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강론>(2023. 9. 13. 수)(루카 6,20-26)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참 행복, 구원』
예수님의 ‘참 행복 선언’ 말씀과 ‘불행 선언’ 말씀은,
‘행복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에서 “행복하여라.”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이고,
“불행하여라.”는 “멸망할 것이다.”입니다.
<‘행복론’이 아니라 ‘구원론’입니다.
뜻은 생각하지 않고 번역문의 표현만 보고서 행복을 얻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생각이 짧은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0-21).”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루카 6,24-25).”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은, 재물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만
섬기는 사람들을 뜻하고,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재물만 섬기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루카복음 16장에 있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이 말씀에 대한 설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루카 16,19-24)”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이미 위로를 받은(실컷 즐기고 있는)
사람이고, 지금 배부른 사람이고, 지금 웃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도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그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심판을 조금이라도
의식했다면, 또 자신의 영혼 구원을 조금이라도 신경 썼다면,
라자로를 외면한 채 그렇게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저승에서 고통과 고초를 겪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라자로에게 빵 한 조각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달라고 애원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마태 25,41-4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45).”
<라자로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게 무관심하고, 예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나라에(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그 부자처럼 살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그렇다고 해서 라자로처럼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라자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라자로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나에게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사회에서 라자로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답은 사랑 실천입니다.
종교와 신앙의 기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정치인들은 국가 전체의 복지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일을 올바르게, 또 충실하게
할 일꾼을 제대로 뽑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루카복음 12장에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루카 12,16-19)”
심판을 의식하지 않고, 구원에 관심도 없다는 점에서,
즉 어리석다는 점에서 두 부자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리석은 모습들을 실제 현실에서도 자주 봅니다.
종말, 심판, 내세, 구원,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등을
비웃으면서 그저 하루하루 즐기면서 사는 것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세속 사람들은
전부 다 그렇다고(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처]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첫댓글 땅에 살면서 천국을 그리.⁶
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