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7
#룻기
룻기의 시대 추정중 난제는,살몬과 보아스와 오벳과 이새와 다윗까지 총 다섯세대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사사시대 대부분을 거칠수 있느냐는 점이다.여호수아부터 에훗이 사사가 되기까지는 대략 백여년인데,룻과 결혼할때의 보아스의 나이를 오십세로 잡는다면 그는 대략 옷니엘이 사사일때 태어났을 것이다.살몬이 여리고를 정탐할때와 라합의 나이를 서른살로 잡는다면 그들은 대략 여든즈음에서야 보아스를 낳은것이다.게다가 보아스와 오벳과 이새가 사사시대 전체를 포괄하려면 부모가 매우 늦은 나이에 낳거나,백세이상 매우 장수해야만 가능할것이다.
타인의 기업을 물러준다는 것은 그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경우에 따라서는 그집안의 미망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아들을 낳아 그사람의 이름으로 기업을 넘겨주는 것이다.율법에서 기업을 물러주는 것을 매우 대단한 특권으로 가르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물질적인 혜택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물질과 인생에 손해가 가는 일을 스스로 기꺼이 떠안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여호와께로부터 형언할수 없는 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보아스보다 먼저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자는 보아스에게 그 권리를 넘긴것 때문에 거의 대부분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그는 처음부터 거부한게 아니라 룻을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는것 때문에 중도포기를 한것이었다.즉,물질적 손해는 기꺼이 감수할 의도는 있었던 것이므로 함부로 정죄할만한 인물은 아니다.
룻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오르바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따라 비난을 받기 일쑤지만,오르바와 같은 처지에 놓였을때 오르바와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을수있는 교회와 신자들은 별로없다.도리어 오르바는 모압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시모 나오미를 아무런 갈등없이 친어미처럼 모셨는데 오르바만큼 시모를 공경하는 기독교인 며느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물론 거기에는 나오미의 탁월한 인품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을텐데,그렇다면 여담으로 나오미만큼 며느리를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기독교인 시모는 얼마나 될까?
룻기야말로 아가서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 할수있다.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모압왕 에글론이 지배하던 18년 중 후반 십년 즈음부터 사사 에훗이 다스리던 초반 즈음까지가 가장 유력하다.왜냐하면 나오미 가족은 모압으로 이주했다가 돌아왔고,보아스의 부모는 여리고를 정탐했던 유다지파 살몬과 여리고의 창녀였던 라합이었기 때문이다. 엘리멜렉이 유다지파의 유력한 집안이었으면서도 적대국인 모압으로의 이주뿐만아니라 모압여인들을 며느리로 삼을수 있었던것은,아마도 일제강점기 친일파처럼 친모압파였기 때문일것이다.
#사사기
이스라엘의 열한지파가 패역한 베냐민지파와 전쟁을 벌일때 대제사장은 아론의 손자이고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였다.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세워질때 비느하스의 나이를 서른살로 가정하고,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벌한 기간을 이십년 정도로 잡는다면 이 사건은 여호수아가 죽은 지 삼십년 정도는 지나서야 생기지 않았을까싶다.비느하스가 아무리 고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신앙은 변질되거나 퇴색되지는 않았을것인데,왜 이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않고 잠잠히 따랐는지 의문이 들게 되는데,이는 그만큼 다른 지파들이 대제사장은 물론이요 레위인 전체를 무시하고 홀대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그들의 전쟁에 아무 언질을 주시지 않으신 것처럼 비느하스도 어디한번 두고보자는 식으로 내버려둔 것일지도 모른다.
레위인은 불륜을 저지른 자기 애첩을,그녀의 아비는 불륜을 저지른 자기딸을 자기들의 손으로 처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대신 그녀에게 형벌을 내리신것이다.레위인의 첩은 차라리 율법에 따라 자기 남편이나 아비에게 처단되는것이 그나마 덜 치욕스러웠을것이다.남편이 아닌 다른 애인과의 달콤한 불륜은 혐오스러운 불량배 백명의 윤간으로 돌아왔다.
에브라임은 야곱에게서나 모세에게서나 장자 므낫세를 제치고 더나은 축복을 받았으나,그들은 도리어 그 축복을 가지고 교만하게 되어 구약력사내내 생양아치짓을 일삼았다.여호수아 시대에는 땅 더 달라고 징징대다가 여호수아에게 늬들이 알아서 개척하라고 타박을 받았고,기드온과 입다에게는 처음부터 돕지않고 나중에 눈치봐서 슬금슬금 돕는척하다가 그걸로 유세를 떤다.더군다나 가뜩이나 무남독녀 외동딸을 잃어 극심한 슬픔에 잠겨있는 입다를 위로하기는 커녕,기드온때처럼 으스대다가 되려 입다에게서 학살을 자초하게 된다.이런 패악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한계시록의 144천명의 열두지파에서 에브라임지파는 단지파와 함께 누락되는 불명예를 안게된다.
사사 삼갈에 대한 기록은 비록 단한구절 뿐이어도,내게는 그 어느 사사들보다도 더 큰, 마치 멜기세덱만큼의 크고 신비하며 웅장한 감격을 선사한다.사사 삼갈의 지파가 기록되지 않은것은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를 믿는 이방족속임을 의미하고 아마도 기브온 족속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사사 삼갈이 블레셋 군사 륙백명을 죽인 이후의 행적이 없다는것은,아마도 전투중 또는 후에 장렬히 전사했다는것을 암시한다.그래서 그는 비록 이스라엘인이 아니어서 정식 사사로 추대되지는 않았을지라도,사무엘은 삼갈의 효용한 공적을 기려 명예사사로 추대한것으로 보인다.
내생각에 사사기는 한사람의 기록은 아닌것같다.사사기에서는 레위인들의 활약이 철저히 가려져 있으므로,아마도 당대 사사들의 활약을 레위인들이 단편적으로 기록하였고 삼손까지의 기록들은 사무엘이,17장부터의 범죄상들은 시간상으로는 사사들보다 앞서지만 포로기의 에스라가 추후에 덧붙였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