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story
경북 울진 죽변리는 전형적인 항구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육지 사람에게는 다소 생소한 생선 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전해진다. 빨랫줄에는 빨래 대신 생선을 널어 꾸둑꾸둑 말려지고 잘 손질된 어망과 작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에서 소박한 어촌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소박하지만 제철 수산물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그 어획량이 손에 꼽힌다는 이 죽변항에는 상품 가치가 우수하면서도 싱싱한 제철 생선을 소비자에게 정직하게 공수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어부 현종’ 김광진 씨가 살고 있다. 김광진 씨는 울진 바닷가에서 30년 가까이 어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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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은 다양한 종류의 수산물 맛이 제대로 드는 철. 어부이자 직접 잡은 수산물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판매하는 김광진 씨는 신선한 수산물을 공수해 베테랑 주부뿐만 아니라 요리연구가들에게까지 입소문이 자자하다. 겨울 수산물을 제대로 즐기는 비법을 듣기 위해 어부 현종을 만나러 울진으로 내려갔다.
스무 살 솜털이 보송한 청년은 객지로 나서 10여 년 동안 선박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다 빚보증 선 일이 잘못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객지에서 받은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갔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열심히 뱃일을 배우며 진짜 어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김광진 씨는 그날그날 잡은 해산물을 소비자에게 일대일로 자신의 홈페이지(www.badaro.in)을 통해 판매한다. 문어와 몇몇 수산물을 제외하곤 살아 있는 수산물을 보내준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현지에서 시세가 고가인 경우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물건을 보내지 않는다. 또한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거나 크기가 고르지 않은 생선 역시 보내지 않는다. 때문에 돈을 지불했다고 해도 생선을 바로 받으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당일 잡은 수산물을 당일 포장해 택배로 보내기 때문에 주문량과 어획량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 하지만 그의 단골들은 군말 없이 기꺼이 기다린다. 잊을 만하면 도착하는 물건들이 오히려 뜻밖의 선물 같아 좋다는 단골도 있다고 하니 그의 팬층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다. 물건이 비싸다고 트집 잡는 손님도 있지만 도매상 경매가 그대로임을 입증하는 영수증을 보내주면 두 말 못한다. 그렇게 그의 손님들은 그의 수산물들을 받아보며 점점 그의 골수 팬이 되어간다.
동트기 전 시작되는 어부의 하루
아직 동도 트지 않아 사방이 어두운 새벽 4시가 되면 어부의 하루가 시작된다. 때로는 새벽 2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쉬는 날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바다가 잠잠한 날은 생일이라고 해도 바다에 나간다. 대신 바다가 폭풍 등으로 사나워지는 날은 예고 없는 휴일이 된다. 새벽같이 서둘러 나가 통발을 거둬들이고 나면 8시간이 훌쩍 지난다.
어부들이 잡아온 고기들은 바로 어판장으로 간다.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람들에게 생선 가격을 받고 가장 비싼 가격을 부른 사람에게 낙찰시킨다. 단돈 10원 때문에 물건을 놓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상인들에게는 어부가 통발을 들어 올리는 순간만큼 떨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경매 때 생선을 구입하면 싸지만 일반인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다. 때문에 수산시장을 이용하거나 인근 가게에서 소매가격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다. 생선과 대게 등을 싸게 구입하고 싶다면 경매가 열리는 이른 아침 어판장 옆에 작은 장이 서니 그곳을 이용하라고 귀띔한다. 경매에서 막 구입한 생선이기에 싱싱한 것은 물론 일반 상회보다 저렴하다는 것이다.
수산물이 한창인 겨울바다
“12월부터 시작해 2월까지는 맛있는 생선이 많이 잡히는 계절이에요. 백골뱅이와 문어, 대구 그리고 대게까지 맛난 것들이 많이 잡히는 철이죠. 11월부터 잡히는 문어는 맛이 으뜸이죠. 잡은 즉시 살짝 삶아 먹으면 초장에 찍지 않아도 짭짤하면서도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요. 살짝 얼려 얇게 썰어 먹어도 맛있고요.
