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의 정치문화는 쇠퇴하는가?-- 타협의 정치문화의 지향을 위해
허만 명예교수/전 한국유럽학회장
정치는 사익을 추구하거나 그것을 추구하가 위한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국익과 국민복지 그리고 국가안보를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근대 정치가 성장하면서 추구하는 기초적 가치로 굳어 진 것이다. 이라힌 가치를 국추히게웨해 티햡의 정차문화를 성숙시키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정치문화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정의로부터 멀어지고 있어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기업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지만 그것도 국익 또는 공익을 해치는 경우 법적 제재를 받는다. 그것은 시장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경영 원리이다. 정치나 경제나 모두 지켜야 할 기초 원리가 있다.
우리의 정치문화와 관련해서 하바드 대 Gregory Henderson 교수는 1960연 대 초에 와류의 정치(The Politics of the Vortex)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이 저서에 의하면 한국은 보기 드물 정도로 동질적 사회로서 고도의 중앙집중적 체제로 오랫동안 운영되었다. 이 체제는 단일 민족에다 단일 문화의 특징을 띄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는 중간 중제집단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다음 세대의지도자를 형성시키는 기초 환경이 오랫동안 저해되어 왔다. 능력을 갖춘 도덕적인 지도자 형성에 실패했다. 그래서 특별하게 출현한 한 지도자(일반적으로 성공한 권력 지향자 또는 드믈게 음모가)들에게 모여드는 경향이 강했다. 또는 지방이 아니라 경제와 권력이 집중돼 있는 수도에로 몰려드는 물리적 이동 현상도 강하게 나타났다. 이 과정에 온갖 부정부패가 싹텄다. 16세기 조선에서 노론과 소론 그리고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한 사회 구조가 발생했다. 여기에서 조선의 정치 발전을 억재했던 붕당정치(朋黨政治)가 판을 첬다. 결국 이러한 정치 현상은 견실한 정치 문화를 저해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추한 투쟁이 오랫동안 난무했다고 지적했다. 약 70연 년 전에 핸더슨 교수가 지적한 현상이 이번 총선에서도 반복했다.
붕당정치 뿌리는 매우 심하게 막혀 있는 것 같다. 22대 총선을 분석하는 과장을 고찰 할 때 붕당정치에서 영향을 받아 그것이 혐오의 정치를 자아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적은 우리의 학계와도 대체로 공유하는 면이 있다. 협오의 정치는 우적 관계를 구별하듯이 여야는 서로 심판론에 중점을 두어 상대방을 비판하였다. 혐오의 정치는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선택할 기회를는 제공하지 않고 정치 자체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결국 붕당정치 문화가 끼친 효과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깨닭아야 할 것이다. 붕당정치를 깨트려버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여야가 서로 존재 이유를 인정하는가운데 정책적 대결를 유도한다면 타협의 공간을 만둘어 갈 것이다. 요컨데 자유민주주의는 타협하는 가운데 상호 발전하는 정치 기술(plotical skills)이다. 타협의 습관은 붕당정치 문화를 세척하고 현대식 타협의 정치 문화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과거 3정권의 붕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 1공화국의 이승만의 과도한 권력 집중, 제 2공화국의 장면은 먼저 무능과 이에 겹친 군사 쿠테타 그리고 제 3공화국은 박정희의 장기적인 군사 독제와 유신 체제로 인해 각각 붕괴됐다. 이 정치 과정에서 우리는 여야의 존재 이유를 인정함이 없이 타협의 정치 문화를 조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꿔말하자면 제 3공화국의 말기 까지 사회적 여론 (압력)을 집결할수 있는 다원적 사회적 기반이 매우 빈약했었다. 이 같은 실패 또는 약점은 Samuel P. Huntington이 후진국에 대해 정치 과정의 부적절한 또는 불균형적인 제도화를 자주 지적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이외에도 Gabriel Almond와 Bingham Powell과 같은 정치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정치적 능력(political capabilites)은 사회 구조의 고도화된 세분화와 사회적 규범의 민주화에서 나온 것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 대 말까지 한국에는 이러한 조건들이 조성되지 못했다. 22대 총선을 경험한 필자는 제 3공화국 종발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 같은 조건들이 --비록 제도적 장치들은 설치돼 있지만--성숙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와 같은 우리의 현실이 타협의 정치문화의 성숙을 가로 막았다.
