내에서는 방바닥에 술을 부울 수 없으니 그릇에 풀과 모래를 담아놓고 땅이라 하고 거기에 부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릇을 "풀 우거질 모(芼)자와 모래 사(沙)자를 붙여 모사그릇"이라고 했던 것이다. 요즘은 풀, 모래를 넣지 않고도 모사그릇이라고 한다. |
3.무축단작(無祝單酌)
축도 안 읽고, 술도 한잔씩만 올린다는 뜻이니, |
축문(祝文)을 읽지 않으며, 술도 한잔씩만 올리는 것인데, 설과 추석은 전 조상님을 모시는 것이니, 술잔도 전부라는 뜻의 3잔을 치리는 것이며,(9잔을 올려도 된다.) 각 잔에 한번씩만 술을 올리는 것인데, 제주 혼자서 올려도 되고 어른들이 나누어 올려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첨작(添酌)은 그 외 참석자 모두가 조금씩 더 올리는 것이며, 모두가 절을 하는 것이다.(3번째 절). |
4.계반삽시(啓飯揷匙)
밥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는다는 뜻이니, |
밥그릇(떡국)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고 "맛있게 잡수세요."라 하며 모두가 절을 하고(4번째 절) 그 자리에 앉는다. ※ 제사 때는 신께서 편히 식사하시도록 모두가 나가고 문을 닫았으나, 설과 추석은 조상님과 후손들 모두가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긴다는 뜻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다. * 설에는 밥 대신 떡국을 차린다. 추석에는 밥도 차리고 송편도 차리는 것이 원칙이다. |
5.헌다(獻茶)
차를 올린다는 뜻이니, |
물을 올리는 것인데, 이때에도 “물에 말아 더 드십시오.”라는 뜻에서 밥을 3번 떠서 물에 말아 드리고 모두가 절을 하는 것이다.(5번째 절)
* 떡국일 때는 말아 드리지 않는다. |
6.사신(辭神)
신을 보낸다는 뜻이니 |
"안녕히 가십시오.” 속 인사를 하고 지방을 불사르고 (사진일 때는 거두어들이고) 모두가 절을 하는 것이다.(6번째 절) |
7.철시복반(撤匙複飯)
수저를 거두고 밥뚜껑을 덮는다는 뜻이니, |
수저를 거두고 밥뚜껑을 덥고, |
8.철상음복(撤床飮福)
상을 거두고 복을 마신다는 뜻이니, |
제사상을 거두고 다시 일반상차림으로 차려놓고 (김치 고추장도 갖다 놓고) 음식을 먹는 것인데, “조상님께서 제사음식을 잡수시고 거기에 복을 가득가득 채워놓고 가셨으니” 그것을 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음복(飮福)이라고 하는 것이다. |
◎ 설 차래 상
신 위 ▶ |
촛불 |
|
지방 |
|
촛불 |
1열 주식▶ |
|
떡국.
잔 |
떡국.
잔 |
떡국.
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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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고기▶ |
소고기(산적) |
돼지(수육) |
닭(삶음) |
포 |
조기(찜) |
3열 부침▶ |
동그랑땡 |
야채부침 |
간장 |
두부부침 |
생선포부침 |
4열 나물▶ |
고사리 |
도라지 |
숙주나물 |
물김치 |
김 |
5열 과일▶ |
대추 |
밤 |
배 |
사과 |
곶감 |
과일
/한과 |
과일
/한과 |
|
|
|
향불
잔 |
주전자
모사그릇 |
|
|
ꀺ
산에서
생산된 것 |
ꀺ
들에서
생산된 것 |
ꀺ
집에서
생산한 것 |
ꀺ
집에서
가공한 것 |
ꀺ
바다에서
생산된 것 |
★ 떡국 제사라 조기나 김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그러나 구색을 맞춘다는 점과,
제사 후에 밥을 먹을 사람들을 위해 차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5열의 과일이 없을 시는 한과도 좋다.
