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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전바위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대전바위산장
편리한 자전거 도로. 그-천변도로를 따라 패달을 굴러봅니다. 중구 목동 78번지. 우리 집 에서 유등천은 호남선 철길 건너이며 10-15분거리면 도달하는 곳 이죠. 그~옜날 50년대 후반 그러니까 내 나이 5-7세 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기억이 나는 몇몇 장면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속에 떠 올려 집니다. 호남선 철길(그 시절은 단선)레일위에 못 올려놓고 침목에 돌놔서 표시~잊어버릴까봐. 뚝방에 숨어 지켜보기- 그게 증기기관차 바퀴에 갈리면 납짝해져 칼도 만들고 송곳 등. 수침교 다리 아랫쪽엔 6-70년대 자갈+모래를 채취하여 먹고사는 완전 중노동의 막 일꾼들이 우리동네에 많이 살았죠. 바로 우리뒷집 셋방사는 가족중엔 聾啞도 살았는데 그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3-4세 위 였고 부자간에 그 일을 해서 먹구살았죠. 그 벙어리는 아침 일나갈때 날 보면 손짓으로 점심때쯤 저 일하는곳 놀러오면 막걸리 한잔 산다구. 그때 제 나이가 10대후반. 수침교 건너 예전 서부경찰서 제방 옆으로는 왕대포집이 몇곳 있었고 그 시절 사기대접에 한잔 가득따라 벌컥 들이킨 후 안주는 왕소금에다 들깨 섞은것이 대포안주 였습니다. 어쩌다 곤~계란 안주 먹는날은 황송. 난 그렇게 술을 배웠습니다. 유등천에서 물고기도 많이잡고 발가둥이로 물장구치며 여름이면 날마다 가서 놀았죠. 수침교 다리아래 보를 막아 수심깊은곳에선 자동차 타이어 튜브 빌려주고 1시간에 5원쯤 받었던가? 가물땐 3관구 군 부대에서 불도저가 와서 우리동네 가까이 호남선 철로변 바로앞 수로를 파서 물레방아 물 끌어올려 논에 물을 댔고... 아주 어릴적 내 나이 5-7세 되던때 울 엄니가 남산봉주변 선챙이 채소밭에서 양배추(그땐 개배쓰라구 불렀지요)나 오이를 큰 양철다라에 떼다가 행상으로 팔았는데 나를 보아줄 사람없어 어린 날 데리고 유등천 건너갈때 수심깊은곳은 엄니 손 꽉 움켜잡았어도 겁이 났었죠. 60년대엔 동네 호남선주변 논畓이 많았어요. 유등천건너 에는 직물공장,타올공장,양말공장등이 많아서 아가씨들도 엄청! 그곳 주변을 선챙이라고 불렀으며 얼마안가 남산봉(지금에 남선공원) 실개천으로 민물조개 잡으러 가기도 . 가을이면 메뚜기~. 궁민핵꾜 다닐땐 남산봉으로 소풍을 갔고 지금 삼천교다리는 60년대 아나방다리 라구(공사때 쓰는 구멍난 철판) 섶다리 비슷하게 놔서 거길 건너려면 어린마음에 무서웠죠. 거친 물살속으로 떨어질까봐. 대전천과 유등천 만나는 합수점을 삼천리(삼천동)라 불렀으며 물이 더러웠고 넝마주의 사람들이 냇가주변에 살았죠. 그 왼편 뚝방길은 아주 길은데 사방 논밭가운데 샘머리 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목동에서 그 뚝방길따라 도룡리로 투망가지고 고기잡으러 동네친구 선~후배들과 많이 다녔죠. 지금 엑스포다리 주변이 도룡리~새우 라고 불리던 곳인데 오늘 자전거 타고 목동에서 유성구청까지 처음으로 왕복하며 가난했던 그 시절 5-6-70년대 옜날과 비교를 해 보면 도대체 강산이 몇번 바뀌었나 추억회상 하며 사진 몇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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