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끝에서 두번째 방이다- 지금쯤, 공주가 잠들었을테니 절대 상처 입히지 말고 데려와라."
"예!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사내가 밧줄로 높은 성의 담을 빠른 속도로 넘나들었다.
깊은 한밤중-
「까악- 까악-」
까마귀들이 검은 복장의 사내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랐는지
한꺼번에 떼를지어 푸드덕 날아올랐다.
한편, 3층 맞은 편 복도에서는 한 소녀가 창밖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책상 서랍속에서 꺼내 온 작지만 날카로운 단도를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단도가 잔인하게 빛이 났다.
"죽을 작정을 했구나. 킥-"
소녀는 작은 입술을 열어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하고는 작은 몸을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녀가 2층으로 내려왔을 때쯤-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 사람은 잘 듣지 못하는 희미한 소리였지만, 소녀는 예민한 청각 덕택에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소녀는 재빠르게 발을 옮겨 벽에 몸을 숨겼다.
발소리의 주인공의 그림자가 벽에 비춰졌을 때쯤, 소녀는 순간적으로 그를 덮쳤다.
그리고는 단도를 목에 가까이 갖다대었다.
"꺄악-!"
여자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에 소녀는 몸을 움찔했다.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소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단도를 다시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후... 공주님- 왜 나오셨어요? 방에서 절대 나오시지 말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잖습니까?"
소녀의 조금은 화난 목소리에, 공주라고 불리우는 여자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하아... 너무 무서워, 세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나한테도 얘기 못하는 거야?"
"어쩔수 없군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주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십시오."
소녀가 깊은 한밤중 누군가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듯,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공주는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지금 성안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뭐-?! 그럼 어서 병사들을 안치시켜야지-"
공주는 매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성문 밖과, 내부 중앙에 특수 비밀 병사들을 설치해 놨습니다.수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하리스)폐하와 (라젤)왕비님의 안전은 충분히 보장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공주님은 제가 지켜드려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공주님께서 제 계획에 따라주시지 않으시면 저도 공주님의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소녀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공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알았어... 세이가 시키는 대로 할게."
"그럼 지금 즉시 제방으로 들어가 계십시오."
"응? 왜 내방이 아니고 세이방이야?"
공주는 또 궁금하다는 듯, 가쁜 호흡을 하고 있는 세이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공주님-!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응... 알았어!"
공주는 서둘러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세이는 공주가 윗층으로 올라간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성의 중앙홀로 갔다. 그곳은 성에서 귀족들에 의해 곧잘 열리는 화려한 파티나 연회장으로 쓰이는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하던 풍경들은 온데간데 없고 칠흙같은 어둠만 짙게 내리깔려 있을 뿐-
세이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침입자가 맨 처음 성을 통해 들어올 통로를. 그곳은 경비가 가장 허술한 '연회장'이었다.
다른 곳들은 이미 비밀 특수 요원들이 알아서 경비하고 있었다.
세이는 누군가가 등 뒤에서 자신의 머리에 강한 충격을 줄 것을 예상했다.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재빠르게 뒤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그바람에 그녀에게 해를 끼치려던 검은 복장의 사내는 당황하여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놓치고 말았다.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성안에 울렸다.
'내 공격방법을 한번도 보지 않고 청각만으로 모든 것을 다 예상하다니-'
사내는 놀라면서도 정신을 차려 어둠속에서 검을 찾아 바닥을 더듬거렸다.
"킥-"
어디선가 사내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웃음소리에 발끈하여 아까보다 동작을 더 크게하여 바닥에 엎드렸다.
「챙- 창-」
연회장의 고금스러운 대리석바닥과 검이 맞부딪혀서 마찰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사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여기 있었군...'
그는 검의 자루부분을 겨우 찾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검을 손으로 들어올리며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순간- 그는 보았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세이의 푸른빛의 눈동자를-
인간의 눈동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섬뜻한-
사내가 바닥에서 집어들었던 검은 세이의 검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검을 일부러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것을 사내가 사내가 자신의 검인줄 알고 집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으...으악-!"
「텁-」
그녀는 한손으로는 사내의 두 손목을 휘둘러 잡고, 또다른 한손으로는 사내의 입을 막았다.
사내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말했다.
"제에..에발...살...려..."
"쉿- 조용히 하지 않으면 네놈을 이 자리에서 당장 없애버리겠다.절대 소리지르지 마라. 나머지 일당은 어디에 있지?"
세이는 사내의 귓가에 대고 차갑게 말했다.
"어...없어- 나머지 일행은... 나 혼자서 왔다..."
세이는 사내의 말을 듣자마자 검을 빼들었다.
"이 칼은 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내 소문은 익히 들었으리라 믿고 다시 한번 묻겠다. 일행들은 어느 통로로 숨어들었지?"
자신의 목 언저리에서 아주 예리한 검의 끝부분이 살짝 맞닿아 실오라기 같은 붉은 피가 흐르자 사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감았다.
"저...정말 없다... 나 혼자서도 납치는 할 수 있다고-! 이제 말했으니 살려줘-!"
사내는 거의 애원조로 말했다.
"납치? 너를 조종한 사람이 누구고, 무얼 노리고 이곳에 침입한 거지?"
"그...그건..."
사내는 고개만 숙이고 대답을 멈췄다.
그저 뜻모를 두려움에 지쳐 가끔씩 그의 어깨가 두려운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내 소문을 듣고서도 대답을 망설이다니- 꽤 고된 훈련을 받았겠군.
나와 같은 사람을 한낱 고깃 덩어리로 만들긴 싫다. 어서 대답해라!"
잠시동안 거리감을 두었던 세이의 검이 다시 사내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마...말할게- 「쉬라벨 게일」님이시다...! 헤이시 공주를 데려오라고-"
사내의 말이 끝나자 세이는 칼을 허리춤에 찔렀다.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쉬라벨... 게일...? 그럼 게일족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거냐?"
사내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하얍-!"
사내가 검을 앞으로 향해 잡고서 무서운 속도로 세이에게 달려왔다.
세이는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그리고는 뒷발로 먼저 달려나간 사내의 뒷통수를 걷어찼다.
「퍼억-」
"으윽...!"
"어리석은 놈..."
세이는 쓰러져 신음소리는 내고 있는 자신보다 덩치가 두배나 큰 사내를 질질 끌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