================= (명절 차례상은 제사와 다름니다) ====================
3. 제사 지내는법
제사상 차리기
열(북쪽부터) |
차리는 법 |
신위(神位) 지방 또는 사진을 모신다. |
신위는 북쪽으로 모시는 것이 원칙이며, 고서비동(考西妣東)이라는 것은 "남자 조상님은 서쪽, 여자 조상님은 동쪽으로 모셔라"는 뜻인데 음양이 반대이다. 그것은 남자(양)는 동쪽(양)으로 가려하고, 여자(음)는 서쪽(음)으로 가려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셔야 서로 가까워지기 때문인 것이다. |
1열에는 음식 중 가장 중요한 주식(主食)인 밥(메)과 국(탕)을 차린다. |
밥, 국은 물론, 떡, 국수, 설날 떡국, 추석 송편, 물, 수저도 여기에 차린다. 밥과 국의 경우 죽은 후에도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계신다. 즉 거꾸로 걸어 다니거나, 오른 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동쪽에 밥, 서쪽에 국을 차리고, 죽은 후에는 음양이 반대이니 반대로 차려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살아계실 때와 반대로 서쪽에 밥, 동쪽에 국을 차린다. |
2열에는 주식 다음으로 중요한 고기(肉)를 차린다. 이 2열부터는 산야가해(山野家海)의 순서로 차린다. |
산야가해의 순서에 따라 서쪽으로부터 山짐승인 소고기(산적), 들(野)짐승인 돼지고기(수육), 집(家)에서 기른 닭(찜), 집에서 가공한 포, 바다(海)에서 생산한 조기를 차린다. (★옛날 가난할 때는 덩어리 고기를 살 형편이 못 되어 포를 고기반열인 첫 번째에 놓거나, 고기를 조금 사다 고기국(육탕=肉湯)을 끓이고, 채소의 국(소탕), 생선의 국(어탕=魚湯) 즉 3탕을 끓여 차렸으나, 지금은 덩어리 고기를 차림으로서 3탕은 차리지 않는다.) |
3열에는 고기 다음으로 중요한 전(煎) 즉 부침을 차린다. |
역시 산야가해의 순서에 따라 서쪽으로부터 山짐승인 소의 고기가 들어간 동그랑땡(돼지고기로도 한다)에, 들(野)에서 생산된 배추를 넣은 부침에, 집(家)에서 생산한 간장에, 집에서 만든 두부부침에, 바다(海)에서 생산된 생선의 포를 넣은 전을 차린다. |
4열에는 전 다음으로 중요한 나물을 차린다. |
역시 산야가해의 순서에 따라 서쪽으로부터 山고사리, 들(野)도라지, 집(家)에서 기른 숙주나물, 집에서 담근 물김치, 바다(海)나물인 김을 차린다, |
5열에는 후식인 과일(果實)을 차린다. 여기에서는 조율이시(棗栗梨柿)나 홍동백서(紅東白西)로 차린다. |
조율이시(棗栗梨柿)는 대추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뜻하니 처음에 놓고, 밤은 한 송이에 3개가 들어있어 3정승을 뜻하니 2번째 놓고, 배, 사과는 씨가 6개라 육조판서(判書)를 뜻하니 3, 4번째 놓고, 감은 씨가 8개라 팔도관찰사(觀察使)를 뜻하니 5번째 놓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씨가 많은 것, 즉 백성을 뜻하는 과일로서 참외, 수박, 포도 같은 것을 놓으라는 것이다, (재래식 사탕, 약과, 산자 같은 것도 좋고 수입과일도 좋다.)
*조율이시가 어려운 사람은 홍동백서(紅東白西) 즉 동쪽은 양이고 서쪽은 음이니 붉은 색 과일은 동쪽으로 백색과일은 서쪽으로 놓으라는 것이다. |
이상과 같이 밥, 국(탕), 술. 5육(肉) 5전(煎) 5채(菜) 7과(果)를 차리면 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차렬 수 없을 때는 3육, 3전, 3채, 5과를 기본으로 하고, 더 차리고 싶으면 더 차리면 되는 것이다.
