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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출처 스레딕
그 뒤로 나는 긴장했던 게 한꺼번에 풀려서 몸살이 났다.
며칠간 몸을 추스르느라 나는 꿈에 진입하지를 못했다.
너무 아프니까 오히려 꿈 생각도 잘 안 나더라.
며칠 뒤에 나는 다시 스카이블루에 진입할 수 있었다.섬에
들어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굴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정호연은 증상이 많이 나아진 듯 안색이 많이 괜찮아져
있었다.나는 사람들이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에 감동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들은 내가 온 걸 어찌 알았는지
금방 동굴로 달려왔고, 나를 둘러쌌다.이어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협박조로 제안했다.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진에게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리겠다고.
그럴 거면 대체 왜 정호연을 낫게 해 준 걸까. 그런 의문은
곧 풀렸다.사람들은 내가 어찌할 틈도 없이 정호연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한쪽 끝을 튼튼한 나무에 묶어버렸다.협박은
진에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협박이 듣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정호연을 인질로 잡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진을 속여서
이곳으로 왔기에, 다시 나갈 방법 따위는 알지 못했다.
애당초 나갈 것을 염두에 둔 적도 없었으니까.솔직하게
그것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들은 끊임없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다.
이유를 물어봤었다. 이곳도 충분히 살기 좋은데 왜 나가려
하느냐고.스카이블루, 스카이그린, 미스틱은 지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후와
환경조건을 갖추었는데 말이다. 한참동안 대답을 미루던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밖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고 이
세계를 아예 점령하겠다고.
그들은 진이 자신들의 의견은 한 마디도 묻지 않은채
스카이블루에 강제로 연금하다시피 한 것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나는 갇힌 자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들의 화가 정말 컸다는 것은 체감할 수
있었다.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순순히 협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차라리 진에게 모든 것을 알릴까... 하고.
꿈 중독을 벗어난다는 선택지따위는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일 때에도, 언제나 그 문제를 생각했다.
소설을 쓴다고 둘러대며 현재 상황이라면 너는 어떻게 할거야?라는 식으로 지인들에게도 물어봤던 것 같다.
그 중 한 지인의 대답이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자기 같으면 간원의 힘을 써서 오히려 역으로 협박을
하겠다고.그 때까지 나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꿈
속에서 물의 간원자였고, 섬 주변은 온통 물이었다. 즉
섬에서의 나는 매우 강력한 물리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할 정도로 나는 몹시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꿈 속으로 들어간 나는 정호연 주변으로 경비처럼 선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묶어 놓는 것만으로는
정호연이 탈출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교대로 경비를
서는 것 같았다.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간원의 힘을 최대한 많이 끌어올렸다.
화가 난 만큼 힘이 많이 사용됐는지, 섬 주변에 파도를 이끌어 올 수 있었다. 나는 바닷물로 머리를 꼿꼿이 세운 거대한 뱀의 형상을 만든 뒤 그들에게 말했다. 당장 어제 나에게 협박했던 남자를 데려오라고.
그들은 의외로 순순히 그 남자를 데려왔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씨였던 것 같다.
하씨는 거들먹거리며 나를 보더니 난데없이 칼로 나를 위협했다.
들고 있던 칼은 도무지 섬에서 사람의 손으로는 만들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날카로운 돌칼이었다. 그는 바람으로
절삭하는 게 자신의 특기라고 했다.그 말을 듣고서야 왜
그 사람이 비교적 젊어 보였는데도 리더격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바람은 물보다 훨씬 주변에 많았으니까.
하씨는 나에게 허튼 수작 부리면 정호연을 죽이고 나를
고문하겠다고 했다.솔직히 나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산 자였으니까.그렇지만 정호연을
죽인다는 말에 움찔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나는 강경하게,
나는 이곳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들어왔다고 말하며
파도를 가리켰다.나와 정호연에게 더 이상 위협을 가한다면
해일로 섬을 쓸어버리겠다고.
정호연이 죽는다고 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나를 죽인다
한들 다음날에 다시 들어와서 이곳을 쓸어버릴 거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 하씨도 한풀 기가 꺾이는 듯 싶었다.
그는 후회할 거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가 버렸다.
나는 정호연을 묶은 밧줄을 끊어내며 서럽게 울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설움과 분노가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한없이 말도 않고 울기만 했었다.그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사람들은 더 이상 정호연을 건드리지 않았다.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날이 지나갔다.
그렇게 사,나흘정도 지났을까. 난데없이 레이가 섬에 나타났다.