핸더슨이 지적한 것 보다 더 지저분한 행위가 나타났다. 더욱 우리의 정치 문화를 더럽히는 부정한 행위가 여지없이 일어났다. 예컨대 양문석 후보는 딸의 사업을 위해 새마을금고에서 11억을 대출해 딸의 아파트를 매입한 것은 완전한 불법이다. 이화여대 전 총장이 건국을 위해 모윤숙 시인과 함께 낙랑클럽을 조성해 외교 활동을 한 것을 오염시킨 김준혁 역사학자의 표현은 자신의 표를 위해 국격을 마구 짓밟은 가장 추한 행위이다. 더 나가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군위안부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폭로는 역사 어디에도 없는 허위에 지나지 않는 막말이다. 반면에 이 총선에서 이재명의 말이 저소득 계층에게는 더 빛나보였다. 그는 국민에게 1인 25만원, 4인 가구 평균 100만원을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주겠다고 선언했다. 표퓨리즘의 극치다.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 대중은 모두 그의 표퓨리즘적 선전에 마력을 느꼈을 것이다. 투표 결과를 보면 이러한 마력이 보인다. 그는 정치 개혁, 특히 당의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미명아래 "개딸"이란 조직을 만들어 당내 협의 문화를 저해 해 왔다. 그는 이들을 배경으로 당을 사당화 해서 공천도 사천화함으로서 당의 민주화 기초를 아예 짓밟았다. 그는 이미 4범으로서 당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 어떠한 자격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당을 이끌려고 하는가? 한편으로 공문서를 위조해 딸을 의전에 입학시키고, 불법으로 딸에게 장학금을 수혜하도록 독려한 조국 전 장관이 대법원으로부터 2년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의 부인은 컴퓨터 조작을 통해 표창장를 위조해 감옥 생할을 하고 있다. 어째든 조국은 조국혁신당과 민주당과의 연계를 꽤해 권력을 쟁취하려고 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볼 때 우리의 정당정치에 도덕성이란 전연 없는 상태다. 이로써 그는 이재명과 함께 한국의 정치문화를 더욱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와류의 정치' 문화를 촉진하는 것 외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22대 총선 결과를 볼 때 야당이 압승했지만 여기에는 도덕성이 결겨된 것뿐만 아니라 신뢰성을 찿아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재명은 자신의 지지자들만 사천으로 선거를 치렀으며, 김준혁과 양문석 같은 반정의, 반 국민정서 그리고 비도덕성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당선 되었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이 약진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정치적 지각적 변동에서 보수당은 당분간 좌파/진보파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 정도를 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요컨데 약체화된 보수정당은 좌파/진보파의 영향권에 흡수되지 않으을가 염려된다.
이재명이 공당의 대표라면 국가경제를 후퇴시킬 수 있는 달콤한 말이 아니라 쓰지만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책 또는 그러한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공당의 대표 이재명의 안보관은 어떠한가? 대선 때 그는 남북한 분단과 관련한 대화에서 소련은 해방군이고, 미군은 점령군으로 말 했다. 소련이 자신의 선언문에서 자신의 군을 해방군으로 표현했고, 한편 미국은 점령군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지적했다. 과연 소련이 북한에 은혜를 주려는 뜻에서 해방군으로 쓰기 시작했는가? 한편 미국은 솔직하게 분할 점령을 했다는 의미에서 점령군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분할 점영은 그 당시 한반도의 전략적 상황에서 선택한 차악이었다. 전자는 기만을 선언한 것이고, 후자는 진실을 표현한 것이다. 그 기만 속에서 소련은 신탁통치를 거쳐 적화통일을 처음부터 시도했었다. 이것이 스탈린의 속셈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을 비롯한 우파 진영의 노력으로 신탁통치를 좌절시키고 유엔 감시를 통해 남쪽에서 자유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길을 택했다. 한국의 좌파 세력은 2차 대전 직후 스탈린의 세계 공산화 전략을 명확하게 인식했는지 못는다. 이승만은 이 전략 구상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하자 "민주기지"의 건설을을 조용히 추진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재명에게 묻는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이재명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 “평화가 있을 때 평화를 유지한다.”고 대선 시기 발언했다. 원래 최초의 평화가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하사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직 평화를 건설하겠다는 국민적 의지와 그 위에 군사력을 보유할 때 비로소 평화를 얻는 것이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약화될 때 평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 사회에서 다반사로 등장한다. 이재명은 중국에 대해 ‘셰셰’하면 평화를 유지하고 통상도 원만하게 할 수 있고, 한반도의 평화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도를 보였다. 중국이 국제법에 기반 한 국제질서(international law-based order)를 지키는 국가인가? 시진핑이 대한민국을 미국에 대해 21세기에서도 속방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국전쟁 때 중국은 무려 1백만의 중공군을 파견, 인해전을 수행했다.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정책을 포기 한 적이 없다. 공해에서 상대방 선박에게 물대포를 무차별하게 쏟아 부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이 세계화된 협력 내트워크(globalized cooperative network)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세계화된 협력 내크워크가 붕괴 되면 세계평화도, 세계무역도 붕괴된다. 그래서 강자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강대국이든 중소국이든 또는 저개발국이든 앞에서 언급한 두 요소가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핵심적 기둥이 된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이미 다원화 구조를 갖은 사회다. 경제-산업 부분에서 다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경제는 세계 7대 지위, 첨단 산업구조는 세계 5위를 점령했다. 첨단 전략무기 생산 역시 5위를 차지했다. 한국 문화는 단일 문화를 넘어서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K-문화로 성장했다. 인구 구성요소에 있어서는 이민이 2백만 명을 훨씬 초과함으로서 혼합문화가 자라고 있다. 정치를 지망하는 후보들은 이 같은 변화를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의원 후보들은 개인의 영달을 떠나 국가를 후퇴시키는 표퓨리즘에 매료 돼서는 안돤다. 저치인들은시간을 다투어 변화를 거듭하는 국제정치를 연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그들 자신의 전략과 방향을 세워야 하겠다. 그들은 표퓨리즘이 바로 마약임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그 때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는 핸더슨 류의 “와류의 정치”에서 벗어나, 붕당정치와 혐오의 정치를 청산하고, 타협의 정치 문화를 발전시킬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