* 그리고 설, 추석, “문중 큰제사”(아래에 설명되어 있음)의 겨우, 그 많은 조상님들의 밥을 어떻게 차리는가라는 것인데, 이것도 "전부"라는 뜻의 3그릇만 차리든가 “아주아주 많은” 이라는 뜻의 9그릇만 차리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적, 부침, 과일 같은 것도 3개 또는 9개씩이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3가지 이상이 되었을 때는 더 차리면 되는 것이지 꼭 몇 개라던가, 훌 수로만 차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 그리고 오신채(五辛菜)라 해서 고추, 파, 마늘, 생강, 식초 같은 것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과, 붉은 팥 같은 것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이것을 먹으면 음탕한 생각을 한다하여 금하는 것이며, 붉은 색, 붉은 팥은 귀신을 쫓는데 쓰기 때문인데, 제사는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일부에서는 뻘건 김치를 차리기도 하고 북쪽에서는 개고기를 차리기도 하는 것이다. (★ 제사의 의의(意義)가 조상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임으로 그 조상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이라면 아무 것이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
* 다음 말들은 "음양을 따르라"는 것뿐이니 참고로 할뿐 외울 필요는 없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팔딱팔딱 뛰니 양(동쪽), 소 돼지는 느리니 음(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 머리는 양이니 동쪽, 꼬리는 음이니 서쪽,
배남복북(背南腹北). 등은 양이니 남쪽, 배는 음이니 북쪽(배가 신위 쪽으로)
생동숙서(生東熟西). 생(生)것은 양이니 동쪽, 익(熟)은 것은 음이니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 포(脯)는 죽은 것이니 음(서쪽), 식혜는 살아있으니 양(동쪽),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색은 양이니 동쪽, 흰색은 음이니 서쪽,
조율이시(棗栗梨柿). 씨의 수대로 놓으라는 것이다.
* 5육 5전 5채 7과로 차린 완전한 제사상
* 밥, 국, 잔만 2분일 때는 2조. (설, 추석, 큰제사 같은 전 조상님을 모실 때는 3조나 9조)
* 과일은 7과로 차려도 되고 포도, 참외, 수박 모두를 차려서 8과로 차려도 됨.
신 위 ▶ |
촛불 |
|
신위/지방 |
|
촛불 |
1열 주식▶ |
(국수) |
국. 밥.
잔 |
|
국. 밥.
잔 |
(떡) |
2열 고기▶ |
소고기(산적) |
돼지(수육) |
닭(삶음) |
포 |
조기(찜) |
3열 부침▶ |
동그랑땡 |
야채부침 |
간장 |
두부부침 |
생선포부침 |
4열 나물▶ |
고사리 |
도라지 |
숙주나물 |
물김치 |
김 |
5열 과일▶ |
대추 |
밤 |
배 |
사과 |
감 |
포도
/참외 |
수박 |
|
|
|
향불.
잔. |
주전자
모사그릇 |
|
|
ꀺ
산에서
생산된 것 |
ꀺ
들에서
생산된 것 |
ꀺ
집에서
생산한 것 |
ꀺ
집에서
가공한 것 |
ꀺ
바다에서
생산된 것 |
* 간소하게 차린 제사상
1열엔 주식, 2열엔 반찬, 3열엔 과일의 순서로 차리는 방식으로서 이렇게 해도 된다.
신 위▶ |
촛불 |
|
신위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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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
1열 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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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밥.
잔 |
|
국. 밥.
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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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열 반찬▶ |
고기
또는 포 |
부침 |
나물 |
김 |
조기 |
3열 과일▶ |
대추 |
밤 |
배 |
사과 |
감 |
|
|
|
향불.