해변가에 나타난 레이를 보고 나는 기절할 듯이 놀라
동굴로 숨어들었다.정호연에게 말하니, 그는 레이가 원래
간혹 섬을 살피러 온다며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동굴에 있던 커다란 항아리 안에 숨어서 레이가 그냥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레이가 동굴까지 왔는지 말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것 같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
오고 갔다.한참을 숨죽여 기다리던 나는 레이의 한 마디에
심장이 얼어붙었다.
- 거짓말을 잘 하네요.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였다.레이, 세이, 진은 내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최초의 3인.아마 섬을
처음으로 만든 것도 그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무슨 능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저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채로 레이가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부수고 분노에 가득찬 시선을 보내는 걸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레이는 일주일 간 머리를 식히라고 말하며 내 눈을 감겼다.
눈을 뜨니, 그곳은 내 침대였다. 현실로 또 추방된 것이었다.
현실에서 나는 감정을 추스르며
최대한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려고 애썼다.그 때의
꿈 속 상황은 정말 꼬일 대로 꼬여 있었고 내 두뇌는
허약해져서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아 정말 힘들었다.
돌아가면 영구 추방령이 내릴까봐 두려웠고
내가 돌아갔을 때 정호연이 추방을 당한 뒤였을까봐 무서웠다.
일주일 동안 나는 레이에게 할 온갖 변명을 생각해내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이런저런 거짓말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최선으로 떠오른 것은 차라리 나와 정호연만
따로 살 수 있는 섬을 마련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양분된 감정이 더욱 격해졌다.
공포스러운 상황을 대면하기 싫어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나를 그리워하며 홀로 레이의 심문을
받아내고 있을 정호연을 보고 싶어 어서 날이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다시 꿈으로 진입했다.아니, 그
때에는 진입했다기보다는 소환당한 것 같았다.
평소에는 섬에 진입하면 전날 깼던 자리였지만
그 날은 이상하게도 세이의 집이였다. 정호연도 옆에
있었고 문은 굳게 잠가져 있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려니
진, 레이, 세이 세 사람이 모두 들어왔다.
진은 더 이상 호통을 치지 않았다.대신 한숨을 깊이 내쉬며
나에게 기나긴 설명을 했다.갇힌 자와 정이 든 사람은,
그 정 때문에 중독자를 벗어날 수 없기에 일부러 분리를
한 것이라고. 대충 그런 설명인 것 같았다.
나는 진한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빌다시피 말했어
염치없는 줄 알지만 한 번만 부탁을 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정호연과 내가 살 만한 아주 작은 섬을, 다른 곳과 교류하지
못하게 멀리 만들어 주면 안 되겠느냐고 빌었다.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진은 나보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느냐고 심하게 화를
냈어.그러면서 생각이 짧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정말
만들어 주면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 같냐면서.진짜
몸이 남아 있는 사람과 갇힌 자라는 구성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했던건.. 정말 순간이지만 나도
정호연처럼 갇힌 자가 되기 위한 시도를 해버릴까. 였다.
정신이 거의 뭐, 나갔다고 봐도 무방한 거지.하지만 난
그 정도로 그가 좋았었어.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탓하지 않고,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섬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했어.
내가 하도 간절하게 부탁해서였는지 세 사람은 결국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정말 기뻤지만, 동시에 안심이 되면서 세사람에게
미안해졌지.아주 먼 곳에서 솟아오르는 아담한 섬을 보면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잘 되지 않을까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어.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바보같을 정도로 단순한 생각이었지.
다른 사람들이 위치를 보면 안 되었기에, 섬 주변을 안개로
뒤덮고 나서야 작업이 시작됐었어. 위치는 스카이블루
뒤쪽이었어, 스카이블루 주변의 회오리 때문에 미스틱이나
스카이그린에서는 볼 수 없는 위치에 생성되었지.내가 본 것중에 가장 작은 섬이었어. 스카이블루의 1/5도 되지 않는.
정식으로 연인이 된 건 현실 시간으로 한 달 정도 걸렸던 거
같아. 섬 주변에는 짙은 안개가 항상 끼어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섬 이름은 안개꽃섬이 되었어. 레이가 섬이 너무
심심하다며안개꽃 나무를 중앙에 하나 만들어 놓고 가기도
했으니 적당한 이름이었지.현실의 안개꽃은 나무라기보다는 덤불 같은 느낌이지만이건 벚꽃나무처럼 거대한 나무에
안개꽃이 항상 만개해 있었어.아주 예뻤지.
진과 레이, 세이는 자신들도 웬만해서는 이곳에 잘 오지
않을거라고 못을 박아 놓고, 최종적으로 경고했어.
만약 여기서도 이탈 시도를 한다면 그 때는 정말 영구히
추방을 할 거라고. 난 마냥 좋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탈할
마음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안개꽃섬에 나와 정호연, 둘이 남았어.
