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소련·핀란드의 '겨울 전쟁'
재빠른 핀란드 스키부대 맹활약…
3배 많은 소련軍 쩔쩔맸죠
영토 요구 거절에… 소련 1939년 침공
대규모 병력·전차 등 우세했지만 게릴라식 공격에 소련군 허둥지둥
스키·사격 결합한 '바이애슬론' 원형
평창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 가운데 '바이애슬론'이란 스포츠가 있어요. 사격총을 등에 메고 눈 덮인 지형을 스키와 폴을 이용해 이동한 뒤 지정된 장소에서 사격 시합을 하는 경기예요. 출발선부터 결승 지점까지 걸린 시간과 사격의 정확성 등을 가려 최종 순위를 결정하지요.
바이애슬론은 과거 북유럽 군인들이 '군사 정찰(Military patrol)'을 위해 실시하던 운동 경기 중 하나였답니다. 겨울이 길고 혹독하며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지역에선 스키를 타면서 사격을 하는 전투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 같은 '바이애슬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바로 핀란드와 소련의 '겨울 전쟁'이었지요.
◇소련의 핀란드 침공
12세기 초부터 스웨덴 왕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핀란드는 나폴레옹 전쟁 중이던 1809년 제정(황제가 통치하는 나라) 러시아에 편입됐어요.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벌어지고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자 혼란기를 틈타 독립을 선언했지요.
▲ 핀란드로 향하는 소련군의 모습. 스키 장비를 착용한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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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후 핀란드에선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려는 적(赤)군과 사회주의에 반대하고 완전한 독립을 이루려는 백(白)군이 충돌하면서 잠시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백군이 승리한 후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던 핀란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답니다.
당시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동유럽과 북유럽 여러 나라를 침공하며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었어요. 폴란드 동부 지역과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을 빠른 속도로 장악한 소련은 핀란드로 눈길을 돌렸지요. 소련은 핀란드에 외무장관 몰로토프를 보내 국경지대 일부 영토를 할양(자기 나라 영토 일부를 다른 나라에 빌려주는 것)해달라고 요구했어요.
핀란드가 이를 거절하자,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군이 국경지대에서 자국 군대를 먼저 공격했다는 핑계를 대고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었어요. 소련―핀란드 전쟁, 일명 '겨울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지요.
◇핀란드의 탁월한 전략
전쟁 초기 소련은 26개 사단(약 46만명) 병력과 전차 2300여 대, 항공기 3000여 대를 동원했어요. 그에 비해 핀란드군에는 10개 사단(약 16만명) 병력에 전차 30여 대, 항공기 100여 대만 있었고 무전기나 포탄 등 전쟁 물자도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었지요.
▲ 숨어서 소련군을 노리는 핀란드 군인들 모습.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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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군사적 규모에서 열세였지만 핀란드에는 72세 노장(老將) 카를 구스타프 만네르헤임이 있었어요. 그는 핀란드 내전 이후 은퇴한 상태였지만 전쟁이 터지자 군으로 복귀했어요. 만네르헤임은 소련군과 맞서 싸우고 있는 전선(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연결한 선)이 1000㎞로 매우 길고, 대부분의 지형이 눈으로 덮인 산과 숲이라는 점을 이용해 영리한 작전을 세웠어요. 소련군이 한정된 길을 따라 이동할 수밖에 없으리라 판단한 그는 적군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길에 병력을 집중시켰고, 하얀 눈 위에서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핀란드군에게 모두 흰색 군복을 입혔어요. 그리고 보병들에게 스키를 타고 빠르게 움직이며 싸우도록 하는 게릴라전을 펼치게 했지요.
◇약소국의 처절한 저항
소련은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병력이나 전쟁 물자가 소련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핀란드 내 공산주의자들도 자기들 편에 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핀란드 공산주의자들은 오히려 소련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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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소련군은 대규모 군대를 전선에 길게 배치해 화력을 분산시키는 실수를 범했어요. 또 무엇보다 겨울 전투에 대한 대비책이 너무나 빈약했어요. 한 달 안에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소련군은 눈밭 위에서 위장할 수 있는 흰색 전투복도 준비하지 않았고, 북유럽의 혹한과 폭설에 대비한 전쟁 물자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지요.
수오무살미(핀란드 동부 지역)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소련은 그제야 자신들의 오만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소련군은 핀란드군보다 4~5배 많은 군대를 이끌고 일렬로 길게 행군하고 있었는데요. 핀란드 보병이 스키를 타고 나타나 화염병을 던진 뒤 재빠르게 사라지는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을 펼치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기만 했어요.
소련은 이 전투로 약 3만명의 군인을 잃었고, 전차와 대포를 비롯한 수많은 전쟁 장비를 핀란드군에 빼앗겼답니다. 그제야 소련은 지휘부를 교체하고 병력을 추가로 투입해 반격에 나섰어요. 그 결과 1940년 2월 핀란드의 방어선을 허물었고 그해 3월 모스크바에서 평화 조약을 강제로 맺으면서 겨울 전쟁은 일단락됐습니다.
겨울 전쟁은 결과만 놓고 보면 핀란드의 패배였지만, 소련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어요. 약 105일간 소련군 사상자가 약 20만명, 핀란드군 사상자가 2만5000여 명으로 차이가 매우 컸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막판 패배로 강제 평화 조약을 체결해야 했던 핀란드의 희생은 상당히 컸답니다. 핀란드는 전체 인구의 12%가 살고 있던 카렐리야 지역을 소련에 빼앗겼고, 핀란드 남부 항코 항구를 소련에 빌려주겠다는 굴욕 협상을 받아들여야 했지요. 하지만 소련의 합병 야욕을 좌절시키고 독립국가로서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겨울 전쟁은 핀란드 역사에서 당당한 투쟁으로 남아 있어요.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군은 '몰로토프(소련 외무장관) 칵테일'이라는 화염병도 만들었어요. 화염병에 그 같은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개전 초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핀란드 주요 도시에 무차별 폭격을 퍼부으며 국제사회에 "우리는 핀란드의 좋은 친구다. 우리는 지금 원조용 빵을 투하했을 뿐이다"고 거짓으로 변명한 사실을 비꼬기 위해서였지요. 핀란드군은 몰로토프의 말에 화답하듯 소련군에게 "이 술이나 받아 마셔라"고 외치며 화염병을 던졌다고 해요.
공명진 숭문중 역사 교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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