잔. |
주전자
모사그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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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사 지내는 날자
“돌아가신 날 밤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전날 밤 12시에 지낸다.”라고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알고 보면 간단한데도... 생각해 보라. 할아버지가 3월 5일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3월 5일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를.., 그 전날 밤 12시(子時)부터가 아닌가, 즉 하루 전날 지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날의 맨 첫 시간에 지내는 것이다. ★ 크리스마스의 경우, 예수 탄생일인 12월 25일에 미사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24일 밤 12시에 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바쁘다 보니 밤 12시에 지내고 돌아가면 피곤하다하여 1시간 앞당겨 밤11시(이때부터 자시(子時)임으로) 지내거나 돌아가신 날 즉 3월 5일 당일저녁에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 또 요즘은 돌아가신 날마다 지내자니 설과 추석을 합하여 1년에 10번도 더 지내는 집도 있어 생활상 어려움이 많다하여 부모님 제사만을 돌아가신 날 밤에 집에서 지내고 그 외는 모두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한 음력10월 첫 일요일이나 양력10월 3일(개천절)에 사당이나 묘나 큰집이나 일가친척이 모두 모일 수 있는 곳에서 한번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을 “문중 큰제사”라 한다.
“문중 큰제사”로 한번에 지내니까 언뜻 생각하기에 제사를 빼먹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년에 한번씩 따로따로 모시던 것을 한번에 모셔 놓고 지내는 것뿐이지 빼먹는 것은 아니다.” 조상님들께서도 외롭게 따로따로 오시는 것 보다 좋고 후손들 역시 1년에 한번이라 모두가 참석해서 좋은 것이다. 그리고 “문중 큰제사”가 없으면 형제나 일가친척이 각자 제사를 지내게 되어 서로가 멀어질 수밖에 없지만 “문중 큰제사”로 지내게 되면 모두가 모이게 되어 서로 화목하게 되어 좋은 것이다.
★ 문중 큰제사로 지내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 부모. 조. 증조. 고조까지만 집에서 밤 제사로 지내고. 그 위 5대조 이상의 분들은 모두 시제(時祭)로 한번에 지내라고 하는 재래의 4대봉사(奉祀)도 모순이다. 왜냐하면 문중에 사당이 있을 때는 전 조상님에게 제를 올릴 수 있지만, 사당이 없는 문중에서는 5대조이상의 조상님들에게는 제를 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결혼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나 자손이 끊어진 분들은 제외되었던 것인데 이것도 모순이다. 그분들도 모두 조상이기 때문이다. “문중 큰제사”로 지내게 되면 이런 분들도 모두 제사를 지내게 되는 것이다.
* 또한 재래식 시제(時祭)는 고조까지의 제사는 집에서 지내고, 그 윗분들의 제사는 1년에 한 번 사당에서 복잡한 격식에 따라 지내야하지만, “문중 큰제사”는 부모님 제사만 집에서 지내고 그 위 모든 조상님들의 제사는 사당이나 묘나 큰집이나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기 쉬운 곳에서 일반제사를 지내듯 지내면 되는 것이라 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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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제5부(세시풍속~ 설 과 정월대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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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관련자료 모음 시리즈 제5부
(세시풍속~설 과 정월 대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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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유래와 전통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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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한가위와 설이다.
특히 설은 추석과 더불어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큰 명절의 의미를 새롭게 새겨봤으면 한다.
또 이날 즐기는 세시풍속과 시절음식은 무엇이 있는지도
알아보자.
◇설의 유래
설이 언제부터 우리 겨레가 명절로 지내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隨書)’에는 신라인들이 새해의 아침에 서로 예를 차려 축하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며 일월신에게 절하고 예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년)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했다고 한다.
이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과 비슷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신라 때에도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포함된 큰 제사를 1년에 6번씩 지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시대에는 설을 9대 명절의 하나로 즐겼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을 4대 명절의 하나로 지내 이미 이때에는 설이 지금처럼 우리 겨레의 큰 명절로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설날의 세시풍습 ▶설빔=설날 때 입기 위해 준비한 옷을 ‘설빔(세장, 歲粧)’이라 한다. 차례를 지낸 뒤 대보름까지 갈아입지 않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들은 설날 색동저고리를 입는데, 이것을 ‘까치저고리’라 한다.