어촌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기교를 부리지 않아요. 1년 365일이 바쁜 건 저뿐만 아니라 아내도 마찬가지예요. 바다에서 잡아오는 것은 내 몫이지만 그 수산물을 깔끔하게 손질해 보내는 건 아내 몫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바쁜데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할 수 있겠어요? 잡아온 생선을 밥상에 올릴 때는 삶아서 먹거나 맑은 탕 또는 국으로 끓여 먹지요. 문어는 날로 먹지 않고 회나 조림으로 조리하거나 말려서 먹고요. 가장 손쉽게 먹는 법은 깨끗이 손질해 회로 먹는 거죠. 사실 싱싱한 생선에는 다른 양념을 더할 필요가 없어요. 그대로의 맛이 최고니까요.
예부터 울진 지방에서 잔치 때 빠지지 않고 냈던 음식이 바로 백골뱅이, 새우, 물가자미, 가오리 그리고 문어예요. 이것들 좋은 날 꼭 상에 낼 만큼 많이 잡히고 무엇보다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귀한 수산물입니다. 특히 문어는 종류도 다양하지만 맛도 각각이지요.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 문어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오랫동안 보관할 재간이 없으니 처마 밑 서까래 밑에 매달아두었죠. 얼었다가 다시 녹고 또 다시 얼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문어가 꾸둑꾸둑 알맞게 마르지요. 이렇게 마른 문어를 다리 한 개씩 베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어릴 때 지나다니며 귀한 문어를 야금야금 베어 먹다가 아버지한테 혼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울진군에서 가장 유명한 대게는 12월 이후부터 잡히기 시작해 2월 말부터 3월 초순까지 잡히는 것이 가장 달고 맛있어요. 죽전항의 대게는 살이 쫄깃하고 달아 상품 가치가 높아요.”
소박하지만 에너지 넘치는 어부의 밥상 메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오후 1시가 훌쩍 지나 늦을 때는 3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는다. 소박하지만 싱싱한 제철 수산물을 이용한 최고의 만찬이다. 어부 현종의 아내 이향남 씨의 수산물의 풍미를 그대로 담은 소박한 어촌 요리를 소개한다.
대구 이야기
대구는 수분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이 적고 영양가가 낮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저지방 저칼로리의 훌륭한 생선이다. 거기에 단백질과 인, 비타민 B1, B2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맛이 담백하고 비린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잘 먹는다.
선도가 떨어지면 맛이 급격하게 비려지고 싱싱한 것은 비늘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오랜 시간 끓이면 흰색의 연한 근육 조직이 잘 풀어지는 성질이 있어 감칠맛은 적지만 국물이 담백하고 시원해진다. 주로 맑은 지리나 매운탕으로 끓여 뜨끈하게 먹는다. 대구탕은 대구 백숙이라고도 하는데 쌀뜨물에 무를 크고 얇게 썰어 넣고 한소끔 끓이다 손질한 대구를 넣고 끓인다. 대구가 익으면 다진 마늘과 어슷하게 썬 파, 고추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찌개로 끓일 때는 고춧가루, 콩나물 등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해 끓이면 칼칼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대구매운탕
재료 대구 1마리, 무 개, 미나리 8줄기, 대파 2대, 고추 1개, 다시마 우린 물 6컵, 고춧가루·구운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대구는 내장을 제거하고 먹기 좋게 토막을 낸다. 2 무는 3㎝ 크기로 납작하게 썰고 미나리는 다듬어서 4㎝ 길이로 썬다. 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씨를 털어낸다. 3 냄비에 다시마 우린 물을 붓고 끓기 시작하면 머리를 포함해 손질한 대구 토막을 넣는다. 4 ③이 끓기 시작하면 대파, 고추, 미나리를 넣고 끓인 후 구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5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약간 넣고 한소끔 끓여 매콤한 맛을 더한다.
백골뱅이 이야기
골뱅이의 영양에 대해서는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에 나와 있을 정도. 특히 골뱅이의 주성분 중 하나인 타우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시력 회복에 도움을 주고 숙취 해소에도 좋으며 골뱅이 속 단백질은 피부를 건강하게 하는 히스친 점액을 함유하고 있다. 갓 잡은 골뱅이를 손질해 썰어 먹으면 바다 향이 그대로 느껴지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끓는 물에 삶으면 부드럽고 특유의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삶은 백골뱅이와 문어는 썰어 접시에 담고 고추냉이간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특히 갓 지은 뜨끈한 밥에 백골뱅이와 문어를 살짝 담가 먹으면 초밥을 먹는 것처럼 맛이 좋다고.
