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
친구 간에 놀다보면 난감한 경우를 당할 때가 있다. 술을 한잔하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제 딴에는 정을 낸다고 욕을 섞어서 말하거나, 때로는 곁에 앉아 뒤통수를 툭툭 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꼴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당장 화를 내기도 뭣하고, 참고 있자하니 그 수모가 견디기 어렵다. 욕쟁이 친구란 게 있다고들 하지만, 아무려면 욕이 칭찬보다 아름다울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대게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인격 파탄자이거나, 그 심리가 평소에 남을 안하무인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특히 남의 뒤통수를 동네 북 치듯이 툭툭 치는 행위는 친밀로 위장된 모욕주기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더 상스러운 욕설로 되받고, 사정없이 그의 뒤통수를 갈겨주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그건 우정이 아니라 모욕이란 것을 너도 느껴보라는 복수심 때문일 것이다. 장난으로 휘두른 칼에도 상처가 나듯, 농담으로 한 욕설에도 인격이 손상된다. 좋은 말, 다정한 손잡음으로 얼마든지 따스한 마음을 전할 수가 있지 않는가.
고향을 방문 할 때도 난감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 고향은 일가친척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대부분이 친인척이다. 당연히 나이보다 항렬이 높은 분이 수상(手上)이 된다. 400년 동안이나 일가를 이루며 살다 보니 항렬간의 갈등이 상당하다. 그렇지만 나이가 적어도 ‘아저씨(숙부항렬)’는 아저씨고 ‘아주머니(숙모항렬)’는 아주머니다. 조카 되는 이가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아재비’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 둘은 함께 자리를 하기 어렵다. 역으로 아재비라고 나이가 훨씬 많은 조카에게 말을 “탕탕” 놓으면 늙은 조카의 입장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숙질간에 언어가 바르질 않으니 반가우면서도 피하기가 일쑤고, 오는 말이 기분 나쁘니 가는 말이 고울 fl가 없다. 결국에는 서로 다투고는 원수처럼 지내게 된다. 어리석고 난감한 모습이다.
인간관계의 불편함은 무례함에서 비롯된다. 사회생활에서, 다섯 살 이내의 나이는 평교하고(평교와 무례는 다름), 다섯 살 이상의 나이는 중형(仲兄) 대접하고, 열 살 이상의 나이 차는 장형(長兄) 대접하고,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 대접해야 한다고 배웠다.
조카가 아재비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으면 조카를 인생의 선배로서 존대해야 한다. 조카는 아재비에게 평칭을 써도 되지만 최소한 “아재- ”라는 호칭은 불러 줘야 원만하게 지낼 수가 있다. 다섯 살 이상 열 살 이내의 나이 차이라면 서로가 존대를 해야 한다. 다섯 살 이내인 경우는 조카는 경칭을, 아재비는 평칭을 써도 무방하다. 같은 항렬이라면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었다면 좀 모자라는 형이라도 형 대접을 해야 한다. 친구이거나 동기의 경우는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가까울수록 더욱 예절을 다해야 서로 마음이 상하질 않는다. 또 나이와 관계없이 동생이나 조카나 아재비가 사회적으로 공인이거나 기업의 경영자이거나 많은 다중을 리드하는 직위에 있는 경우는 그 사람의 사회적 체면을 존중하여 말을 함부로 하면 아니 된다. 이런 경우는 그 분의 직책을 불러주는 것이 무방하다.
모두들 나이가 먹어가니 어른 대접은 받고 싶은데, 정작 자신은 남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쉰이 넘은 아우들을 부르면서, 관명이 있고 사회적 신분이 있는데도 코 흘리게 시절의 이름을 마구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자기를 돋보이려고 친구나 일가친척들을 무시하는, 비속한 언사를 마구 쓰는 분들도 있다. 그럴수록 자신이 더 한심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을 모른다. 인간은 예절을 알기에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존엄한 존재 인 것이다. 예절이 무너지면 인간관계는 동물관계가 되고 만다.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고운 말을 쓰면 내 인격이 올라가고 내 마음이 먼저 아름다워진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평가하는 불변의 기준이니 동창회나 종실 같은 공적인 모임의 직책을 가지고 싶으면 먼저 언행을 삼가하고, 예절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객지 벗은 10년이요, 노름 벗은 30년”이라는 시정잡배들의 소리도 있다. 문인사회의 벗은 몇 년일까 생각해 보는데, 문심이 통하니 달과 벗을 삼은 이태백이가 친구인 듯 느껴진다. 오직 바른 문심으로 가늠할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2008. 8. 11)
첫댓글 정임표 회장님 "예절" 글 읽으면서 수없이 고개 끄덕입니다.
딱 맞는 내용입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그 항열 때문에 말하기 곤란할 때가 어디 한 두번이겠습니까?
그래도 집성촌에 살면 그 항열 따지지 않고 지내다가는 쐬쌍놈이란 소리 들으니
항열이 높은 5살 짜리 얼라 보고도 아지매라고 불러야 하고~~~
암무튼 예절 앞에는 불편함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예절은 지켜야만이 위계질서가 생기지 않습니까.
전 문단에 발 들여 놓을 때
이 말 때문에 홀딱 반했습니다.
'문우는 각자의 무덤에 꽃을 놓아주는 사이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숙온 선생님!
잘 지내시죠?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기시길 기원드립니다.
@정임표 네.회장님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