▶차례 지내기, 성묘=아침 일찍 가족, 친지들이 한집에 모여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과 술을 조상들에게 대접하는 제사를 지낸다. 조상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향교나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한다.
▶세배와 절하는 법(공수법, 拱手法)=새해 아침에 차례가 끝나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해의 복을 빌며, 덕담을 나누는 인사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아직 남아 있다.
▶복조리 달기=조리장수가 설날 전날 밤부터 복조리 사라고 외치며 돌아다닌다. 각 가정에서는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의 복조리를 사는데, 밤에 미처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 산다.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로 그해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이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문안비(門安婢)와 청참(聽讖)=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하녀를 서로 보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라 했다. 민가에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쳤는데, 이를 ‘청참’이라 했다.
▶야광귀(夜光鬼) 쫓기=야광(앙괭이)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이 무서워 모두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 잠을 잤다. 그리고 채를 마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뒀다. 그것은 야광귀신이 와서 채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재미있는 풍속이다.
▶오행점(五行占)과 원일소발(元日燒髮)=나무에 오행인 금, 목, 수, 화, 토 등을 새겨 장기 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나온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쳤는데 이를 ‘오행점’이라 했다. 또 원일소발은 지난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상자 안에 넣어 뒀다가 설날 저녁에 문 밖에서 태우는 풍습이다. 머리카락을 태울 때 나는 냄새로 악귀나 나쁜 병을 물리친다는 믿음이다. ▶해지킴(수세, 守歲)=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믿었으며,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들면 잠든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놀려줬다. 이것은 설맞이 준비가 바쁘니 이 한밤은 잠자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데서 생긴 말로 보인다. 섣달 그믐날은 자지 않고 설을 지킨다는 뜻으로 ‘수세한다’고 했다.
◇설날의 시절음식 세배하러 온 사람에게는 설음식(세찬, 歲饌)과 설술(세주, 歲酒), 떡국 등을 대접한다.
떡국은 꿩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이 제격이었으나 꿩고기가 없는 경우에는 닭고기를 넣고 끓였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겼다. 설을 쇨 때 반드시 떡국을 먹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떡국에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기도 했다. 설날에 술을 마시는데 ‘세주불온(歲酒不溫, 설술은 데우지 않는다)’이라고 해 찬술을 한 잔씩 마셨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봤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었다.
설에는 도소주(屠蘇酒)를 마셨는데 이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술이다. 도소주는 육계(肉桂, 한약재), 산초, 흰삽주뿌리(한약재 백출을 만드는 풀), 도라지, 방풍(한약재)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술이었다.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설날에 즐기는 전통놀이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들은 설날부터 시작해 설 명절의 마지막인 정월대보름날까지 즐겼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 날리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쥐불놀이 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놀이로는 풍물굿이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졌으며 지신밟기, 석전(石戰), 동채싸움(차전놀이), 나무쇠싸움, 횃불싸움, 달불놀이, 달집사르기, 고싸움놀이, 도깨비놀이, 횃불 싸움, 별신굿, 지신밟기,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광대놀이, 처용놀이와 계명(鷄鳴)점, 보리싹 점, 부름 깨기, 액연 태우기 등이 있다.
온 마을 사람이 나가 이웃마을 사람들과의 한 덩어리가 돼 즐기는 이 집단놀이는 각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다. 나아가 집약적 노동을 요구하는 농경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체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이러한 공동놀이 속에 있었다.
▶널뛰기=‘도판희(跳板戱)’라고도 한다. 두툼하고 긴 널빤지 한복판의 밑을 괘 중심을 잡은 다음, 널빤지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튀어 올랐다가 발을 구르면 상대방은 그 반동으로 튀어 오른다. 이렇게 번갈아 두 사람이 튀어 올랐다가 발을 굴렀다 하는 놀이로, 높이 오를 때는 5∼6척까지도 튀어 오른다.
