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윤 스테파노 신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에제키엘 34,11-12.15-17 1코린토 15,20-26.28 마태오 25,31-46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시편 100,3)
저는 제주도에서 안식년 프로그램에 참석 중입니다. 여러모로 지친 몸과 마음을추스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제 마음은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나에게 주어진 책임에서, 내가 바라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시간에서. 이런 저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의인과 불의한 이들을 가르듯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바라던 안식년이고, 무엇하나 부족함 없는 이 시간에 감사와 기쁨이
충만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저를 꾸짖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은총을 주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고 저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보내며 우리 구원자이시고
주님이시며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 목숨까지 내어주시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왕으로 기립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주님의 실존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를 달리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주님을 우리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왕이심을 고백하기 위해,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 것임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와 용서 안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였다.
나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나에게 희망을 두고, 나를 바라보며, 내 안에서 기도하였다.
왜냐하면, 너와 함께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 왕이시라면, 아니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라면 주님께는 물론이고
우리와 함께하는 이에게 주님께 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용서하고, 함께하며,
그들과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두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을 지내며, 지난 한 해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족한 모습마저
주님께 봉헌하며 진정한 주님 백성이 되어, 새로운 전례력 한 해에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우리가 되어 주님의 자랑거리, 주님 것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광주대교구 윤종윤 스테파노 신부
2023년 11월 26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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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우 요한 세례자 신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에제키엘 34,11-12.15-17 1코린토 15,20-26.28 마태오 25,31-46
“일상을 회개와 선행으로 살면…”(마태오 25,31-46)
오늘은 연중 제34주일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이다.
우주 만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길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중개자이심을 전례의 마지막 주일에 기념하며 고백한다.
오늘 복음은 최후에 있을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을 예고한다. 즉, 어떤 누구에게도 절대로 억울한
판결일 수 없는 ‘심판의 기준’ 에 대한 말씀이다. 이 세계가 끝날 때 주님은 영광을 떨치며
천사들을 거느리고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오실 것이며, 죽음에서 부활한 모든 이들은
그 앞에 모여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그 과정은 이렇다.
주님은 착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을 따로 갈라 세워 놓으시고 착한 사람들에겐 일찍이 없었던
최대의 축복을 선언하신다(마태 25,34-36 참조). 이들이 영원한 생명과 축복의 나라에
불림을 받게 된 이유는, 이들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당신의 가르침을 사람들 앞에서
증언했기 때문이다(32절).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믿음을 자기들의 생활로
증거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기들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주님께 이런 일을 해 드린 일이 없고,
그저 어려운 이웃이나 돕는 조그마한 사랑을 베풀었을 따름이라고 그들이 말하자,
주님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참조)하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그들이 이와 같은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들이 어떤 때 우연히 남에게 베푼
일시적 행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베풀어 준
착한 행위들이 이러한 영생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 반대로 저주를 받게 된 자들은 입으로 하느님의 이름만 불렀을 뿐 악을 일삼았고,
이웃을 돌보지 않았던 자들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나 그때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을 일삼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거라’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 7,22-23 참조).
“나는 그들에게 ‘너희가 이 사람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 25,45 참조).
결론적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최후의 심판을 이렇게 미리 보여 주신 의도는 우리의 지금 생활이
악을 일삼는 생활이면 어서 빨리 회개하여 죄악에서 손을 떼고 남은 생활만이라도
선행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교훈을 주시기 위함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춘천교구 정영우 요한 세례자 신부
2023년 11월 26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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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미카엘 신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에제키엘 34,11-12.15-17 1코린토 15,20-26.28 마태오 25,31-46
우리들의 통치자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자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잠시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의 의미를 묵상해 볼까 합니다.
‘그리스도왕’이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동시에 왕이시다는 뜻입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우리들의 통치자’이시다는 뜻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들의 구원자’이신 것은 우리가 늘 고백해 왔고 익숙한 것이지만
‘우리들의 통치자’란 것은 다소 좀 생소하고 정치적인 느낌이 많이 듭니다.
어릴 때 흑백TV 시절 성탄절이 되면 TV에서 예수님에 대한 영화를 방영하였습니다.
그때 영화의 제목이 ‘왕중왕’이었는데 초등학생이었던 그 시절에도 제목이 왜 ‘왕중왕’일까
하고 좀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TV에 방영되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영화의 제목을
일치시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분을 ‘우리들의 왕’(통치자)으로서 고백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복음에 기인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는 것과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그 나라를 성취하셨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우리 앞에, 우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나라를 믿고 받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느님의 나라를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하느님의 통치’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통치를
우리들에게 주셨고 우리가 그 하느님의 통치를 믿고 받아들이겠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당신의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로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우리의 구원자’(그리스도)가 되시며
동시에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이나 개인은 그 삶이 매우 고통스럽고 비참해지기까지 합니다.
설사 내 나라가 있고 통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리 만족할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에게는 예수님이 주신 ‘하느님의 나라’가 있고
그 나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신 통치자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할 때 구원자이신 예수님뿐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와 그 통치자이신
예수님을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부산교구 이민 미카엘 신부
2023년 11월 26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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