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와 드라마 평론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보고 듣는 것에 대한 평을 할 수는 있습니다. 비록 달걀을 낳을 수는 없지만 달걀의 맛과 선호도는 평가할 줄 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크래시는 오랫만에 보는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수진 극본에 박준우 연출로 12부작으로 구성됐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 수작인가라는 질문에 수많은 각기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지만 저는 뭔가 기존의 드라마와 차별화가 됐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교통사고라는 요즘은 기사화도 안되는 흔한 일을 통해 제작진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했다고 느낍니다. 갈수록 급증하는 도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그 도로속에서 어떤 일들이 그리고 그 도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지도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경찰들 속에서도 자칫 한직으로 여겨질 수 있고 땡볕이나 추운 겨울에도 도로 교통 정리를 해야 하는 교통경찰 그리고 갈수록 흉악해지는 도로 주행 빌런들을 상대로 묵묵히 일하는 이 나라 교통관련 경찰에게도 큰 격려를 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길입니다. 길은 인간이 태어나서 만들어진 도구이자 제도입니다. 자연속에서는 길이란 없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길일수도 있습니다. 길에는 일차선 이차선 다차선 등이 존재합니다. 길은 바로 선입니다. 선은 넘어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을 준수하면 아무런 사고나 희생없이 자신의 목적지에 갈 수있지만 그 선을 넘을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탈선이 그래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탈선이 빚는 엄청난 희생과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자기의 선을 잘 지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주는 두번째 교훈은 악행은 언젠가는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속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야말로 관속까지 가져가겠다는 악인들의 다짐속에 상당수의 범죄가 묻히고 맙니다. 범죄에는 당연히 피해자가 존재합니다. 그런 피해자는 억울하게 당하고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피의자들이 입을 맞추고 서로 결탁하면 없는 범죄도 만들어내고 엉뚱한 사람이 피의자도 둔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범죄는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고 결국 죄값을 받게 된다는 원초적인 교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번째 교훈은 도로위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의 경우 피의자들의 죄책감이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을 가볍다는 것입니다. 교통사고 희생자는 매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도로가 급증하고 차량이 덩달아 늘어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교통사고의 경우 피의자는 차가 사고를 낸 것이지 자신은 그런 의도가 없었으니 심적 죄책감이 적다는 그 모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로위에서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이기도 하지만 아주 위험한 흉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험한 흉기를 매일 일상적으로 다루는 운전자들의 경각심이 절실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수작이라는 이유는 완전한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권선징악이라면 서울경찰청장 표명학과 그의 아들 표정욱 그리고 조폭에서 기업가로 변신한 양석찬과 그의 아들 양재영 뿐아니라 간교한 술수를 일삼는 총경 이태주도 죄값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주는 권모술수로 일약 총경까지 오르지만 그는 총경자리를 굳건히 지킵니다. 이른바 콜뛰기사건에 연루된 고위직들의 자식들의 범죄를 숨겨주면서 경찰 고위직들의 비호를 받지만 오히려 큰 소리 치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채만 팀장 부인의 뺑소니 사고도 해결되지 못하고 공소시효를 넘기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사회에는 여전히 범죄의 그늘속에서 그들만의 잇속을 챙기는 세력이 상당하다는 것과 그런 세력을 처단하기 위한 사회적 국민적 경계심이 필요하는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드라마 크래시는 ENA에서 방영됐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ENA 역대 2위의 성적표를 받았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현장을 리얼하게 촬영하기 위해 아주 위험스런 상황을 감수했다고 합니다. 주인공인 이민기 곽선영 허성태 이호철 문희 등 배우들의 열연도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쩌면 단순할 수 있는 교통사고속에 담긴 그 비정함과 흉악함 그리고 인간 본연의 악마적 성향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제작팀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024년 6월 1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