▶썰매타기=썰매는 눈이나 얼음판 위에서 저절로 미끄러져 가며 타게 만든 놀이기구로서, 설마(雪馬), 설매, 서르매, 산설매, 산서르매 등으로 부르는데 말이나 매처럼 빠르다는 뜻이다. 원래 썰매는 산간지방에서 겨울철 수렵과 물건 운반을 위해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은 겨울철 스포츠의 하나인 스키와 닮았다.
스키라고 하면 외국에서 들여온 스포츠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던 생활도구였다. 지금의 썰매는 그런 전통을 응용해 어린이들이 타고 놀기 좋게 만든 것이다.
썰매의 형태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어린이가 앉을 만한 크기의 판자 밑에 각목을 나란히 붙여 대나무나 쇠줄을 박아 만든 것으로 눈이나 얼음 위에서 잘 미끄러지도록 구성돼 있다.
썰매를 탈 때는 송곳으로 양쪽의 얼음을 찍어가며 움직이거나,
방향을 바꾸고, 멈춰서는 동작을 취한다.
▶팽이치기=팽이는 축(軸)을 중심으로 둥근 동체가 회전운동을 하는 완구이다. 팽이치기의 시초는 도토리 따위를 돌려서 장난한 놀이 같은데, 이것을 연구해 발달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당(唐)나라 때 성행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이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에서는 팽이를 고마(高麗)라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으며, 종류도 나무, 대나무, 금속, 유리 등이 있고 모양도 다양하다.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나무로 팽이를 직접 깎아 만들어 추운 겨울 강가, 연못, 논바닥 등의 얼음 위에서 팽이치기를 했다.
▶쥐불놀이=해마다 첫 쥐날(上子日) 또는 정월대보름 전날 농촌에서 논·밭두렁 등의 마른 풀에 불을 놓아 모두 태우는 풍습으로, ‘논두렁 태우기’라고도 한다. 이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잡고 들판의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의 알을 비롯한 모든 잡충(雜蟲)을 태워 없앨 뿐만 아니라 타고 남은 재가 다음 농사에 거름이 돼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소망이 담겨 있다.
또 민간신앙으로 보면 이날 불을 놓으면 모든 잡귀를 쫓고 액을 달아나게 해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윷놀이=‘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戱)’라고도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오는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로 대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즐긴다. 부여족(夫餘族)시대에 5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눠 줘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하며, 그에 연유해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 등에 비유한다.
▶연날리기=연날리기는 예로부터 세계 곳곳에서 즐겨오던 놀이이다. 대나무 가지를 가늘게 잘라 연살을 만든 다음 종이를 붙여 연을 만들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가 연을 날린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으며, 연줄을 서로 닿게 해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도 즐겼다. 그래서 연싸움을 즐기는 사람은 연줄에 돌가루, 구리가루, 사기가루 등을 발라 다른 사람의 연줄이 잘 끊어지도록 하는데 이것을 ‘갬치 먹인다’고 한다.
연을 띄울 때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자를 써서 높이 띄워 실을 끊어 날려 보내는데, 이것은 질병, 사고, 흉년 등의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오도록 비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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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시풍속~설날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 생활과 산업 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날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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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 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 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 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설날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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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
《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날의 풍속 |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설날 차례 |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歲饌]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 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차례상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 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 를 놓는데,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고,
또 마른 것은 왼편에 젖은 것은 오른편에 놓으며, 나물류인
김치·청장(淸漿)·숙채(熟菜)는
가운데에 놓는다.
세째 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 (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네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 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 밥은 왼쪽에.국은 오른쪽에. 또 떡은
오른쪽에 면은 왼쪽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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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정월대보름의 유래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 정의
음력 1월15일로 가장 많은 세시풍속이 전하는 명절의 하나
정월대보름은 보통 대보름이라 하며,상원(上元)이라고도한다.
대보름은 연중 가장 먼저 만월이 되는 날로서 많은 세시풍속이 전한다.