나는 이번에야말로 옛날처럼 낙원을 즐기며 살겠노라고
정호연과 맹세했고, 섬을 꾸미기 시작했어.
둘뿐이었지만 스카이블루를 한참 꾸밀 때 생각이 나서
많이 즐거웠지. 여름 방학을 그걸로 날려버렸던 거 같아.
2학기가 시작될 쯤엔 섬 보수가 완전히 끝나서 나와 그는 꽤 그럴싸한 오두막집을 짓고 잘 살고 있었어. 진, 레이, 세이는
약속했던 대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른 섬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지. 궁금하긴 했지만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나나 정호연이나.정호연은 다시 한가롭게
새와 노는 취미를 들였어.난 그가 옛날로 돌아온 것 같아
정말 기뻤지.
섬 주변에 안개가 짙게 껴있긴 했지만, 섬 전체로 퍼진 게
아니라 회오리처럼 안개의 원형 벽이 섬 주변을 감싼
형태라 섬의 날씨 자체는 매우 맑았었어. 우린 우유나 차를
마시고,서로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기도 하고 옷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지. 그러던 중에,
내가 감기에 걸려서 이틀 정도 꿈을 꾸지 못했어.흔한
환절기 감기였어.
그런데 내가 평소에 건강이 약해서 좀 심하게 앓았었어.
가족들 말로는 내가 잠꼬대로 정호연이라는 이름을 엄청
크게 외친 적도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정호연이
누구냐는 질문 공세도 받았지.뭐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렸었지만. 감기가 다 낫고 나서 다시 섬에
들어갔는데, 집에 들어간 내가 본 건 울고 있는 정호연이었어.
정말 놀랐지.
어디 다치거나 아픈 게 아닐까 했지만 그건 아니었어.
그는 나를 꼭 끌어안으면서 정말 보고 싶었다고 했어.
나에게는 2~3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었던 거야.갑자기 일주일이 넘도록 내가 안 보였으니
얼마나 초조했을까 싶었어.
난 그를 끌어안고 감기에 걸려서 못 왔었다고 설명했어.
그는 앞으로 못 올 거 같으면 되도록 말이라도 해주라고
했지만...솔직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었어. 왜냐면
나는 그때도, 지금까지도 그 꿈에 들어가는 방법은
모르니까.그냥 잠을 자면 그 꿈을 꾸었을 뿐이었으니까.
물론 난 그것까지 솔직하게 말해줬어.꿈에 들어올 지
아닐지 내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말해주기 힘들다고.
하지만 인위적으로 밤을 새거나 할 땐 꼭 말해주겠다고.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해.
그는 그 이후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어.내가 조금만 옆에
없어도 허둥지둥하며 눈에 띄게 평정심을 잃고 날
찾아다니기 시작했어..그리고 날 찾으면 꽉 끌어안으면서,
언제라도 소리없이 사라져 버릴 거 같다고 끊임없이
말했지. 그런 그를 나는 위로했고.
나는 그게 일시적인 후유증일 거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어.
그는 점점 더 불안 증세(딱히 칭할 말이 생각이 안 나네)가
심해졌어. 내가 아무리 심한 중독자라곤 해도 현실에서
깨어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섬에 없을 때가 많았는데,
그걸 못 견뎌하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어. 스카이블루에서는 나 없이
혼자 숨어서 열악하게 살았는데도 그런 증세 따위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른 곳에 원인이 있나 생각해 봤지만
짚이는 것도 없었고. 그 때의 나는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를 잤어. 섬에 없는 때가 길면 7~8일, 짧으면 3~4일
정도.정호연은 나에게 "일주일이 넘도록 없어서
불안하다"고 했었지만 실제로 그가 느낀 나의 공백은
2~3주에 가까웠겠지.
나는 어떻게든 그를 원래대로 돌리고 싶었어.
그래서 현실에 있을 때면 이야깃거리를 많이 끌어모았지.
관심도 없었던 영화나 연예게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소식도 귀담아 듣기 시작했어.그리고 내가 없을 동안
미치도록 외로웠을 그에게 최대한 재밌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그것 말고도 최대한 말을 많이 했고.
그래도 그는 나아지지 않았어.내가 깨어날 시간이 될
때마다 그는 나를 몸이 바스러지게 끌어안았어.그런다고
잠이 깨지 않는 건 아니지만.다시 섬에 갔을 때 그는 항상
울거나 좌절하고 있었어.그가 했던 말 중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1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게 꽉 차있던 품이
갑자기 비고 찬바람이 들어오면 정말 죽어버릴 정도로 슬프다고.
첫댓글 최고로 재미있어 가져와줘서 고마워!