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USB 아닌 몸속 DNA에 파일 저장하는 시대 올까요
[DNA 저장장치]
하버드대 연구팀, 대장균 속 DNA에 동영상 저장하고 재생하기 성공
DNA, 몸 정보 기록해놓은 '설명서'… 1㎏에 세상 모든 데이터 저장할 수도
돌연변이 발생 가능성 최소화하고 세포 밖에서 DNA 유지할 길 찾아야
동영상을 저장하는 새로운 저장 매체가 등장했어요. 주인공은 컴퓨터나 USB가 아닌 DNA랍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조지 처치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13일 대장균의 유전자 속에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저장한 뒤 이것을 다시 재생하는 데 성공했어요. 연구팀이 저장한 동영상은 19세기에 인류가 최초로 만든 동영상 중 하나인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에요. 연구팀은 세균의 몸속에 어떻게 동영상을 저장한 것일까요?
◇몸이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 DNA
어떤 정보를 저장할 때 보통 떠올리는 저장 매체는 하드디스크나 USB 같은 디지털 저장 장치예요. 이런 장치들은 보통 모든 정보를 0과 1로 바꿔서 저장해요. 이것을 '이진법'이라고 하는데, CPU의 기본 연산법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 눈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동영상이 보이지만 디지털 저장 장치는 이 동영상의 색깔, 크기, 명암 등 모든 것을 0과 1로 코드화해서 '00101101011100…' 같은 아주 긴 숫자로 저장해요. 0과 1로 나눌 수 있는 한 회로를 비트(bit)라고 하며, 1기가바이트는 약 8억개의 비트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에요.
▲ /그래픽=안병현
대장균이나 인간의 세포도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요. 다만 대장균 같은 생명체는 전기 회로를 이용하는 대신 DNA를 이용해요.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사이토신(C) 등 네 가지 화학물질이 순서대로 저장돼 있어요. 세포는 DNA가 배열된 순서를 토대로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이 기능을 하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답니다. 예컨대 우리 개개인의 신체 정보는 DNA 안에 'AGTTCACAGTCG…'라는 식의 서열로 저장돼 있죠. DNA는 우리 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담긴 설명서예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동영상은 사진 5장으로 이뤄져 있어요(사진을 빠르게 재생하면 동영상이 되죠). 하버드대 연구진은 1과 0으로 구성된 동영상의 디지털 정보를 DNA 서열로 저장했어요. 1·0은 A로, 0·1은 T로, 0·0은 C로, 1·1은 G로 바꾸자 원래의 동영상은 1000자가 넘는 DNA 서열로 바뀌게 됐어요. 예를 들어 동영상 파일에서 '10011101'이라는 구간은 DNA 서열 'ATGT'로 바뀌었죠. 연구팀은 이 순서대로 DNA를 합성해 세균의 몸속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어요.
연구진은 이렇게 만들어진 '동영상 DNA' 염기 서열을 세균의 몸속에 주입했어요. 이 작업엔 세균의 면역 시스템을 이용했죠. 세균은 자신의 DNA에 자신을 한 번 공격했던 바이러스들의 DNA 서열을 저장해뒀다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그 정보를 활용해 바이러스를 물리쳐요. 하버드대 연구팀은 DNA로 바꾼 동영상을 세균에 위험이 되는 바이러스처럼 보이게 했어요. 위협을 느낀 세균은 동영상 DNA를 바이러스로 오인하고 자기 몸속에 그 서열을 저장했죠. 아무것도 모르는 세균은 하루에 한 번씩 총 다섯 번, 말이 달리는 정보가 담긴 DNA를 몸속에 저장했답니다.
◇DNA 컴퓨터도 개발 가능할까
이렇게 대장균 안에 동영상 DNA를 새겨넣는 데 성공했는데 재생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대장균은 하루만 지나도 수십 세대가 번식을 해요. 연구진은 이튿날 수십 세대가 지난 대장균 안에 기존의 동영상 DNA가 그대로 저장돼 있는지 확인했는데요. 동영상이 원본의 90% 가까운 상태로 보존돼 있었어요. 대장균과 같은 생명체에 정보를 저장하고 그것을 재생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완전히 증명된 셈이죠.
DNA를 이용한 컴퓨터의 개발에도 기대가 높아지고 있어요. DNA 컴퓨터는 컴퓨터 공학자인 레너드 애들먼이 1994년 처음 제안한 개념인데요. DNA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고 계산을 실행하는 분자 컴퓨터예요. DNA 컴퓨터는 한 번에 여러 가지 계산을 할 수 있어요. DNA를 이루는 네 가지 염기는 서로 자석을 당기듯 결합하는 성질이 있는데요. 염기 중 A는 T와, C는 G와 짝을 이뤄요. 아무리 긴 DNA 서열이라고 해도 서로 짝이 맞으면 순식간에 결합을 하는데요. DNA에 동영상을 저장했던 것처럼 어떤 정보를 저장하면 그에 맞는 짝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실제로 여러 도시를 방문하는 최소 경로를 DNA로 계산하기도 한답니다.
또 DNA 컴퓨터는 많은 정보를 쉽게 저장할 수 있어요. 1g의 DNA에 약 1000개의 염기(A, G, T, C)가 포함돼 있는데, 이들을 디지털 정보로 바꿔 정보량을 계산하면 무려 10억테라바이트(1테라바이트는 1024기가바이트)가 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요. 1㎏의 DNA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어요. 전력 소모가 거의 없는 것도 장점이에요.
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아요. DNA 컴퓨터를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세포 밖에서도 DNA를 유지하고 변형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돼요. DNA의 돌연변이 비율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해요. 우리 몸의 세포에서 DNA가 복제될 때 일반적으로 10억번에 한 번씩 오류가 발생하는데요. 앞서 하버드대 연구팀이 정보를 다시 불러왔을 때 정확도가 떨어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동영상 같은 정보는 90% 정확도로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아주 높은 정확도가 필요한 기밀 정보나 암호 등은 DNA 컴퓨터를 활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어요. 과학자들도 이 문제를 알고 DNA의 오류를 바로잡거나 정보의 신뢰도를 확보할 방법을 연구 중이랍니다.
조선일보 2017.8.16
첫댓글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DNA자체를 유기물이 아닌 손상되지 않는 무기물 같은 걸로 합성해서 인위적으로 만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그전에 어디선가 짐승의 표가 DNA를 이용한 생체칩일 것이다라는 계시적인 내용을 본적이 있는거 같은데요. 백스터전도사였었나?
암튼 이것이 실용화되면 무서운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