또 농업이나 어업등 생업과 긴밀한 연관이 있어서 농촌에서는
갖가지 놀이와 행사, 그리고 방액 등이 이날을 전후로 하여 행해진다.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의 의미
정월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년의 운세를 점 쳐보는 달입니다.
력서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날' 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 쳐보는 달인 것입니다.
정월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농경을 기본으로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보면
달은 생생력(生生力)을 바탕으로 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음양사상에 의하면 태양을 양(陽)이라하여 남성으로 인격화되고,
이에 반하여 달은 음(陰) 이라하여 여성으로 인격화됩니다.
따라서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보면 달, 여신,대지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집니다.
이와같이 정월대보름은 풍요의 상징적 의미로 자리매김합니다.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의 유래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습니다.
태고적 풍속은 정월대보름을 설 처럼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 시세기)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운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한 편 중국에서는 한나라때부터 정월대보름을 8대 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답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명월(小正月)이라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답니다.
이는 정월대보름 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대 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 놀이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서 일 년 중 처음맞는 보름날이다
이날은 일 년 중 첫 보름이라 중시하며 그 해 농사의 풍년,흉년과
그 해의 좋고 나쁨을 점쳤다.
새벽에 귀밝이 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물며 오곡밥과 약식을 먹는다.
또한 쥐불놀이, 달맞이등 여러 민속 놀이를 한다.
1.지신밟기
-동네 사람들이 농악대를 조직하여 집집마다 다니며
땅을 다스리는 신에게 인사를 드리고
못된 귀신을 물리쳐 한 해 동안 좋은 일만 생기고 풍년을 기원하였다.
집 주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농악대에게 대접하였다.
2. 달집 태우기
-달이 떠오를 때 동네사람들이 넓은 빈터에 모여
볏집을 쌓아서 만든 달집을 태웠다.
그리고 농악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고
달집 주변을 돌면서 한 해 동안 마을에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기원하였다.
3.복조리 걸어 두기
-대보름날 아침에 복조리를 사서 걸어 둔다.
이것은 복조리를 걸어두면 복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4.줄다리기
짚 또는 칡으로 큰 줄을 수십 발이나 되게 길게 꼬고
줄 양 머리에는 수많은 작은 줄을 매달아 몇몇 마을을
둘로 편을 갈라 줄을 서로 잡아당겨 승부를 가린다.
5.달 맞이
달이 동쪽에서 솟아 오를때면 사람들은 달 맞이를 위하여 뒷동산에 올라간다.
동쪽하늘이 붉어지고 대보름달이 솟을때
풍년 들기를 기원하고, 처녀,총각은 시집 장가 가기를 빌었다.
그러면 소원이 성취 된다고 믿었다.
달빛이 희면 비가 많고, 붉으면 가뭄이 있으며,
진하면 풍년이 들고,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들 것이라는
1년 동안의 농사를 미리 점 치기도 하였다.
6.횃불 싸움
마을의 청년들이 가족 수대로 싸리나 짚으로
횃불 막대를 만들어 농악을 울리며 산 위로 올라가서 서로 마주보고 선다.
달이 떠오를 때 달려 나가 싸우는 경기이다.
진 편은 그 해 흉년이 들고, 이긴편은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7.쥐불놀이
밤에 들에 나가서 논 둑, 밭 둑을 태우는데 이것을 쥐불놀이라 한다.
쥐불놀이는 못 된 귀신을 ?고 신성하게 봄을 맞이한다는 것과
잡초를 태움으로서 해충의 알을 죽여 풍작을 기도하며
봄에 새 싹이 날때 거름이 되도록 한다.
또 쥐불놀이를 하면 1년동안 병이 없고 좋지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8.더위 팔기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대로
서로 상대방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하고 말하여 더위를 판다.
이렇게 하면 그 해 일년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날은 사람이 불러도 대답하지않고 얼른 <내 더~위>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모달불을 피워놓고 1년 동안의 건강을 빌며
불 위를 자기 나이 만큼 뛰어 넘는 놀이 잰부닥불 피우기와 윷 놀이가 있습니다.
올 정월 대보름도 행복하십시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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