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1열왕 9-13; 로마 9,1-5; 마태 14,22-33
연중 제19주일; 2023.8.13.; 이기우 신부
1. 바람 속의 주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였던 유경환 클레멘스가 쓴 신앙의 시에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 로제리오가 노래로 만든 곡이 ‘바람 속의 주’입니다.
그 못자리 스친 곳에 스며 있는 향기를 그 발자국 패인 곳에 굳어 있는 믿음을
바람부는 돌밭 속에서 가득 안은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헤매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 뵈온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외롭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2. “동굴에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 19,11)
아마도 이 생활성가 곡의 모티브는 엘리야가 호렙산의 동굴 입구에서 주님을 만난 체험인 것 같습니다. 그는 강한 바람이나 지진, 또는 뜨거운 불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 뵈옵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던 때는 의외로 느끼기도 힘들 정도로 미약하고 고요한 미풍 속에서였습니다. 이 노랫말을 지은 시인도 미약하고 고요한 미풍 속에서 주님을 만나 뵙는 체험을 했나 봅니다. 사실 그 당시 엘리야에게는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안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알 신의 예언자 4백 5십 명과 피말리는 대결을 하고 가까스로 승리를 하기는 했으나, 독기가 오른 이세벨 여왕 군대의 추격을 혼신의 힘으로 따돌리고 몇 날 며칠을 힘겹게 걸어서 겨우 호렙산으로 피신해 온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기진맥진하여 지칠 대로 지친 그가 미약하고 고요한 미풍 속에서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던 원인은 호렙에 있는 동굴에 이르렀을 때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동굴에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 19,11). 하느님의 말씀이 원인이요 엘리야가 그분을 만나 뵌 것이 결과입니다.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이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주도권에 순종한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그분을 만나 뵈올 수 있게 해 주는 징표가 될 수 있음을 엘리야는 보여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신앙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보는 안목입니다.
3.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마태 14,32)
오늘 복음에서는 이 안목이 없었던 제자들이 두렵고 놀라야 했던 일을 전해 줍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상황은 물 위를 예수님께서 걸어오신 기적인데, 그 배경이 된 상황은 빵의 기적 사건이었습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 훨씬 넘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기적을 체험한 군중은 열광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오시기로 되어 있는 예언자시다.”(요한 6,14) 하면서 억지로라도 그분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쫓아왔습니다. 이 군중에게는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빵이 많아진 것만 보였을 뿐, 그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서 생명까지도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이시라는 신성의 표지는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신 다음 군중도 돌려보내셨습니다. 자고로 무언가에 환장한 사람들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인지라, 예수님께서도 군중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떼어 놓고 산에 올라 당신 홀로 고요한 가운데 하느님과 통공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던 중에 뒤늦게 새벽녘이 되어서야 배를 타고 간 제자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감지하셨습니다.
본시 바다처럼 드넓은 갈릴래아 호수에는 북쪽 헤르몬산과 서쪽 지중해 그리고 동쪽 아라비아 사막에서 낮과 밤 그리고 새벽녘에 각기 방향이 바뀌는 바람이 불어옵니다. 무동력으로만 배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상반된 방향에서 오는 맞바람 속에 배가 갇혀버리면 사람의 힘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밤새 맞바람에 시달려 고생하던 제자들은 새벽녘 어스름이라 또렷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물 위를 걸어서 배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사람이 자신들을 구하러 오시는 스승이시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령이다!’(마태 14,26) 하고 소리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며 당신이 유령이 아니심을 보여주시어 그들을 안심시키셨고, 곧 이어 바람과 파도도 고요하게 가라 앉히셨습니다. 엘리야에 이어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요함 속에서 주님을 만난 셈입니다. 그 고요함은 엘리야에게 있어서 강한 바람과 지진과 뜨거운 불 같은 혼란을 겪은 후에 나타난 표징이었듯이,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맞바람과 높은 파도, 유령과도 같은 존재의 출현으로 인한 두려움 같은 혼란을 겪은 후에 나타난 표징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은 그쳤습니다.