크기가 작거나 깨진 것은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정도 두었다가 숯탄 대신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별미다. 익을 때 올라오는 물이 연탄불에 닿아 지글지글 타는 냄새에 이끌려 집 앞을 지나던 이웃들이 들려 한두 개씩 먹고 갈 정도. 속까지 푹 익으면 꼬리까지 먹어도 되는데 콤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삶은 백골뱅이
재료 백골뱅이 10개, 물 적당량
만드는 법
1 백골뱅이는 겉 부분을 깨끗히 씻어 물기를 빼 둔다. 2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씻어 둔 백골뱅이를 넣고 거품이 끓어 오르면 약불로 20분간 더 삶는다. 3 백골뱅이만 건져 낸 뒤 찬물에 담그지 않고 그대로 물기만 제거해 상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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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이야기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문어들은 양반 계층이 많이 먹었기 때문에 문어조림, 초무침, 두릅, 문어회, 문어죽, 문어오림 등 다양한 요리들이 발달되어 왔다.
문어 중 내장을 제거한 뒤 바닷바람과 햇볕에 껍질째 말린 ‘피문어’는 피를 맑게 해 산후조리나 혈액순환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문어를 고를 때는 전체적으로 회색이 돌고 검은 반점이 있고 빨래판에 탄력성이 있는 것이 좋다. 미끈미끈한 점액이 많은 것은 선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삶았을 때 껍질이 벗겨질 수도 있다.
처음에는 회색 반점이 있던 문어의 겉은 삶고 나면 붉어진다. 또한 녹차나 술, 소금, 식초를 넣으면 색이 선명하고 잘 물러지지 않는다. 문어는 한 번에 다 먹기 어려우므로 삶아 다리 하나씩 잘라서 랩에 싸 냉동시켜두었다가 썰면 아주 얇게 잘 썰어지는데,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거나 샐러드 위에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문어숙회
재료 문어 1마리, 무 개, 굵은 소금 적당량, 초고추장 고추장 1큰술, 식초·다진 마늘 작은술씩
만드는 법
1 문어는 머리를 뒤집어 먹물주머니와 내장이 든 주머니를 터지지 않게 떼어낸다. 2 손질한 문어는 굵은 소금을 반 줌 정도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 씻어 끈끈한 기를 없앤다. 3 도마 위에 깨끗이 씻은 문어를 올리고 무 토막으로 골고루 두드려준다. 4 냄비에 물을 넉넉히 넣고 끓이다가 문어를 넣어 20분가량 삶아 속까지 익힌 후 찬물에 헹구지 않고 그대로 건져 식힌다.
사진 찍는 어부 김광진 씨
고객에게 보낼 택배를 모두 싸고 홈페이지 관리가 끝나 한가로운 시간이 되면 김광진 씨는 카메라를 들고 바닷가로 향한다. 고객들에게 자신이 잡은 싱싱한 생선을 보여주기 위해 찍기 시작한 사진은 이젠 취미가 되었다. 어촌 풍경을 비롯해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자연을 렌즈에 담는 솜씨가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에 앉아서도 어촌의 사계절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자신이 먹고 있는 고기가 어떤 상태로 잡히고 또 어떻게 손질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물건을 싸기 전에 인증 샷을 찍는 셈이다. 이렇게 싱싱한 물건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고 때로는 그날 아침 자신이 먹었던 밥상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제철 생선 반찬과 탕으로 끓인 소박한 밥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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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업을 나갈 때도 꼭 가지고 나가는 그의 보물 1호 카메라. 기교 대신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은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바다의 풍경을 전한다. 2 항구의 새벽은 일찍 시작되고 그 어떤 도시보다 활기가 넘친다. 3 부인 이향남 씨는 함께 조업을 나가지는 않지만 남편의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하는 것만은 잊지 않는다.
소박한 그의 사진과 간결하지만 솔직한 글에 홈페이지 방문자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바다가 주는 해택을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것이 ‘어부 김광진’의 작은 소망이다.
/ 여성조선 진행 강부연 기자 | 사진 김세영 참고 서적 <우리 생선 이야기> 효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