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력 엔지니어의 길」을 읽고
우승순
가을이다!
지난여름은 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저런 일들로 은퇴 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다. 그나마 연초부터 씨름해 왔던 나무 에세이집을 10월 7일 최종 탈고하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오랜만에 수필문학 춘천작가회에서 계획한 서울 나들이에 동참하여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홀가분했다. 간간이 임종학 수필가님과 대화하면서 관심 분야가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집에 돌아와서 연초부터 받아 놓고 읽지 못한 수북한 책속에서 맨 먼저 임종학 수필가가 쓴 「수력 엔지니어의 길」을 찾아 읽었다. 그동안 시간에 쫓기듯 집필과 관련한 전문 서적만 읽다가 오랜만에 읽는 수필집은 마음의 고향을 찾은 듯 편안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는 (주)한국전력의 드라마틱한 입사 과정부터 근무 경험을 술회하였고, 은퇴 후 약 9년간의 해외 수력발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감동적인 서사가 있다. 3부와 4부에는 은퇴 후 농사를 짓고 벌을 키우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그렸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수력 엔지니어의 길」을 읽으며 뛰어난 한 엔지니어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감동 받았다. 35년간 한전에서 수력엔지니어로 헌신하는 과정에 국내의 수력발전소 등을 두루 거쳤고 춘천에서도 근무했었다.
프랑스에서 기술연수 과정을 거쳤고 한국전력의 수력교육원 교수를 엮임 하는 등 이 분야의 유능한 전문가였다. 은퇴 후에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9년간 해외 수력발전프로젝트에 참여해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에서 4곳의 수력발전소를 준공시키는 등 애국심 가득한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왔다.
처음 맡았던 파키스탄 젤룸강의 ‘뉴봉수력건설’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진출한 최초의 수력발전사업이라는 점에 더욱 놀랍고 뜻깊게 읽었다.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로서 토목, 건축, 전기전력, 기계, 통신 등 무려 2,300여 장의 도면과 씨름 했다고 술회한다. 나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엔지니어링에서 3년 정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저자가 이루어낸 결과가 얼마나 어렵고 대단한 과정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파키스탄 젤룸강에서의 첫 프로젝트에서 준공시험 최종 합격 통보가 내려지던 날, 벅차오르는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갑자기 중앙제어실의 파키스탄 운전 요원과 관계자들이 몰려와 나를 눕히고 공중으로 들어 올려 세 차례의 행가래를 쳤다.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솟구쳤다. 그동안 수많은 난관, 기술적 문제들과 싸우면서 감당해야만 했던 고통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수력발전소 준공을 맞은 감회- 중에서
이후에도 포스코건설과 현대건설에서 임종학 엔지니어의 성공 경험과 뛰어난 기술력을 요청하여 인도네시아에서 3곳이나 수력건설 프로젝트 책임자로 활동하며 성공리에 일을 마쳤다. 대단한 수력엔지니어의 삶이었다.
이 책에서는 새로운 정보도 접할 수 있었다. 치수(治水)와 이수(利水)의 개념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 소양강댐은 치수와 이수를 겸한 다목적댐으로 한국수자원공사 관할이고, 춘천댐과 의암댐은 치수 목적의 발전 전용 댐으로 ㈜한국전력 관할인 것도 새삼스러웠다. 춘천시 신북면에 지역통제센터로 번역 되는 R.C.C(Regional Control Center)가 있고 화천댐, 의암댐, 춘천댐, 청평댐의 물 관리를 총체적으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춘천은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저자는 제2의 고향인 춘천을 사랑하여 춘천에 정착했고, 춘천의 3가지 자랑 거리를 나름대로 이렇게 표현했다.
“첫째, 춘천은 산천과 물이 깨끗하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 공원이나 호수 등으로 둘러싸여 공간이 넉넉하여 여유를 만끽할 수 있고 셋째, 춘천 사람들은 아직은 인간 세파에 오염이 덜 되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많이 있다.”
-춘천의 가을을 안으며- 중에서
글의 내용으로 보아 저자는 바둑도 유단자인 듯하다. 장애인 바둑교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모든 부분에 적극적이고 열심이다. ‘제1회 강원도 장애인 바둑대회’를 처음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가을과 달 그리고 벌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달에 대한 이야기로는 ‘젤룸강변 보름달’, ‘보름달 친구’, ‘젤룸강의 친구’란 수필과 곳곳에 달 이야기가 등장한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달을 벗하며 외로움을 달랜 것 같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달 덕분에 그 긴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보름달이 나를 반겨줄 때면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양하여 가슴 벅찬 행복감에 감격의 눈물로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보름달 친구- 중에서
계절 중에는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던 같다. 관련 수필로 ‘춘천의 가을을 안으며’, ‘창밖 가을을 보며’, 천고심비‘가 있고, 벌에 대한 글로는 ’나의 양봉기‘, ’월동봉군 봄축제‘, ’아카시아 향기처럼‘, ’벌멍 이야기‘ 등이 있다. 벌에 관한 이야기 한 부분 소개한다.
“벌들의 치열한 역사(役事)에 비추어 볼 때, 장년에 접어든 내 삶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스스로 자문해 보곤 한다. .........쉼 없이 일하는 벌들의 단순명료한 삶이 나로 하여금 우주 순환의 진리와 정의를 깨우치도록 한 수 가르쳐주고 있다.”
-벌멍 이야기- 중에서
저자는 행복의 명제를 ’안분지족‘과 ’자아실현‘이라고 했다. 정성으로 가꾸고 있는 텃밭을 법정 스님께서 지어주신 적광이라는 법명을 사용하여 ’적광농원(寂光農園)‘이라 칭하며, 이후의 삶은 글을 쓰는 평범한 농부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적광의 불교적 해석은 어렵지만, 일상에서는 ’고요히 빛나는 마음‘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저자는 글을 쓰는 이유가 ’영혼을 맑게 하기 위함‘이라 했는데 법명인 적광과 잘 어울리는 모토(motto)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에 새겨지는 경구가 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였다.
임 작가님! 안분지족과 자아실현을 이루며 담백한 삶을 자박자박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이 가을에, 엔지니어의 감동적인 삶을 담은 책 「수력 엔지니어의 길」을 읽으며 스스로를 곱게 물들여 보시기 바랍니다.
2024.10.14. 우승순
첫댓글 우승순작가님! 다시 한번 존경합니다.
우승순 작가님의 평론 최고입니다. 앞으로 왕성한 활동 응원하며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