4. “주님,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그런데 물 위를 걸어오시는 스승을 본 베드로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엉겁결에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베드로는 드디어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는데, 참으로 신기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러다 빠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을 테지요. 그 순간 그의 발은 물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그를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구해 주시며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을 품었느냐?”(마태 14,31) 이러고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도 아직 주님의 눈으로 보는 은총은 내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5. 동족을 향한 사도 바오로의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
그런가 하면 한때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민족적 열정이 남달랐던 바오로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어 일생을 바치고 나서 만년에 이르러서는 젊은 날의 민족주의적 정서가 발동해서 모처럼 속내를 드러내놓고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알려진 세상의 총 본산으로서, 각 나라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 살고 있는 국제 도시였습니다. 물론 유다인들도 이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었고, 사도 바오로는 온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복음을 전할 참이기는 했지만, 정작 유다인들이 그 구원 대상에서 제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었고 끊임없는 아픔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래 유다인들은 태어나자마자 할례를 받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이 주어졌고, 그것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다른 민족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것으로서 오직 하느님을 섬겨온 유다인들만의 영광이었습니다. 이러한 선민의식으로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위한 주님이 되어주시라는 계약을 믿고, 그 계약으로부터 나오는 율법을 성실하게 지켜 왔습니다. 안식일마다 꼬박꼬박 주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려온 것도 바로 그 계약 때문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예수님께서도 인성으로는 유다인이 아니시냐? 하는 심정을 바오로는 여과없이 로마에 사는 이방 신자들에게 드러내 보였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눈으로 동족의 역사와 자신의 겨레 사랑을 보고 있습니다.
6. 민족과 교회, 겨레 사랑과 하느님 사랑
사도 바오로의 이 진정성 있는 청원은 우리 한국 교회와 민족에게 반면교사로 작용합니다. 이백여 년 전에는 민족이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을 백 년 동안 죽였습니다. 그 벌로, 나라는 일제에게 빼앗겼고, 겨우 해방되는가 했더니 나라가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동족상잔의 내전을 삼 년 간 치루었습니다. 그 때 맺은 휴전협정이 지금까지 70년이 흘렀습니다. 그 후에도 가난과 독재에 시달려 고생한 민족이 이제사 겨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믿는 이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고 믿지 않는 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간절한 청원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겨레가 하느님을 알아보고 믿게 하려면, 우리 신앙인들이 겨레의 공동선에 투신하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톨릭 신앙은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정통 신앙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보는 안목으로 민족과 교회, 겨레 사랑과 하느님 사랑을 생각해 본다면, 민족이 주체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섬기는 올바른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만 된다면 민족의 주체성은 교회의 보편성에 힘입어 얼마든지 찬란하게 꽃을 필 수 있을 것이며 열매도 맺을 수 있을 것임을 우리 믿는 이들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12)
엘리야가 아주 약한 바람 속에서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던 것은 바알 신의 예언자 4백 5십 명과 목숨을 건 결투를 치루고 나서 가능했던 섭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하시기 위해서도 만여 명도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후야 가능했고, 호수 물 위를 걸어서라도 제자들을 구하시러 오셨던 일도 그 제자들이 빵의 기적을 함께 목격했으며 그 후에도 예수님의 복음선포를 계승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협력자요 계승자라는 사실에서 연유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도 바오로가 동족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그러나 매우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 것 역시 이방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복음을 선포한 후였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고백이었습니다.
요컨대, 엘리야나 예수님이나 또 사도 바오로나 나름대로 절박하고 타당한 맥락에서 그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런 연후에라야 바람 속의 주님을 뵈옵거나 물 위를 걷거나 동족의 복음화를 염원하는 심정적 토로가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원한다면 무언가 절실하고 진정성 있는 투신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투신을 보신 연후에야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 19,11)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내릴 것이고,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올 것(1열왕 19,12)입니다. 광복절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나 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바람 속의 주’입니다.
그 못자리 스친 곳에 스며 있는 향기를
그 발자국 패인 곳에 굳어 있는 믿음을
바람부는 뻘밭 속에서 가득 안은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헤매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 뵈온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외롭지 않으리 바람 속의 내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